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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정 의원이 다리가 불편한 백기완 소장을 부축해 고 윤상원 열사 묘를 찾아가고 있다.
 강기정 의원이 다리가 불편한 백기완 소장을 부축해 고 윤상원 열사 묘를 찾아가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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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광주 망월동 5.18국립묘지, 오랜 동지였던 고 장두석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이사장의 장례에 참석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눈빛은 여전히 형형했지만 어딘지 허전했다. 백 소장은 평소 친분이 깊은 강기정(광주 북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언제 다시 5.18묘역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길동무를 청했다.

두 사람은 연은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한 사람은 이 노래의 가사가 된 시를 썼고, 또 한 사람은 이 노래를 지키기 위해 백방으로 싸우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백 소장이 교도소에 투옥되어있던 1980년 12월 쓴 시 <묏비나리>의 후반부를 황석영 작가가 추려 만든 것이다. 여기에 당시 전남대 학생이었던 음악인 김종율이 가락을 넣었다.

이 노래는 1982년 2월 처음으로 공개됐다. 1980년 5·18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에 의해 사살당한 고 윤상원 열사와 들불야학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다 1979년 사망한 고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 때였다. 이후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민중의 노래가 되었고, 국가기념일로 공식 지정된 5.18기념식에서 제창되어 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는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것을 막아왔다. 이유는 "국민적 합의가 안 되어 있기 때문". 분을 참지 못한 강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 노래를 홀로 부르기도 했고, <노래를 위하여 - 강기정이 전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이야기>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다리가 불편한 백 소장이 강 의원의 부축을 받아 처음 찾은 곳은 고 윤상원 열사의 묘. 백 소장은 "거의 십년 만에 온 것 같아" 하며 묘비를 어루만졌다. 이어 행방불명자들의 가묘를 찾은 두 사람은 5.18국립묘지에서 자연스럽게 시국방담을 시작했다.

5.18묘역 찾은 백기완 소장과 강기정 의원의 시국방담

강기정 : "선생님, 이번 5.18기념식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를 것 같아요.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을 때 5.18기념식에서 제창하게 해달라고 하자 박 대통령이 '나는 모르는 일이니 보훈처와 알아서 하라'고 했답니다."

백기완 소장의 오랜 민주화운동 동지인 고 장두석 이사장이 소천 하는 날,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높았다.
 백기완 소장의 오랜 민주화운동 동지인 고 장두석 이사장이 소천 하는 날,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높았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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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정 의원이 백기완 소장에게 5.18국립묘지 행방불명자 가묘를 안내하고 있다.
 강기정 의원이 백기완 소장에게 5.18국립묘지 행방불명자 가묘를 안내하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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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 "박근혜가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 말이 돼? 자기가 대통령이니 보훈처장에게 5.18기념식에서 부르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되는 일이야. 모른다고 하는 것은 부르는 것을 막겠다는 말이지. 민주주의 노래를 독재했던 유신잔당이 막겠다는 것이지. 유신잔당 박근혜 몰아내야 돼." 

강기정 : "박 대통령이 하는 일들을 보면 1970년대를 많이 연상케 합니다. 사람도 1970년대 사람들 데려다 쓰고, 경제정책도 1970년대식 정책을 쓰고... 많이 안타깝습니다."

백기완 : "재벌들만 살찌게 하는 게 유신이 말한 조국근대화의 실체야. 재벌 살찌우려고 우리 민중을 희생시키고 우리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재벌 위주·부패경제가 유신잔재야. 그것을 청산하는 것이 바로 민주화야."

강기정 : "저번에 우연찮게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를 만났는데 그 분도 걱정이 많더라고요. 70년대식 80년대식 재벌경제가 되고 있으니 경제가 살아나지 않고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경제정책을 바꾸라고 그렇게 요구하는데 박 대통령은 옛날 방식을 그대로 고수합니다."

백기완 : "경제정책을 바꾸라는 것은 너희들이 쥔 지배력을 내놓으라는 얘기지. 혼자만 잘살지 말고 같이 살자는 것이니까 안 내놓으려고 하는 거야. 그러니 싸움을 할 수밖에 없어. 민중의 힘으로 올바른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것이지. 실망할 필요 없이 이제부터 싸우는 거야. 강 의원도 애를 쓰고 있지만 5.18을 기념만 해서는 안 돼. 되살리는 일을 해야 해. 참된 5.18을 되살려 내야 한다고."

강기정 : "저도 4.19를 생각하면 기념식밖에 생각이 안 납니다. 살아있는..."

그때였다. 고 장두석 이사장 장례에 참석했던 이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 시작하자 다리가 불편한 백 소장이 "이 노랜 불러야 해, 노래 부르는 곳으로 가야해"라고 말하며 황소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오른팔을 흔들며 <임을 행진곡>을 따라 부르며 불편한 걸음으로 5.18유영봉안소 앞을 지나 추모탑을 향해 절뚝거리며 걸어 나갔다. 야생마의 갈퀴처럼 그의 백발이 휘날렸다.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는 것은 5.18정신 되살리자는 것"

고 장두석 이사장 장례에 참석한 이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자 다리가 불편한 백기완 소장이 벌떡 일어나 함께 부르며 추모탑으로 걸어가고 있다.
 고 장두석 이사장 장례에 참석한 이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자 다리가 불편한 백기완 소장이 벌떡 일어나 함께 부르며 추모탑으로 걸어가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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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제창이 끝나고 부축을 하던 강기정 의원이 "선생님 건강하셔야 하는데..."라고 염려의 말을 하자 백 소장은 "너도나도 내 건강 생각해선 안 돼, 세상의 건강 지구의 건강을 생각해야지"라며 슬쩍 받아넘겼다. 다시 각본도 없는 시국방담이 이어졌다.

강기정 : "저 사람들은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르게 하는 것을 자신들을 지키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백기완 : "5.18혁명정신을 죽이는 한 방법으로 이 노래를 못 부르게 하는 것이지. 5.18을 죽이자는 것이야. 우리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눈물겹게 부르는 것은 5.18정신을 오늘에 되살리자는 것이지."

강기정 : "국회에서도 '노래 한 곡 때문에 국민적 논란이 일고 국론이 분열된다'며 부르지 말라는 의원들도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합니다. 물론 정의화 의장처럼 5.18기념식에서 당연히 <임을 위한 행진곡> 불러야 하고 자신이 대통령을 설득시키겠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백기완 : "노래 한 곡 못 부르게 하는 박근혜를 나쁘다고 해야지 노래 한 곡 부르자는 것을 막는 그게 국회의원이야? 그리고 정의화 의장도 대통령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라고 그래. 도둑놈 보고 설득하면 도둑질 안 하나? 도둑놈은 도둑놈이라고 주장해야지. 난 5.18만 되면 괜히 불안해. <임을 위한 행진곡>도 못 부르게 하는 박근혜를 그냥 놓고 볼 수 있나. 하지만 내 힘은 부족한데... 자꾸 불안감이 와."

자신이 노랫말을 붙인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 고 윤상원 열사의 묘를 찾은 백기완 소장. 이를 지켜보고 있는 강기정 의원은 5.18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못부르게 하는 정부에 항의하며 국회 본회의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자신이 노랫말을 붙인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 고 윤상원 열사의 묘를 찾은 백기완 소장. 이를 지켜보고 있는 강기정 의원은 5.18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못부르게 하는 정부에 항의하며 국회 본회의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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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정 : "저희가 선생님 마음을 애 타게 해 죄송합니다."

백기완 : "(기자에게) 강 의원, 저 사람 혼자서 국회 본회의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사람이야. 그렇게 5.18을 위해 노력하는 게 고마워. (함께 온 지인에게) 강 의원에게 용돈 좀 줘, 의정활동 보태게.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 중에 '산자여 따르라'는 시 구절이 있어. 감옥에 갇혀있을 땐데 80킬로그램이었던 몸무게가 38킬로그램으로 떨어졌어. 마누라가 접견 와서 누군지 한참을 몰라봐. 사람 몸에서 살이 42킬로그램이 떨어져 나갔단 말야, 어떻게 살아, 그것도 매 맞아서 그랬으면... 그때 그 시 구절을 천정에 새겨놨어. 죽어가는 나를 일으켜 세우려 최후의 아우성을 쳤던 거야.

날은 밝지만 역사적 현실은 컴컴한 어둠 속에 있어. 현실이 시꺼멓다고. 박근혜가 장막을 쳐서 그래. 우리의 아우성으로 장막을 걷어내든지 온 목숨을 건 싸움으로 걷어내야 해. 야당도 국회의원 배지 달겠다, 정권 쥐겠다는 운동으로는 그 죄상을 걷어내지 못할 거야. 역사를 세워야겠다, 민중이 정권을 잡아서 역사를 세워야겠다고 야당 싸움의 본질과 성격을 잡아내야 돼. 그런 모습 보이면 박수갈채 받을 거야. 그게 선거운동 잘하는 거야."

계획에 없던 망월동 시국방담을 마치고 돌아서는 백 소장에게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인사를 건넸다.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꼭 잡으며 인사를 놓지 않던 그가 해남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이에게 각별한 당부를 하며 5.18묘역을 나섰다.

"농민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땅의 모순을 바로잡는 일이자 땅과 세상을 살려내는 근본이 되는 일이야. 힘들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한 지인이 인사를 하고 돌아서자 백 소장이 잘 가라며 손을 흔들고 있다.
 한 지인이 인사를 하고 돌아서자 백 소장이 잘 가라며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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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백기완, #강기정, #임을 위한 행진곡, #5.18,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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