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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의 백미라 하는 타지마할! 샤 자한과 뭄타즈의 러브스토리를 들어보자.
▲ 제11일. 타지마할의 도시, 아그라에 들어가다. 인도 여행의 백미라 하는 타지마할! 샤 자한과 뭄타즈의 러브스토리를 들어보자.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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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위대한 작업

새벽 아그라에 진입하며 듬성듬성 기찻길 변에 줄지어 앉아 있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을 보았다. 오롯이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는 무념무상의 인도인들!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일까? 유심히 살펴보니, 그제야 그들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침 대변을 보는 인도들이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들은 정적 속에 앉아 있었다. 어떤 이는 이를 닦으며 일을 보았고, 어떤 이는 옆에 물동이를 놓고 일을 보았고, 여인들은 치마로 넓게 펴 가림막을 만들고 일을 보았다. 관광객 외국인이 기차 안에서 쳐다봐도 그들의 위대한 작업에는 어떤 방해도 될 수 없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그들은 태초의 배설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인도에서만 볼 수 있는 유쾌한 장면들!

'아~ 그럼 나도 그 위대한 작업에 동참해 볼까?' 나는 기차 안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 인도 기차는 칸 사이마다 세면대와 화장실이 있는데, 화장실은 예상 외로 깔끔한 편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스테인리스 변기와 그 옆에 물을 담는 작은 바가지가 비치되어 있을 뿐, 휴지는 없다.

쭈그려 앉아 일을 보면 그 배설물은 철로로 그대로 낙하됐다. 그런 다음 바가지에 물을 담아 인도식 뒤처리를 해야만 한다. 자연산 비데랄까? 비데 도구는 오른손인가? 왼손인가? 거창하게 인도 문화 기행이라 할지라도 차마 그런 관습까지 어떻게 따라 하겠는가? 다시 기차 출입문을 개방하고 양쪽 손잡이를 잡은 채 밖의 공기를 들이마시려는데, 바로 앞에 또 '위대한 작업'에 임하는 그분들이 계셨다. 내가 더 이상 민망하여 볼 수가 없었다.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 동행자에게 위대한 작업의 비사(秘辭)를 전해주었다.   
                
목적지인 아그라 칸트 역 바로 전 역에 잠시 내려 타지마할의 흔적을 찾았다. 누군가 옆에서 아그라 칸트 역은 몇 분이 남았고, 타지마할은 어느 쪽에 있는지 말을 건넸다. '아~ 친절한 인도인들!' 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그라는 인도 최악의 관광 도시지만, 호객꾼만 없으면 괜찮은 곳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화가 즐거워질 찰나 본색을 드러냈다. 아그라에서 택시를 빌리면 타지마할에서 아그라 성까지 주요 관광지를 모두 둘러볼 수 있다고 했다. 친절한 대화의 목적은 결국 '택시 렌트'였던 것이다.

낮 12시 20분, 혼잡한 아그라 칸트 역에 도착하며 처음 만난 것은 플랫폼까지 와서 호객을 하는 릭샤 왈라와 원숭이들이었다. 뒤로 줄줄이 따라 붙은 릭샤 왈라를 물리치고 밖으로 나왔다. 역 앞에는 프리 페이드(Free Paid) 택시와 릭샤 부스가 있었다.

프리 페이드는 인도를 방문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택시 기사와 릭샤 왈라들의 과도한 바가지를 막기 위한 인도 정부의 궁여지책이었다. 먼저 부스에서 구간별 정액으로 고정돼 있는 티켓을 산 후, 프리 페이드 릭샤 기사에게 현금이 아닌 티켓을 주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델리에도 프리 페이드 택시가 있었는데, 실제 프리 페이드 릭샤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경험했다.

새벽 아그라로 들어가며 인도인의 다채로운 삶을 보았다.
▲ 아그라로 들어가는 기차변 풍경 새벽 아그라로 들어가며 인도인의 다채로운 삶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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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 역의 방문에 호객꾼과 원숭이들이 환호하였다.
▲ 아그라 역과 샤자한 파크 아그라 역의 방문에 호객꾼과 원숭이들이 환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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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페이드 릭샤 티켓을 120루피에 끊고 타지간즈로 갔다. 바로 아그라의 방문 목적! 아니 인도 방문 목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서였다. 릭샤를 타고 가면서 릭샤 왈라가 왼쪽을 보라고 했다. 서쪽 출구 방향으로 타지마할의 하얀 지붕이 뭄타즈(Mumtaz)의 속살처럼 파란 하늘을 향해 살짝 드러나 있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오늘 묶을 숙소는 타지마할 동쪽 출구 바로 앞에 있는 쉼라 호텔이었다. 숙소를 고른 후 의례 절차인 방값 흥정이 시작됐다. 더블 룸에 엑스트라 패드를 넣고 1200RS를 불렀다. 이제 웬만한 흥정에는 끄떡도 않는 내성을 가진 터,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Expensive"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주인장은 1100RS를 불렀다.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때 불쑥 우리 중 누군가가 1000RS를 불렀다. 주인장의 해석 불가능한 미소, 그리고 나오는 말!

"Are you happy?"

순간 우리는 넋을 잃었다. 이틀 전 우다이푸르에서 만났던 LG 주재원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도인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 이렇게 깎으니 행복하냐?"

그의 비아냥거림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찜찜한 기분을 안고 숙소를 나왔다. 내일 타지마할과 아그라 포트를 볼 예정이었기에 오늘은 편안하게 근교를 유유자적하기로 했다. 타지간지 한복판에 있는 Jonas Place 식당에 들려 불고기덮밥과 양고기 커틀러를 먹었다.

인도의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한식을 쉽게 맛볼 수 있었다. 한식을 즐겨 먹을 수 있는 것은 편했지만, 그만큼 한국에 대한 향수는 옅어질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하고 타지마할 바로 뒤로 흐르는 야무나강으로 가기 위해 골목골목을 헤맸다. 결국 강을 찾지 못한 채 우리의 발길이 닿은 곳은 샤 자한 파크와 그 옆에 있는 타지마할 서쪽 출구였다.

타지마할 서문 앞으로 현지인과 외국인이 뒤섞여 긴 줄이 이어졌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인도인에게도 타지마할은 특별하고도 위대한 유적지였다. 게이트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훔쳐봤다. 티베트 승려도 있었고 전통 의상을 하고 온 가족도 있었고 노란 바지를 입고 문명물이 제대로 들은 예쁜 아가씨도 있었고 우리 주위에서 얼씬거리는 걸인 소년도 보았다. 타지마할 앞은 그야말로 다양한 종교와 문화권, 서구와 인도, 현대와 과거가 혼재하는 무지개 광장이었다.

야무나강을 찾지 못할 바에는 타지마할 일몰 뷰포인트로 가기로 하고 릭샤를 찾았다. 우리에게 다가온 뚝뚝이 운전사가 지도를 펼치더니 손으로 어느 한 곳을 찍으며 바로 이곳이 타지마할 일몰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그는 지도에 표시된 거리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그곳까지 가려면 다리를 돌아돌아 멀리멀리 가야 한다면서 300루피의 요금을 불렀다.

으아~ 또 게임 시작이군! 밀고 당기고 가는 척하다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결국 개인당 40루피씩 120루피로 합의를 봤다.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LG주재원은 이런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네고 쳐야죠!"

우리 중 누군가 "그럼 100루피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손님을 놓칠까 걱정이 되어 곧바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의 요구에 동의는 했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자기 뚝뚝이(세 바퀴로 달리는 개조된 릭샤)로 고개 숙인 채 뒤돌아가는 처량하고 의기소침한 뒷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20루피를 더 깎은 것이 자랑스럽기보다 우리가 해도 '너무 했다'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혹 저 의기소침도 그의 계획된 시나리오일까? 아닐 것이다. 결코 연기가 아닐 것이다. 장호도 그의 모습을 보고 찜찜했던지 나에게 "형, 그냥 줘"라고 했다. 내가 20루피를 더 준다고 하며, "Do you feel so good?" 물으니 좋다고 환히 웃었다.

뚝뚝이는 정말 조용하고 안락했다. 운전사의 느긋한 운전으로 불안에 떨 필요가 없었다. 평소 탔던 릭샤 속도의 1/2로 달렸고 앞차와의 간격이 멀어져도 절대 달라붙지 않았다. 누가 끼어들어도, 충돌 위험이 있어도 결코 경적을 누르는 일도 없었다. 이곳은 그 순간 인도가 아니었다.

도리어 우리가 '너무 늦게 가는 게 아니야? 왜 그렇게 양보를 해 주는 거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아스팔트 도로 공사로 차로에 차, 사이클, 오토릭샤가 모두 뒤엉켜 버렸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한 릭샤에 세 명이 타고 있는 것은 우리뿐이었다. 눈에 띄는 모든 릭샤는 최소 5명에서 10여 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애, 어른이 뒤섞여 몇몇은 문밖으로 튕겨 나와 손잡이만 잡고 위험천만하게 걸쳐 있었다.

홀연 멀뚱멀뚱 우리를 보고 있는 그들의 눈과 마주쳤다. 셋이서 여유롭게 릭샤를 타고 가는 우리를 보고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 이 민망한 마주침! 도대체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하나?' 시선을 둘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목표물을 발견했다. 거리의 원숭이, 소, 멧돼지, 개, 다람쥐, 염소. 인도인들은 우리를 동물처럼 봤고, 우리는 진짜 동물을 보고 있었다. 사유 능력이 없는 동물과 달리, 우리들은 외부의 반응을 해석하는 '사유하는 존재'인 것이 더 비참할 뿐이었다.

죽은 자의 무덤 위에 산자의 숨소리가

타지마할 입구부터 각양각색의 사람으로 북적였다.
▲ 타지마할 입구의 풍경 타지마할 입구부터 각양각색의 사람으로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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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타지마할이 보였다. 가슴이 콩닥콩닥!
▲ 타지마할과의 첫 대면 저 멀리 타지마할이 보였다. 가슴이 콩닥콩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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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도착해 개인당 100RS의 입장료를 내고 마탑 바흐라는 정원에 들어갔다. 여긴 인도 속의 인도가 아닌듯 깔끔하게 정돈된 곳이었다. 문득 인공 정원의 표본인 베르사이유 궁전이 생각났다. 유유히 정원을 거닐고 있는데 갑자기 장호가 "형, 와~우~ 저것 좀 봐!"하며 그 큰 덩치에 요란을 떨었다. 평소 장호의 장난기를 잘 알고 있기에 지레 '원숭이겠지' 짐작을 하고 성의 없이 쳐다보았다.

장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곳을 보자마자 나는 까무러쳤다. 바로 그것이 있었다. 뭄타즈의 묘! 타지마할이었다. 인도 여행을 결심하면서 내 스마트폰 바탕 화면을 타지마할로 설정해 놓았다. 스마트폰을 열 때마다 하얀 대리석 건물인 타지마할이 위 아래로 움직이며 살랑살랑 나를 유혹했다. 지금 그 타지마할이 강 건너편 바로 내 눈앞에 있는 것이었다.

법정에 회부된 프리네를 보고 있는 배심원의 기분이랄까? 프리네는 그리스의 최고 미녀로 추앙받는 창부였다. 그녀는 불경죄를 저질러 법정에 회부되고 당대 최고의 변호사인 히페리데스가 변호를 맡게 되었다. 드디어 재판이 열렸다. 히페리데스의 장황하면서도 논리적인 변론이 이어졌지만, 뜻밖에도 상황은 불리하게 전개됐다.

그러자 히페리데스는 회심의 반전을 일으켰다. 바로 히페리데스가 많은 배심원단 앞에서 프리네를 감싸고 있던 옷을 훌러덩 뒤로 벗겨낸 것이었다. 프리네의 알몸이 법정 한 가운데 그대로 노출됐다. 그 순간 배심원단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름다운 육체에 매료되어 눈은 뒤집히고 정욕이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판결한다.

"아름다움은 무죄이다."

아름다운 육체를 보고 욕정이 타오르지 않을 이 누가 있으랴? 프리네를 감싼 천을 걷어내듯, 고개를 돌린 내 앞에 타지마할의 관능미 넘치는 복숭아 빛 속살이 드러났다.

"타지마할이여, 그대 또한 무죄이다."

아그라의 도로가 릭샤, 뚝뚝이, 택시, 트럭 등으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반갑게 웃어주고, 품어주었다.
▲ 아그라의 거리 풍경 아그라의 도로가 릭샤, 뚝뚝이, 택시, 트럭 등으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반갑게 웃어주고, 품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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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볼 때 첫인상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부드러운 힘에, 세월 깊이 쌓인 지혜와 흔적에 젖어드는 감동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또한 어떤 것은 첫눈에 반해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것이 있다. 하지만 간혹 정신을 차렸을 때 내가 처음 보았던 전율은 사라지고 그 단점들만 보이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유적이나 예술 작품 등의 사물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젊었을 때는 첫눈에 반할 사람을 찾았던 것 같다.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하지만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 나는 가까이에서 희로애락을 공유하며 그의 은은한 향기에 취하고 삶을 성찰하는 깊이에 놀라고 다른 이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에 감동받는 만남을 그리워한다. 아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일 것이다. 학교의 끈도 아니고, 혈연의 끈도 아니고, 필요의 끈도 아니고, 출세의 끈도 아닌 사람의 끈으로 나를 칭칭 동여맨 사람들! 나는 참 복 받은 사람이다. 그들이 곁에 있기에 나는 항상 외로워하고 그리워한다.

타지마할은 어떨까? 완전히 첫 눈에 넋을 잃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타지마할에 나의 눈과 가슴 또한 불가사의하게 요동쳤다. 히말라야 5500m에서 오금을 저리게 했던 에베레스트와의 대면과는 전혀 다른 전율이 느껴졌다. 샤 자한의 둘째 부인 뭄타즈가 살고 있는 사후 궁전!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마주하며 이토록 충격적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냥 망각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내 코는 마비됐고 내 입은 닫혔으며 내 귀는 막혀버렸다. 오직 하나의 창문만 열려 그 통로를 통해 타지마할을 직시하고 있었다. 사위(四圍)가 침묵하고 심장의 울림만이 정적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밀폐됐던 감각의 문이 다시 열리고 나는 천천히 타지마할을 향해 걸어갔다.

대기가 너무 안 좋아 타지마할의 모습은 선명하지 않았다. 해 질 녘 일몰에 벌겋게 타오르는 타지마할도 없었다. 간혹 선명한 LCD TV가 보고도 싶지 않은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배우들의 모공에서부터 주름 하나하나까지 보는 것이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희미하게 보이는 타지마할 앞에서 타지마할을 상상했다.
▲ 아무르 강 너머에서 마주한 타지마할 희미하게 보이는 타지마할 앞에서 타지마할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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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봄(seeing)'이 중요한 시대를 넘어 '섞임'의 시대가 온 것일까?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TV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TV와 합일을 이루는 사실감과 입체감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화질은 좋아지고 3D 기술로 나와 영상이, 현실과 가상이 하나로 뒤섞였다. 하지만 섞임은 곧 순수함을 잃게 만드는 법! 영상을 보며 곁에 있는 사람과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고, 개똥 철학자가 되어 해석하고, 하얀 줄이 그어지며 깜박거리는 TV 화면에 불평불만을 하던 잔재미와 소소한 즐거움들은 사라졌다.

채널을 돌리다 그나마 볼 만한 정도의 깨끗한 화면이라도 찾으면 그것으로 행복의 충만함이 넘쳤던 스릴도 없어졌고, 지직거리는 소음이 뒤섞인 스피커 소리에서 내가 필요로 하는 음성만을 걸러내는 집중력도 사라졌다. 내가 보고 있는 타지마할은 LCD가 아니라 구형 TV였다. 그리고 나는 이 뿌연 화면에서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세심히 찾기 시작했다.

모든 감각이 예민하게 깨어났다. 보이지 않는 곳은 나의 상상력과 편견에 의존했다. 그래도 좋았다. 타지마할은 그저 타지마할이고 내 안의 그릇에 담기는 것은 온전히 나의 타지마할이었기 때문이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상념들이 교차했다. 너저분하게 낡은 사고의 조각들을 집어던지고 나는 타지마할과 마주앉아 있는 이 순간을 즐겼다.  

강을 경계로 성과 속의 세계가 나뉘어 있었다. 우리 앞에는 강가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었고 그곳을 지키는 군인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접근할라치면 호루라기를 시끄럽게 불어댔다. 철조망 안에서는 타지마할의 성스러운 전경에 걸인들이 어깨에 땔감을 이고 지나갔다.

사진이라도 찍으려 하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사진 값으로 10RS를 요구했다. 하얀 타지마할과 그 앞으로 지나가는 걸인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제목은 성과 속의 교차! 금상첨화? 비단 위에 꽃을 수놓듯, 죽은 뭄타즈의 무덤을 배경으로 그의 백성인 걸인의 모습이 겹쳤다. 사상첨생(死上添生)?죽은 자의 무덤 위에 산자의 거친 숨소리가 울렸다.

"I hate my wife"

우리는 타고 왔던 뚝뚝이에 다시 올라타 샤 자한 파크로 되돌아왔다. 돌아오는 도중에 우리는 이 뚝뚝이의 숨겨졌던 비밀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뚝뚝이 운전사의 여유와 배려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나다' 올 때 마냥 돌아갈 때도 여전히 뚝뚝이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팽이처럼 굴러갔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걸? 릭샤가 도로의 움푹 패인 부분을 지나면서 덜컹하고 충격을 받자 쿵하며 뚝뚝이의 지붕이 우리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뚝뚝이 좌석 주위에 있는 기둥과 지붕을 지탱하는 기둥이 엇갈리며 부러져버렸다. 이 뚝뚝이 운전사는 여유롭게 운전한 것이 아니라 언제 지붕이 무너질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조심스럽게 운전한 것이었다. 길가에서 응급 처방을 받은 이후 우리 머리로 또 한 번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성스러운 뭄타즈의 묘 앞으로 나무를 이고 가는 걸인의 모습!
▲ 성과 속의 경계선 성스러운 뭄타즈의 묘 앞으로 나무를 이고 가는 걸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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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사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고 당황스러운 어떤 모션도 취하지 않았다. 부동심(不動心)의 평정 상태였다. 우린 그가 듣게 되면 민망할까 걱정되어 서로 마주한 채 침묵의 웃음을 흘렸다. 키득키득. 한 손으로는 머리를, 한 손으로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뚝뚝이 기둥을 꽉 움켜쥔 채.

무사히 타지마할 서문에 도착해 트리트(Treat) 식당으로 갔다. 후덕하게 생긴 주인장과 잔심부름을 하는 꼬마 아이, 이렇게 둘이 식당을 지키고 있었다. 입구 유리창에 붙어 있는 A4종이에 한글로 쓰인 다양한 홍보 문구들이 눈에 띄었다.

그 중 하나는 오늘 우리가 점심을 먹었던 '조니트 플레이트보다 맛있고 인도의 진한 향신료 맛도 안 나는 식당이다'라고 써 놓았다. 이 식당과 조니트 플레이트 식당은 기껏해야 20m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가까운 이웃을 상대로 네거티브 전략을 쓰다니, 주인장의 세일즈 방식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들어온 이상 먹고 가는 수밖에.

우리는 라면 두 개와 불고기 덮밥, 맥주 2병을 주문했다. 주문 후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됐다. 불고기 덮밥에 쓰일 고기를 사기 위해 주인장은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맥주를 사기 위해 일하는 아이가 달려 나갔다. 이 가게의 정체는 뭐지? 혹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영(靈)의 세상으로 통하는 출구인가? 조만간 우린 돼지가 변해 파리채로 볼때기를 맞을 운명에 처할 지도 모르리라. 주인장은 음식이 나온 다음부터 우리 식탁 바로 옆의 기둥에 팔을 괸 채 말을 걸었다.

"맛이 있느냐?"
"나 혼자 책을 보고 배운 한국 음식이다."
"I hate my wife. 아내는 내가 일을 하고 들어가도 매일 떽떽거린다. 그래서 밉다. 하하하~"

그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먹는 내내 정색 유머의 신공을 내뿜었다. 특히 병오 형이 이 집의 불고기 덮밥을 마음에 들어 했기에 내일 또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장호가 식당 음식과 주인장의 정색 유머 매력에 이끌렸는지 A4지에 '방문기'를 써서 입구 유리창에 붙였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이 식당의 이름은 이제부터 'I hate my wife'이다. 유쾌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온 후 내일 아침 일찍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잠을 청했다.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중고등학교 현직 교사 세 명이 2014년 1월, 한 달간 인도를 여행한 기록입니다. 델리에서 자이살메르, 우다이뿌르, 조드뿌르, 아그라, 바라나시, 맥그로드 간지 등 인도 중북부를 방문했습니다. 단순히 '관광'이 아니라 '사색과 반추, 철학'이 있는 '여행'에 관한 것입니다.



태그:#인도배낭, #아그라, #타지마할,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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