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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김명애의 '도로 남'이라는 노래 일부다. 참 쉽다. 그렇게 점 하나만 찍으면 이리도 다른 의미가 된다는 것이. 참 얄궂다. 다시 점 하나를 떼면 사랑하는 '님'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님'자와 '남'자를 가지고 이리 말장난을 할 정도로 '님'과 '남'의 뜻이 가볍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을까.

노래에서는 쉽게 붙였다 뗐다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노래도 그 아쉬움과 아픔을 토로하는 게다. 아무렇지도 않게 '님'과 '남'을 드나들 수 없기에 아픈 노래가 된다. 가슴을 찢는 노래가 된다. 눈물로 얼룩진 노래가 된다.

행복시대? '항복시대'겠지

<잡놈들 전성시대>(우석훈 지음 / 새로운현재 펴냄 / 2015.03 / 1만5000원)
 <잡놈들 전성시대>(우석훈 지음 / 새로운현재 펴냄 / 2015.03 / 1만5000원)
ⓒ 새로운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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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정치인들이 '행복시대', '행복기금', '행복주택' 등 '행복'이란 단어를 남발한다. 그런데 과연 정치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가. '행복'이란 단어는 넘치는데 국민은 '항복시대'를 산다. '행복'에 점 하나를 떼니 '항복'이 된다.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그런데 그 점 하나를 뗀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볼멘 말을 하는 이가 있다.

"후보 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행복시대를 이야기했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 1년이 지나 보니 국민 항복시대가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정말 항복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항복할 수 없다. 서로 고맙다 말하고, 우리끼리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 항복의 시대를 넘어서야 한다." - <잡놈들 전성시대> 본문 17쪽 중에서

자칭 'C급 경제학자'라는 전업 아빠 우석훈이 들려주는 '항복론'이다. 저자는 최근에 낸 저서 <잡놈들 전성시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밉지만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무언가 자신이 해야 했다고 한다. 아기나 돌보던 전업 아빠가 새정치민주연합(아래 새정치) 의원들에게 경제를 가르치는 '뻘 짓'을 하게 된 이유치고는 참 묘하다.

새정치는 혐오제라면서도 그래도 잡놈 잡을 정당이 될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과 전혀 안 어울리는 새정치를 택하여 자문의원 역을 감당하는 것은 잡놈을 없애기 위한 고육지책이란다. 그는 "써보고 안 좋아하는 경우도 있고, 안 써보고도 안 좋아하는 경우도 있는" 새정치는 '1+1 행사'로도 안 산단다. 허.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지 않느냐는 건데, 참 맥 빠지는 논리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이리 되었나 기가 차기까지 하다. 저자도 똑 같은 심정으로 새정치에 몸을 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나름대로 경제에 약한 새정치에 경제교육을 통해 무엇인가 해내려는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행복'과 '항복'의 기묘한 줄다리기처럼 저자는 책에서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자주 늘어놓는다. 뭐, 에세이니까 그렇겠지, 하다가도 너무 심한 게 아닌가 생각들 때도 있다. 자질구레한 집안사야 정치 에세이 독자가 원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을 못한 것일까.

그러나 그 정도로 아둔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왜 너절한 집안 이야기를 신랄한 정치 비판의 한 가운데에 배치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주 자주. 박근혜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다. "죽어라고 박근혜를 미워해 봐야 바뀌는 것은 없다는 것, 오히려 그럴수록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점" 때문에 자질구레한 집안 이야기로 말꼬리를 돌리는 모양새다.

책을 읽으며 만나는 현란한 말솜씨와 자질구레한 집안 이야기, 그리고 고전과 현실정치의 드나듦에 멀미가 날 정도다. 책에선 애매하게, 때론 우매하게, 그러나 더 많이 신랄하게 우석훈의 박근혜를 미워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그대로 느껴진다. 고뇌와 아픔, 해학과 유머가 가득한 책, <잡놈들 전성시대>가 과연 잡놈들을 퇴치할 수 있을까. 독자들의 반응이 사뭇 기대되는 책이다.

갑과 을 위에 잡놈이 있다

국정 티타임 시간에 장관이란 자가 작두 이야기나 하고, 측근이 개밖에 없다는 대통령을 둔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 저자는 거침없이 '잡놈들 전성시대'라고 말한다. 미움으로 만들 수 있는 미래는 없기에 미워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며 '잡놈들의 삼시세끼'를 끊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사가 흔들리고, 감사가 정지하면, 잡놈들이 나다니기 딱 좋은 조건이 펼쳐진다. (중략) 그렇다면 잡놈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2015년 한국에서 잡놈이란, 인사권에 기대어 감사를 피하며 공공의 돈을 사사로이 유용하는 놈이다. (중략) 갑과 을 위에 잡놈이 있다. 그리고 시방 우리는 잡놈들의 전성시대로 달려가는 중이다." - <잡놈들 전성시대> 본문 77쪽 중에서

얼마나 통쾌한가. 인사가 만사라는데 인사가 사고가 되고, 인사권에 기대어 감사도 받지 않는 시대를 사는 한 지식인의 통쾌한 유머에 끌리지 않을 수 없다. 에세이라야 이 맛이 난다. 우석훈의 독설이 싫지 않은 것은 그것이 자신의 삶이며 가정사며 정치사요 현대사이기 때문이다.

'갑질' 논란이 좀 잦아든 지금, '갑'보다 더 독한 놈이 '잡놈'이라는 그의 표현은 마음까지 시원하게 한다. 잡놈을 잡기 위해서는 새정연에라도 적을 두고 경제를 가르쳐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새정연이 "끼워 팔아도 안 나가는 물건"이지만 언젠가 잡놈 잡는 도구가 될 것이라는 야문 포부가 부럽기까지 하다.

'잡놈'을 잡기 위해 '집놈(집에 있던 놈)'이 나섰다. 과연 잡놈은 순순히 잡힐까. 확신보다는 의구심이 더욱 강하는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안 나서는 것 보단 낫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도 해 본다. 그냥 '잡놈 같으니' 하며 혀를 찬다고 이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에 우석훈의 시도는 꽤나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삼국지>의 강유와 육손을 영웅이라 추켜세우며 그런 영웅들이 물밀 듯이 나와야 '잡놈들 전성시대'가 끝난단다. "우정과 환대가 만들어내는 즐거운 기억들"이 잡놈을 잡을 수 있단다. 더 나아가 육손이보다 육손을 나오게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자신이 할 일이 바로 육손이를 정치 중앙 무대에 등장시키는 역할이라고 한다. "공화국의 시대에 왕조와 세습사회가 다시 오고 있다"며 박정희와 박근혜의 바통터치를 비판한다. 이런 '잡놈들 전성시대'에 그래도 무엇인가 영웅을 만드는 일을 해야 할 말이 있지 않겠냐고 읍소한다.

우석훈에 박수를! 그렇다. 안방에서 TV를 통해 잡놈들 이야기를 접하는 나로선 그의 용기에 한없는 성원과 박수를 보낸다. 영웅 한 번 제대로 만들어 보라고 응원한다. 그리하여 '잡놈들 전성시대'를 정지시키고 해체해 보라. 당신이 말하는 대로 '단절형 경제사회'를 한 번 건설해 보라. 파이팅!

덧붙이는 글 | <잡놈들 전성시대>(우석훈 지음 / 새로운현재 펴냄 / 2015.03 / 1만5000원)



잡놈들 전성시대 - 우석훈의 대한민국 정치유산 답사기

우석훈 지음, 새로운현재(2015)


태그:#잡놈들 전성시대, #우석훈, #박근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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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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