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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택시를 타고 남산 터널을 지나게 됐다. 봄의 전령사인 노란 개나리가 화사하게 둔덕 위를 덮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노란색은 어느 순간부터 고통을 인내하고 아픔을 승화하는 기억과, 기다림 약속의 노란 리본과 겹쳐 가슴에 통증을 일으킨다. 나는 얼른 다른 데로 눈길을 돌렸다. 자연은 어김없이 자기 몫을 다하며 기쁨과 희망을 전하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 아픔, 죽음, 차별과 고통은 왜 떠나지 않는 것일까.

위대한 작가들이 발견한 삶의 역설과 희망
▲ 고통의 해석 위대한 작가들이 발견한 삶의 역설과 희망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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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문호 휠더린은 '인생은 고통에서 자양분을 얻는다'고 했다. 성서의 여러 곳에도 인간이 고통과 연단을 통해 인내와 진주처럼 값진 신앙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시간은 힘들고 아프다.

책<고통의 해석>은 근·현대에 활약했던 독일 대문호들의 빼어난 단편을 17편을 골라 치밀하게 분석하고 해설해 인간의 고통과 그 의미를 풀어낸 책이다. 달력 문학을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는 요한 페터 헤벨, 독일하면 떠오르는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실존주의 문학의 대가 프란츠 카프카, 고통 속에서 희망의 싹을 피워내는 이야기를 엮은 볼프강 보르헤르트, 인간과 사회를 위한 투쟁을 문학을 통해 성찰한 베르톨트 브레히트, 문학과 예술적 고찰을 통해 인간화를 짚어 낸 하인리히 뵐, 폭력과 파괴의 역사로 인간화를 살피는 하이너 뮐러의 작품에서 우리는 수많은 고통의 실체와 접하게 된다.

독일 작가 중 괴테하면 단번에 <파우스트>를 떠올릴 것이다. 메피스토 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 젊음을 사려 헸던 파우스트 박사는 인간 모두의 내적 욕망을 대변한 인물인지도 모른다. 놀라운 것은 파우스트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역사 속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파우스트'는 허구의 인물처럼 여겨지게 됐을까. 인본주의가 꽃 피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에 살았던 파우스트는 기성 세대, 특히 신학자들에게 사기꾼 허풍선이, 마술사라며 배격됐다고 한다. 선각자적 지식을 지녔거나 경험에 의한 의학적 지식을 지녔던 여성들이 마녀로 지목돼 마녀 사냥을 당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젊은이들을 현혹한 죄목으로 독배를 마셔야했던 소크라테스처럼 파우스트 역시 젊은이 사이에서는 존경을 받았고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그런 파우스트이기에, 괴테 이전에도 수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르네상스를 거치며 '파우스트'는 역사적 실존 인물에서 구전의 전설적인 인물, 허구적 인물로 전해지게 된다.

파우스트를 어떻게 받아들였든 간에 파우스트의 행적은 많은 문인과 예술인들에게 영감을 줬고, 지속적으로 책으로 출간됐으며, 극으로까지 각색되며 대중적 인물이 됐다. 18세기까지 파우스트는 연극, 음악, 미술,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장르로 작품화 된다. 자연인으로 던져진 인간 존재, 파우스트라는 인간 내면에 자리한 욕망과 자아의 발현과 무상함을 깨닫는 과정은 김만중의 구운몽이나 성서의 욥의 고난과도 비교된다.

인간의 실존 전체를 관장하고 관망하는 우주인 신은 인간에게 준 자유 의지 가운데 선한 것을 선택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파우스트를 시험하도록 허락한다. 파우스트는 끝내 유혹을 이겨내고 허망함 대신 지상에서 땅과 생명을 일구는 삶을 통해 영혼이 파멸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요한 페터 헤벨은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사이에 살았지만, 어느 사조에도 속하지 않았던 계몽주의 문학가다. 그는 왕이나 귀족보다 농부들,광부들, 술집주인들, 수공업자 같은 실제 민중의 삶을 이어가는 소박한 모습을 묘사했다. 그의 문학 세계는 인본주의와 기독교 사상에 근거한 기본적 인간 관계를 소박하지만 우아하게 그려냈다. 그의 작품에서는 모든 사람은 인간이란 가치에서 똑같이 가치 지향적인 개인으로 취급된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수용하는 포용력을 지닌다.

책에 소개되는 그의 단편 <예기치 않은 재회>, <물장수>, <베로니카 하크만> 등 세 이야기의 주인공은 50년을 하루처럼 사랑을 간직해온 노파, 복권 당첨의 행운에도 옛 직업을 지키는 물장수, 4대에 걸쳐 보육에 헌신한 하녀로, 모두 성실이 구체화한 모습이다.

그의 단편 중 <예기치 않은 재회>는 스웨덴 팔룬에 있는 광산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1719년 12월 구리 광산의 깊은 갱 속에서 한 젊은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는 황산염 속에 50년 동안 잠겨 있어 젊은 시절 모습 그대로 부패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마티아스 이스라엘손이며 1670년 가을 결혼식 직전에 홀로 갱 속으로 들어간 후 실종되었고 갱이 무너져 죽었다. 그의 약혼녀였던 늙은 노파가 찾아와 그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줄 것을 요청했다. 백발의 신부는 신랑을 위해 뜨개질했던 빨간 테가 둘러진 목도리를 젊은 신랑의 시체에 둘러주었다.

그는 시간에서 영원으로, 성실의 본질을 담은 달력 이야기들을 당당한 문학의 한 장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의 문체는 우아하고 품위가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나 < 심판>, <성>에서 그려지는 모습은 자본과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해 통제 받는 법 앞에서 희망 없는 고통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법으로 들어가는 문은 언제나처럼 열려 있고 문지기가 옆으로 비켜섰기 때문에 시골 사람은 몸을 굽혀 문을 통해 안쪽을 들여다보려 한다. 문지기가 이것을 보고는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도 네 마음이 끌리거든 내 금지를 어겨서라도 들어가도록 해보게나. 그러나 알아두게. 내가 힘이 세다는 것을. 그래도 나는 가장 낮은 문지기에 불과하다네. 그러나 방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문지기가 서 있는데 갈수록 더 힘센 문지기들이지. 세 번째 문지기의 모습만 봐도 벌써 나조차 견딜 수 없다네."

인간의 앞을 막아서는 단절과 절망, 내적인 요인과 외적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고통과 주저함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그 고통을 승화시켜 진리와 인내의 열매를 쥐게 되는 것일까.

프란츠 카프카가 "문학은 진리를 향한 탐험이다"라고 말했듯 우회와 오류는 진리를 인식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일 것이다.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회와 오류의 징검다리를 건너 진리를 인식하고 희망의 무지개를 향해 가는 것이리라.

덧붙이는 글 | 고통의 해석/이창복/김영사/1만 6000원



고통의 해석 - 위대한 작가들이 발견한 삶의 역설과 희망

이창복 지음, 김영사(2015)


태그:#고통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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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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