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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골의 전형적인 목가적 풍경
 호주 시골의 전형적인 목가적 풍경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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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의 생활은 바쁘게 움직일 일이 별로 없다. 시간에 쫓겨 끝내야 할 일도 많지 않고 약속해서 만날 사람도 적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있어도 도시처럼 자동차 많은 도로에서 지체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똑같은 은퇴 생활임에도 시드니에서 살 때보다 여유롭다. 사람들은 '여유로운 삶'을 '심심한 삶'으로 대치해 표현하기도 하지만 여유로움이 있는 시골 생활이 나는 좋다.

토요일 아침이다. 날씨도 좋다. 바다로 갈까 아니면 골프를 치러 갈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내의 의견을 물으니 언젠가 지역 신문에서 보았던 공예 전시장에 가보자고 한다. 집에서 30분 내외 걸리는 곳에 있다. 시골의 느린 생활에 익숙해진 탓일까, 천천히 하루를 준비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간단한 아침을 끝내고 길을 떠난다.

쇼핑 때문에 자주 들리는 타리(Taree) 입구를 지나 내륙으로 들어간다. 넓고 푸른 잔디에서 가축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전형적인 호주 농촌의 목가적인 전경이다. 한가한 시골 도로를 10여 분 운전하니 높은 지대에 특이하게 디자인한 건물이 보인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우리를 맞는다. 자그마한 공예 전시장에 들어선다. 넓지 않은 곳에 주인이 직접 만든 목공예를 비롯한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정성이 들어간 섬세하고 특이한 작품들이다. 하나쯤 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베트남에 지내면서 가격이 저렴한 목공예를 수없이 보아온 아내는 살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물론, 품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곳이 뛰어나지만.

이곳에는 카페와 숙박 시설도 있다. 전시장을 나와 카페에 들어선다. 카페는 나비를 찍은 수많은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다. 커피 한 잔 들고 사진을 감상한다. 접사 렌즈로 전문가가 찍은 사진임을 알 수 있다. 주인은 작가의 이름을 대며 사진 설명을 한다. 영화 촬영가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나비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몰라도 앞에 있는 공터에는 나비 공원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호주 남단에 있는 태즈메이니아(Tasmania) 섬에서 살았다는 예술가 부부. 자신이 살던 곳에서 쉽게 떠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하는 공간을 찾아가 자신만의 삶을 사는 부부가 멋져 보인다. 커피값을 낸다. 계산대 옆에는 닭장이 아닌 들판에서 생산된 달걀이 보인다. 달걀 한 꾸러미도 집어 들고 전시장을 떠난다.

하루가 끝나려면 시간이 있다. 좀 더 내륙으로 들어가 윙햄(Wingham)이라는 동네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다. 윙햄은 몇 번 가보았던 곳이긴 하지만 지금 가는 도로를 이용하기는 처음이다. 조금 낯선 길을 천천히 운전한다. 전망대라는 푯말이 보인다. 차를 잠시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매닝강(Manning River) 지류가 구불구불 목초지 사이를 흐르고 있다. 넓은 목초지 언덕에서는 큰 집이 주위를 내려 보고 있다.

여유로움이 넘치는 호주의 시골 생활

여유로운 삶을 엿볼 수 있는 시골 동네의 장터
 여유로운 삶을 엿볼 수 있는 시골 동네의 장터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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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햄 입구에 들어선다. 작은 강을 건너는 다리 옆에 동네 아이 서너 명이 자전거를 옆에 놓고 떠들고 있다. 주택가에 들어선다. 생각보다 큰 동네다. 작은 병원도 있다. 넓은 공터에 도착하니 자동차와 사람으로 붐빈다. 소와 말도 보인다. 로데오(Rodeo) 쇼를 하고 있다. 작은 동네를 북적이게 하는 큰 축제다. 그러나 동물을 이용해서 하는 쇼를 좋아하지 않기에 그냥 지나친다.

조금 더 가니 공터에서 동네 사람들이 물건을 팔고 있다. 시골 장이라고 부르기에는 규모가 작다. 동네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비롯해 중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는 노부부에게 수박, 호박, 꿀 등을 사서 차에 싣는다. 싱싱한 이유도 있지만, 시골 인심을 사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동네 중심가에 들어선다. 식당을 찾는다. 중국 음식점이 있다. 예전에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의 미카사라(Meekatharra)라는 오지에 있는 광산촌에서 본 중국 음식점이 생각난다. 외국에 있는 중국식당에서는 맛볼 수 없는 짜장면, 짬뽕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은행 옛 건물을 식당으로 개조한 음식점에 들어선다. 이름도 은행 직원을 지칭하는 텔러 식당(Tellers Restaurant)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장식도 옛 은행 건물의 내부를 그대로 살렸다. 심지어는 거대한 금고문도 그대로 두고 금고 내부는 부엌으로 쓰고 있다. 식당에는 1817년에 개업한 뉴사우스웰즈 은행(Bank of New South Wales) 윙햄 지점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다.

깔끔하게 나온 음식을 먹고 나오는데 주인이 건물 내부를 보여주겠다고 한다. 이 층에는 옛날 은행 분위기를 살리면서 방으로 꾸민 숙소가 있다. 현대적인 안락함과 옛것의 우직함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집으로 돌아간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사람도 만나고 물건도 사면서 계획 없이 하루를 보냈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면 나만의 내일에 도착할 것이다. 남쪽에 창을 내고 살겠다던 시인, 왜 사느냐고 물으면 웃겠다던 시인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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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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