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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질 것 없는 삶을 위해 영혼을 맑히고 산다."

몇 년 전이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만난 사람들이 있었다. 히말라야 아래나 하늘 아래 지상의 모든 사람이 다 신처럼 귀한 사람들이라 믿으며 만난 사람들이다. 깊은 산중에 검게 탄 얼굴에 갈라진 피부 그럼에도 얼굴을 밝히는 티 없이 맑은 눈동자가 빛나던 사람들을 보았다.

나는 그때 "그들의 티 없는 웃음을 보면 만년설에 덥힌 히말라야의 한 점 티 없이 맑은 신의 얼굴을 대하는 듯하다. 거침없는 웃음은 무더운 여름 찌뿌둥한 기분을 말끔히 씻어 내주는 소낙비처럼 후련하다. 그것은 이곳 사람들의 위대하고 훌륭한 무기이다. 그들의 무기는 낯선 여행자를 위로하고 안정감을 찾아주기에 충분한 웃음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장 강력한 무기가 사람을 편하고 안정감 있게 해준다는 것은......,"이라고 감탄하고 감탄했었다.

랑탕 가는 길에 둔체의 아이들, 그리고 랑탕 히말아야, 기슭에 오래된 나무에 올라 자리잡고 핀 네팔나라꽃 랄리글라스
▲ 랑탕 가는 길 랑탕 가는 길에 둔체의 아이들, 그리고 랑탕 히말아야, 기슭에 오래된 나무에 올라 자리잡고 핀 네팔나라꽃 랄리글라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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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때 내 삶을 되돌아 사색에 잠겼다. 그곳에 돌마 타망의 가족이 있었다. 2007년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랑탕 히말라야 산행을 하였다. 안나푸르나 히말라야 트레킹을 두 차례 한 이후의 산행이라 마음 편한 산행이었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아니 그곳에 사람이 신처럼 살고 있었네. 하고 말하고 싶어졌다. 나는 그곳을 그리움처럼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 내가 거닐었던 히말 중에 마음에 새기지 않은 히말은 없다. 하지만 랑탕은 특히 은은하고 평온한 느낌이 다른 어떤 히말라야보다 더하다.

그래서 나는 그곳 사람들이 특별히 신심(信心)이 깊은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이미 안나푸르나 히말을 산행할 때 내가 바람처럼 스쳐지나온 자리의 사람들이라도 만나고 다시 만나 이미 익숙한 인연들이 많다.

그런데 랑탕 히말라야에는 2012년 봄에 두 번째 산행을 하게 되었다. 나는 출발 때부터 랑탕에 가면 지난 날 인연이 된 로지의 사람들을 만날 기쁨에 들떠 있었다. 물론 돌마 타망의 가족들도 만날 생각이었다.

고다따벨라 2992미터 산중 가족이 된 돌마 타망네 가족과 나, 갈라진 피부, 거친 얼굴에도 웃음 맑고 티없이 맑은 눈빛이 사랑스럽다.
▲ 산중 가족이 된 돌마 타망네 가족과 나 고다따벨라 2992미터 산중 가족이 된 돌마 타망네 가족과 나, 갈라진 피부, 거친 얼굴에도 웃음 맑고 티없이 맑은 눈빛이 사랑스럽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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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를 출발해서 둔체를 지나 샤브르베시에 도착했다. 예전처럼 하룻밤 자고 다음날은 라마호텔이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라마호텔에 마음씨 좋고 인상 좋은 형님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마치 고향이라도 찾아온 것처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어차피 길을 가도 다시 돌아오는 길에 들려야하는 곳이라 가볍게 아침 인사를 나누고 출발했다. 오랜만에 만날 사람에 대한 설레임은 멋진 풍경도 대충 보게 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 고다따벨라(2992미터)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몇 개의 로지가 있지만 라마호텔에서 올라가는 초입에 평평한 로지가 내가 2007년초에 찾았던 돌마 타망네 집이다.

부모와 돌마 타망의 오빠와 두 동생까지 여섯이 올망졸망 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정겨웠던 기억에 13세 소녀이던 돌마 타망과 어린 동생들 그리고 부모를 만나려고 그곳에 짐을 풀고 찾았다. 그런데 아무도 볼 수가 없었다. 친척이라고 하는 사람이 대신 운영하고 있었다.

이제 만나지 못하나보다. 큰 실망감을 갖고 랑탕 빌리지를 거쳐 3730미터 강진곰파까지 급하게 다녀왔다. 그리움을 간직하고 산다는 것은 마음 안으로 사랑을 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상처를 키우는 일이 되기도 한다.

영국 유학시절 그리고 어린 동생들과 카트만두에서 함께 한 돌마 타망이 꽃을 들고 있다.
▲ 산중에 13세 소녀의 성장 영국 유학시절 그리고 어린 동생들과 카트만두에서 함께 한 돌마 타망이 꽃을 들고 있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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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뜻밖에도 산행을 마치고 하산 길에 돌마 타망의 어머니를 우연히 만났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뒤에서 나를 찾아 급하게 길을 재촉해 오고 있었다. 그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찌아 한 잔을 하고는 돌마 타망에게 전하라며 이메일을 남겼다.

그리고 며칠 전 연락이 닿아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13세 소녀는 이제 21세의 성년이 되었고 어느새 영국 유학을 마치고 카트만두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바람처럼 스쳐지나간 인연들을 가끔씩 다시 만나게 되는 데 오래된 아이들이 나름 보람찬 모습으로 성장해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내가 키워내기라도 한 것처럼 기쁘다.

소녀의 일상이 자신을 뽐내는 시간에 투자되고 있나 보다.
▲ 소녀의 변신은 아름답다. 소녀의 일상이 자신을 뽐내는 시간에 투자되고 있나 보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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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그런 모습들을 반복해서 보는 기쁨을 누리면서 생각한다. 척박한 세상은 없다. 그저 내 마음이 어떤가? 내가 어떻게 사는가? 그런 것들이 결정적 요인으로 세상을 밝게도 하고 어둡게도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돌마 타망과 어린 동생들은 나의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히말라야 산중 고향에 가 있는 돌마 타망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곳에서 한 달을 머문다고 한다. 나는 그 산중에 공기와 바람과 물을 마시고 하늘잔치를 벌이는 별을 보는 돌마 타망과 이 대한민국 땅에서 날마다 소식을 주고받고 산다. 참 행복한 인연이다. 사람들아! 귀한 인연들 높이 받들고 살아보자. 그 길이 분명 영혼을 맑히고 사는 일이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게재합니다.



태그:#돌마 타망, #히말라야 산골 소녀, #랑탕 히말라야에서 만난 인연, #영국 유학파 돌마 타망, #랑탕히말라야에서 걸려온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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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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