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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오면 들어서는 순간부터 웃을 일만 있다"는 한길학교(지적장애청소년을 위한 직업중점학교, 교장 박영희) 유미향 보건 교사를 지난 1일 학교 보건실에서 만났다. 그녀는 학교에서 하루 종일 웃다가 볼일 다 본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학교에서 있길래? 

유미향 교사는 아이들 덕분에 학교가 늘 천국같다고 했다. 아이들 덕분에 자신의 꿈도 이 학교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 유미향 보건교사 유미향 교사는 아이들 덕분에 학교가 늘 천국같다고 했다. 아이들 덕분에 자신의 꿈도 이 학교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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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 수업 때 웃음 폭탄 터지다

평소엔 학교 보건실에서 근무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은 보건 수업이 있어서 교실에 들어가는 날은 한바탕 웃는 날이다. 한 번은 학생들에게 소화 기관을 설명하는 날이었다. 음식이 입에서 식도를 통해 소화 장기를 거쳐 결국 어디로 나가게 되나?"란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졌다. 모법 답안은 '항문'이다.

이때, 한 학생이 "선생님! '똥구멍'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유 교사가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맞다 해야 할지, 틀렸다 해야 할지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 있을 때, 또 다른 편에서 한 학생이 자신 있게 반기를 들고 나온다. "선생님, 아니죠. '똥구녕'이죠"

아하! 이럴 어쩌나. 처음 것도 센데, 뒤에 것은 더 세다. '이 사태를 어찌 수습하나' 생각하는 그 순간에 '똥구녕'을 말했던 학생의 치명타가 한방 들어온다. "우리 할아버지가 '똥구녕'이라고 그랬단 말이야. 맞죠 선생님?" 이에 질세라 앞 학생이 "아냐. 우리 엄마가 똥구멍이라고 했단 말이야. 그쵸, 선생님?" 이일로 수업 시간이 한창 공방전을 벌이는 마당이 되었다나.

수업 시간에 종종 이런 사소한(?)걸로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유 교사는 배꼽을 잡고 웃다가도 한편으론 고맙다.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자기 주장을 확실히 펴는, 상당히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학교의 바리스타수업 교실이다. 여기서 갈고 닦은 아이들 중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아이도 있다.
▲ 바리스타 교실 이 학교의 바리스타수업 교실이다. 여기서 갈고 닦은 아이들 중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아이도 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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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반 전체가 모두 반장하려고 나서다

다음은 2012년 처음 개교하는 날에 동료 교사가 겪은 해프닝이다. 담임교사가 말문을 연다. "누가 반장 해볼 사람?" 반장 후보를 추천해서 종이에 쓰라고 했다. 학생들이 각자 종이에 열심히 써서 냈다. 담임 교사가 쪽지를 연다. 헉! 반 전체 인원이 7명인데, 반장 추천 후보자가 7명이다. 어찌된 일일까. 그렇다.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써낸 거다.

담임교사는 이 결과가 미심쩍어서 이번엔 반장 추천할 사람을 서로 지목하라고 했다. 아무도 지목하는 사람이 없다. 결국 모두가 자신이 반장을 하겠다는 거다. 이렇게 의욕이 강한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겨우 반장을 선출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이 학교 교사들 사이에선 지금도 회자되는 해프닝이다. 한 교사는 "이 아이들이 다른 일반 학교와 사회 생활에서 얼마나 주눅이 들었으면, 여기 와서 저렇게까지 자기를 표현할까. 이 아이들에게도 그런 마음과 끼가 간절하다는 걸 알았다"며 오히려 교사들이 아이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아이들과 교사들이 함께 만드는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학교에선 아이들의 정서와 뇌활성화를 위해 도예교실을 운영한다.
▲ 도예교실 아이들과 교사들이 함께 만드는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학교에선 아이들의 정서와 뇌활성화를 위해 도예교실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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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는 직업 중점 학교로 장애 학생들이 취업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교다. 일반 학교 교과 과정은 물론이고 포장, 조립, 제과 제빵, 바리스타, 컴퓨터 등도 가르친다. 컴퓨터 자격증, 바리스타 자격증 등을 딴 학생도 있다. 때론 학교에서, 때론 업체 현장에 가서 수업을 받곤 한다. 업체 현장에서 수업 받은 학생이 졸업하자마자 그 업체로 취업하기도 한다.

"2014년 첫해 졸업생 80%, 올해 졸업생 100% 취업 달성"이라는 쾌거가 이 학교 분위기를 말해준다. 취업 종류도 음식 업계, 세탁 업계, 사무 보조, 물류 센터 등 다양하다. 아이들이 그동안 감춰두고 눌러왔던 끼를 이 학교에서 마음껏 발휘한 결과다.   

"1000만 원짜리 적금을 들었다"며 자랑하는 졸업생을 보면 교사들은 뿌듯하다. 졸업생 3명이 어울려서 "월급 탔으니 한턱 쏜다"며 교사들에게 신용카드로 한턱 쏠 때면,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수준까지 온 것에 대한 감동이다.

"아이들 덕분에 인생 전환점 맞아"

유 교사는 "이렇게 변화되는 아이들 덕분에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며 원래 "나의 아들(안성고등학교 재학 중)들과 해외 오지에 나가 '나는 의료 봉사, 아이들은 정구 코치'를 하는 게 꿈이었지만, 지금은 이 아이들이 좋고 이 일이 나에게 천직인 것 같다"며 꿈을 바꾸었다.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과 해맑은 미소를 보면 나 자신이 힐링을 받는다. 아침에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보면 괜히 웃음이 난다"며 또 한 번 웃는 유 교사는 '내년에는 어떤 아이들이 들어올까. 올해 들어온 아이들이 또 어떻게 변화해갈까'를 생각하며 아이들이 기대가 된다고 했다.

한길학교 건물 정면에는 "나는 자립할 수 있다"고 크게 새겨져 있다. 이 글귀가 이 학교의 설립 정신이며, 이 학교의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자립을 위해 하루하루 변해가고 있다.
▲ 한길학교 전경 한길학교 건물 정면에는 "나는 자립할 수 있다"고 크게 새겨져 있다. 이 글귀가 이 학교의 설립 정신이며, 이 학교의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자립을 위해 하루하루 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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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학교 분위가 어땠기에 유 교사가 꿈을 바꾸며 자신의 인생 전환점이라고 말할까. 이런 의문점은 학교 건물을 사진 찍으면서 싹 사라졌다. 학교 건물 벽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자립할 수 있다"라고.

그랬다. 앞에서 본 우스운 광경들도 모두 "너희들 마음껏 너희들 끼를 펼쳐보라"고 깔아준 이 학교의 '자립 정신 마당' 덕분이었던 거다. 이런 학교가 우리나라에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든다.  


태그:#한길학교, #장애인직업학교, #장애인, #특수교육,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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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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