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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장 : 틀린 문제 풀이과정을 적어옵니다.

초등학교 2학년 큰아이가 시험지를 내밀었다. "엄마, 국어는 풀이 과정을 어떻게 써야할 지 모르겠어!"라며. 이틀 전엔가는 수학 시험지를 가져오더니, 이번에는 국어다. 다른 건 몰라도 국어는 내 전문 영역. "그래? 어디 보자. 엄마가 가르쳐줄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문제를 보기 전까지는.

[    ]되는 말은 재미있습니다.
빈칸에 들어갈 말은?

주관식 문제. 예시문이나 답이 몇 글자인지 같은 힌트는 없다. 틀린 문제 풀이 과정을 써오라는데 정답이 뭔지도 모르겠다. 문제를 뚫어져라 찬찬히 읽었다. 답이 바로 생각나지 않았다. 한 번 더 읽었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 '뭐지? 뭐지? 뭘까?' 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두 글자.

"반복? 반복인가? 반복 같은데???... 맞나? 혹시 수업시간에 들어본 것 같아?"

아이는 조금 생각하더니, 맞는 것 같단다.

"그럼 반복이라고 쓰면 되겠네."
"아냐, 선생님이 꼭 풀이 과정을 써오라고 하셨어."
"야, 답이 반복인데... 그 풀이 과정을 뭐라고 쓰니?"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못마땅한 표정의 아이 얼굴. 머리를 쥐어짜 본다.

'가만... 반복되는 말이 뭐가 있더라. 찰랑찰랑, 흔들흔들, 똑딱똑딱... 이런 말을 써놓고 이렇게 반복되는 말은 재미있습니다, 라고 쓰면 되나? 대체 풀이 과정이 뭐란 말이냐... 오, 마이 갓뜨."

다행히 아이는 엄마식 풀이 과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후다닥 뭔가를 쓰더니 "숙제 끝, 이제 놀아야지"라며 제 방을 뛰쳐 나갔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이런 문제에 풀이 과정을 써오라는 선생님의 의도는 대체 뭘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고민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마는). 그때였다. 그림책 <참! 잘했어요>(이경국 글/그림)의 주인공 참이가 떠오른 것은. 

'빵점' 같은데 '백점'인 참이의 시험지

<참! 잘했어요> 겉표지
 <참! 잘했어요> 겉표지
ⓒ 고래뱃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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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4반 4번 이름 나참. 시험을 보면 맞는 것보다 틀리는 게 더 많은, 그래서 시험 보는 날 아침부터 엄마의 잔소리를 들은 참이는 마음이 무겁다.

오늘따라 긴장이 되는지 배까지 살살 아파 온다. 그런데 웬일? '이러다 나 백점 맞는 거 아냐?' 싶을 만큼 시험 문제가 술술술 풀리는데... 

참이가 시험 문제를 푸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책 <참! 잘했어요>를 읽으면 누구라도 조금은 찔리고, 때로는 배꼽을 잡고 웃을 것이다.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은 것 같아서, 또 이런(?) 사자성어를 생각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서. 놀라긴 참이 선생님도 마찬가지. 진심은 정말 통하는 걸까.

'참이 부모님께. 정답은 아니지만 참이가 쓴 답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네요. 덕분에 저도 참이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것 같아요. 참! 잘했어요 도장 꽝꽝꽝!'

이 쯤되면 궁금하다. '빵점'같은데 '백점'인 참이의 답은 뭘까?(영화로 치면 뭔가 스포일러 같은 느낌이 들어 망설였는데, 전부가 아닌 일부만 살짝 공개하도록 한다, 단 참이의 문제 풀이 과정은 생략했다)

1. 옆집 아주머니에게 먹을 것을 받았을 때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정답 : "뭘 이런 걸 다"
2. 어려운 일이 연거푸 일어나는 것을 뜻하는 사자성어는 무엇일까요? 빈 괄호 채우기.
정답 : 설(사)가(또)

이 문제를 어른이 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른들 머리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답이니까(적어도 나는 그랬다). 이밖에도 선생님의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든 참이의 문제 풀이는 재밌고 기발하며 한편으로 놀랍다. '아이들은 원래 이런 걸까?' 생각하며 책장을 덮었는데, 큰아이와 대화를 하며 이런 내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엄마, 나 이 책 뒷이야기도 알 것 같아."
"응? 뭔데?"
"다음에 참이가 또 시험을 보는데, 이런 문제가 나올 것 같아. 뭐냐면 '엄마 아빠는 왜 결혼했을까요?'"
"그래? 그럼 참이가 뭐라고 대답했을까?"
"음... 아기를 낳으려고."
"뭐? 하하."

그야말로 엉뚱한 주인공에 엉뚱한 독자 되시겠다.


참! 잘했어요

이경국 글.그림, 고래뱃속(아지북스)(2015)


태그:#참! 잘했어요, #고래뱃속, #이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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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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