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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옹곳하게 솟아있는 산들 사이로 잔잔한 강물이 흘러가고, 그 위를 나이 든 뱃사공이 유유히 노를 저으면서 지나간다. 바로 이 모습이 내가 그려왔던 중국의 이미지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지난 3월 20일, 양수오에서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양수오는 중국 광시성 계림시에서 남쪽으로 약 65km 떨어져 있는 작은 항구마을이다. 이강유람의 종착지이기도 한 양수오는 계림에서도 '경치로는 제일'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가마우지 낚시꾼 황씨 할아버지를 만났다. 

우리는 호객꾼에게 마지못해 이끌려 80위안짜리 작은 통통배를 타고 이강을 유람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 앞에 작은 섬 하나가 나타났고, 거기에 황씨 할아버지가 있었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배 위에 두 마리의 큰 가마우지를 대나무 막대에 이고 서 있던 할아버지는 회색이 드문드문 섞인 흰수염을 턱 밑까지 기르고 우리에게 손짓했다.

사진 촬영 부탁했더니... 1시간에 400위안 달라고?

새벽부터 나와 우리의 사진 모델이 되어준 황씨 할아버지. 생선은 2마리의 가마우지가 잡는다.
▲ 고기잡이 황씨 할아버지 새벽부터 나와 우리의 사진 모델이 되어준 황씨 할아버지. 생선은 2마리의 가마우지가 잡는다.
ⓒ Alexandre Satt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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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관광객들에게 가마우지와 함께 사진을 찍게끔 하고는 사진 1장당 5위안씩 받고 있었다. 나는 옛풍의 아름다움을 담고자 황씨 할아버지에게 사진 모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했다. 물론 완전히 관광상품화 되어버린 옛것이지만 말이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 할아버지는 품속에서 사진 여러 장을 내밀면서 말했다.

"이게 나를 찍어간 사람들이야. CCTV부터 미국, 영국 할 것 없이 다 왔다 갔어."

아니나 다를까, 사진 안에는 할아버지를 취재하러 왔다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처음 400위안(한화로 약 7만 원)을 제안했다. 아니 단 1시간 사진 찍는 데 400위안이라니! 영국에서 촬영왔던 팀은 하루 촬영하고 무려 1200위안(한화로 약 21만 원)을 주었다고 할아버지는 강조했다. 물론 대형 방송국에서는 그만한 제작비가 있으니 돈을 줄 수 있겠지만,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우리 같은 프리랜서 작가들에게는 영 어울리는 가격이 아니었다.

이런 곳에 와서 시세만 올려놓고 간 외국인 방송팀을 속으로 원망했다. 할아버지와 흥정 끝에, 우리는 그 다음날 새벽 5시부터 1시간 촬영을 하기로 하고 200위안(한화로 약 3만5000원)에 합의를 봤다.

우리는 새벽 4시 30분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걸어 5시에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1시간이나 늦은 6시가 되어서야 유유히 노를 저으며 왔다. 털털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어제 기분이 좋아서 술을 좀 마셨어. 오늘 아침에 여간 일어나기가 힘들어야지. 사진 찍히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야!"

가마우지 낚시는 양수오를 포함하여 계림 지역에서 관광객, 사진작가 할 것 없이 유명한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양수오만의 모습이기 때문이리라. 양수오는 이강이라는 풍부한 자연의 보고가 있기 때문에, 아주 오랜 옛날부터 어업이 발달했다.

특히 가마우지라는 새를 이용한 낚시가 발달했는데, 가마우지는 약간은 오리처럼 생긴 목이 긴 새이다. 낚시꾼들은 이른 새벽이나 밤에 등불을 켜고 낚시를 하러 나온다. 이 때 새의 목 아랫부분에 줄을 묶고 새의 발에 묶여있던 끈을 풀면, 가마우지는 후다닥 물속으로 잠수한다. 가마우지는 물속에서 헤엄치다 생선을 잡으면 입으로 삼키는데, 그 때 목의 아랫부분에 줄이 묶여 있기 때문에 생선을 삼키지 못하고 목에 걸리게 된다.

이때 낚시꾼들은 새의 입을 벌려 생선을 꺼내거나 두 다리를 하늘로 치켜들어 생선이 입에서 빠져 나오도록 한다. 물론 이때 가마우지는 어떻게든 자기가 잡은 생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꽉 묶인 줄 때문에 번번이 헛구역질을 하며 생선을 뱉어내기 일쑤다.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행하는 동물 학대 같아, 사진을 찍는 내내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나중에 가마우지들에게 수고비로 생선을 1마리씩 주는걸 보고, 나름 스스로 이 상황을 합리화했다.

가마우지 낚시를 하는 황씨 할아버지
▲ 이강의 고기잡이 가마우지 낚시를 하는 황씨 할아버지
ⓒ Alexandre Satt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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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씨 할아버지는 1938년도에 태어나 올해로 77세의 고령이다. 하지만 흔들거리는 대나무 통통배 위에서 어찌나 중심을 잘 잡고 무거운 새들을 쉽게 다루는지, 세월의 내공이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사진을 찍는 내내 "뷰티풀 뷰티풀, 예예예"를 외쳤는데, 확실히 외국인과 많이 촬영해본 티가 났다.

할아버지의 힘 있는 뷰티풀 외침으로 사진을 찍는 내내 재미있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쩌면 그렇게 사진작가가 원하는 표정과 포즈를 잘 알고 있는지, 노장 모델의 힘이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어렸을 적, 일본군에 의해 부모님을 여의고 혼자 자라면서 8살 때 처음으로 고기잡이를 시작했단다. 지금까지 다른 일은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올해로 11살인 가마우지들은, 알에 있을 때부터 할아버지가 돌보아온, 할아버지의 가족이라고 소개했다.

가마우지 낚시는 할아버지가 태어나기 전부터 계속되던 이강의 전통이다. 물론 지금은 이러한 전통방식으로 낚시를 하는 사람이 거의 사라졌지만 말이다. 한 지역의 전통이 상품화 된 것 자체가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모습 또한 중국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씨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껍데기만 남은 전통마저도 사라지고, 남는 건 '그때는 그랬었어'라는 사진과 추억뿐이겠지만 말이다.


태그:#중국여행, #계림여행, #이강, #가마우치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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