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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어라." -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2> 본문 중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 의사에게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가 보냈다는 편지, 이 글은 읽을 때마다 모골이 송연해진다. 조마리아 여사나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뒷바라지와 성원이 없었다면, 우리의 독립이 가능했을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의 독립은 수많은 어머니와 아내의 이와 같은 희생과 눈물 덕분에 가능했다.

그러나 여성의 희생이나 아픔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남자현 의사처럼 여성의 몸으로 어지간한 남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했던 여성들도 많았을 텐데 말이다.

독립운동사에서 감춰진 여성 투사들의 일대기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2>(임기상 지음 / 인문서원 펴냄 / 2015.02 / 1만6000원)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2>(임기상 지음 / 인문서원 펴냄 / 2015.02 / 1만6000원)
ⓒ 인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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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남자현 의사에 대한 짧은 글을 읽으며 그리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 운동가들이 궁금했었다. 자료를 찾았으나 알 길이 없어 막연히 궁금한 채로 잊어버린 터, <숨어있는 한국 현대사>를 통해 알게 된 여성 독립운동가 이화림이 반갑기만 하다.

독립운동사에 대해 어두운 사람들도 알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인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의사의 의거, 이 책 역시 이 두 의거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조마리아 여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아들에게 보냈다는 편지도 소개하고, <백범일지>도 인용한다. 바로 이화림이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이화림은 김구 선생이 이끌었던 한인애국단의 한 사람으로, 김구 선생이 주도한 의거들의 숨은 공로자였다. 그녀는 1905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독립군인 오빠들의 영향을 받아 일찌감치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25살에 상하이로 넘어간 그녀는 김구 선생이 이끄는 한인애국단에 가입, 그곳에서 사격과 무술을 배운 후 일본 밀정들을 유인해 살해하는 업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윤봉길 의사의 거사(1932년 3월 2일)는 시라카와 대장과 가와바타 일본거류민단장을 즉사시키고, 노무라 중장의 두 눈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우에다 중장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외에도 몇 사람에게 중상을 입혔다. 윤봉길 의사가 거사를 한 '상하이 점령 축하식'이 열리던 전날, 윤봉길과 이화림은 부부로 가장하고 기념식이 열렸던 홍커우 공원을 미리 답사했다고 한다. 감시가 삼엄했던 당시 이화림의 역할은 컸다.

앞서 몇 달 전, 일본에서 미완의 거사(1932년 1월 8일)로 끝난 이봉창 의사를 도운 것도 이화림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왜 우리에게 잊히고 말았는가.

"<백범일지>에 이화림 이야기가 빠진 것은 그녀에 대한 김구 선생의 인간적 서운함이 작용했던 것 같다. 백범에게 있어 비서이자 한인애국단의 핵심이었던 이화림의 존재는 컸다. 이회림은 재정난을 겪고 있는 임시정부를 위해 나물장사, 빨래, 수놓기 등을 하면서 활동 경비를 지원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밀정 처단이나 연락활동 등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수행해 김구 선생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던 그녀가 테러만으로는 조선의 해방을 이룰 수 없다는 신념에 따라 백범의 만류를 뿌리치고 혁명의 기지 광저우로 떠났으니 백범의 좌절이 얼마나 컸을까? 더구나 이화림이 백범이 싫어하는 좌익계열의 항일운동 기지로 갔다는 점도 이화림을 회고록에서 지우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면서 대한민국에서, 독립운동사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2> 본문 중에서

책을 통해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거사를 도운 이화림이 광저우로 근거지를 옮긴 이후, 항일투쟁과 조선족들을 위해 산 의로운 삶 그 말년을 접할 수 있다.

몇 년 전 궁금해 했던 터라 그 어떤 주제보다 반갑게 읽은 글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아쉽다. 몇 페이지 분량으로 이화림의 삶을 아주 조금 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아쉬움이다. 이렇게나마 이름이라도 기억할 수 있게 해준 책이 고마우면서도 말이다.

저자에 의하면 2013년 말까지 독립유공 포상자는 외국인 46명을 포함해 총 1만3403명. 이 중 여성은 223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화림처럼 자신의 삶을 조국의 독립에 바쳤음에도 잊힌 여성투사들 그들을 좀 더 풍성한 자료를 통해 접할 수 있길 바라본다. 그분들에 대한 후세인들의 당연한, 최소한의 보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역사책, 우리는 왜 읽어야 하나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2>의 부제는 '구한말에서 베트남 전쟁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그날의 이야기'. 지난해 연말에 출간된 1권(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까지)처럼 우리에게 대체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다룬다.

개인적으로, 표면적으로만 조금 알고 있던 제주 4·3사건이나 여순반란 사건, 이승만의 다양한 얼굴과 영향력 등 우리 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건들을 자세히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외에도 책은 비운의 의사 백정기, 조선인의 피를 빨아먹던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 의사, 조선 민중에게 '악마의 소굴'로 불린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후 경성 시내에서 일본 경찰 1000여 명과 대치하다 자결한 김상옥 의사,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진 김익상 의사 등을 소개한다.

또 이들을 후원하거나 결정적 역할을 한 구한말 대신 출신 김가진을 비롯하여 일제와 이승만에 맞선 조선의 마지막 선비 김창숙, 한국인 독립 운동가를 토굴에 숨겨 살려준 일본인 교수 미야케, 한국전쟁 당시 우리의 문화재를 지킨 의로운 사람들의 행적들을 다룬다.

동시에 우리 문화재사에서 절대 잊으면 안 될 악랄한 문화재 약탈범 3인방을 비롯하여 친일파에서 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 변신한 이명세의 추잡한 인생과, 한국 현대사를 먹칠한 잔인한 파렴치범들과, 이승만의 잔학한 진실 등을 다룬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배경이 되는, 1950년 12월 19일에 흥남부두에서 많은 피난민들을 싣고 출발한 <메러디스 빅토리호> 이야기는 영화에 대한 감동의 기억으로 가장 먼저 찾아 읽은 이야기다.

내 주변에는 이처럼 역사관련 책을 이야기하면 "또 그 복잡한 역사책이냐?"며 지겨워하는 사람들이 좀 있다. "왜 그리 복잡하게 생각해?"라 반문하면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다가, 그 사건이 그 사건 같아 혼동 된다"라는 것이다. 실은 그간 역사 관련 책을 그래도 좀 읽었다는 필자가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필자가 이 두 권의 책을,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는 이유가 있다. 최근 2~3년 동안 읽은 역사 관련 책 중 가장 흥미롭게 읽은 책으로 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역사적 사실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을 보탠다.

덧붙이는 글 |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2>(임기상 지음 / 인문서원 펴냄 / 2015.02 / 1만6000원)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2 - 구한말에서 베트남전쟁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그날의 이야기

임기상 지음, 인문서원(2015)


태그:#이화림, #한국현대사, #임기상, #김창숙,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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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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