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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25일 07 : 25 PM.

"네, 지금 대한민국은 새 대통령의 취임식 당일 날의 저격사건…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런 혼란을 틈타서… 외국계 헤지 펀드들이 우리 주식시장과 원·달러 환율을 공격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선물과 외환시장에서, 철저하게 단기차익만을 노리고 들어오는 하이에나 같은 자금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행 총재에게 물가불안요소와 더불어 환율관리에 있어서 만전을 기하도록… 특별지시를 내려야 합니다. 특히, 외국계 자금의 흐름과 외환보유액 현황을 면밀히 체크하고, 그 내용도 함께 공개하도록 지시를 하십시오. 우리 금융당국이 이미 충분한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 그걸 국제 금융시장에 알리는 겁니다. 헤지 펀드들이 장난칠 여지를 아예 싹을 잘라버리는 조치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규모가 대략 어느 정도나 되나요?"

"2015년 기준으로 3623억 달러, 전 세계 7위 수준을 유지하다가… 지금은 약 3920억 달러 규모로, 작년에 브라질을 제치고 전 세계 6위 수준으로 올라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이런 비상사태에 대비해서 다른 나라들과 맺고 있는 통화스와프 규모만도… 대략 1300억 달러 수준에 이릅니다.

우리나라가 단기외채와 중장기외채의 '만기불일치' 문제로 인해… IMF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7년. 당시, 우리의 외환보유액은 겨우 39억 달러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그 때와 비교를 한다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IMF 사태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그렇지만 단기적으로는 환율이 한바탕 출렁이면서… 우리 경제와 수출기업들에게 좋지 않은 악영향을 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때문에 반드시 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요. 꼭 필요한 일이라면, 당연히 조치를 취해야겠지요. 지금 시점에서 강 교수가 안보와 경제문제를 재차 강조하는 이유… 나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어요. 국민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니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될 일…. 그 외에 필요한 조치들은 또 뭐가 있겠소?"

"다음은 외교 분야입니다. 일단 오늘 저녁으로 예정되었던 외국 사절단이나 내빈들과의 리셉션은 연기하고… 추후에 다시 초청하겠다는 통보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아마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충분한 양해가 가능하리라 판단되지만… 정권 초창기부터 외교적인 결례를 범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국제사회에서 정권의 신뢰성에 대해 문제가 생깁니다. 때문에 이 부분 역시, 서둘러야 합니다."

"아, 그건 조치를 취하도록 이미 지시를 했어요. 리셉션은 취소하고, 조만간 다시 통보 하는 걸로…"
"대통령님. 지금까지 제가 말씀 드린 부분들은… 아마도 가장 기본적으로 취해야 할 조치들에 해당할 것입니다. 시간상, 지금 당장 지시를 내리셔야 할 부분들만 우선 말씀드린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간과해서는 안 될 진짜 중요한 내용들이 남아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결코 실수를 하거나 우왕좌왕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순간, 대통령이 잠시 멈추자는 손짓을 한다. 탁자 위에 놓인 물 컵을 향한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허허허. 강 교수가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나도 이제부터는 긴장을 좀 해야겠는데? 흠… 어쨌거나 얘기, 계속하도록 합시다."

"우선, 대통령님의 임기가 이미 시작이 되었지만… 각료 인선도 안 된 상태고, 무엇보다도 청와대의 조직구성이 완료되지 않은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일단 인사청문회가 필요한 총리나 장관들에 대한 임명은 다소 늦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비서실장과 안보실장, 그리고 경호실장 등 청와대 3실장과 더불어… 여러 청와대 수석들에 대한 정식 임명장 수여가 오늘 중으로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아울러서 혹시 군 내부의 특이동향은 없는지 서둘러 파악하기 위해, 기무사령관 또한 동시에 임명을 하셔야 합니다. 만약 지금, 군 내부에서 뭔가 수상한 움직임이 벌어진다면… 그건 정말로 큰 문제입니다. 순서상 어쩔 수 없지만… 어쩌면 기무사령관의 임명이, 청와대 3실장의 임명보다도 더 시급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반드시 대통령님께서 신뢰할만한 군 내부인사를 골라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기무사령관으로 임명을 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일선부대들의 세밀한 움직임들을 일일이 체크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일선부대들의 움직임 체크… 기무사령관 임명…. 흠… 지금 시점에, 강 교수가 이 부분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봐도 되겠소?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네. 지금 군부의 움직임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다소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대통령님을 저격한 자들… 어쩌면 단순한 민간극우세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얘기를 꺼낸 민혁이나 듣고 있는 대통령, 두 사람의 시선이 엉키며 미묘한 긴장감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사실상 엄청난 뜻을 내포한 얘기….

"강 교수, 지금 강 교수가 나에게 하고 있는 말… 이게 얼마나 심각한 얘기인지는 잘 알고 있지요? 흠… 일단 들어나 봅시다. 저격범들이 단순한 민간극우세력이 아닐 거라는 이유가 대체 뭔지…"

"대통령님. 저도 처음에는 TV로 보았던 장면들 외에는, 그 밖에 어떤 다른 정보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저 역시 처음에는 검찰에서 발표했던 대로… 그저 민간극우세력들이 저지른 짓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차를 타고 이 곳 병원까지 오는 동안, 그 생각이 차츰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오는 동안 내내, 계속해서 제 머릿속을 맴돌던 어떤 소리 때문이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얘기? 대체, 어떤 소리를 말하는 거요?"
"총소리 입니다. 대통령님을 저격했었던. 3초 내에 발사되었던 바로 그 세 발의 총소리…."

"흠… 세 발의 총소리…. 강 교수, 뜸들이지 말고 무슨 뜻인지 그냥 얘기해보시오."
"그러면 대통령님. 일단 이 동영상을 먼저 한 번 봐주시기 바랍니다."

민혁이 휴대폰에 저장된 동영상 하나를 찾아서, 대통령에게 보여준다. 어느 무기생산 업체의 총기류 홍보 동영상이다.



"대통령님. 이 홍보영상은 국내 무기생산 업체가운데, 개인화기인 K 시리즈의 개발과 생산을 담당하는 'S&T 모티브'라는 회사의 홍보영상입니다. 과거 대우정밀공업이라는 회사가 이름을 바꾼 회사인데, 우리 군인들에게 기본적으로 지급되는 제식총기 대부분을… 바로 이 회사에서 만들고 있습니다."

"보아하니 저격용 총 발사장면 같은데… 맞소?"
"네 맞습니다. S&T 모티브에서 국내 최초로 개발한, 'K14 저격소총'의 홍보 동영상입니다. K14가 개발되기 전에는… 우리 군에서 필요로 하는 저격용 총 대부분을, 전량 외국에서 수입했습니다."

"언젠가 언론기사에서 본 것도 같은데…, 헌데 이 동영상이 강 교수가 아까했던  얘기하고는 어떤 연관이 있나요?"
"우선 눈여겨보실 부분은 바로… 장전 방식입니다. 보시다시피 한 발 발사를 하고 나면, 사수가 노리쇠를 직접 손으로 뒤로 당겨서 탄피를 빼주고… 다시 노리쇠를 앞으로 밀어서 다음 탄환을 장전합니다. 이때, 노리쇠가 영어로 볼트( bolt )이기 때문에… 이걸 가리켜서 '볼트 방식'이라고 합니다."

"맞아요. 볼트방식. 과거에 생산된 저격용 총… 거의 대부분이 바로 이 볼트방식으로 제작이 되었지요. 가장 대표적인 게 레밍턴 700이지요 아마?"
"대통령님. 역시 군 복무 경험이 있으셔서 그런지… 잘 알고 계시는군요. 미국의 총기 제작사인 레밍턴이 1962년 수렵용 총으로 개발해서 보급하기 시작한 게 바로 레밍턴 700인데, 미국 역사상 베스트셀러 3위 안에 들어가는 소총입니다. 미국 육군이 제식 저격소총으로 채택했던 M24와 미 해병대의 M40 역시, 바로 이 레밍턴 700에서 파생된 모델이었고요."

"그런데 이 볼트방식은 다른 방식에 비해 정확도는 높지만, 사람이 일일이 노리쇠 조작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연사속도가 늦다는 단점이 있어요. 응? 아하! 그러니까 강 교수 얘기는…"

"네, 대통령님. 이제야 제 말뜻을 이해하시기 시작하신 것 같습니다. 핵심 포인트는 바로 연사속도…. 과거 아프간 전쟁에서 볼트방식의 문제점을 절실히 깨달은 미군은… 바로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반자동 방식'의 저격소총을 개발·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발을 발사하고 나면, 그 다음 탄환이 자동으로 장전되기 때문에… 연사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것이지요. 다만, 반자동 방식은 볼트방식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지고 고장이 잦은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꾸준히 성능을 개선한 결과, 정확도나 명중률 측면에서도 볼트방식에 점점 근접하는 반자동 저격소총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제 판단으로는, 오늘 대통령님을 저격했던 저격총의 종류는 볼트방식이 아니라… 반자동 방식임이 틀림없습니다. 볼트방식으로는 세발의 탄환을 3초 이내에 연달아 발사한다는 게 불가능 한 일이니까요."

"그래요.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 어쩌면 민간극우세력의 소행이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기에 앞서서… 대통령님, 이 사진을 한 번 봐주시기 바랍니다."

민혁이 또 다시 휴대폰에 사진 하나를 띄워서 대통령에게 건넨다. 대통령이 유심히 살펴보는 가운데, 민혁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M110 SASS 사진
 M110 SASS 사진
ⓒ Knight’s Armament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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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M110 SASS라는 반자동 방식 저격소총의 사진입니다. 제작사는 미국의 Knight's Armament Company…. 그 회사 홍보물에 실려 있는 내용의 일부입니다. 이 저격총은, 미군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으로… 2009년부터 실전 배치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4년 6월, 강원도 고성에서 벌어졌던 22사단 총기난사 사건 때… 당시 출동했던 수색조 병사들이 이 M110 SASS를 소지한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총기류가 결코 아닙니다."

"그러니까 강 교수가 보기에는, 오늘 범행에 쓰인 저격소총이 바로 이 M110 SASS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보는 건가요?"

"M110 SASS가 아니라면, 같은 회사에서 M110 SASS의 원 모델로 개발한 SR-25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중요한 것은 범행에 쓰인 총기류가 볼트방식이 아닌 반자동 방식이고, 그건 민간단체가 결코 쉽게 입수할 수 있는 총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실 국내에서 볼트방식으로 개발한 K14 저격소총 역시, 이것저것 합치면 한 정당 가격이  1500만 원 정도나 됩니다. 때문에, 개발 당시부터 비슷한 성능의 외국 저격총보다 지나치게 비싼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볼트방식이 전술운용상 과연 우리에게 맞는 방식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고요. 개발 완료하고 특전사나 해병대 등 일부 특수부대에 납품한다는 기사가 났던 게 지난 2013년 연말… 아직도 일반 부대에는 그리 보급이 많이 안 된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특수부대가 아니면 K14도 그리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무기는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M110 SASS나 SR-25라면 더더욱 가능성이 희박한 얘기가 되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이 부분은 검경합동수사본부에 연락을 해보면 금방 파악이 될 문제…. 안보실장 내정자를 통해서 서둘러 확인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향후 사태의 전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부분입니다."

민혁의 설명을 듣던 대통령의 이마에 주름이 생기고,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만약 민간극우단체의 소행이 아니라면? 그건, 또 다른 어떤 알 수 없는 엄청난 배후세력이 있다는 얘기…. 그렇다면 사건의 성격은 지금까지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문제이고, 여기에 대한 대응 역시, 전혀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일. 상황은, 또 다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해서, 외람되지만 제가 대통령님께 좀 여쭤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강 교수,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물어봐요."

잠시 맴돌던 침묵을 깨고 민혁이 질문을 하자…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던 대통령, 어두운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대통령님. 오늘 광화문 행사장에 가실 때, 한복으로 갈아입으면서 혹시 그 안에 방탄복을 착용 하셨습니까?"
"맞아요. 경호실에서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합디다. 그래서 방탄복을 입었었지. 그 덕분에 가슴에 총을 맞았지만, 이렇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거고…"

"그럼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오늘 광화문 행사장 무대에는 좀 특이한 물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연단 위를 축구골대처럼 감싸고 있던 그 투명한 구조물 말입니다. 그 구조물 혹시… 오늘 광화문 행사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 아닌지요?"
"응? 갑자기 그건 또 왜? 보고를 받기로는… 특별히 오늘 행사에 맞춰서 제작한 게 맞긴 맞는데…"

"대통령님.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한 가지만 더…. 오늘 광화문 행사장에서 누군가 대통령님에 대한 저격을 시도할 것이라는 사실… 대통령님은 혹시 미리 사전에 알고 계시지는 않았습니까?"

"허허. 거 참…."

복잡한 표정과 함께, 잠시 동안 대통령의 침묵이 이어진다. 민혁은 그런 대통령의 표정 하나하나를 예리하게 지켜본다.

"강 교수,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그러니까 그 얘기는… 설마 내가 자작극이라도 벌였다는 얘기는 아니겠지?"

유심히 대통령을 지켜보던 민혁, 잠시 침묵한다. 그러다 대통령의 표정에서 뭔가를 읽은 듯. 이윽고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사실 병실 문을 열고 대통령님의 몸 상태를 처음 확인했을 때, 천만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깜짝 놀랐던 게 사실입니다. 왼쪽 어깨 부위 빼고는 그다지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자작극이라니,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얘기지요. 대체 대통령님이 그런 일을 벌이실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방탄복하고 그 구조물에 대해 특별히 질문을 드렸던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객관적인 상황을 어느 정도는 정확히 파악을 해야, 제가 다음 얘기들을 말씀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역대 어느 대통령도 행사장을 가면서 방탄복을 착용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때문에 경호실에서 방탄복 착용을 건의했다는 건… 그만큼 뭔가 구체적인 사전 정보가 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축구골대 모양의 구조물… 제가 보기에는, 특수 방탄플라스틱으로 제작된 물건임에 틀림없습니다. 범인이 쏘았던 첫 번째 총알이 그 구조물을 관통하거나 깨뜨리지 못한 채, 그대로 박히고 말았으니까요. 만약 사전에 이런 대비를 미리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대통령님의 생명이 위태로웠겠지요. 때문에 대통령님께서는 오늘 저격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혹시 미리부터 짐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허허허. 이거야 원. 못 당 하겠구먼…. 강 교수, 그러지 말고 어디 돗자리라도 하나 까는 게 어떻겠소? 귀신이 따로 없네 그려. 흠… 굳이 설명하자면 길어질 테니, 간단히 말하겠소. 취임식 약 2주일 전쯤, 제보자가 한 명 있었소. 아마도 오늘 저격시도가 있을지 모른다는…"

"네? 제보자요? 그게 누군지 혹시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아니… 아직은 말할 수 없소. 대신, 강 교수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부탁을 만약에 받아들인다면… 그 때는 얘기해주겠소."

"대통령님. 이 상황에서 저에게 하실 부탁이 과연 뭐가 있을지, 좀 당황스럽습니다. 뭐가 됐든 대통령님이나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만…."
"강 교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앞으로 청와대에 들어와서 나를 좀 도와주시오."

"네? 대통령님, 그러니까 그게 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민혁이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다음 말을 이어가고 있다.

"알고 있어요, 강 교수. 음… 그러니까, 세월호 참사 때 희생됐던 따님 이름이 보영이라고 했나요?"
"네. 대통령님이 그걸 어떻게… '보배로울 보( 寶 )'자에 '빛날 영( 煐 )'자, 나라에 빛나고 보배로운 사람이 되라고 그렇게 지었습니다."

"내가 강 교수 일인데 그걸 왜 모르겠소? 참 예쁜 이름이군요. 보영이… 내 언젠가 사진을 봤더니, 외모도 참 착하고 예쁘게 생겼던데. 나도 세월호 참사 이후, 희생자들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가슴 아파 했었소. 그러니 기억을 할 수밖에…. 그런데 따님이 희생되기 전, 강 교수가 따님과 했던 마지막 약속이… '절대로 정치 같은 건 하지 않겠다.'였다는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알아요. 그래서 대통령 직 인수위원회 그만 둘 때, 인수위원장에게 그렇게 얘기했다는 보고, 내가 받았어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부탁을 하는 건… 강 교수가 꼭 내 옆에서 도와줘야할 일이 있기 때문이오."
"과거 인수위원회나 대통령님 주변에, 저 말고도 능력 있고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신 걸로 아는데, 왜 하필 저를?…."

"그건 말이요, 강 교수. 능력 있고 좋은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사심 없이 일을 감당할만한 사람이 강 교수밖에 없기 때문이오. 일단, 정치권이라는 데가 워낙에 욕심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들을 자신들 입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 강 교수도 잘 알거요. 그래서 다들 어떻게든 청와대 들어가서 서로 한자리라도 차지하려고 아등바등 싸움들을 하는 판에, 강 교수같이 욕심 없는 사람은 보기가 참 드물거든? 그래서 말인데…"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저 스스로 늘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과연 맡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새로 신설될 전략기획수석 자리를 맡아주시오."
"예? 전략기획 수석이오?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인지 감이 잘…"

"말 그대로 국정 전반에 대해서, 청와대나 대통령인 내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를 전략적으로 판단하는 역할이오."
"대통령님. 딸아이와의 약속도 문제지만, 방금 말씀하신대로라면 제가 그런 역할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허허. 무슨 소리! 자 일단,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강 교수는 지금까지 나하고 많은 얘기들을 나눴소. 그리고 앞으로 내가 반드시 급하게 취해야 할 조치들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정확히 짚어줬소. 만약 강 교수가 오늘 했던 것처럼만 앞으로도 계속 해준다면… 내게는 그야말로 큰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을 줬다는 얘기요. 그리고 내가 아까 농담처럼 돗자리라도 까는 게 어떠냐고 얘기했던 건, 결코 과한 얘기가 아니오. 어쩌면 오늘 저격시도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내가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점… 그것까지도 귀신같이 맞추질 않았소? 그럴 능력 되는 사람, 내 주변에 그리 많지가 않아요. 그러니 그런 얘기는 아예 빼놓고 얘기합시다."

"대통령님, 워낙 갑작스러운 말씀이라 제가 당장에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습니다. 저에게 시간을 좀 주시면 어떨지…."
"좋소. 딱 한 시간 시간을 주겠소. 지금 같은 비상시국, 여유 있게 생각할 틈이 없다는 점… 강 교수도 잘 알고 있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한 마디만 덧붙이겠소."

"말씀하십시오."

"오늘 취임사 첫 머리부터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얘기를 꺼낸 것, 그리고 광화문 행사장에 세월호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하고 행사를 진행했던 점, 또 저격 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제보를 받고도 행사를 강행한 점 등등, 그게 다 무슨 뜻인지 혹시 아시겠소?"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문제를, 그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신다… 대충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맞아요. 유가족인 강 교수에게 뿐만 아니라, 나 역시 그 만큼 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애초에 저격시도에 대한 제보 얘기를 꺼내자, 경호실장 내정자는 펄펄 뛰면서 행사를 취소해야 한다고 난리를 쳤지요. 그런데 곰곰이 내가 생각을 해보니까… 그건 결코 피한다고 피해질 문제가 아니었소. 나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시도, 비단 오늘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 그런데 그게 무서워서 피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 자리를 맡을 자격이 애초에 없는 사람이겠지. 어쩌면 그런 위험은,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나에게 던져 준 숙명일지도 모르는 일.

결론적으로 말하겠소.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걸고 내 일을 할 것이오.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반드시 통과시킬 것이오. 내가 목숨을 건 만큼,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의 통과를 위해서라도 나를 좀 옆에서 도와주시오. 보영이도 아마 하늘에서… 그런 아빠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겠소?"

"대통령님…"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목숨을 걸었다는 대통령의 말…. 그런 민혁의 오른 손을 잡으며, 대통령이 민혁을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 눈빛, 총격을 받고 좀 전에 깨어난 사람답지 않게… 신념으로 이글거리고 있다.

잠시 밖에 나가서 생각할 여유를 갖기 위해, 민혁이 병실 문을 나선다. 생각할 시간은 겨우 한 시간. 휴게실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창밖을 본다. 어둠이 더욱 깊어진 가운데… 하늘에서는 제법 굵은 눈발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민혁은 세월호 사건 며칠 전인 2014년 4월 13일, 딸아이와 마지막 약속을 하던 바로 그 순간들을 떠올린다.

아… 시간을 다시 그 때로 되돌릴 수는 없는가?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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