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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리고 해무가 자욱한 날, 느닺없이 와온마을에 섯다. 그 느닺없음이란, 계획적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느닺없음은 내가 상상하던 일몰의 와온 갯벌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 와온갯벌 봄비가 내리고 해무가 자욱한 날, 느닺없이 와온마을에 섯다. 그 느닺없음이란, 계획적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느닺없음은 내가 상상하던 일몰의 와온 갯벌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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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가물 끝에 봄비가 내리신다. 참으로 반가운 봄비, 오랜만에 아내와 여행을 떠났는데 봄비가 내리신다. 조금은 야속하기도 하지만, 겨울 가뭄, 봄 가뭄으로 타는 목마름에 숨이 넘어갈 듯한 대지를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해야지 싶다.

광양 시내에서 만나기로 한 지인들과의 약속이 두어 시간 늦춰졌다. 내비게이션에 '와온마을'이라고 목적지를 입력하니 넉넉잡고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오가는데 한 시간 잡고, 한 시간여 와온마을을 돌아보면 될 듯하다.

봄비가 내리고 해무가 가득한 가운데서도 주민중 한 분이 뻘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치열한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이곳에서 나는 느닺없는 부고소식을 들었다. 아직 살아야 할 날이 너무도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느닺없이 떠나버렸다.
▲ 와온마을 봄비가 내리고 해무가 가득한 가운데서도 주민중 한 분이 뻘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치열한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이곳에서 나는 느닺없는 부고소식을 들었다. 아직 살아야 할 날이 너무도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느닺없이 떠나버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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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 마을에 도착하니 해무로 갯벌이 가득하다. 광양에서 해룡면으로 오는 버스정류장마다 동네 어르신들이 제법 많았다. 단지 버스 시간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번 이유는 사실 병원이 붐빈 탓이기도 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일할 수 없으니 그동안 일하느라 혹사한 몸을 위해 병원을 찾는 어르신들이 많단다. 비 오는 날이면 농어촌 지역의 병원이 붐빈다는 것이다. 그제야, 제주도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비가 오는 날이면 시골병원은 늘 만원이었다. 일을 쉬는 날, 물리치료도 받고 약도 타서 욱신거리는 몸을 달래며 삭신을 혹사했던 것이다. 그게 이 땅 어머니들의 삶이었고, 지금도 그 삶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손길이 일일이 가지 않은 구석이 없다. 저 모든 일들을 묵묵히 감당해낸 거친 손들에게 감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봄비내리는 궂은 날에도 방파제에서 할머니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미안해서 감히 안부조차도 물을 수 없었다. 뉴스에서는 대기업 간부의 연봉이 145억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와온마을 사람의 손길이 일일이 가지 않은 구석이 없다. 저 모든 일들을 묵묵히 감당해낸 거친 손들에게 감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봄비내리는 궂은 날에도 방파제에서 할머니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미안해서 감히 안부조차도 물을 수 없었다. 뉴스에서는 대기업 간부의 연봉이 145억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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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가 자욱한 와온겟뻘은 무채색이었다. 흑백과 컬러의 차이가 별 의미가 없는 날이었지만, 무채색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색깔들과 작은 빛에도 자기의 빛을 내는 날을 기다릴 숨은 색깔들의 내밀한 쉼의 시간인듯 와온은 따스했다.
▲ 와온마을 해무가 자욱한 와온겟뻘은 무채색이었다. 흑백과 컬러의 차이가 별 의미가 없는 날이었지만, 무채색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색깔들과 작은 빛에도 자기의 빛을 내는 날을 기다릴 숨은 색깔들의 내밀한 쉼의 시간인듯 와온은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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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에서 누군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단 한 사람, 이 궂은 날 뻘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안 되는 급한 일이 있었나 보다. 와온마을에서는 전국 꼬막생산량의 70%  정도를 생산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갯벌은 젖줄이다.
▲ 와온마을 갯벌에서 누군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단 한 사람, 이 궂은 날 뻘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안 되는 급한 일이 있었나 보다. 와온마을에서는 전국 꼬막생산량의 70% 정도를 생산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갯벌은 젖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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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굵직한 빗방울에 해무까지 더해진지라 갯벌에서 일하는 분의 모습을 담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행운처럼 한 분을 만났다. 그리고 포구 쪽에서도 대나무 그물을 깁는 할머니 두 분을 만났다.

반가운 봄비지만, 제법 을씨년스러울 수밖에 없는 날이다. 이런 날에도 일해야만 하는 그들의 심정이 잡히질 않아 인사 나누는 것조차도 버거웠다. 그래서 그냥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밋밋한 갯벌, 저 갯벌엔 저마다의 꼬막밭이 있다. 단지 꼬막을 캐는 것이 아니라 뿌리는 것이니, 갯벌을 젖줄로 삼아 살아가는 이들에게 갯벌은 밭이다.
▲ 와온마을 밋밋한 갯벌, 저 갯벌엔 저마다의 꼬막밭이 있다. 단지 꼬막을 캐는 것이 아니라 뿌리는 것이니, 갯벌을 젖줄로 삼아 살아가는 이들에게 갯벌은 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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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에 꽂혀있는 대나무는 꼬막밭을 표시하는 표식일 터이다. 순천만 일대에서 대나무는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갯벌마다 대나무그물로 사용된 대나무와 사용될 대나무, 그물을 잇는 작업을 하는 주민들의 분주한 모습이 마치 대쪽의 이미지와도 닮았다.
▲ 와온마을 갯벌에 꽂혀있는 대나무는 꼬막밭을 표시하는 표식일 터이다. 순천만 일대에서 대나무는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갯벌마다 대나무그물로 사용된 대나무와 사용될 대나무, 그물을 잇는 작업을 하는 주민들의 분주한 모습이 마치 대쪽의 이미지와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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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색깔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야 누렇게 변한 대나무 이파리다. 밭의 경계처럼 갯벌에도 경계가 있을 것이다. 순천만 일대에서 전국에서 소비되는 꼬막의 70%가량을 생산하고 있단다. 갯벌을 가진 마을마다 꼬막이 가장 많이 난다고 자부심을 품고 약간의 부풀어진 수확량을 자랑할 것이다.

어느 자료엔 와온 마을이 순천 일대에서는 최고의 생산량을 자랑한다 하고, 어느 자료엔 여자만이 그렇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순천만 일대의 갯벌, 그곳은 국내 최대의 꼬막생산지요, 그곳 주민들의 젖줄인 것이다.

대나무그물을 만들 때 사용되었던 대나무들이 포구에 쌓여있다. 오랜 세월의 흔적들이 대나무마다 서려있는 듯하다.
▲ 와온마을 대나무그물을 만들 때 사용되었던 대나무들이 포구에 쌓여있다. 오랜 세월의 흔적들이 대나무마다 서려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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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슈퍼 옆 산부인과 간판이 붙어있는 건물, 지금은 영업을 하고 있지 않은 듯 보인다. 요즘은 도시에서도 보기 힘든 '산부인과' 병원의 간판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 와온마을 와온슈퍼 옆 산부인과 간판이 붙어있는 건물, 지금은 영업을 하고 있지 않은 듯 보인다. 요즘은 도시에서도 보기 힘든 '산부인과' 병원의 간판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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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간판을 보고 아내와 나는 신기해했다. 요즘은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것이 산부인과 병원이기 때문이다. 간판의 낡음 정도로 보아 영업을 하지 않은 것이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영업하지 않는다고 단정을 한 이유는, 요즘 농어촌지역에서 아가의 울음소리를 듣는 일이 워낙에 귀한 일이라는데, 이곳 와온 마을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몰이 좋은 날, 최상의 날에 그곳에 서는 날이 있길 소망한다. 그토록 그곳을 간절하게 소망했다가 이토록 느닺없이 방문했다가 황망하게 둘러보고 그곳을 떠날 줄은 몰랐다. 긴 여운이 남는 날이다.
▲ 와온마을 일몰이 좋은 날, 최상의 날에 그곳에 서는 날이 있길 소망한다. 그토록 그곳을 간절하게 소망했다가 이토록 느닺없이 방문했다가 황망하게 둘러보고 그곳을 떠날 줄은 몰랐다. 긴 여운이 남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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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 마을, 그 갯벌을 바라보고 다시 광양으로 향했다. 지인들과 만나 점심을 먹고 그간의 안부를 나누고 좋은 날을 잡아 와온 마을에서 일몰을 보자고 했다.

그들과도 이별할 시간이 되어갈 무렵,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너무 젊은 나이다. 개인적인 삶은 치열했을지언정 그저 그런 무채색의 삶, 그냥 보통 무명씨의 삶을 살다가 그냥 그렇게 허망하게 가버렸다. 다들 적어도 20년은 넉넉할 것으로 생각했고, 고령화 사회를 감안한다면 혹시 40년이나 그 이상도 더 살지도 모른다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이순을 넘긴 지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가버렸다.

와온 갯벌에서 봄비를 맞아가며 대나무 그물을 깁던 할머니들의 연봉이 얼마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몸이 아파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하다 심장마비로 죽은 지인의 연봉은 대략 2천만 원이 조금 못되었다. 부고 소식을 듣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뉴스에서는 어느 대기업 임원의 연봉이 145억이라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위의 사진들은 봄비가 종일 내렸던 3월 31일(화) 오전에 담았습니다.



태그:#와온마을, #순천만, #갯벌, #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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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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