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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그 사람'의 소재지만은 불지 않았다. 서울대 비공개 학생운동조직이었던 민주화추진위원회(아래 민추위) 지도위원이자 그의 동아리(대학문화연구회) 선배였던 박종운(54)씨다.

서울대 민추위 사건으로 지명수배 중이었던 박종운씨는 같은 해 1월 8일 박종철 열사의 하숙집을 찾았다. 박씨가 박종철 열사의 하숙집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경찰은 엿새 뒤인 1월 14일 박종철 열사 하숙방에 들이닥쳐 박종철 열사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연행했다.

대공수사관들은 박종운씨의 소재지를 추궁했지만 박종철 열사는 끝끝내 불지 않았다. 이에 수사관들이 물고문을 가했고, 그 과정에서 박종철 열사는 숨졌다.

"검찰이 고문치사를 밝혀낸 것이 중요하다"

2011년 1월 14일 오전 서울 남영동 경찰청 인권센터(옛 대공분실) 4층 박종철 기념전시실을 방문한 박종운씨와 안상수 대표.
 2011년 1월 14일 오전 서울 남영동 경찰청 인권센터(옛 대공분실) 4층 박종철 기념전시실을 방문한 박종운씨와 안상수 대표.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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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열사의 기일(1월 14일)과 생일(4월 1일) 때마다 그가 묻혀 있는 마석 모란공원을 찾았던 박종운씨는 지난달 31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박종철 열사는 한국 민주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라며 "그가 있어서 우리가 지금 이러한 자유를 누리게 됐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그런데 오버하면 박종철 열사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박종철 열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박씨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당시 역할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수사했는지 등은 인사청문회에서 꼼꼼하고 엄격하게 따져봐야 한다"라면서도 "하지만 박 후보자가 당시 (검찰 수사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보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안상수(현 창원시장) 검사는 수사를 잘했는데 박상옥 후보자만 못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라며 "박 후보자가 당시 무엇을 했는지 따져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이것을 반정부투쟁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박 후보자의 대법관 임명제청을 비판하는 시위도 "적절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씨는 "경찰이 '탁' 쳤더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는데 정말 황당한 것 아닌가?"라며 "하지만 검찰 수사에서 고문에 의해 죽었다고 밝혀냈다, 그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부검 결과를 바로 공개해서 다른 데서 개입할 여지를 없앴다"라며 대체로 당시 검찰 수사를 감쌌다.

박씨는 "박 후보자에게 흠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망 원인과 관련해서) 큰 줄기를 바꿨다"라며 "그런데 이제 와서 '너 왜 완벽하게 수사하지 않았어?'라고 따지는 것은 무리가 있다, 살다 보면 부족한 면이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기록 공개 거부, 이해할 수 없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1,2차 수사기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1,2차 수사기록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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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박씨는 "(물고문한) 공범이 더 있다는 것보다 (고문치사의 방향으로) 수사를 못하도록 하는 외압이 있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며 "사실 공범이 몇 명 더 있다는 것보다 강민창 치안본부장 등이 적당선에서 덮으려고 은폐·축소하고, 안상수 검사가 추가로 수사하겠다고 품의(수사계획서 제출)했지만 이를 막았다는 것이 당시 정권에게는 더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박씨는 "강민창 본부장은 덮으려고 했고, 박처원 5처장은 (고문경찰관들을) 회유하러 다녔다"라며 "이것이 (수사에서) 더 비중있고 구조적인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은 당시 공범이 더 있다는 것보다는 고문치사를 은폐하는 것에 분노했다"라며 "(공범이 더 있다는 것이) 체계적인 축소·은폐보다 더 할까?"라고 말했다.

박씨는 "인사청문회에서도 이것(체계적인 축소 ·은폐)을 물어봐야 하겠지만 그것을 박상옥 후보자에게 물어본다고 해도 박 후보자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라며 "검찰은 큰 틀('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났다')에서 기여했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박씨는 유가족이 수사기록을 요청했지만 검찰이 거부한 것과 관련해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대통령 기록물도 아니지 않나? 공개하면 정권이 흔들리나?"라며 "강민창 본부장 윗선의 외압을 드러내지 않게 하려고 공개하지 않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신창언→헌법재판관, 안상수→여당 대표, 박상옥→대법관 후보자

흥미로운 지점은 박종철 고문치사-조작·은폐 사건 수사에 참여한 검사들의 사건 이후 행로다. 수사팀장이었던 신창언 형사2부장은 헌법재판관에 임명됐고, 수사 검사였던 안상수 검사는 4선의 국회의원을 거치면서 여당 대표까지 지냈다. '말석검사'였던 박상옥 검사는 현재 대법관에 임명제청된 상태다.

이러한 '출세 행로'와 관련, 박씨는 "신창언 부장과 안상수·박상옥 검사가 악행을 저지르고 출세한 것은 아니지 않나?"라며 "그들이 100% 진실의 편에 섰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진실의 편에 서 있었거나 서 있으려고 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한나라당에 입당해 부천시 오정구에서 세 차례나 국회의원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국가발전전략연구회 사무처장과 경기도 경제단체연합회 사무총장을 지낸 그는 현제 연세대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박씨는 하이에크 등과 함께 자유경쟁의 우위성을 주장하는 오스트리아학파 미제스의 <인간행동론>을 번역했다. 보수성향 인터넷신문인 <미디어펜>의 논설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가깝다.


태그:#박종운, #박종철, #박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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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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