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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밟고 가라던 '진달래꽃'은 너무 가녀려 밟을 수가 없습니다.
 나를 밟고 가라던 '진달래꽃'은 너무 가녀려 밟을 수가 없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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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 산수유, 동백 등….

봄꽃 천지입니다. 덕분에 봄향이 그윽합니다. 이런 때 봄바람에 실려온 봄향기를 흠뻑 맡아 주는 게 자연에 대한 예의지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라던 진달래꽃이 그리웠습니다.

지난 주말, 진달래꽃 보러 여수 영취산 자락으로 행했습니다. 이번 주, 진달래 축제가 예정되었기에 미리 가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지요. 영취산 진달래를 향한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여수의 유혹, 시 한 구절로 대신하렵니다.

여수 가는 길
                               신 병 은

자네,
문득 세상살이 힘들 때가 있지
세상에 덜렁 혼자뿐이라고
아니다 아니다 이게 아니라고
막다른 골목에서 고개를 흔들 때
마음의 짐일랑 그대로 팽개치고
빈 몸 그대로 여수로 오시게
먼 길 달려온 자네에게
늘 넉넉하게 일렁이는 바다가
바람을 닮은 섬들이
흔들리는 것은 결코 중심은 아니라고
흔들리는 것은 잠시일 뿐이라고
넌지시 귀뜸해 줄 걸세
때로는 사는 것이 얼마나 가벼운 거냐며
생미역 한 줄기 풀어
엉기고 맺힌 생을 해장시켜 줄 걸세
자네, 외로움이 얼마나 심했냐고
겨울 이기고 돌아온 동백꽃 웃음이
옷깃을 풀고 와락 안겨들 걸세

진달래꽃 보러 가던 중, 눌러 앉은 남해사와 차 한 잔

지난 해 여수 <영취산 진달래 축제>에서 보았던 영취산 진달래 군락지입니다. 올해에는 게으름 혹은 또 다른 인연 탓에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지난 해 여수 <영취산 진달래 축제>에서 보았던 영취산 진달래 군락지입니다. 올해에는 게으름 혹은 또 다른 인연 탓에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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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남해사의 흙벽이 반가웠습니다.
 절집 남해사의 흙벽이 반가웠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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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가득한 영취산.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눌러 앉은 게 영취산 자내리 '남해사'였습니다. 죽공예 하는 지인이 몇 번이나 스님과 차 한 잔을 권했는데, 이제야 그와 찾게 된 겁니다. 올해 '인연'은 진달래꽃보다 남해사에 닿은 게지요.

"스님, 절에 계십니까?"
"중이, 어디 가겠습니까!"

"스님, 차 한 잔 주세요."
"언제든지…."

남해사, 보통 절집이 아니었습니다. 그 흔한 마당도, 탑도 없었습니다. 초라한 흙집만이 서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게 무슨 절이야~'란 말은 온당치 않았습니다. 흙집을 차지한 부처님 도량은 마음 가득 자리한 고정관념을 내려놓게 했습니다. 마음을 여니, 모든 게 새로웠지요.

"이게, 부처님 진신 사리야."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절집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지요. 다들 부처님 사리는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는 동요처럼 숨바꼭질 하듯, 꼭꼭 숨겨 두었기에, 중생이 접하기 어려웠지요. 진달래꽃을 대신한 발걸음이 횡재수가 될 줄이야!

남해사에서 본 부처님 진신사리.
 남해사에서 본 부처님 진신사리.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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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이 차 맛을 알아?'...'어쭈 요놈 봐라!'

"무슨 차를 드릴까. 가만, 먼저 발효차부터 마실까."

'~까', 다음에는 보통 물음표(?)가 오지요. 그런데 남해사 스님 어법은 특이했습니다. 인산당 혜신스님 말씀은 '~까' 다음이 마침표(.) 비스므리 했습니다. 어법의 독특함에 앉았던 모양새를 다잡았습니다.

"여수 사람들은 작설보다는 발효차를 많이 마시드라고. 발효로 시작할까."

서로 통하면 됐지, 차 종류가 중요한 게 아니지요. 된장이 제 맛을 내기 위해 발효되듯, 첫 만남을 '발효'로 준비하신 스님의 운치가 멋있거니 했습니다. 왜냐하면 첫 만남을, 발효차를 매개로 서로의 마음을 데우자는 의미였으니까. 슬며시, 혹은 잠시, 무릎 꿇어 '불(佛)·법(法)·승(僧)'의 예를 차렸습니다.

차, 향이 기막혔습니다. 이런 게 행복이지요...
 차, 향이 기막혔습니다. 이런 게 행복이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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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맛이 기 막힙니다. 스님께서 차를 정말 잘 우리시네요."
"물이 좋아서지요. 차는 요기 앉으신 장형익씨가 우려내는 설차가 최고지요."
"어디 물입니까?"
"지리산의 한 암자에서 떠왔습니다."
"어쩐지, 차에서 지리산 향이 나더라니…."
"…."

스님께서 '미소' 지으셨습니다. 여기서 신구 선생님을 떠올렸지요. 그가 사바세계 대중에게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고 외치던 광고 장면과 함께. 이처럼 스님의 그윽한 미소에는 무언의 메시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네놈이 차 맛을 알아?', '네놈이 지리산 향을 알아?'를 넘어 '어쭈 요놈 봐라!'라는 놀라움이랄까.

아홉 번 덖은 작설차, 다시 또 불에 데워 마시는 이유

자연의 기운을 담은 매화 향 기득합니다.
 자연의 기운을 담은 매화 향 기득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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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이쯤에서 작설로 넘어가심이…."

스님께서 라이터를 켰습니다. 그리고 작은 초에 불 붙였습니다. 불 위에서 작설이 덖어졌습니다. 향이 피어올랐습니다. 작년 기운으로 만들어진 작설 향의 여운이 복잡했습니다. 지난해 세월호 사건 등으로 인해 가슴 아팠던 우리의 기운이 담긴 것 같습니다.

"차는 한 번 열면 눅눅해져. 제대로 마시려면 불에 살짝 덖어주는 게 좋아."

이게 어디 '차' 뿐이던가요. 노동 시장에서 단 물 빼먹고 나면 버려지는 인생사. 그나마 다시 써주는 것이 행운이지요. 이걸 아는 까닭에 아홉 번 덖어 낸 작설까지 다시 또 불에 데워 맛을 음미하는 게지요. 다시 덖는 건, 소위 말하는 리모델링 혹은 업그레이드 과정이지요. 그렇게 다시 태어난 작설은 엄청 겸손한 맛입니다.

"스님, 다시 덖은 작설, 다른 잔에 주시면…."
"…."

작설이 우러날 때쯤, 찻잔을 바꿔주시더군요. 그런데 제 잔만 바꿔주시는 거 있죠. 이유를 알 거 같았습니다. 두 분은 이미 예전부터 마시던 차라 맛의 진면목을 알기 때문인 듯했습니다. 그러니까, '너는 새 잔으로 마시면서 작설 고유의 맛을 탐닉해라'는 암묵적 강요였달까. 작설 향이 고스란히 입속에 안겼습니다.

우리네 삶이 아름다운 향을 내기 위해서는...

처음 대했던 매화차입니다. 매화차는 봄의 교향곡이었습니다.
 처음 대했던 매화차입니다. 매화차는 봄의 교향곡이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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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봄 향을 맛볼까."

감지덕지. 봄 향을 간직한 차는 어떤 걸까? 스님께서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허리를 세워 병 하나 집으셨습니다. 그리곤 뚜껑을 열어 "봄 향 맡아 봐!"라며 코에 대주셨습니다. 아~, 향이….

"무슨 찬지 알겠지. 특별히 내는 매화차야."

매화차와의 첫 만남은 오로지 '감사'였습니다. 매화차는 스님께서 직접 만드셨답니다. "150도가 넘는 쩔쩔 끓는 방에서, 창호지 위에 놓고, 이틀 간 말려 차로 냈다"더군요. 그래선지, 목 넘김이 부드러웠습니다. 매화 향은 작설 향과 어우러진 봄의 교향곡이었습니다. 그만큼 신선하고 감미로웠달까.

"운명은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타인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며, 행복하게 하신다면 본인의 운명도 기쁘고 즐거우며, 행복한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즐거운 이들과 함께 있으면 즐거운 물이 들고, 기쁜 이들과 함께 있으면 기쁜 물이 들게 되며, 행복한 이들과 같이 있으면 행복이란 물이 곱게 물들어서 아름다운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매화차. 아직도 입안에 달달한 봄 향기로 남아 있습니다. 매화차, 잊히지 않는 맛으로 남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것은 혹독한 겨울이란 시련을 이겨낸 끝에, 꽃망울을 피워낸, 인내의 향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네의 삶이 아름다운 향을 내기 위해서는….

여수의 매력은 매화차 같은 봄의 어울림입니다.
 여수의 매력은 매화차 같은 봄의 어울림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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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매화차, #진달래꽃, #영취산 진달래축제, #남해사 혜신스님, #부처님 진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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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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