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학교에서 점심을 먹은 이혜진(7·가명)양은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온다.

낮 12시 40분 이 양과 같은 반 친구 몇몇은 나란히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 앞에 서 있는 태권도학원 차량에 오른다. 차 안에는 이미 비슷한 또래 아이 10여 명이 앉아 있다. 이 양과 친구들은 이날 일정이 똑같다. 오후 1시에 태권도학원에 도착해 도복을 입고 '정신통일'을 외치다 2시 40분이 되면 피아노학원 차량을 기다린다.

3시께 피아노학원에 도착하면 배가 고프다. 간식을 먹고 싶지만 빡빡한 일정에 먹을 시간도 없고 챙겨 주는 사람도 없다. 아침에 엄마가 가방에 넣어 준 초코과자를 꺼내 허기를 때우는 게 고작이다.

피아노학원 수업을 마친 이 양은 부랴부랴 공부방 차량에 올라 이내 창문에 기대 잠이 든다.

공부방에는 합기도와 미술학원에 다녀온 아이들이 이 양을 기다린다. 이 양은 이곳에서 학교 숙제를 마치고 오후 7시께 부모와 함께 집에 도착, 고된 일과를 마친다.
이 양의 부모는 매달 태권도 10만 원, 피아노 10만 원, 공부방 13만5천 원 등 총 33만5천 원의 추가 교육비를 지불한다.

반면, 이날 이 양과 함께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헤어진 서인호(7·가명)군은 학교에서 모든 걸 해결한다. 돌봄교실과 연계된 방과 후 수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돌봄교실은 보육교사가 간식을 챙겨 줘 배고프지 않다. 또 시간마다 옆 체육관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옆 반 교실에서 바이올린을 비롯한 현악기를 연주한다. 보육교사는 오후 6시 30분 서 군의 부모가 데리고 갈 때까지 숙제를 봐 주고 틈틈이 잠도 재운다.

서 군은 태권도 2만 원, 바이올린 3만 원 등 한 달 평균 5만 원을 지불한다.

이처럼 방과 후 이 양과 서 군은 비슷한 과목을 배우고 있는데도 돌봄교실 이용 여부에 따라 환경도 금액도 크게 다르다. 인천지역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돌봄교실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26일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돌봄교실 예산은 99억3천470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42억여 원(약 30%)이 줄었다.

삭감된 예산은 그대로 돌봄교실 설치 부족으로 이어졌다. 학급당 약 2천만 원의 교실 리모델링 비용이 필요한데 예산 삭감으로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이 때문에 전체 1~2학년 6만2천여 명 중 돌봄교실 혜택을 받는 아이들은 전체의 20% 수준인 1만2천여 명에 불과하다. 남은 5만여 명의 아이들 중 상당수는 어쩔 수 없이 사교육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시교육청이 돌봄교실 우선순위로 배정한 저소득·한부모·맞벌이 가정 아이들도 혜택을 못 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맞벌이 가정 자녀 중 무려 557명이 돌봄교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언제 순서가 돌아올지 막연한 상태다.

이 같은 원인은 애초 돌봄교실 수요를 잘못 예측한 시교육청의 책임이 크다. 시교육청은 올해 돌봄교실 신청자를 1만여 명으로 예측하고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예상 외로 신청자가 급증해 한 교실에 30명이 넘는 경우도 있다"며 "4월부터 1~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돌봄교실을 이용하도록 시행하고 있지만, 일반 교실도 부족한 상황에서 돌봄교실까지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태그:#초등 돌봄교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