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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혐의는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공표죄'이다. 이미 언론에 몇 차례 보도된 만큼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대강의 사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 2014년 5월 교육감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인 와중에 당시 조희연 후보는 고승덕 후보에 대해 후보 본인 및 그의 두 자녀가 미국 시민권 혹은 영주권자인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다. 후에 밝혀진 일이지만 이러한 의혹제기는 공영 방송사 출신의 한 유명기자의 문제제기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이후 고 후보 측의 반론과 조 후보의 재반론이 이어졌지만, 결국 고 후보 자신의 미국 영주권 보유여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선거가 끝나고 만다(그의 두 자녀는 미국 시민권자임이 밝혀졌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사실 고승덕 후보의 영주권 보유 여부는 아직까지도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미 대사관 측에서 이에 대한 확인을 거부하고 있는 탓인데, 앞으로 재판과정에서라도 이 점이 분명하게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재판대상인 범죄의 핵심사실이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이니만큼, 문제 된 사안이 허위사실이라는 점은 재판의 당연한 전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공소권 남용

여하튼 검찰은 조 후보의 이러한 의혹제기에 대해서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두고 전격적으로 기소를 결정한다. 그런데 이 사안은 본래 당시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후보 쌍방에 대한 주의경고ㅊ조치로 마무리된 것이었다. 짐작할 수 있다시피, 당시 선거과정에서 후보들 서로 간에 대한 다소 무리한 의혹제기가 계속되었다(예컨대 고 후보는 조 후보가 통합진보당과 연루되어 있다거나 또 그의 아들이 병역특혜를 받았다거나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쌍방의 고발을 접수한 선관위는 지나친 선거과열을 이유로 양자 모두에게 경고조치를 하였으며, 이후 후보들이 서로 화해함으로써 이 문제는 일단락되었던 것이다. 선거가 끝난지 4개월여 지난 시점에서 한 보수단체가 조 후보를 고발함으로써 이 사건이 다시 문제되었지만, 경찰은 이를 이미 선관위 단계에서 마무리된 것으로 보고 "혐의 없음" 결정을 하였다고도 한다. 그런데 검찰이 이 결정을 번복하여 이를 다시 기소한 것이다.

이쯤 되면 검찰의 의도가 적이 의심스러워진다. 시효 하루 전까지 망설였다는 것은 검찰 수뇌부가 이 사안의 득실을 여러 차례 계산했음을 드러내준다. 요컨대 진상은 단순한 것이다. 선거과정에서 흔히 있어왔던 상대후보에 대한 의혹제기, 설령 과장이나 확대된 허위의 사실이 다소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큰 문제 없이 이해되어오던 정치적 표현을, 새삼스럽게 '진보교육감'을 상대로 범죄로 낙인 찍는 것이다. 유죄판결이 나오면 당연히 개가를 올리는 것일 테고, 무죄판결이 된다 하더라도 큰 손해는 없을 것이다.

검찰이 정치적 편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고,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진보교육감은 어느 정도 상처를 입을 테니 말이다. <피디수첩> 사건에서도, 미네르바 사건에서도 그랬다. 목표는 정당한 처벌을 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을 겁먹게 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당사자, 그리고 많은 일반 시민의 의사표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이다. 적어도 검찰이 혹은 권력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생각과 표현 말이다.

허위사실공표죄의 취지

그러나 혹자는 '조 교육감의 행위가 공직선거법 제250조가 규정하는 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하는 것은 사실이지 않는가' 하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선거법이 규정하는 선거범죄 전체, 그리고 해당 조항의 의미를 찬찬히 되새겨보아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란 가장 많은 정치적 자유, 특히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고 실현되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선거법이란 이와 같은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후보자에 대한 가능한 모든 정보를 알게 하고, 이로부터 충분한 선택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선거법이 지나치게 많은 규제를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헌법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때에 규제가 필요한 것일까. 선거 공간에서 허용된 정치적 자유가 일방에 과도하게, 즉 공정하게 행사되지 않아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방해했을 때이다. 즉 선거법의 규제는, 더욱이 선거범죄는 해당 행위가 선거의 공정성을 침해했을 때에만 성립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이 선거의 자유와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선거법의 취지에 부합하는 해석이다.

구체적으로 허위사실공표죄는 어떨까. 사실 이 범죄에 대해서는 폐지론을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상대후보의 악의적 공격에 대해 당시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오바마는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공개하며 웃어넘기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처럼 사실과 허위사실의 구분, 그리고 이를 통한 정치적 득실은 다만 유권자가 판단할 몫일 뿐, 굳이 이를 법으로 규제할 필요는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어쩌면 이것이 바람직한 정치문화, 선거문화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교묘하게 계산된 허위사실공표의 경우이다. 선거를 하루 앞둔 날 저녁, 상대후보에 대한 비방과 함께 그의 검증되지 않은 전력이 기재된 전단지가 살포되는 경험을 우리는 잊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특정한 주장에 대해 반박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일방적인 공격과 비난을 당한 상태로 선거운동을 마감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도 요즘이야 좀 덜한다고 하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 상당한 제한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정치적 지형에서 이런 흑색선전은 선거막판에 흔히 이용되던 단골메뉴였다.

이런 탓으로 우리 선거법에서 허위사실공표죄를 없애기는 어렵다고 하지만, 이 조항이 적용되어야 하는 때는 바로 이런 경우로 한정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상대방에게 반론의 기회를 주지 않는, 그리하여 일방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선거국면을 이끌어 가는, 간단히 말해 위에서 보았듯이 선거의 공정성을 침해하는 때에만 이 범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상대방에게 충분한 반박의 기회를 보장하는 (허위)사실의 공표는 후보를 검증하기 위한 정당한 정치적 표현의 하나로서 유권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바람직한 기능을 하는 탓이다.

해석의 문제

이런 관점에서 이 사건을 판단한다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아무리 보아도 조 교육감의 행위가 선거의 공정을 해할 정도로 심각하게 부당한 허위사실의 공표로는 보이지 않는다. 상대후보는 자신의 주장을 충분히 개진했고, 모든 과정은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사안에 대해 경고 정도로 마무리를 지었고, 경찰 또한 별다른 혐의가 없다는 결정을 한 것일 터이다.

요컨대 이 사건의 행위는 허위사실공표라기 보다는 상대후보에 대한 정치적 의혹제기에 가깝다. 혹 그러한 표현 가운데 허위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반론과 재반론, 검증과 토론의 과정에서 진실에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엄격하게 증명될 수 있는 사실만 정치적 표현의 대상으로 허용한다면, 선거과정에서 필요한 충분한 정보의 제공이나 후보의 자질에 대한 문제제기, 광범위한 토론의 기회 등은 상당부분 봉쇄되고 말 것이다.

이 밖에도 이 조항과 관련해서는 이른바 '미필적 고의'의 문제가 있다. 고의란 범죄의 구성요건을 인식하고 결과의 발생을 원하는 것인데, 이때 미필적 고의는 그 인식이나 결과의욕의 정도가 약한 경우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이 범죄에서는 '허위사실'의 인식여부가 문제로 된다. 즉 어떤 사실을 공표하거나 의혹을 제기할 때 그 사실이 진실인지 허위인지를 분명히 알지 못하는 때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를 이 조항의 처벌범위에 포함시키기 위해 미필적 고의라는 수단이 동원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 조항의 처벌범위를 넓히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대로 정치적 표현자유 보장이라는 이 법률의 취지와는 배치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것은 같은 사실관계를 내용으로 하는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소송에서 우리 대법원이 취하고 있는 이른바 '현실적 악의의 법리'와도 비교된다.

현실적 악의의 법리란 공인, 특히 공직자나 정치인에 대해서는 그 공공적․사회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이들에 대한 비판이 넓게 허용되어야 하고, 따라서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뚜렷한 악의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말한다. 통상 민사소송의 경우보다 형사소송이 더욱 엄격하게 범죄 성립의 요건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일반적인 경우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물론 문제되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진실인지 아닌지 불분명할 경우가 많을 것이고 이러한 때에 행위자로서는 대부분 '몰랐다'고 변명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처벌의 공백을 피하려 하는 법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처벌의 범위를 넓히는 것은 역시 이 조항의 목적이나 취지를 생각하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필적 고의를 보완하는 추가적인 요건을 요구하는 방법, 예컨대 '비방의 목적'을 포함시키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법률이 바뀌지 않는 한, 현재의 조항에 대한 해석으로는 무리가 있다. 나는 오히려 위에서 살펴본 '선거의 공정성 침해'를 기준으로 하는 제한으로 많은 경우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행위자가 허위사실 여부를 알았든 몰랐든 선거의 공정성을 침해하지 않은 때에는 굳이 처벌할 이유가 없고, 반대로 공정성이 침해되었을 때에는 행위자에게 사실의 허위여부를 잘 알아보아야 할 높은 의무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에 대한 재판은 일반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시민들의 건전한 법감정이 이 사건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 자못 기대도 되지만, 그러나 우리의 시민배심원들의 평결은 아직 법관에 대한 구속력이 없고, 또 재판을 진행하고 법리를 설명하는 재판부의 영향력은 배심원에 대해서도 결코 작지 않다.

이런 이유로 일반 국민들은 물론 법관을 포함한 법률가들의 이 조항에 대한 관심을 바라마지 않는다. 선거범죄, 특히 허위사실공표죄는 이제 그 범위를 좀 더 좁혀 해석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흑색선전과 색깔 비방이 난무하던 선거문화도 이제 좀 달라졌다고 봐도 될 것 같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최정학 교수는 현재 방송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조희연, #검찰, #고승덕,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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