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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합판위에 아크릴릭,커터칼조각_202x8x104cm_2014
▲ 얼지마,죽지마,부활할거야 _합판위에 아크릴릭,커터칼조각_202x8x104cm_2014
ⓒ 박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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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승강기 대신, 계단을 올라 갤러리3 유리문을 들어서자, 서늘하다.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침침한 벽과 바닥. 어둠 속에서 극적인 빛을 받고 있는 박미화 작가가 연출한 배역같은 작품.. 무엇인가 잊혀지고 있는 현실에서 생명의 기운을 불러 들이고 일으켜 세운다.

바닥에 건축 공사장에서 쓰여졌을 오래된 나무들이 놓여 있다. 12개다. 할 일을 다 한 일꾼 같기도 하고 오래된 시각들을 모아 놓은 것 같다. 고등학생 교복같이 생생하고 기운찼을 투구와 갑옷은 텅 빈 유물 마냥 뒹굴고 있다. 아직 분홍빛 온기를 띈 손과 발은 그 날 그 곳에서  손짓, 발짓으로 살아있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건너 편 바닥에 잣나무 뭉치가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누가 뭐래도 우리들의 어머니다. 이 잣나무 거목은 비를 맞아 썩고, 햇볕에 말라 비틀리고, 쪼개져 불쏘시개가 될 뻔하다 작가에게 보내졌다. 모진 비바람과 역경을 뚫고 마침내 극적으로 살아나 여기까지 온 셈이다. 모진 세월 상처 투성인 만큼 애처롭고, 반갑고, 친근하지 아니한가.

어머니_85x53x157cm_잣나무_2014.
 어머니_85x53x157cm_잣나무_2014.
ⓒ 박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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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가 뭉그러진 가슴결과 엉덩이도 슬며시 만져보고 향기를 맡아보았다. 잣나무향이 젖향기처럼 배였다. 그 맵시와, 솜씨와, 마음씨는 간결하고, 단단하고, 따스하다. 치마 자락 동여맨 허리 끈 흔적, 어머니의 살결과 근력은 묵직하고 끈질기다. 작가는 옮겨 온 잣나무 주변을 돌며 곪은 속을 긁어내고, 썩은 속을 쓸어내고, 매만지고, 품었으리라... 어머니가 말했다. '힘 들일거 없다' 하여 나무속에 겹쳐 있는 어머니를 가만히 떼어 냈을 뿐이다.

모름지기 어머니란 그런 존재다. 용 쓰지 마라, 다칠라, 쉬엄 해라. 그렇게 타이르는 대로 모셔 낸 모습이다. 조각이 아니라 불러 모신 느낌. 한국 현대조각에서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굉장히 많지만, 박미화의 <어머니>는 그 어떤 인위적 작품에서 느낄 수 없는 가슴 뭉클하고 자연스러움이 묵직하게 서린 감동적인 어머니 상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그 뒤로 벽면에 영상 작품이 비치고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름이 한줄기 빛이나 빗물처럼 흘러 내린다. 세월호뿐 아니라 시대의 모순으로 죽임 당한 사람들이다. 그 옆에 걸린 합판 부조는 예리한 칼로 마른꽃이 새겨있다. 그린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손톱이나 칼 따위로 후벼 파거나 할퀸 그림이다. 그래서 마른 꽃이다. 제작 과정이 즉물적이고 섬짓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제작 방식이 주는 치유력 있는 만큼 통쾌함도 있다.

박미화 개인전 출품. 2015
▲ 자장가 박미화 개인전 출품. 2015
ⓒ 박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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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의 아픔을, 저들의 분노를, 무력감과 미안함을 그나마 담아낼 수 있는 저항의 몸짓이요 표현 행위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예전과 달리 여러 방식과 재료와 기법을 마음 가는 대로 구사했다. 흙과 불로 달궈낸 <두상>과 <새>를 주제로 한 도조에 머물지 않고, 목조, 영상, 설치 작품으로 전시 공간 전체를 삶과 표현의 장으로 확장하고 있다. 일상에서 버림받고 무시 당한 합판, 골판지, 스티로폼, 폐목 따위의 재료들을 무대 위로 불러 들여 <남아 있는 것들>에게 <버드나무 비석>을 세우고, <헌화>하고, <어머니>를 만나게 하고 <피에타>로 품게 한다.

"제가 한 것은 없어요. 마음이 그랬어요.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거죠. 세월호는 어떻게 보면 새삼스러운 사건이 아니죠. 그리고 세월호는 진행 중이기도 하고요. 이번 작업을 더 이상 미루거나 참을 수 없었어요.. 흙을 주무르고, 칼로 도려 내고, 망치로 깎아낼 때는 역설적이지만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

합판위에아크릴릭,커터칼조각.130x97cm_2014
▲ 마른풀 합판위에아크릴릭,커터칼조각.130x97cm_2014
ⓒ 박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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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전시 기획과 작품 제작, 공간 배치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인간성의 회복, 생명 가치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풀어내고 있다. 이를 위해 노골적이거나 직접적인 비판은 쓰지 않는다. 쉬 먹혀 들어갈 리도 없다. 대신, 무기력한 정치와 물질 문명과 속도와 경쟁에 대한 어리석음으로 상처받고 훼손당한 이들을 가슴에 품고 자장가로 잠재우는 방식을 택한다. 다수의 정치적 말이 아니라, 소수라도 모성 같은 묵직한 마음과 헌신과 노동이야 말로 이념이나 관념과 허상을 허무는 강한 울림을 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아래는 작가의 말이다.

박미화 작가
▲ 박미화 작가 박미화 작가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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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지난해 12월 개인전 이후 지금까지 내 마음을 기록한 의미에서 Docu-mentally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러나 은유와 상징을 통해 그려낸 이 작업들이 관념으로 끝나길 바라진 않는다. 내 삶을 실제로 지탱해주는 것은 관념이 아닌 실재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살과 피라는 실재의 물질로 이루어진 몸이 살아있을 때 비로소 작동하듯이. 그것 위에서, 그것 속에서, 그것을 가지고 매일 살아가는 내게 사실 '물질'은 '관념'보다 더 실재다.

그런 연유로 내 작업에 다양한 물질이 등장한다. 흙, 모래, 시멘트, 종이, 스티로폼, 나무 등. 각 재료는 그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다른 목소리들은 결국 한 가지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나의 '마음'이다. 따라서 어떤 재료를 사용하든 늘 한 가지 흐름을 가지도록 노력한다. 물질들이 내 마음과 만났을 때 내 작업은 관념이 아닌 살아있는 증거로 남게 된다. 다만 '물질'과 '관념'의 유혹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고, 내가 표현해야 할 생명에 대한 예의를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제목: 박미화개인전<자장가>
일시: 4월1~4.24
장소: GLLERY 3 위치: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88-4 하노이 빌딩 3층
연락: 02-730-5322

박 미 화
197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1985-7 University City Art League, 미국 필라델피아
1989 미국 템플대학교 타일러 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1989 像-Portrait, 펜로즈갤러리, 미국 필라델피아
1991 Silence, 금호미술관. 1993 무주리조트갤러리. 1994 토도랑. 1995 토아트스페이스
2007 幻化-Mortal Matrix, 목인갤러리. 2009 像, 목인갤러리 2관, 像, 갤러리담
2011 심여화랑. 2012 오뗄두스. 2013 갤러리3, 갤러리담
주요 단체전: 2010 아시아프 특별전-태양은 가득히 외 수십차례
작품소장/설치: 양수역앞(양서면 마을미술프로젝트 공동작업) 일본 돗토리현청,국립현대미술관, 두물머리 산책로, 경기도 양평 중흥공원, 충북 청주, 양구 정림리 마을회관앞/ 박수근미술관 제2갤러리 외벽, 카잘그란데파다나, 레지오에밀리아, 이탈리아. 충주 문화동성당 外 카톨릭성당 5곳



태그:#박미화, #자장가, #갤러리3, #박건,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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