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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구두의 수리 전 후 사진들이 많다.
▲ 아저씨 재산목록 1호 다양한 구두의 수리 전 후 사진들이 많다.
ⓒ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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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굽이 닳아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났다. 퇴근 후, 오며 가며 보았던 가리봉 오거리 남부순환로 고가도로 아래 구둣방에 갔다. 그곳엔 육칠십대의 아저씨가 독특하게 생긴 구두에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뭐 하실려구?"

"굽 좀 바꾸려고요"

아저씨는 하던 바느질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옆으로 치우더니 내가 벗어놓은 구두를 들어 살펴 보았다.

"개성이 없구먼. 개성이 없어."

"네? 무슨 말씀이신지."

뒷굽 갈러 와서 그런 말을 듣게 되다니,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도 성격이나 생김새가 다르고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이 있잖아. 구두도 마찬가지야. 구두의 개성은 앞코에서 나오는데 이게 뭐야 두루뭉실하니... 공장에서 쉽게만 만들려고 개성도 없이..."

아저씨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내 구두가  맘에 들지 않는 눈치셨다. 뒷굽을 교체하는 동안 1.5평 남짓한 구둣방 안을 둘러보았다. 천장에 달려있는 '제화 수리 연구소'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내용으로 보아, 구두 수리에 일가견이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의 구두수리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 제화 수리여구소 아저씨의 구두수리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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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하신지 오래되셨나봐요."

"50년도 훨씬 넘었지. 이래 봬도 내가 대통령이 안 부러운 사람이여."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사람들은 남이 신던 신발이나 닦고, 고친다고 우습게 볼지 몰라도, 내가 가진 기술로 이 나이까지 밥벌이하며 사는데 남 부러운거 하나 없어. 지금도 내 솜씨 믿고 구두 만들어 달라는 사람들도 찾아오고, 다른 데서 못 고친다고 속상해 하는거 내가 다 고쳐주면 웃으면서 가잖어. 그런 거 보는게 좋아."

방금 전 바느질하다가 치워놓은  구두를 가리키며 주문받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굽만 바꿀게 아니라 밑창도 덧대야겠네 곧 찢어지겠는데..."

아저씨와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생각에 허락했다.

'죽은 코 새우고 깨진 코 성형, 척추 교환 술, 앞볼 파열 , 갑피 이식술 등...'

읽다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 구두병원 중요수리 내용 읽다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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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구에 붙어있는 'Shoes hospital 중요수리' 내용을 읽다가 그만 웃음이 터졌다.

"왜 웃어?"
"망가지면 그냥 고쳐달라고만 했지 이런 재미있는 명칭이 있는 줄 몰랐어요."
"맞는 말인데 뭘.... 저런건 내가 최고라 생각하니까. 가죽에도 유통기한이 있어. 십 년이 넘은 가죽은 뻣뻣해져서 못써. 요즘 왜 뻣뻣한 구두가 많은 줄 알어? 공장에서 싸게 만들어 내려니 좋은 가죽을 쓸 수 있나. 그러니 질나쁜 가죽에 광택코팅을 해서 반짝반짝 그럴싸하게 보이기만 하지, 발에는 좋을 수가 없지, 좋은 가죽은 인위적 코팅이 안먹어 자연스럽게 빛나지. 사람도 마찬가지여 겉만 번드르르하면 속이 비었나 잘 봐. 진국인 사람은 티 나게 안 살어."

밑창에 본드칠을 하는 아저씨의 손놀림이 조심스러웠다.

"난 싼 재료 안 써. ks제품만 쓰지. 싼 거로 고쳐놓으면 그때뿐이거든, 남는 게 줄어도 내가 고친 구두 오래 신으면 그게 내 자존심이야."

아저씨는 십 대부터 시작한 구두 제작기술을 인정받았다. 30대엔 전주와 영등포에 매장도 두고,  종업원도 여럿 있는 사업체도 운영했다. 수제 구두의 호황기 70 ,80년대를 지나며 기계화된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값싼 구두에 밀려  어려움도 많았다. 몇번의 부침을 겪고, 이곳에 정착한지 10년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과거는 자꾸 물어보지 마. 이 나이에 가슴 아픈일 한 두 가지 없겄어. 그래도 비싼 구두는  망가져도 버리지 않고 고쳐달라고 많이 찾아와. 난 그런 구두 고칠 때가 행복해. 아끼는 구두일수록 추억도 많은 법이거든, 버리게 생긴거 새것처럼 고쳐 놓으면 고객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고 사는 게 그런 거지 뭐."

아저씬 직접 수리했던 구두를 찍어놓은 파일을 보여 주셨다. 찢어지고 망가진 구두들이 말끔히 수리되어 있는 모습의 사진들이 가득했다.

"내 재산목록 1호여. 손님들을 위해서 만들었어. 정말 수리가 되는지 봐야 믿거든"

ks 마크가 새겨진 구두굽과 밑창을 바꾸고 집으로 가는길, 걸음이 한결 편안했다. 사진은 찍지 않겠다고 하여 모습은 담을 수 없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정한 명품이란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한다.

고가 밑이라 어두워 손님들을 위해 조명등을 달았다.
▲ 구둣방 모습 고가 밑이라 어두워 손님들을 위해 조명등을 달았다.
ⓒ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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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디지털산업단지, #구두수리, #구둣방, #가리봉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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