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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와 위로를 함께 나누고 싶은 친구에게 쓴 편지 형식의 서평입니다. [편집자말]
<1그램의 용기> 책표지.
 <1그램의 용기> 책표지.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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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E에게.

"어젯밤에는 이렇게 책 한 권 안 읽고 살아도 되나. 덜컥 불안한 생각까지 들더라. 옛날에는 아무리 바쁘고 경황없어도, 그래도 한 달에 서너 권은 꼭 읽었거든. 근데 내가 몇 달이 지나도록 책 한 권 안 읽었다는 것을 어제야 알게 된 거야. 웃기지 않니? 그런데도 책 읽을 생각도 전혀 안 들더라는 거지. 그러니 불안할 수밖에! 새해에는 책 좀 많이 읽어야겠다."

지난해 연말 어느 날 네가 한 이 말이 종종 생각나곤 한다. 네게 책이 어떤 존재인가를, 책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 신선한 충격이었지. 하여 그날 이후 좀 괜찮다 싶은 책을 읽노라면 네 생각이 나곤 한다. 한비야씨의 <1그램의 용기>(푸른숲 펴냄)도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네 생각을 많이 하며 읽은 책이다.

새해 첫날 야멸차게 세운 계획이 흐지부지되고 있는가? 아무 문제없다. 뒤에 오는 음력 1월 1일에 수정, 보완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면 된다. 그 계획도 지지부진, 유야무야된다면? 그래도 괜찮다. 3월 새봄을 맞이하며, 4월 5일 식목일에 나무 한 그루 심는 마음으로, 7월 1일 한 해 후반부를 시작하며 또는 생일 기념으로 그 계획을 다시 한 번 고친 후 새롭게 시작하면 그만이다. 중요한 건 세밀한 계획표를 가슴에 품고 용기 있게 한 발짝 떼는 거다.

옛 말씀에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감만 못하리라'라고 했던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가다가 중지해도 간 만큼 이익이다'. - <1그램의 용기>에서

40대 중반을 넘기면서부터 새해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 같은 계획을 해마다 갖게 되고, 매번 무엇보다 내 의지부족으로 작심삼일이 되기 일쑤인 것이 언젠가부터 부끄럽더라.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하여 '닿는 대로 열심히 살자. 몸도, 쓸데없는 감정들도, 삶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습관들도 다이어트 좀 하자. 통장의 잔고를 얼마쯤으로 늘려놓자'와 같은 막연한 생각과 바람만으로 새해를 맞이하곤 했지. 하기야 이것도 계획이라면 계획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데 이처럼 막연히 생각하고 바라는 것과,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적어가며 계획을 짜는 것, 그 차이가 정말 많을 것이란 생각이 한비야씨의 책 <1그램의 용기>를 읽으며 와닿더라. 특히 이 부분이 있는 '가다가 중지해도 간만큼 이익이다'라는 글을 읽을 때.

가벼운 자책, 그리고 그간을 후회도 했지. 누구 말처럼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인데도 내가 주변 사람들보다 여전히 가난해 '갑'보다는 '을'로 살 때가 더 많은 이유가 되는 것 같고 말이야. '1년에도 몇 번씩 시도하다가 곧 그만두고 마는 일기도 올해부턴 정말 써야지' 하는 생각도 들고. 이 책의 상당부분은 한비야씨가 지난 몇 년 동안 쓴 일기가 바탕이 되거든.

어쨌건, 아예 처음부터 가지 않는 것보다 중간에 멈추더라도 그래도 일단 간다면 간 만큼 무언가 얻을 수 있을 거란 한비야씨 말에 동감한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며칠 후면 4월. 올해도 석 달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고 말았네. 한비야씨 말대로 식목일 날 나무 한 그루 심는 마음으로, 지난해 새해에 세웠으나 바쁘다는 이유로 느슨해져버린 '책 쓰기' 그 구체적인 계획을 다시 붙잡아야겠다.

사실 예전에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왜 잊고 살았나 싶다. 한비야씨 글들은 간과하고 사는 것들을 좀 더 생각하게 하고, 그리고 삶에 용감해지게 한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자꾸 눌러 앉으려는 엉덩이를 자리에서 선뜻 일어나게 하고, 무언가 해보게 한다고 할까? 이런지라 악재가 되풀이되어 힘들었던 2004~2007년 무렵, 그리고 게을러졌단 생각이 들곤 할 때 찾아 읽기도 했지.

그럼에도 이 책 이전에 출간한 <그건 사랑이었네>는 읽지 못했다. 때문인지 이 책과의 만남이 새삼 반가웠다. 책을 읽다가 문득 사춘기 이상의 조카들에게 한 권씩 선물해야겠단 생각도 들더라. 나는 한비야씨 책을 아이 엄마가 되어서야 만났는데, '이런 글을 청소년기에 만났다면, 적어도 20대에만 만났더라도 내 삶의 지도가 달라졌을 것'이란 생각을 한 적도 있거든. 내가 많고 많은 부분 중 하필 이 부분을 이야기하는 이유, 알지?

간과하고 사는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삶에 용감해지게 하는 글

꽃 몇송이가 100원짜리 동전 정도로 작게 자라 꽃 피우는 우리집 마당의 제비꽃. 신기한 것은 사람들 발길이 덜 미치는 곳은 좀 더 크게, 자주 오가는 길에는 이처럼 작은 포기가 자란다는 것이다.
 꽃 몇송이가 100원짜리 동전 정도로 작게 자라 꽃 피우는 우리집 마당의 제비꽃. 신기한 것은 사람들 발길이 덜 미치는 곳은 좀 더 크게, 자주 오가는 길에는 이처럼 작은 포기가 자란다는 것이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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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네게 권하는 이유 중 또 하나는 우리의 공통적인 욕심인 지적인 호기심까지 맘껏 채울 수 있다는 것이야. 이 책은 모두 4장, 1장과 2장에선 일상에서 얻은 것들을 바탕으로, 3장과 4장에선 국제 긴급구호 활동가인 한비야씨가 구호현장에서 얻은 것들을 바탕으로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한 발 내딛게 하는 그런 글들이다.

3장에서 만난 서아프리카의 안타까운 현실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3장을 읽으며 아프리카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우선 했다. 더 알고 싶단 호기심이 생겼고. 프랑스가 아프리카를 그렇게 많이 식민지 삼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학교에서 배웠겠지만), 프랑스가 식민 지배를 하던 국가의 독립을 승인할 때 맺은 '식민지협약'은 우리의 일제강점기까지 생각나게 해 감정이 복잡하더라.

① 프랑스 식민지였던 서아프리카 국가는 프랑스에서 지정한 세파프랑만 사용해야 하고 ② 이들 국가의 외환보유고 중 85% 이상을 의무적으로 프랑스 은행에 예치해야 하며 ③ 유사시에는 이들 국가에 프랑스 군대가 주둔할 수 있으며 ④ 이들 국가에서 새로 발견된 천연자원 개발권이나 대규모 공사는 프랑스가 독점 우선권을 갖는다. - <1그램의 용기>에서

어때, 한눈에 봐도 불평등 조약 맞지?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는 협약이란 생각도 든다. 맘대로 재정정책을 세울 수도 없고, 경제정책을 세울 때도 프랑스 간섭을 받아야 하고, 외환이 필요하면 프랑스에 맡겨놓은 보유고에서 비싼 이자를 내고 빌려와야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오랫동안 지배한 프랑스 군대 수천 명이 지금도 주둔하며 감시하고 있고, 자신의 나라 자원인데도 맘대로 개발하지 못하도록 협약으로 꽁꽁 묶어놨으니 말이야. 말만 해방이지 족쇄를 채운 채 고혈을 계속 짜먹는 꼴이니 말이야.

1960년대 이후 몇몇 서아프리카 국가의 지도자들이 이 협약을 반대했는데, 쿠데타로 쫓겨나곤 했단다. 쿠데타 그 배후는 뻔하지. 아프리카의 지독한 가난과 기아는, 문화와 예술의 나라란 프랑스가 조금만 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으로, 그리하여 아프리카의 피눈물로 자신들의 밥벌이를 하지 않는다면, 아프리카를 진정 놔주면 어느 정도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아프리카에 진정한 평화가 하루빨리 오길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뿐.

그 외에도 내 맘대로 뽑은 아프리카 속담 베스트 5, 아름답고 무서운 나일강 이야기, 달콤한 설탕 속 쓰디 쓴 역사 등처럼 지적 호기심도 충족하면서 강한 메시지도 느낄 수 있는 글들과 '정책 관계자 등이나 세계인들이 조금만 더 생각하고 배려하면 힘든 그들에게 훨씬 큰 도움이 되련만' 하는 생각을 하며 읽은 글들이 좀 많다. 내가 누군가에게 "한비야씨가 결혼할 뻔한 어떤 슈퍼갑질 이야기야"라며 들려준 이야기처럼 일상의 소소한 깨달음 관련 이야기도 많고 말이야.

책을 읽는 내내 책 제목 <1그램의 용기>가 특별한 의미로 와닿곤 하더라. 들어가는 글에서 읽으며 머리로 이해된 1그램의 그 용기가 가슴에 와닿았다는 표현이 좋겠다. 이 책의 글들 그 기본은 책 제목에도 있는 누군가에게 보태는 '용기'다. 누구에게나 스스로와 세상을 바꿀 용기가 충분히 있건만 이런저런 이유로 힘들어하거나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리하여 걷게 하는 위로와 용기를 주는 그런 글들 말이야.

우리 집 마당에 지난해 봄에 이어 올봄에도 유독 키가 작은 제비꽃들이 피고 있다. 블럭 작은 틈에서 자라야 하니 키가 작은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해 봄 실수로 밟았는데도 꺾이지 않는 것이 '사람들 발에 밟혀도 꿋꿋하게 살아내고자 키를 키우는 대신 짧은 줄기에 강한 생명력을 키웠나보다', 감동했다. 이혼으로 인한 일상의 고통과 좋지 못한 건강 때문에 그 누구보다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을 네게 한비야씨의 아침햇살 같은 용기와, 우리 집 마당의 제비꽃의 강한 생명력 그 지혜가 전해지길 바라며.

덧붙이는 글 | <1그램의 용기> 한비야 씀, 푸른숲 펴냄, 2015년 2월, 360쪽, 1만4000원



1그램의 용기 - 앞으로 한 발짝 내딛게 만드는 힘

한비야 지음, 푸른숲(2015)


태그:#한비야, #용기, #아프리카, #제비꽃,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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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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