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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영등포구 하자센터에서 열린 '영등포 달시장'
 지난 해 영등포구 하자센터에서 열린 '영등포 달시장'
ⓒ 방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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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방물단' 은 2012년부터 '영등포 달시장' 운영과 함께 시작된 청년기업이다. 사람 간의 만남을 통해 문화와 공존의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장터만들기를 추구하는 방물단은 영등포 달시장을 비롯해, '헬로 문래', '광화문 사회적경제 장터', '마켙' 등 다양한 장터 기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왔다.

방물단의 대표는 아직 20대의 저력있는 청년 인재명씨로, 그는 2012년 '씨즈(청년사회적기업가 지원단체)' 와 '하자센터(대안학교)' 의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을 통해 영등포 달시장 기획팀의 구성원이 되었다. 그는 이후 사회적기업으로 발전한 방물단을 4년동안 이끌며, 서울시를 무대로 종횡무진 움직이며 장터를 만들고 있다.

인재명 대표의 성장스토리에는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으로 대표되는 인큐베이팅 기관의 역할이 깊게 배여 있다. 인큐베이팅 기간을 마친 후 진행한 수십 건에 달하는 프로젝트와 히스토리에는 지역과 마을, 그리고 청년의 지지대를 만들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의지가 담겨 있다. 그의 성장은 사회적경제의 선한 의지를 씨실과 날실을 엮듯 연결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듯 했다.

2015년 2월의 어느 날, 필자는 그를 만나기 위해 영등포구에 위치한 하자센터를 찾았다. 공간 한 켠에 마련 된 탁구대에서 쉬는 시간을 활용해 사람들이 탁구를 치고 있었고, 1층 까페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주민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가 웃으며 건넨 명함에는 큰 글씨로 '봄봄'이란 예명이 적혀 있었다. 봄을 바라본다는 의미를 담은 봄봄. 그가 바라보고 있는 장터, 방물단, 그리고 그의 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방물단의 20대 청년 대표 인재명
 방물단의 20대 청년 대표 인재명
ⓒ 인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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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기업의 청년 대표로서 문화기획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데요. 어떠한 계기로 방물단에 들어오게 되셨나요?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어요. 지금 하는 일과는 전혀 다르죠.(웃음) 다른 친구들처럼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에 대해 한참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사회적 기업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되었고, 내가 직접 창업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관련된 내용을 좀 더 알아보고 싶었는데 지역에선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2012년에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그리고는 씨즈와 하자센터에서 시행하는 예비 청년 사회적 기업가를 위한 '동료를 찾아서' 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봤을 때, 어쩐지 여기서 진짜 동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심지어 그런 동료를 진짜 만나버렸어요.(웃음) 그 친구 덕분에 영등포 달시장에 대해 알게 되었죠. 때마침 하자센터에서 2012년부터 영등포 달시장 기획팀인 방물단을 모집하고 있었고, 저는 기꺼이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 방물단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방물단은 '영등포 달시장'의 운영을 시작으로 만들어졌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방물단의 탄생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영등포 달시장은 하자센터 주관으로 2011년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영등포구에서 예산을 지원받았죠. 그때는 제가 합류하기 전이에요. 사실 초기 달시장은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판매하는 벼룩시장의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사회적기업의 제품이 별로 없었고, 사회적기업의 물건만을 팔 목적으로 장터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지역의 예술가들과 함께 마을 축제의 성격을 띤 장터가 만들어졌고, 점차 사회적기업과 사회적 경제의 활동들이 다양한 프로그램 속에 녹아들면서 자리를 잡은 거죠.

예를 들면, 청년들이 주체가 되어 장터를 만든다거나, 오가닉 마켓과 같이 생태와 도시농업을 다루는 프로그램, 지역예술가나 청년예술가들이 교류하고 활동기회를 나누는 자리, 아기 달시장처럼 어린이 교육과 놀이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결합한 거죠. 물론 사회적기업의 제품을 판매하기도 하죠. 하지만 사회적 목적을 갖는 활동들 보다는 아무래도 지역 주민들을 위해 봄부터 가을까지 야외에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마을 축제의 성격이 컸습니다.

이렇게 자리를 잡은 영등포 달시장은 2012년부터 청년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을 위해 본격적으로 활용되었고, 이때 만들어진 것이 방물단이었어요. 하자센터는 2012년 3월부터 방물단의 구성원을 모집했고, 4월부터는 방물단이 주도적으로 영등포 달시장을 맡아서 기획하고 운영했죠."

- 첫 사회생활을 방물단에서 '장터기획'으로 시작하셨군요. 이러한 문화기획 분야의 일을 처음 접하였을 때 어떠셨는지?
"제가 공학도였기 때문에 '문화기획'이라는 분야는 정말 생소한 분야였어요.(웃음) 어디서 배운 적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맨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었습니다. 당연히 실수도 많이 했죠. 처음 호흡 맞추는 팀원들과 고생고생해서 시장을 만들었는데, 달시장이 열리니 시장 안에 사람들이 꽉 차고 음악 소리도 신나고. 몇 달 간 응축시킨 에너지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뭔가 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해방감 같은 걸 느낀거죠. 문화기획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각기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에너지를 모아 놀거리, 볼거리, 즐길거리 등 소재거리를 만드는 것이 무척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문화기획을 하는 팀이니 뭔가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 있을 것 같은데요. 내부 구성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특별한 사람들이 모였는지는 잘 모르겠네요.(웃음)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건 확실 합니다. 방물단 초기 멤버 4명은 2011년 달시장에 참여했던 예술가, 사회적기업 창업 희망자, 디자이너였죠. 그러고 보니 저만 평범한 공학도 출신인 것 같네요.(하하) 그리고 다들 예술가들 중에서도 사회적 경제나, 공공미술과 같은 공공성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였죠. 저 처럼 대학생이면서 사회적기업에 관심있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2013년 '씨즈'와 '현대자동차'에서 시행 한 H온드림 사업의 펠로 팀에 선정 된 방물단
 2013년 '씨즈'와 '현대자동차'에서 시행 한 H온드림 사업의 펠로 팀에 선정 된 방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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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적 역량을 갖추기까지 겪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문화 기획업무가 주요사업인 기업을 운영하다보니 기획, 홍보, 행정, 인적 네트워크 관리 등 다양한 역량이 요구되더군요. 저는 방물단에 들어오기 전부터 '청년 등 사회적기업육성사업 2기' 로 선정되어 하자센터에서 필요한 역량을 하나하나씩 채웠습니다. 기획서를 쓰는 연습을 할 때는, 정말 말도 안되는 말만 써갔던 것 같네요(웃음).

일주일에 한 번씩 전체 회의가 있었는데, 이 때 좀 지루할 정도로 서로 진행사항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주고 받은 피드백들이 저의 부족한 역량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청년등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되고 나서는 사업 진행과 정산, 기타 행정서류를 포함한 페이퍼 워크를 많이 할 수 밖에 없었죠. 이 시점부터는 정말 실전이었죠. 배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부딪치고 깨지면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나서 씨즈와 현대자동차가 2013년에 함께 진행한 'H온드림'이라는 청년 사회적기업 지원 사업에 도전하였죠.

H온드림은 당시 유행한 오디션 형식으로 팀을 선발하는 행사였는데, 이 행사에서 프리젠테이션을 본격적으로 했죠. 방물단은 H온드림 사업의 인큐베이팅 기업으로 선정되어 사업비와 1년 동안 심화 멘토링을 받았어요. 이 사업에 참여를 위해서 1년 간 방물단이 했던 사업을 함께 돌이켜봤었는데, 이 과정을 통해 훗날의 방물단의 미션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고나니, 전반적으로 스스로가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영등포 달시장'외에도 다양한 문화기획 사업을 하고 계신데, 추가적으로 기획한 문화기획 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런 일을 하다보면 다양한 제안이 수시로 오고갑니다. 그래서 많은 일을 했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일은 달시장 안에 포함된 테마들이 확장되어 새로운 행사로 만들어진 경우 인 것 같네요. 2014년에 서울 핸드메이드 박람회 기획에 참여했고, 수공예 팀만 100팀 정도를 섭외했습니다.

달시장에서 수공예 마켓을 할 때 얻은 노하우가 발전된 형태죠. 공연 같은 경우도 방물단에서 2013년부터 '선유도 전신마취음악축제'라는 행사를 기획해 오고 있어요. 언플러그드 뮤직페스티벌로, 마찬가지로 달시장에서 했던 공연기획이 확장 된 걸로 보면 되요. 이런 과정 속에서 제 역량도, 방물단 조직의 역량도 함께 향상되어온 것 같습니다."

- 다양한 장터기획 사업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시간과 인력의 한계가 가장 컸어요. 저희들이 일정 관리를 제대로 못했던 것도 있고, 초기에는 우선순위 관리도 어려웠어요. 처음이니까. 당시는 많이 하면 무조건 좋은 줄 알았죠.(웃음) 정말 바쁠 때는 한 주에 3~4개의 장터를 동시에 진행하기도 했는데, 정말 어떻게 마무리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없이 지나갔던 것 같습니다. 바쁜 거야, 젊으니까 어떻게든 밤새서 일 하면 되요.

그런데 문제는 각 장터가 담아야 할 가치들을 깊이있게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명이 여러 장터를 맡다 보니, 각 장터의 테마와 특색. 그리고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지 못한 거죠.

사실 장터는 복제가 쉽습니다. 많은 곳에서 다양한 장터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정말 우리 방물단의 특색. 우리 방물단만이 할 수 있는 장터는 무엇인지를 깊게 고민하지 못했어요. 수많은 장터들 중에 하나로 희석되어갈 때, 우리 스스로의 지속가능성을 지켜내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터를 만들면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방물단만의 장터 컨셉을 좀 더 깊게 연구하기 위해 2014년 장터연구소를 만들었어요. 또 일을 만들어 버렸네요.(웃음)"

 지난 해 방물단이 새롭게 기획 한 장터 '마켙'
 지난 해 방물단이 새롭게 기획 한 장터 '마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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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물단이 하는 사업의 숫자가 많은 만큼 수익도 비례하는지 궁금합니다.
"방물단이 지금 횟수로 4년차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장터와 사업들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각 사업을 위해 투입하는 팀원들의 시간과 노력에 비해 인건비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수익율이 높은 편은 아닙니다.

이건 방물단만의 어려움은 아닐 거고, 기금 사업을 많이 하는 문화분야 기업이나 사회적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인데요. 방물단의 경우 특히 겨울에 야외장터를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인건비 만드는 것도 벅찰 때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죠.

2014년 이런 고민에서 '마켙'이라는 사업을 시작했어요. '마켙'은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고, 인건비와 부가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브랜딩을 아예 밑바닥부터 다시 한 장터였죠. 마켙은 '팔러', '질러', '놀러' 라는 테마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요. 팔러는 파는 사람, 질러는 사는 사람, 놀러는 노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들이 모여 시장을 형성하죠.

컨셉을 잡지 않는게 컨셉이었고, 마켙에 오는 사람 자체가 컨셉이 되는 시장이죠. 각자 모인 사람들이 만드는 작은 컨셉이 모여서 큰 컨셉을 이룰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호응이 좋았고, 기금에 의존하지 않은 사업이었고, 인건비는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마켙은 지난 해 방물단이 기획한 사업 중 가장 즐거웠던 사업 중 하나였고, 올해도 집중해보려 합니다."

- 음악, 공예 등 다양한 부분을 장터라는 곳에 접목하여 기획을 하고 계신데요. 방물단과 함께 기획을 하는 파트너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특별히 파트너들과 교류하는 방식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문화기획자와 예술가들은 든든한 파트너들이고, 프로젝트 대부분이 그들과의 협업을 통해 진행됩니다. 저희들 생명줄이에요. 잘 모셔야 합니다. (웃음) 주로 사업은 행정기관과 협업에서 발생하는데, 제일 처음에는 하자센터와 일을 시작했고, 그 다음에 청년허브나 사회적경제 지원센터, 서울시청 안의 공원녹지과 등 10여개의 관계 부처와 파트너가 되어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적 네트워크는 영등포 달시장에서 형성된 작가들을 기반으로, 그 이외의 사업을 할 경우에는 추가적으로 다른 작가를 만나기도 하죠. 장터에 모이는 사람들은 사업 특성에 따라 다릅니다. 공통적으로는 예술가들이 많은 편이긴 하죠.

보통 장터마다 10~20 팀의 예술분야 작가들이 방물단과 함께 일을 해요. 작가들과의 관계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일자리를 나눈다는 생각으로 일을 합니다. 실제 예산이 큰 사업에서도 방물단의 수익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익률을 높일수록 작가들의 이익률이 떨어집니다.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한데, 이익을 쫓는 사업체였다면 지금까지 방물단이 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방물단 사무실에서 근무 중인 방물단 직원들의 모습
 방물단 사무실에서 근무 중인 방물단 직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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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물단의 기업문화에 대해 들려주세요.
"제가 대표라는 명함을 갖고 있긴 하지만, 제가 업무를 결재해야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니에요. 방물단의 구성원은 모두 '우리는 고용주와 피고용자가 없다. 우리는 함께 벌어 함께 나누는 체제다.' 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죠. 조직 구조 자체가 자기 몫은 자기가 벌어야 운영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각자가 독립적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어려운 일들은 서로 도와가며 해결합니다. 각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면 옆에 있는 팀원의 임금에 손실이 생기기 때문에, 책임감을 갖되 문제가 생기면 함께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단체입니다. 그러다보니, 상당히 수평적인 조직문화와 의사소통 체제를 갖게 된 것 같아요,"

- 인재명 대표가 생각하는 대안장터는 무엇인지 궁금해지네요.
"요즘은 대안장터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 것 같네요. '대안이란 결국 무엇으로부터의 대안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인데, 좀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도 조금 더 생각을 해보면, 제 고향이 충남 예산이에요. 저희 할머니는 두부를 직접 만들어 5일장에 내다 파시곤 했어요. 그 시절 할머니를 따라 다닌 시장에서 느낀 것이 많았습니다. 장터 안에 물건을 사고 파는 거래도 있지만, 약장사가 약을 팔거나 각설이 타령 같이 공연 비슷한 것도 있었죠. 그런 풍경이 정겹게 느껴진 것 같아요. 그 옛날 장터 안에 서로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즐길 수 있는 축제성 같은 것이 이미 있었던거죠.

지금은 장터가 효율성만 추구하는 대형 마트로 옮겨갔고, 정겨운 풍경과 문화가 사라져가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대안장터는 옛날에 장터 안에 포함 되어 있었던 정겨운 것들을 다시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놀거리, 즐걸거리, 볼거리. 이러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사회적인 '가치'와 '문화'로 창출되는 공간이 바로 대안장터가 아닐까요?"

- 2015년 방물단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짧게 정리 부탁드립니다.
"2014년까지는 방물단은 많은 일을 벌이기도 했고, 지속가능성에 집중하며 비즈니스적인 부분을 놓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여러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이루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 사업 계획에 앞서 지난 일들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고, 올해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지금까지 축적된 역량을 모아, 이제는 큰 규모나 많은 양의 프로젝트를 추구하기보다는 가치지향적인 관점으로 사업을 집중하여 진행해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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