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위의 기적'은 결국 미완성으로 끝났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언더독의 투혼은 플레이오프를 빛낸 최고의 스포츠 드라마로 팬들의 가슴속에 잊지못할 추억을 남겼다.

인천 전자랜드는 27일 원주 종합체육관에서 벌어진 2014-15 KCC프로농구 플레이오프 최종 5차전에서 접전 끝에 70-74로 패했다. 이로서 전자랜드는 2승 3패로 아쉽게 창단 첫 챔전 진출을 또다시 다음 기회로 미뤄야했다.

패배는 했지만 전자랜드의 투혼은 마지막까지 눈부셨다. 주장이자 에이스 리카르도 포웰은 이날도 홀로 31점 9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분전했다. 김지완(14점 3어시스트)과 차바위(9점 9리바운드)도 몸을 사리지않는 허슬플레이로 후반 대추격전에 힘을 보탰다.

전자랜드는 3~4쿼터에 잇달아 두 자릿수로 벌어진 점수차를 따라잡는 저력을 과시했다. 4쿼터 중반 세 번이나 동점에 성공했고, 경기종료 1분전까지 동부를 1점차로 압박했지만 마지막 11초를 남겨두고 터진 동부 앤서니 리처드슨의 장거리 쐐기 3점포를 맞고 분루를 흘려야했다. 1점차까지 따라잡은 상황에서 포웰의 두 번에 걸친 무리한 일대일 공격 실패가 전자랜드에겐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전자랜드의 도전은 4강에서 끝났지만 그들은 의심할 나위없이 이번 플레이오프의 진정한 주인공이었다. 사실 전자랜드가 여기까지 올라올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 전자랜드는 프로농구의 대표적인 언더독이다. 올해는 물론이고 거의 매시즌 6강진출 예상에서도 낮은 평가를 받는게 다반사인 팀이었다. 올시즌 초반에는 한때 9연패 수렁까지 빠지며 위기에 내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전자랜드는 불굴의 투지를 앞세워 기어코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2010-11시즌부터 5년 연속 PO행은 구단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었다. 9연패를 당한 팀이 PO에 오른 것은 1999-2000시즌 부산 기아(현 울산 모비스) 이후 처음이고 4강까지 진출한 것은 역대 최초였다. 

KBL 플레이오프 사상 6위팀이 3위팀에 전승한 것은 역대 최초

특히 전자랜드의 진정한 드라마는 플레이오프부터 시작됐다. 올해 6강진출팀 중 유일하게 5할승률(25승 29패) 달성에 실패하며 최약체로 거론되었던 전자랜드는 일방적인 예상을 깨고 서울 SK를 상대로 3연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켰다. KBL 플레이오프 사상 6위팀이 3위팀에 전승한 것은 역대 최초였고, 전자랜드는 가장 많은 정규리그 승차(12게임)를 극복하고 '업셋'를 이룬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전자랜드의 선전이 화제를 모으며 플레이오프에 대한 농구팬들의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경쟁 종목인 야구-축구시즌이 잇달아 개막했음에도 농구 플레이오프에 대한 화제성이 줄지않았고 관중 동원에서도 호조를 이어갔다.

이중에서도 전자랜드에서만 4시즌째(3년연속) 활약하며 외국인 선수로는 드물게 주장까지 역임한 리카르도 포웰의 스토리는 농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포웰은 플레이오프들어 승부처마다 르브론 제임스나 코비 브라이언트를 연상케하는 환상적인 클러치능력을 선보이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SK와의 2.3차전에서 패색이 짙던 4쿼터 막판 연이어 신들린 득점포를 성공시키며 승부를 뒤집은 포웰의 플레이는 단연 압권이었다.

여기에 포웰은 전자랜드와 인천 팬들에 대한 두터운 애정을 드러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국내 선수들보다 더 팀에 대한 끈끈한 충성심과 연대감을 드러낸 것도 보통의 외국인 선수들과는 차별화되었던 대목. 올시즌이 끝나고 바뀐 KBL 규정에 따라 전자랜드를 강제로 떠냐야하는 포웰의 사정이 알려지며 KBL에 외국인 선수 규정을 재고하라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전자랜드를 돌풍의 팀으로 끌어올린 유도훈 감독의 리더십도 빼놓을수 없다. 유도훈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전만해도 전자랜드는 별다른 스타도 없고 성적도 그저그런 약체팀에 불과했다. 유감독은 2010-11시즌 감독대행으로 처음 전자랜드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2011-12시즌 전년 9위에 그쳤던 팀을 일약 창단 최고성적인 정규리그 준우승으로 끌어올렸다. 이후 서장훈-문태종-신기성 등 주력 선수들이 해마다 이탈하며 전력이 약화되고, 모기업의 재정 위기로 구단 존폐까지 위협받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팀을 꿋꿋이 매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았다.

유도훈과 코끼리 군단이 보여준 '3월의 드라마'

선수 구성에 맞춰 최상의 팀컬러를 끌어내는 유연한 전술적 능력, 개성강한 선수들을 아우르는 포용의 리더십은 유도훈 감독의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유감독은 유독 전자랜드 선수들과 소통을 둘러싼 일화가 많다.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작전시간 도중 이현호와 벌인 '야자타임' 해프닝, 뛰어난 기량에 비하여 승부욕이 지나치게 강하여 통제가 어렵던 포웰에게 주장직을 맡기며 책임감을 부여한 일, 악동 이미지가 강하던 테렌스 레더를 품으며 팀플레이어로 환골탈태시킨 장면 등은 유도훈 감독의 소통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전자랜드는 올시즌 보여준 성적 이상으로 프로농구에 '작지만 훌륭한 팀'의 모범사레를 보여줬다. 플레이오프 내내 전자랜드는 모든 선수들이 자기 몸을 사리지않는 헌신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다. 동부와의 플레이오프 기간중 벌어진 외국인 선수들간의 언쟁 등 자칫 팀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칠수 있는 사건들도 오히려 긍정적으로 수용해내는 모습은, 그만큼 전자랜드 선수들이 얼마나 끈끈한 연대감으로 묶여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

또한 전자랜드는 몇 년간 프로농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거론되던 고의 태업이나 승부조작 의혹 등에서 자유로웠던 몇 안되는 팀이다. 대부분의 팀들이 우승을 위한 전력보강이나 리빌딩을 핑계로 고의로 한두시즌 성적을 망치고 신인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을 노리는 악습이 빈번했다. 그러나 전자랜드는 꿋꿋이 최선을 다했고 매년 플레이오프 진출도 드래프트 상위지명권을 놓치며 전력보강에 애를 먹으면서도 정도를 지켰다.

올시즌에는 상대팀임에도 리바운드 역대 2위 기록을 수립한 김주성을 위한 이벤트를 마련하는 등, KBL도 하지못한 대인배스러운 미담을 남기기도 했다. 창단 이래 화려한 우승경력도, 현재 국가대표나 전국구 스타가 한명도 없음에도 전자랜드의 올시즌 선전에 많은 팬들이 특별한 감동을 느낄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전자랜드의 위대한 도전은 올시즌 여기에서 막을 내렸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포웰도 다음 시즌 KBL로 다시 돌아올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팬들은 올시즌 유도훈과 코끼리 군단이 보여준 '3월의 드라마'를 결코 잊을수없다. 다음 시즌도 한계없는 전자랜드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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