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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2015년 3월 5일)에서 빌 비올라. 그는 기자와 만남에 앞서 한편의 시를 낭송하다. 뒤로 관객을 압도하는 소위 '움직이는 회화와 조각' 개념이 들어간 '놀란 사람의 5중주(The Quintet of the Astonished 2000)'라는 작풉이 보인다. 5명 주인공은 삶의 굴곡과 여러 난관에도 이를 멋지게 극복한다는 내용이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2015년 3월 5일)에서 빌 비올라. 그는 기자와 만남에 앞서 한편의 시를 낭송하다. 뒤로 관객을 압도하는 소위 '움직이는 회화와 조각' 개념이 들어간 '놀란 사람의 5중주(The Quintet of the Astonished 2000)'라는 작풉이 보인다. 5명 주인공은 삶의 굴곡과 여러 난관에도 이를 멋지게 극복한다는 내용이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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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비올라(Bill Viola 1951~)전이 7년 만에 국제갤러리 2-3관에서 5월 3일까지 열린다. 그는 뉴욕 출신으로 40여 년간 영상에 이미지와 사운드와 움직임을 결합하는 비디오 아트로 주목을 받아온 세계적 작가다. 이번 서울전에는 1980년 결혼한 그와 평생 예술적 동반자인 '키라 페로브(Kira Perov)'와도 동행했다.

비올라는 1972년에 데뷔해 1995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미국관)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최근 2003년엔 '수난(The Passions)'과 2006년엔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첫 번째 꿈', 최근 런던 세인트폴대성당에 비디오채플(2012년에 완성 예정), 지난해 말부터 유명 스타도 등장하는 '몽상가들(The Dreamers)' 연작도 진행 중이다.

그는 '속도의 시대'에 '느림의 미학'을, '세속의 시대'에 '숭고한 성스러움'을, '소음의 시대'에 '침묵과 선(禪)적 명상'을, '고통의 시대'에 '낙관의 축제'를 추구해왔다.

파리 '그랑팔레'미술관에서 2014년 3월 5일부터 7월 21일까지 열린 빌 비올라전 포스터 ⓒ Reunion des musees nationaux-Grand Palais, Paris 2014
 파리 '그랑팔레'미술관에서 2014년 3월 5일부터 7월 21일까지 열린 빌 비올라전 포스터 ⓒ Reunion des musees nationaux-Grand Palais, Paris 2014
ⓒ 그랑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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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파리 '그랑팔레' 미술관에서 비올라전을 기획했고 이번 서울전에도 참여한 제롬 뇌트르(J. Neutres) 전시 감독은 그를 두고 '나는 누구이며,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와 같은 근원적 존재를 물으며 40년간 작업해왔다고 평했다.

비올라는 시·공간의 제한을 받는 인간의 조건을 넘어서는 숭고한 이상 세계를 주제로 삼아 동양적 세계관을 담은 비디오를 발표해왔다. 1980년부터 1년 반 동안 일본의 선사(禪師) '다이엔 다나카'를 통해 선불교도 접했다. 더불어 그에게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사람은 백남준이었다.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백남준을 이렇게 기억한다.

"제가 젊었을 때가 막 비디오아트가 태동하던 시기였는데, 제가 백남준의 조수를 했으니 운이 좋았죠. 제 평생에 만난 사람 중 최고였어요. 에너지가 넘치고 재미있고 지극히 아름다운 분. 그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해줬고, 비디오에 대해서 알고자 하면 그 원리를 주저 없이 개방하는 열린 분이셨죠."

물을 소재로 한 작품

빌 비올라 I '순교자_물(Water Martyr)' 비디오·사운드설치 7분 10초 2014. 사진: Kira Perov 배우: John Hay 사진제공: 국제갤러리
 빌 비올라 I '순교자_물(Water Martyr)' 비디오·사운드설치 7분 10초 2014. 사진: Kira Perov 배우: John Hay 사진제공: 국제갤러리
ⓒ 국제갤러리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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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라의 비디오아트에는 4원소(흙·공기·불·물)가 중요하다. 그 중 물과 불의 사용 빈도가 가장 높다. 우리가 매일 먹는 식사에 비유하면 쉽다. 밥을 먹으려면 쌀을 '물'로 씻고 '불'로 익혀야 한다. 그러니까 그의 예술이라는 밥과 비디오라는 쌀에 물과 불이 필요한 격이다. 어쨌든 물과 불에 관련된 작품을 감상해보자. 

우선 물과 관련된 작품 '순교자_물(2014)'편을 보자. 영상 속 주인공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거꾸로 세운 것 같다. 순교자는 폭포수 같은 강력한 물길로 숨이 멎을 것 같은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 물의 세기만큼 순교자의 의지는 더 강력해진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 그의 이마에 환한 햇빛이 다시 비친다.

순교자라는 뜻의 서양 어휘에는 '증인'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증인이란 '타인의 고통을 보는 자'로서 작가의 관점이기도 한 듯하다. 순교자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그 어떤 시련도 마다않는 자로, 우리 시대의 고뇌를 끝까지 참아내고 결국은 승리로 이끄는 존재다. 작가는 그들의 인내와 용기를 찬양한 것인가.

그의 작품에는 물 장면이 많다. 그에게 물이란 유토피아로 가는 최고의 엑스터시다. 이 점은 기자 간담회에서 작가가 고백한 다음 말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비올라는 6살 때 동네 호수에 빠져 죽을 뻔 했는데 삼촌이 건져주었단다. 만약 삼촌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없겠지만, 그는 익사 직전 물속의 시간에서 천국의 황홀경을 맛봤고 그 아름답고 푸른빛 호수를 영원히 잊을 수 없단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엔 물과 관련된 것이 많고 물 속 인물을 봐도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하는 사람처럼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이다. 여기에 숨겨진 또 다른 메시지가 있다면 물에 빠져 거의 죽을 뻔한 사람은 절대로 타인을 미워할 수 없고 누구의 생명도 그 가치를 소홀히 여길 수 없다는 뜻인가 보다.

불을 소제로 한 작품 '밤의 기도'

빌 비올라 I '밤의 기도(Night Vigil)' 비디오·사운드설치 18분 6초 2005-2009. 사진: Kira Perov 배우: Jeff Mills, Lisa Rhoden
 빌 비올라 I '밤의 기도(Night Vigil)' 비디오·사운드설치 18분 6초 2005-2009. 사진: Kira Perov 배우: Jeff Mills, Lisa Rhoden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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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전시장 신관 2층에 전시 중인 불과 관련한 '밤의 기도'를 보자. 이 작품은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영감을 얻은 것으로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빛과 어둠의 대조가 화면의 분위기를 돋운다. 원시 시대 불의 발명처럼 한 쌍의 연인이 겪는 강렬하고 애틋한 사랑을 이어주는 매개는 바로 불이다.

두 연인은 잠시 지옥 같이 깊은 어둠에 떨어졌으나, 그리움이라는 빛이 그들을 다시 소생해주고 구출해준다. 남자는 어두운 밤을 지나 타오르는 불길에 도달하는 여행을 하고 난 후에야, 또한 여자는 어둠이 가득한 방 안의 촛불이 하나 하나 켜질 때까지 사색에 잠기는 여행을 하고 난 후에야 둘은 완전한 합일을 이룬다. 

시간을 조각으로 보고, 거기에 생명 넣다

빌 비올라 I '도치된 탄생(Inverted Birth)' 비디오·사운드 설치 8분 22초  2014. 사진 : Kira Perov 배우: Norman Scott 영상에 물의 흐름과 관련된 작품이 많은 건 그의 작품이 시간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빌 비올라 I '도치된 탄생(Inverted Birth)' 비디오·사운드 설치 8분 22초 2014. 사진 : Kira Perov 배우: Norman Scott 영상에 물의 흐름과 관련된 작품이 많은 건 그의 작품이 시간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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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라는 시간을 물질이나 재료로 보기에, 또한 시간에 조각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시간에 초점(focus on time)을 맞추고 작가의 의도대로 시간을 조정(time form)하면서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는 사실 백남준의 이론이기도 한데 그는 이렇게 비디오 아트로 시간성의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

그는 또 시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시간은 일방적으로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지만, 난 시간을 쌍방향적으로 흐르게 하고 싶다" 이는 시간의 고정 불변성을 해방해낸 '베르그송'의 시간 개념에 가깝다. 그렇다고 이게 시간을 낭비한다는 뜻은 아니다. 작가도 영혼을 담는 그릇인 몸과 시간을 항상 아껴 써야 한다고 경고한다.

비올라의 비디오 작품에서 화면 속도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다. '빠른 시간'은 외적인 물질적 삶을, '느린 시간'은 내적인 정신적 삶을 비유한다. 그가 '느린 화면/저속 촬영(slow motion/ralenti)'을 선호한 건 바로 현대인에게 턱 없이 부족한 사유와 성찰과 명상의 시간을 더 많이 제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자의 매력

기자간담회에서 활짝 웃는 비올라작가 부부
 기자간담회에서 활짝 웃는 비올라작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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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라의 대한 첫 인상은 천진난만한 아이 같다. 두 예술가 부부의 모습도 멋진 앙상블을 이룬다. 비올라의 위상은 미국 명문인 컬럼비아 외에 8곳 대학과 영국 왕립미술학교와 벨기에 리에주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은 것만 봐도 그가 미국과 유럽에서 얼마나 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작가인지 알 수 있다.

그는 무엇보다 시·공간에 갇힌 인간 조건을 뛰어넘어 새 출구를 만들려고 하는 비디오 작가이면서, 시대를 꿰뚫는 철학자이고 동·서양을 읽어낼 수 있는 영상 시인이다. 또한 그는 죽은 망자는 물론, 태어나지 않은 영혼과도 만나려고 하는 '예술 셔먼'이기도 하다.

이런 비올라도 관객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점은 관객이 전시장에 와서 작품 설명만 읽고 그냥 지나가는 것, 그들이 더 적극적인 자세로 차별된 관점을 가지고 작품을 감상하려고 노력한다면 훨씬 더 많은 감동과 아이디어를 얻을 것이라고 권고한다.

다종교 탐구 특히 불교에 관심 높아

빌 비올라 I '조상(Ancestors)' 비디오·사운드설치 21분 41초 2012. 사진 : Kira Perov 배우 : Kwesi Dei, Sharono Ferguson 고통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노래한 작품으로 모자(母子)가 그들을 삼킬 듯 열풍사막을 걸어가지만 결국 끈기와 지혜와 용기로 이를 극복한다는 내용이다
 빌 비올라 I '조상(Ancestors)' 비디오·사운드설치 21분 41초 2012. 사진 : Kira Perov 배우 : Kwesi Dei, Sharono Ferguson 고통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노래한 작품으로 모자(母子)가 그들을 삼킬 듯 열풍사막을 걸어가지만 결국 끈기와 지혜와 용기로 이를 극복한다는 내용이다
ⓒ 빌 비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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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가 고통을 보는 태도는 매우 불교적이다. 앞에 언급한 일본 선사의 영향인가. 위 영상처럼 비올라의 작품 속 주인공은 고립과 공포로 힘들고 고통스런 얼굴을 띤 작품이 많다. 작가는 이런 정신적 배경에 대한 메타포로 풍경을 사용한다.

여기서 보면 작가는 고통이 인간을 구원하고 고통의 바다에서 축제적 삶도 일구어낼 수 있다는 불교 사상인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세계도 보여주고, 육체의 어둠에서 해방되어 빛으로 나간다는 고대 이집트의 '사자의 서(死者-書)'도 연상시킨다.

비올라는 이렇게 문학, 철학,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예술이 종교를 대신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종교에 관심이 많다. 특히 명상을 중시하는 '선불교'와 춤으로 신과 합일한다는' 이슬람 스피즘', 영성을 중시하는 '기독교 신비주의'(Zen Buddhism, Islamic Sufism, and Christian mysticism) 요소가 작품에 녹아있다.

소멸에 저항하는 영원성과 관계성 중시

빌 비올라 I '조우(The Encounter)' 비디오·사운드설치 19분 19초 2012. 사진 : Kira Perov 배우 : Genevieve Anderson, Joan Chodorow 사진제공 : 국제갤러리
 빌 비올라 I '조우(The Encounter)' 비디오·사운드설치 19분 19초 2012. 사진 : Kira Perov 배우 : Genevieve Anderson, Joan Chodorow 사진제공 : 국제갤러리
ⓒ 국제갤러리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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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라는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마셜 맥루한의 말처럼 그의 작품에서 예술가는 소멸과 환생을 통해 고립된 자아에서 해탈해야 하고, 예술은 또한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프레임을 확대해나가면서 뭔가 새롭고 아름답고 창조적인 걸 남겨야 한다(Leave something behind)는 강력한 메시지도 던진다. 

또한 그는 이런 창조성과 함께 인간과 우주와 자연 사이의 긴밀한 관계성과 친화성도 중시한다. 그런 면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위 '조우'다. 대화가 될 수 없는 것 같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 두 여인 서로 만나 삶의 유대를 강화시키는 소통을 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동·서양의 대화가 마찬가지로 보는 것 같다.

서구에 대한 재성찰과 동양의 재발견

빌 비올라 I '도치된 탄생(Inverted Birth)' 비디오·사운드 8분 22초 2014. 사진: Kira Perov 배우: Norman Scott. 이 작품은 5단계를 거치는데 마지막 단계에 안개가 나오는 건 수용과 각성과 탄생을 의미한다
 빌 비올라 I '도치된 탄생(Inverted Birth)' 비디오·사운드 8분 22초 2014. 사진: Kira Perov 배우: Norman Scott. 이 작품은 5단계를 거치는데 마지막 단계에 안개가 나오는 건 수용과 각성과 탄생을 의미한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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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라는 결론처럼 장자가 한 말 "탄생은 시작이 아니고 죽음은 끝이 아니다(Birth is not a beginning, and death is not an end)"를 인용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진리와 허위를 구별하지 못하는 카오스에 빠져있지만, 그런 장벽을 넘어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저 너머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함을 천명한다.

그는 동양이 놓친 철학과 가치관과 정신적 유산을 가져와 서구의 첨단 예술에 접목한다. 그리고 동시에 서양이 소홀히 하는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역경을 이겨내게 힘을 주는 영혼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걸 작품에 담는다. 그러면서 유한 속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무한의 세계로 갈 수 있는지 묻는다.

덧붙이는 글 | [국제갤러리] 종로구 삼청로 54번지 02)735-8449 입장 무료 휴관: 월요일
[더 많은 전시정보] www.kukjegallery.com



태그:#빌 비올라, #키라 페로브, #비디오아트, #백남준, #선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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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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