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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기, 전북, 광주, 강원을 제외한 12개 시도에서 `교과학습 진단평가`가 실시된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세곡동 세명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 진단평가 대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대체 프로그램은 지필고사식 진단평가가 아니라 한달동안 진행되는 진단활동 수업이다. 2014.3.6
 서울, 경기, 전북, 광주, 강원을 제외한 12개 시도에서 `교과학습 진단평가`가 실시된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세곡동 세명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 진단평가 대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대체 프로그램은 지필고사식 진단평가가 아니라 한달동안 진행되는 진단활동 수업이다. 2014.3.6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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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서로 친해져갔다. 오후에 학급에 남아 친구들끼리 어울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고, 금요일이면 토요일 두 시에 학교 놀이터에서 보자며 약속을 잡는 친구들도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탐색하고 알아가는 학기 초이기에 좋은 학급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우리 반에 한 명 있는 전학생도 전학생이 맞나 싶을 만큼 금방금방 알고 지내는 같은 반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존재하듯이 우리 반 아이들의 미친(?) 친화력은 종종 선생님인 나를 괴롭히곤 했다. 짝과 이야기 하다가 수업 장면이 휙 지나가버리는 것은 기본이고, 친구들 작품을 서로 못 그렸다며 놀리고 구경하다가 정작 자기 작품은 완성도 못하는 일도 있었다. 그저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 것이 학교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고 매 시간 친구들과 투닥투닥 오순도순 지내는 것이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이었다. 때문에, 내가 애가 타는 건 아는지 모르는지 뭐가 그리도 재미난 지 속닥속닥 수군수군 소위 꺼야 하는 '지방방송'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수업 진행이 어려움을 겪는 일도 잦았다. 한 번은 과학 실험을 아예 시작도 못하고 목소리만 높이다가 끝이 나버린 적도 있었고, 또 한 번은 아이들의 지방방송들을 정리하다가 10분이나 늦게(그렇지 않아도 초등학교 수업은 40분인데) 겨우겨우 수업을 시작한 적도 있었다. 이런 문제점은 선생님인 나만 느끼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사실, 감사부에서 관리하는 우리 반 건의함에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우리 반은 정말 필요 없는 이야기가 많다.', '우리 모둠은 너무 말이 많다.' 등의 날선 비판의 쪽지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곪다가 곪은 일이 터진 것은 일주일의 시작을 알리는 '월요일'이었다. 월요병을 가지고 등교하는 날인 것이다. 아이들은 직장인이 걸리는 월요병(주말에 쉬고 월요일에 다시 출근을 하는 직장인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병으로 유달리 월요일에 피곤한 증세를 보이는 병)과는 다르게, 주말 동안 만든 도무지 끝이 없는 이야기보따리를 가지고 등교하는 월요병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월요병의 증세도 '피곤'이 아닌 오히려 지나친 말의 '활기' 증세를 보인다. 실제로, 월요일 1교시가 가장 수업하기 힘든 시간이라는 것은 선생님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 월요일도 마찬가지였다. 주말동안 펜션에 놀러갔네부터 근처 섬에 놀러갔네, 피자를 먹었는데 너무 맛이 좋았네, 축구를 했는데 골을 넣었네 말았네 등 아침부터 이야기 샘이 마르지를 않았다. 월요일마다 열리는 애국조회에 다들 무슨 이야기 풀어 놓기에 바빴다.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마찬가지였다. 겨우겨우 아이들을 말려가며 수업을 한 뒤에 점심을 먹고 난 5교시에도 아직 이야기가 남았는지 여전했다.

나는 이미 네 번의 수업동안 아이들을 말리다가 내가 말라버린 상황이라 수업을 들을 준비가 될 수 있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눈치' 라는 게 없는 건지 나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수업시간을 계속 흘려보냈다. 그렇게 수업시간이 5분이 지나고 10분에 가까워지는데 드디어 아이들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순간 지방방송들이 모두 조용해졌다.

"수업시간이 10분 가까이 지났어. 선생님은 이건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늘, 선생님 정말 수업하기 힘들어. 목도 아프고.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럼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반성문을 써요."
"아예 우리 반에서 제외해버려요."
"수업시간에 떠들면 방과 후에 혼자 대청소를 시켜요."

우리 반에는 없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상과 벌이 바로 그것이다. 칭찬은 있지만 상은 없고 지적은 있지만 벌은 없다. 내가 상과 벌을 없앤 이유는 하나였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에게 상을 주고 벌을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잘못된 행동은 스스로 깨닫고, 잘하고 있는 행동은 스스로 칭찬하고. 나는 그것을 바랐다.

상과 벌에 의해서 학급을 운영한다면, 솔직히 정말 편하다. 반성문을 쓰지 않기 위해서, 청소하지 않기 위해서 아이들은 하지 말아야할 행동들을 하지 않을 것이다. 또, 사탕을 받기 위해서 쿠폰을 받기 위해서 하면 좋은 행동들을 나서서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외부에서 주는 상과 벌에 의한 행동의 동기는 일회적이다.

또한, 점점 더 그 상벌의 강도는 강해져야 할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상벌에는 자연스럽게 점점 무뎌지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탕은 두 개를 부르고 나중에는 정말 큰 상을 바랄지도, 웬만한 벌에는 감흥이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제로, 아이들이 나에게 제안한 벌로는(반에서 제외하자든지, 대청소를 혼자 시킨다든지) 꿈쩍도 안 할 것으로 보였다.

나는 일단, 나의 이런 생각을 아이들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서커스를 위해 훈련되는 원숭이들에게 제공되는 소위 '당근과 채찍'을 알려주고 선생님인 내가 상과 벌이라는 편한 길을 왜 마다하고 돌아가려고 하는지를 전달했다. 다행히도 아이들이 나의 마음을 이해한 듯 보였다. 나는 다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물었다. 분명, 돌아오는 대답은 달랐다.

"스스로 시간에 맞게 행동해야 해요."
"시간 상관 없이 놀고 있는 모둠 친구들을 달래서 데려와야 해요."
"놀고 싶어도 수업시간은 참고 지켜야 해요."
"쉬는 시간에만 친구들과 이야기해요."

아이들의 대답에서 타인이 주는 '당근과 채찍'과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주는 '당근과 채찍'은 분명히 다름을 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쉽지는 않을 일이었다. 성인도 스스로 자신에게 당근을 주고 채찍질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또, 지금도 몇몇 아이들은 여전히 수업시간을 잘 지키지 못했고, 아직도 친구들과 얘기하기 바빴다. 하지만, 나는 전에는 보지 못했던, 서로 수업시간 됐다고 소리쳐주고, 교과서를 가져오라고 친구들을 구박(?)하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제는 선생님에게 많이 미안했고, 조용히 하고 있었던 친구에게도 미안했다. 나는 더 이상 원숭이가 아니고 사람이 되고 싶다." - 한 학생의 아침 두 줄 글쓰기 중

이제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이 친구, 이 날도 쉬는 시간에 열심히 '할리갈리'라는 놀이를 하다가 수업 시간을 안 지키고 나에게 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오늘도 난 포기하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스스로를 믿고 기다리면, 또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한 발 더 성장할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부디, 스스로 자기를 만들어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2015년 3월 2일부터 시작된 신규교사의 생존기를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태그:#초등학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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