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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이름을 반대하는 2차 도시락 파티가 미술관 건설현장 앞에서 열렸다.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이름을 반대하는 2차 도시락 파티가 미술관 건설현장 앞에서 열렸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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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인 3월 28일은 볕 좋은 봄날이었다. 이날 점심 때, 수원시립미술관 공사현장 앞에 도시락을 싸들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돗자리가 펼쳐지고, 도시락이 그 위에 놓였다. 이날 주 메뉴는 김밥과 유부초밥이었다. 반찬으로 곁들여진 매실장아찌는 달달하면서 아삭해 자꾸 젓가락이 가게 했다. 집에서 직접 담근 매실장아찌란다.

사람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미술관 공사현장 앞에 모여든 것은 수원시가 확정한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이름을 바꾸기 위한 '도시락 파티'를 열었기 때문이다. 도시락 파티는 지난 3월 7일에 이어 두 번째다.

도시락 파티가 끝난 뒤 참여자들은 화성 행궁 앞으로 나들이 나온 시민들을 대상으로 '이름바꾸기 서명운동'을 벌였다.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나들이 나온 시민들은 "수원 화성의 정체성이 들어간 수원을 상징하는 예쁜 이름으로 바꿔야한다"며 서명에 동참했다.

수원시는 3월 25일, 수원시립미술관 이름을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으로 확정해 오는 10월에 개관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홍사준 수원시 문화예술국장은 수원에서 최초로 지어지는 공공미술관 이름에 아파트 브랜드를 붙인 이유를 "미술관 사업을 시작하면서 현대산업개발과 약속했고, 300억 원이나 기부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 만큼,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미술관 명칭을 수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수원시, 아이파크 미술관으로 돈의 위력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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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파크'는 2001년 3월, 현대산업개발이 론칭한 아파트 브랜드다. 현대산업개발은 2011년,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 일대에 7962세대의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개발이익을 환원하는 차원에서 수원시에 시립미술관을 지어서 기부채납하기로 했다. 수원시는 미술관 부지를 제공했다.

하지만 수원지역 시민·사회단체와 문화·예술인들은 '아이파크 미술관' 명칭을 반대하고 있다. 수원에서 최초로 지어지는 공공미술관에 기업의 아파트 브랜드를 붙이는 것은 정조의 정신을 이어받은 수원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염태영 수원시장과 수원시에 미술관 이름을 바꿔야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이들은 3월 24일, '수원 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시민네트워크(수미네)' 구성, 출범 기자회견을 열어 본격적인 반대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수원시립미술관 건축현장 앞에서 2차 도시락 파티가 열렸다.
 수원시립미술관 건축현장 앞에서 2차 도시락 파티가 열렸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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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다음날인 25일, 수원시는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이름을 확정한다고 발표했다. 그 때문에 이름에 확정에 대한 반발은 더 거세지고 있다.

수미네는 이날 오후 성명서를 통해 "2015년 3월 25일을 '수원문화 치욕의 날' 혹은 '세계문화유산 훼손의 날'로 선포한다"며 "향후 시의 일방행정과 몰상식행정에 대해 준엄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나선 것이다. 또한 수미네는 "가용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더욱 강고하게 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활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한다"고 다짐했다.

수원시가 이름을 확정짓자 '아이파크 미술관'이름을 두고 이를 패러디하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농심이 300억을 주고 미술관을 지었으면 '수원시립 새우깡 미술관'이 될 뻔 했고, 진로가 미술관을 지어주면 '수원시립 참이슬 미술관'이 될 뻔 했다는 농담이 나온 것이다. 아예 수원시립 현대산업개발 미술관'으로 하지 왜 그랬느냐는 비아냥거림도 나왔다.

수미네가 미술관 이름과 관련해서 가장 크게 문제를 삼는 것은 염태영 시장과 수원시가 시민들의 합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름을 결정하고 밀어붙인 점이다. 이는 염 시장이 평소에 주장해왔던 시민들의 의견을 시정에 반영한다는 '거버넌스 행정'과 맞지 않는다는 게 수미네의 설명이다.

특히 지난 2월 27일, 수원지역 시민·사회단체와 문화·예술인들을 만난 자리에 염 시장은 미술관 이름과 관련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수미네는 지난 25일, 수원시가 미술관 이름을 확정하자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이 같이 주장했다. 수원시는 이에 대해 어떤 반박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미술관 명칭과 관련 염태영 시장과 시민과의 간담회에서 시는 향후 공청회를 개최하여 시민의 의견을 묻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시가 시민들에게 했던 약속을 스스로 저버린 처사이다. 이에 '수미네'는 이제라도 시가 공청회 개최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한다. - 수미네 성명서 '수원시의 미술관 명칭 공식화 발표에 부쳐'에서

미술관 이름은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는 아이들. 가장 인기가 좋은 이름은 '행궁의 뜰'이었다.
 미술관 이름은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는 아이들. 가장 인기가 좋은 이름은 '행궁의 뜰'이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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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염 시장이 현대산업개발과 한 약속은 지키면서 시민들과 한 약속은 지키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원시는 미술관 건립과 관련해 현대산업개발과 맺은 MOU의 주요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염 시장이 현대산업개발과 모종의 거래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염 시장이 미술관 이름을 '아이파크'를 고집하는 건 숨겨진 다른 이유가 있다는 추측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수원시 관계자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미술관 명칭을 두고 수원시가 현대산업개발의 눈치를 보면서 현대산업개발을 두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수미네는 미술관 이름과 관련 수원시의회가 어떤 입장인지 밝힐 것을 요구할 계획이다. 또한 행정심판과 민사소송 등을 제기하면서 수원시가 미술관 이름을 결정하는 과정을 낱낱이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양훈도 수미네 공동대표는 "미술관 명칭사용중지 가처분 신청을 논의 중"이라며 "수원시가 참여자치의 으뜸 사례처럼 자랑했던 시민배심법정에서 이 문제를 다루자는 수미사(수원시민미술관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이렇게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이파크 미술관 이름은 결국 바뀌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10년이나 20년 뒤에라도 이름이 바뀔 수밖에 없다. 지금 하는 반대운동은 결국 수원시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서 반대운동은 의미가 있다."

수미네 한 참여자의 말이다.


태그:#아이파크, #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염태영, #수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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