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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만든 종이지갑들, 재료비가 들어가고 시간과 공력이 들어간다.
▲ 종이지갑들 아내가 만든 종이지갑들, 재료비가 들어가고 시간과 공력이 들어간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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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종이 지갑 공예인

지난달 28일 아내와 함께 안산을 다녀왔다. 교육 공무원인 아내가 멀리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토요일이었다. 나는 안산행이 세 번째였고, 아내는 두 번째였다. 오랜만에 부부가 함께 안산으로 달리는 승용차 안에는 특별하다면 특별한 짐이 실려 있었다. 아내가 한 달 넘게 만든 한지 공예품인 종이 지갑 524개가 담긴 상자들이었다.

아내는 10년 넘게 취미 삼아 종이 지갑을 만들어오고 있다.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사오는 특수 종이와 액세서리 값 등으로 다소 지출이 생긴다. 아내는 틈틈이 종이 지갑을 정성껏 만들어 여러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을 즐긴다. 특히 해마다 설 명절 전에는 세뱃돈 지갑으로 사용하라고 꽤 많은 양의 지갑을 만들어 주변 사람에게 선물한다.

아내는 자신이 종이 지갑을 만들어 주변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은 '복을 빌어주는 행위'라고 했다. 복을 비는 마음으로, 즉 복주머니를 선물하는 마음으로 종이 지갑을 선물한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인지 종이 지갑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감사하며 즐거워한다.

몇 해 전에는 한 은행으로부터 주문이 들어와서 몇 달 동안 다량의 종이 지갑을 만들어 납품하기도 했는데, 장삿속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서 수익은 거의 없었다. 재료비에다가 500원 정도의 수고비를 붙여서 납품했다. 종이 지갑을 고객들에게 선물하고자 하는 은행 담당자들의 소박한 발상이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반별로 포장을 하고, 교사들 것은 따로 포장을 해서 모두 11개의 상자였다.
▲ 포장이 된 상자들 반별로 포장을 하고, 교사들 것은 따로 포장을 해서 모두 11개의 상자였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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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이 지갑 제작에 열중하는 아내에게 조금은 불만도 있었다. 교사 근무를 하며 시모를 모시고 살림하는 처지에서, 더구나 신앙 생활도 하는 사람이 틈틈이 종이 지갑 제작에 열중하니 불안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타박을 하거나 방해를 할 수는 없었다.

사순절 공로 쌓기

아내는 올해 사순절에 들어서면서 다시 종이 지갑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순절에 공로를 쌓는 일이라고 했다. 천주교 신자들에겐 사순절 동안이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다. 각자 나름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공로 쌓기에 열중한다. 자연히 성당에서 생활하는 시간도 많다.

직장 생활하며 살림하는 바쁜 처지임에도 아내는 거의 매일 저녁 성당에 간다. 미사 참례만 하는 게 아니다. 화요일 저녁에는 레지오 쁘레시디움 주회에 참석해야 하고, 금요일 저녁에는 성가대 연습에 참여해야 한다. 성주간이 임박해서는 성가대 연습이 거의 매일 진행되며, 귀가 시간은 대개 오후 10시 전후가 된다.

아내가 종이지갑을 만드는 모습. 안방이 작업실이어서 방 안이 온통 어수선하다.
▲ 아내의 작업 모습 아내가 종이지갑을 만드는 모습. 안방이 작업실이어서 방 안이 온통 어수선하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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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돌아오면 아내는 책상 앞에 앉는다. 내 책상은 거실 한 쪽에 있고 아내 책상은 안방에 있다. 안방은 아내의 작업실이기도 하다. 아내는 책상 앞에 앉으면 거의 매일 12시를 넘기곤 했다. 미리 재단한 종이를 한 장씩 책상 위에 올려놓고 정성껏 여러 번 접은 다음엔 전기 기구를 이용하여 액세서리에 풀을 발라 붙인다.

아내는 그 일을 하면서 두어 번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세월호를 생각하며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안산 단원고 아이들과 엄마들에게 줄 선물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자신이 단원고 아이들과 엄마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인데, 가만히 앉아서 기도만 하는 것은 죄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남편처럼 매주 수요일 저녁 '광화문 미사'에 갈 수도 없고,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종이 지갑을 생각했노라고 했다. 

종이 지갑이 아이 잃은 엄마들에게 무슨 위로가 될까마는, 그렇게라도 엄마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시하고 싶은 뜻이었다. 같은 엄마 처지에서 아이 잃은 엄마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려는 일이니, 어찌 보면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는 일이기도 할 터였다.   

종이지갑이 담긴 종이사장들을 일일이 흰 종이로 포장하고 반 표시를 했다.
▲ 포장 모습 종이지갑이 담긴 종이사장들을 일일이 흰 종이로 포장하고 반 표시를 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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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눈물을 흘리며 작업을 한 탓인가, 아내는 전기 기구인 '글루건'을 잘 못 다뤄 왼손 손가락 두 개를 데기도 했다. 약을 바르고 일회용 반창고를 붙이는 것으로는 수습이 되지 않아 약 복용도 해야 했다.   

하늘로 보내는 종이 지갑

아내는 종이 지갑을 만들면서 편지 봉투 하나에 종이 지갑을 두 개씩 담았다. 하나는 하늘의 별이 돼 있는 아이의 것이고, 하나는 평생 동안 하늘의 별을 보며 살아야 하는 엄마의 것이라고 했다. 아내는 편지 봉투에 일일이 별이 된 아이들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반별로 상자에다 담았다. 작은 상자 안에 다 들어가는 봉투들도 있었고, 큰 상자에 가득 담기는 봉투들도 있었다.

나는 아내가 종이 지갑을 만드는 일에는 손을 보탤 수 없었지만, 종이 지갑이 담긴 봉투들을 상자 안에 넣는 일은 거들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짧은 글을 하나 지어서 노란 종이에 인쇄를 한 다음 한 장씩 접어 봉투 안에 넣는 일을 했다. 그 글을 여기에 옮겨 보겠다.
                        
세월호, 우리의 희망을 담아

바닷속 칠흑의 길을 밟고 하늘로 오른 우리 아이들
갇힌 선실 안에서 세상을 깨어나게 한 우리 아이들
오늘도 하늘에서 별무리를 이루고
내일도 그리운 빛으로 흐를 우리 아이들
'우리'라는 인연의 울타리 안에서 끝내 잊지 않기 위해
진실을 인양하여 밝은 세상을 나누기 위해
오직 한 가지 그 소원을 담아 오래 간직하고자
엄마들의 것과 아이들의 것
두 개씩의 종이 지갑을 만들어
세월호 4월 제단에 올립니다.
작은 정성으로...    

- 충남 태안 소설가 지요하 막시모 / 아내 구갑회 글라라

안산시 세월호 합동분향소 앞 ‘성호성당’ 안에 들여놓은 종이지갑 상자들
▲ 성호성당 안 안산시 세월호 합동분향소 앞 ‘성호성당’ 안에 들여놓은 종이지갑 상자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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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모두 11개의 크고 작은 상자를 흰 종이로 일일이 포장한 다음 포장지에도 반 표시를 하고, 큰 종이 상자 안에 담았다. 부부가 함께 맞잡아 운반해 승용차 트렁크에 실었다. 그리고 지난달 28일 오전 경기도 안산으로 달렸다.

오후 1시 30분쯤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 제2주차장에 도착해 합동 분향소를 보는 순간 또 한 번 숨이 막혔다. 주차장 근처 작은 목조 건물인 '성호성당'으로 부부 함께 큰 상자를 운반했다. 예비 신학생이었던 고 박성호 군의 이름을 붙인 성당이었다. 그 성당 안에 상자를 들여놓고 우리 부부는 잠시 기도를 했다.

그리고 근처 '유가족 대기실'로 갔다. 대기실 안에는 많은 어린이와 여러 젊은이가 둘러앉아 유가족 한 분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인솔자로 보이는 젊은 신부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청주교구 옥천성당 보좌 신부님이었다. 김인국 주임 신부님의 뜻에 따라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데리고 교사들과 함께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를 찾았다고 했다.

 안산시 세월호 합동분향소 유가족대기실에서 만난 청주교구 옥천성당 주일학교 어린들과 교사들
▲ 옥천성당 주일학교 어린이들 안산시 세월호 합동분향소 유가족대기실에서 만난 청주교구 옥천성당 주일학교 어린들과 교사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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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대기실 한쪽으로 가서 두어 명 유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성호 성당 안에 560개의 종이 지갑이 담긴 상자를 들여놓았음을 말하고, 아내가 한 달 넘게 공들여 만든 것임을 말했다. 유족들의 눈시울이 젖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합동 분향소 안으로 들어가 또 한 번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과 교사들의 얼굴을 보며, 영정들 앞에 꽃을 놓고 분향했다. 해맑은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찬찬히 보며 절대로 잊을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했고, 반드시 진실을 인양해 밝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우리 부부는 큰일 한 가지를 마무리한 홀가분한 마음, 한편으로는 더욱 무거워지고 뜨거워진 마음을 안고 안산 합동 분향소를 떠나 태안으로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아내는 처음엔 이 글의 공개를 반대했지만 함께 고심한 끝에 송고하기로 했습니다. 세월호의 진실과 인양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태그:#세월호, #안산시 합동분향소, #성호성당, #종이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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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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