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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의 <소원>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른 바 조두순 사건으로 세간에 잘 알려진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든 작품이다. 보기가 힘들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가 일찍이 소설보다 현실의 삶이 훨씬 더 끔찍하다고 했던 것처럼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주스러울 정도로 영화를 보는 일이 고통스러웠다. 그렇다면 이렇게 보기 힘든 영화를 왜 만드는가?

신간 <3D 인문학 영화觀>은 영화평론가 강유정이 지은 신간이다. 3D 영화를 1부에서 소개하고 있긴 하지만, 2D 영화도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책의 적당한 제목은 '영화로 만나는 인문학' 정도가 맞을 듯싶다.

20편이 넘는 영화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영화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와 질문들을 정리한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들이 영화뿐 아니라 독서와 사색을 통해 우리 눈에 보이는 장면들의 이면에서 꿈틀대고 있는 감독과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찾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3D가 일으킨 기술 영화의 시대

<3D 인문학 영화觀관> 표지
 <3D 인문학 영화觀관> 표지
ⓒ 문학와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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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는 영상을 입체화하는 데 성공했다. 관객은 영화의 서사보다는 생생한 영상미에 열광했다. 그러나 3D열풍은 오래가지 못한다. 상상력과 개연성을 연결하는 도구로서의 기능을 과대 평가한 결과다. 관객이 영화에 기대하는 것은 화려한 볼거리보다 알찬 내용과 감동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 강유정은 <라이프 오브 파이>와 <그녀>를 인문학적 SF영화로 꼽는다. 대서양 한가운데서 작은 보트에 의지한 채 맹수들과 살아남은 소년 파이의 조난을 그린 영화 <라이브 오브 파이>에서 망망대해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된 영상이라고 한다. 실감나는 호랑이의 포효와 삶의 의지와 일상의 고통이 교차하는 파이의 표정,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이 삶의 희로애락을 은유하고 있다. 저자는 기술의 총화가 예술로 빛을 발했다고 평가한다.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SF영화 <그녀>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소프트웨어 속 '그녀'는 주인공 남자의 모든 기록을 분석해서 목소리만으로도 단번에 그의 사랑을 쟁취하기 때문이다. 물론, 운영체제가 업그레이드돼야 하고 때로는 폐기돼야 하기 때문에 이 사랑 또한 영원할 수 없다. 또 운영 체제와 사랑을 나누는 남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과학 기술의 한계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의미하는 것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들이 갖는 특징 중 하나는 영화의 스케일이다. 투자 규모, 등장 인물들의 수 등이 블록버스터급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2012년 이환경 감독의 영화, <7번방의 선물>도 한국 영화 사상 8번째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저자 강유정은 이 영화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소개한다.

'가족'이라는 기본적인 공동체의 변화에 주목한다. 삶의 뿌리가 되는 공동체인 가족이라는 존재가 위태로워 보인다는 것이다. 편부모가 늘어나고, 가난과 질병이 대물림되는 사회적 병리현상을 해소시킬만한 복지는 요원하고 삼십 년 전 탈옥수 지강헌이 외쳐댔던 이른바 유전 무죄, 무전 유죄는 21세기 사회에도 유효하다.

강유정은 이 영화에서 판타지와 같은 풍경을 발견한다. 감옥 안 비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죄수들은 오래 전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단칸방 가족의 풍경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가족의 재발견을 통해 우리가 사는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보기 힘들었던 영화, <소원>에서 이준익 감독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계속되는 삶'이다. 아물지 않을 상처와 계속되는 고통에도 피해자들의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이 계속되고 있고 계속돼야 함으로 이웃의 따뜻하고도 천연덕스러운 눈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기 힘든 영화도 흥행 따위와는 상관없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3D 인문학 영화觀관> 강유정 지음, 문학과 지성사, 2015년 2월 27일 발행



3D 인문학 영화관 - 화려한 볼거리, 깊어진 질문들 영화로 생각하고 토론하기

강유정 지음, 문학과지성사(2015)


태그:#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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