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자식들과 함께 있는 허난설헌
 자식들과 함께 있는 허난설헌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난설헌 허초희묘 가는 길

신립 장군의 묘를 떠난 우리는 허난설헌의 묘를 찾아갔다. 옛날 같으면 지도를 보고 한참 찾아가야 하지만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있어 부담이 훨씬 덜한 편이다. 나는 우선 묘의 주소를 확인한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 산 29-5번지다. 곤지암에서 가려면 3번 국도를 따라 광주 방향으로 올라간 다음 초월읍에서 도평리쪽으로 우회전한다. 이 길은 곤지암천을 따라가는 현산로다. 곤지암천은 경안천과 합류한 다음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우리는 지월리에서 우회전해 지월로를 따라 곤지암천을 건넌다. 지월로는 어느 순간 경수길과 만나고, 경수길을 따라 중부고속도로 방향으로 달린다. 중부고속도로와 만나기 전 허난설헌묘라는 표지판이 나오고, 왼쪽 산으로 오르는 길로 들어간다. 이 길은 막다른 길로, 이 길 끝에 허난설헌묘를 포함한 안동 김씨 종중 묘역이 있다.

허난설헌묘
 허난설헌묘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허난설헌(1563-1589)은 나이 15세인 1577년 안동김씨 서운관정공파(書雲觀正公派) 김성립(1562-1592)에게 시집갔다. 그래서 죽은 다음 이곳에 묻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원래 난설헌묘는 이곳에서 동쪽으로 500m 떨어진 중부고속도로상에 있었다. 1985년 중부고속도로가 나면서 종중 땅을 한국도로공사에 희사하고 이곳으로 묘역 전체를 이장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이곳 묘역 입구에는 한국도로공사와 쌍룡건설에서 세운 송덕비가 있다.

난설헌의 삶과 문학 이야기

안동 김씨 묘역은 축대를 쌓아 3단으로 조성했다. 이곳을 올라가려면 가운데 계단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왼쪽 사당 옆으로 난 계단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우리는 가운데 계단을 통해 1단 묘역으로 올라간다. 그러면 한 가운데 허난설헌묘가 위치한다. 묘 앞에는 문인석을 제외하고 근래에 세운 장명등, 간주석, 묘표, 시비가 있다.

허난설헌 묘표
 허난설헌 묘표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묘표에는 증정부인양천허씨지묘(贈貞夫人陽川許氏之墓)라 적혀 있고, 시비에는 난설헌시비(蘭雪軒詩碑)라 적혀 있다. 그럼 양천허씨인 난설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녀의 삶은 허균(1569-1618)이 편찬한  <난설헌시집(蘭雪軒詩集)>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허난설헌은 1563년 아버지 허엽이 삼척부사로 있을 때 외가인 강릉 초당에서 태어났다. 8살 때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을 지어 천재로 이름을 날렸다.

15살 때 안동김씨 김성립에게 출가했다. 18살 때 아버지 허엽(1517-1580)이 세상을 떠난다. 20살 때는 오빠인 허봉이 중국에 갔다가 얻어온 <두율(杜律)>을 보내 준다. 이를 통해 난설헌은 시를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었다. 그녀가 쓴 시는 악부체(樂府體)의 시, 규방의 원한(閨怨)을 읊은 시, 육친(肉親)의 정을 읊은 시, 이상향인 선경(仙境)을 읊은 시로 분류되고 있다.

강릉 초당에 있는 허난설헌 생가
 강릉 초당에 있는 허난설헌 생가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 중 '한정일첩(恨情一疊)'의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한정은 한스러운 감정을, 일첩은 하나하나 쌓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한정일첩'은 '한스러운 감정에 싸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봄바람 화창하니 온갖 꽃 피어나고                                     春風和兮百花開
철따라 만물이 번성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節物繁兮萬感來
규방 깊은 곳에서 나가고 싶은 맘 끊으려 해도                      處深閨兮思欲絶
그 사람 생각이 나 심장이 터질 것 같다.                              懷伊人兮心腸裂
[…]
인생 운명 부여받은 것이 후함과 박함이 있어                       人生賦命兮有厚薄
다른 사람은 기쁘게 즐기지만 이 내 몸은 적막하기만 하구나  任他歡娛兮身寂寞

죽은 자식을 곡하는 노래

희윤의 묘지가 있는 오누이묘
 희윤의 묘지가 있는 오누이묘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난설헌의 삶이 더 기막혀진 것은 20대 때이다. 21살 때인 1583년 자신을 가장 아끼던 오빠 허봉이 갑산(甲山)으로 유배된다. 그리고 이어서 어렵게 낳은 딸이 죽고, 이듬해 또 다시 얻은 아들이 연 이어 죽는다. 이에 허봉은 조카 희윤(喜胤) 묘지(墓誌)를 쓰고, 난설헌은 '자식을 곡하는(哭子)' 시를 짓는다. 묘지는 두 자식의 무덤 앞 지석(誌石)에, 시는 난설헌시비에 적혀 있다.

희윤의 묘지

피어보지도 못하고 진 희윤아.                          苗而不秀者喜胤也 
희윤의 아버지 성립은 나의 매부요                    喜胤父曰誠立余之妹婿也
할아버지 첨은 나의 벗이로다.                          祖曰瞻余之友也 
눈물을 흘리면서 쓰는 비명,                             涕出而爲之銘曰
맑고 맑은 그 얼굴에 반짝이던 그 눈                  皎皎其容晣晣其目
만고의 슬픔을 이 한 곡에 부치노라.                  萬古之哀寄此一哭

곡자시비
 곡자시비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자식을 곡하다.

지난해 사랑하는 딸 여의고               去年喪愛女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 잃었네.           今年喪愛子  
슬프디 슬픈 광릉 땅이여                  哀哀廣陵土   
두 무덤이 마주보고 있구나.              雙墳相對起   
백양나무에 소슬한 바람 불고            蕭蕭白楊風   
도깨비불은 무덤가 소나무 밝히네.     鬼火明松楸  
종이돈 살라 너희 혼을 부르고           紙錢招汝魂   
정화수를 올려 제사를 지낸다.           玄酒奠汝丘  
너희 혼은 응당 오누이임을 알지니     應知第兄魂  
밤마다 서로 어울려 놀겠지.              夜夜相追遊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縱有服中孩   
어찌 잘 크기를 바랄 수 있으리오.      安可冀長成   
부질없이 황천가를 읊조리고             浪吟黃臺詞  
피눈물 흘리며 소리 죽여 슬퍼한다.    血泣悲呑聲  

희윤의 묘지는 허봉의 문집인 <하곡집(荷谷集)>에 실려 있다. 하곡은 허봉의 호다. 자식을 곡하는 시는 <난설헌시집>에 실려 있다. 이들 허봉과 허초희의 문집은 동생인 허균(1569-1618)에 의해 편찬되었다. 허균은 1605년 황해도 수안에서 형 하곡의 시를 모아 <하곡시초(荷谷詩抄)>를 간행했기 때문이다. 또 1606년에는 누나 난설헌의 시를 모아 <난설헌시집>을 발간했다.

난설헌의 시는 어떻게 이 세상에 남을 수 있었나?

난설헌시집
 난설헌시집
ⓒ 문화재청

관련사진보기


1608년 허균이 공주목사로 있으면서 ≪난설헌시집≫을 중간한다. 이 때 허균이 발문(跋文)을 썼다.

부인의 성은 허씨이며 호는 난설헌이다. 허균에게는 셋째 누님이다. 저작 김성립에게 시집갔으나 일찍 죽어 자식이 없다. 평생 저술이 아주 많다. 불사르라는 유언을 남겨 전하는 것은 극히 적다. 모두 허균의 기억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이 오래되면 다 잊혀 질까 두렵다. 이에 나무에 새겨 널리 전하는 바이다. 때는 만력 기원 36년(1608) 한 여름 상순이다. 아우 단보 허균이 피향당에서 적다.

夫人姓許氏自號蘭雪軒 於筠爲第三姊 嫁著作郞金君誠立 早卒無嗣 平生著述甚富 遺命茶毗之 所傳至尠 俱出於筠臆記 恐其久而愈忘失 爰災於木 以廣傳云 時萬曆紀元之三十六載孟夏上浣 弟許筠端甫 書于披香堂

그 후 1692년(숙종 18)에 동래부(東萊府)에서 중간본을 저본으로 다시 시집을 간행했다. 마지막으로 1912년 서울의 신해금사(辛亥唫社)에서 목판본의 훼손된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고쳐 새로운 활자로 시집을 간행했다. 난설헌의 시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중국에서는 주지번(朱之蕃) 등에 의해 널리 퍼져, 주이준 (朱彝尊)의 <명시종(明詩綜)>, 전겸익(錢謙益)의 <열조시집(列朝詩集>에 난설헌의 시가 수록되었다.

허난설헌 초상
 허난설헌 초상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임란 때 난설헌의 시가 일본에도 전해졌고, 1711년에는 분다이 야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동래부 판본을 토대로 시집이 발간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허씨 4남매는 국제적으로 놀았다. 그것은 아버지 허엽으로부터 물려받은 지적 능력과 국제적인 안목 때문이다. 아버지 허엽은 서경덕의 문인으로 학문을 배웠으며, 중국에 사신으로 가 <설문청독서록(薛文淸讀書錄)>을 소개하기도 했다.

큰아들 허성은 1590년 일본통신사 서장관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둘째 아들 허봉은 진보적 지식인으로, 나이 24살인 1574년 예조좌랑으로 서장관이 되어 중국에 간다. 32살인 1582년에는 중국에서 온 사신을 맞이하는 원접사(遠接使) 이이(李珥)의 종사관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딸인 허초희가 셋째다. 그녀는 비록 중국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오빠들 덕에 많은 이야기를 듣고 한시를 지을 수 있었다.

넷째인 아들 허균은 가장 똑똑하고 진보적인 지식인이었다. 그는 26살에 벌써 자문재자관(咨文賫咨官)으로 요동(遼東)엘 다녀오고, 38살에는 원접사 류근(柳根)의 종사관이 되기도 한다. 47살인 1615년에는 진주사(陳奏使) 부사로 중국에 가 <대명회전(大明會典)> 등의 기록 중 조선의 종계(宗系) 오류를 아뢰고 종계변무에 대한 황제의 칙서를 받아 오기도 했다.

48세인 1616년 형조판서에 이르렀으나, 1617년 역모의 주모자로 탄핵되어, 1618년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한글소설 <홍길동전> 등을 통해 조선의 개혁을 꿈꿨으나, 그 꿈은 이상으로만 남고 말았다. 그는 161년 전라도 함열(咸悅)에 유배 중일 때 이미 자신의 문집 <부부고(覆瓿藁)>를 냈다. 이 문집은 시, 부, 문, 설(詩,賦,文,說) 네 부분으로 나누어졌고, 총 64권으로 이루어졌다. 그 중 '훼벽사(毀璧辭)'에서 누나 난설헌의 죽음을 훼손된 옥구슬에 비유하며 슬퍼했다.

허난설헌의 한
 허난설헌의 한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나의 돌아간 누님은 현숙하고 문장도 지녔으나,                余亡姊賢而有文章
시어머니의 사랑을 얻지 못하였고                                  不得於其姑
또 두 자식까지 잃어 마침내 한을 품고 죽었다.                 又喪二子 遂齎恨而歿
늘 생각하면 몹시 슬퍼하길 마지 아니 하였는데                每念則䀌傷不已
황 태사의 사(辭)를 읽어보니                                         及讀黃太史辭
그 홍씨 누이를 애통해 하는 정이 애절하고 구슬프다.   其痛洪氏妹之情 悲切怛忇
천 년 지나도 동기간 슬픈 정이 이와 서로 같으니     千載之下 同氣之慟 若是其相類
그 글을 본받아 슬픔을 토로한다.                                    故效其文而抒哀也

구슬 깨져라 진주 떨어졌으니                                         毁璧兮隕珠
당신 생애 행복하지 않았어라.                                        子之生兮不淑
하늘이 부여한 자질 어찌 그다지 풍부하였으며                  天之賦兮奚富以豐
어찌 그다지 혹독하게 벌 내려 주고 뺏기를 빨리 하였느뇨.  胡罰以酷予奪之速
[…]
애통해라 부평 같은 세상에 한 순간                                 哀一瞬兮浮世
갑자기 왔다가 홀연히 떠나                                            儵而來兮忽而往
세월 오래 머물지 않았어라.                                           曾不淹兮星歲
광릉 무덤 길 구름 뭉게뭉게                                           雲溶溶兮廣陵之阡
유궁(幽宮)에 햇빛도 흐리어라.                                       白日翳兮幽宮
층림(層林) 울창하여 아스라이 어두운데                            鬱層林兮渺冥
혼 어디메로 날아가나.                                                  魂飄颺兮何所


태그:#허난설헌묘, #허초희, #허봉, #허균, #곡자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