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호구의 사랑> 마지막 회의 마지막 장면

tvN <호구의 사랑> 마지막 회의 마지막 장면 ⓒ CJ E&M


"성폭행은 성(性)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의 문제"라는 말이 로맨틱 코미디에 등장할 줄이야. 여느 드라마에서 폭발적 갈등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자극적인 소재'를 두고 "사건화하기보다 따뜻하게 바라보고 싶다"는 표민수 PD의 말은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렸다. 3월 31일 방송된 tvN <호구의 사랑> 마지막 회에선 피해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은 존재하되, 그를 '피해자'로 규정하는 세간의 시선엔 더없이 날카로웠으니 말이다.

강호구(최우식 분)의 격려로, '국민 남동생'이지만 실상은 '경우없는 놈'이었던 노경우(김현준 분)의 성폭행 사실을 고발한 도도희(유이 분)가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에게 듣는 이야기는 '피해자가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느냐'다. '여자가 처신을 똑바로 했어야지'라는 질책이나, '돈이 궁해서 그런 것' '꽃뱀'이라는 공격도 이어진다. 모두 실제 현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던 이야기다. 비록 '피해자가 왜 숨어야 하느냐'며 당당히 맞서는 도도희의 모습은 드라마 속 허구의 상황이지만, 꽉 막힌 속에 사이다 한 컵을 들이킨 듯 청량하다.

현실에도 유효한 <호구의 사랑>의 미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드라마는 강호구와 도도희의 순정을 그려내는 것과 동시에, 빈틈없지만 사람 냄새만큼은 나지 않았던 변강철(임슬옹 분)의 성장사에도 함께 주목했다.

잘나가는 로펌의 변호사로, 극 초반 미혼모를 '상식선에 어긋난다'고 몰아세웠던 그가 어느 순간 도도희의 아기를 받아들이게 됐다. '사랑하고 보니 동성이었다'는 남자의 이야기에도 반박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자문하는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킬까 도도희의 부탁에도 노경우를 고발하길 거부했던 그가 누구보다 노경우 앞에서 크게 분노했다. 모두 한 치의 의심 없이 스스로를 '주류'라 여겼던 그가 직접 '소수자'의 입장을 경험한 뒤 겪은 변화다.

그래서 <호구의 사랑>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드라마였다. 드라마는 시종일관 유쾌함과 달콤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그저 웃고 넘기기엔 진중했다. 과거 <꽃미남 라면가게>로 코미디의 외피 속에서 가족이 아닌 이들로도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음을 강변했던 표민수 PD와 윤난중 작가가 선보인 '당의정'(쓴 약에 설탕 등으로 단맛을 입힌 것-기자 주) 전략은, <호구의 사랑>에도 멋지게 통했다.

배우들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주목할 인물은 이야기의 주된 줄기를 이끌었던 강호구-강호경(이수경 분) 남매다. 영화 <거인>으로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받았던 배우 최우식은 <호구의 사랑> 속 어수룩하면서도 귀엽고, 잔망스럽기까지 했던 강호구를 통해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뽐냈다. '신예' 이수경의 발견은 놀라울 정도다. 정확한 발성과 발음, 망가지기를 불사하지 않는 모습으로 차진 역할 소화력을 보였다. 강호구와 변강철의 '문제 많은 부모' 역할을 맛깔나게 선보인 배우 정원중-박순천, 박지일-오영실의 존재감도 빛났다.

결국, 드라마 속 모두가 '호구'였다. 자식을 아끼는 부모도, 첫사랑을 간직했던 남녀도 결국 사랑 앞에선 그저 '호구'일 뿐이었다. 이 '기-승-전-호구' 전개의 드라마를 떠나보내면서도  마지막 회 '사랑은 빨간 불인지, 초록 불인지 신호등 볼 정신도 없이 무작정 질주하는 것'이라는 강호구의 한 마디가 못내 남는다. 표민수 PD의 절친 노희경 작가 또한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는 유죄'라지 않았나. '그렇게 치면 나는 징역형'이라 외치고도 싶지만…. 강호구의 이 말도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뭐 어때, (언젠간) 다 같이 건너갈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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