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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출근한 지 3개월이 지났다. 월급이 제 때 나오지 않아 첫 월급을 한 달 밀려서 받았다. 두 번째 월급은 세 달이 거의 다 되어 반도 못 되는 월급을 받고 다시 또 보름이 지나서 반이 조금 못되는 월급을 받았다. 3개월 보름이 지나도록 두 달 월급을 다 못 받은 것이다.

쉼터를 운영하면서 외국인 여성이주노동자들이 한 달, 혹은 보름 혹은 일주일, 일 값을 못 받는다는 말을 듣고 정말 이건 아니다 라는 말로 혼자 답답함을 토로해왔다. 그런데 이제 아내의 일이 되었다. 주5일 40시간 근무를 하면 최소한으로 받아야 할 급여는 노동법상 120만 원이 된다. 그런데 그렇게 법적인 것에 맞추지 않더라도 제때 월급을 받는다는 것은 일하는 사람의 작은 보람 중 하나다. 아쉽게도 아내는 아직 그런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일 해놓고 월급 못 받을 일은 없다는 믿음으로 그냥 늦는 월급도 이해하고 일하자고 서로 격려하기 시작했다. 속이 타들어가듯 답답한 마음도 있지만 그런 것조차 다 잊기로 했다. 진정 도를 하는 사람은 산중에서 도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저작거리에서 도를 할 줄 알아야 진정 도인이라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제 우리 부부는 도를 행하는 수준으로 넓은 이해심을 길러내고 있는 듯도 하다. 나는 아내에게 조금은 미안하고 창피스럽기까지 하다. 네팔인들에게 부자나라로 알려진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파상 쉐르파는 세계최고봉 사가르마타 기슭의 솔루쿰부에서 온 여성이주노동자다. 그녀가 쉼터에 온 후 수원 시내를 여행할 때 모습이다. 지금은 사진 속 주인공 파상쉐르파와 더누자는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 솔루쿰부에서 온 여성이주노동자 파상 쉐르파는 세계최고봉 사가르마타 기슭의 솔루쿰부에서 온 여성이주노동자다. 그녀가 쉼터에 온 후 수원 시내를 여행할 때 모습이다. 지금은 사진 속 주인공 파상쉐르파와 더누자는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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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에 온 여성들은 체불임금에 대해 구제의 방법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에게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보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의 일이라고 이런 저런 군색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산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해나가는 과정은 혹독한 느낌을 수반한다. 아내에게도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도 그런 시련을 겪지 않고 살아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기대일까?

며칠 전 아내는 네팔인 이주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네팔에 송고했다. 기사가 게재된 후로 여기저기서 아내에게 좋은 기사 잘 보았다는 메시지가 속속 도착했다. 낮에 올린 기사인데 벌써 500회 팔로잉이 되었고 트윗도 200건이 넘는다고 했다. 지금 해당기사는 3400명이 넘는 사람이 공유를 했다.

그 기사는 네팔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한국에 온 한 이주노동자여성의 잔혹사를 담고 있다. 우리네 초등학교와 같은 수준정도 공부만 한 여성이 한국어능력 시험을 치르고 와서 겪은 고통스런 일에 대한 경험을 기사로 작성한 것이다. 아내와 나는 네팔과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서로 자국의 온라인 매체에 기사를 올리고 있다. 우리 부부는 서로 가감 없이 서로를 잘 알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취지와 다르게 때로 서로의 얼굴이 불거질만한 불편한 일들이 있어 안타깝다. 하지만 그 불편을 우리 부부는 또 나서서 해결하는 위치에 있고 보면 서로 참 잘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고생스런 일들을 겪고 난 후 쉼터에서 만난 다른 친구와 같은 사업장에 취직이 되었다. 나는 먼저 두 사람의 이주노동자를 사업장까지 안내했고 업체 사장님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 두 이주여성노동자가 일하게 된 사업장 고생스런 일들을 겪고 난 후 쉼터에서 만난 다른 친구와 같은 사업장에 취직이 되었다. 나는 먼저 두 사람의 이주노동자를 사업장까지 안내했고 업체 사장님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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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성은 얼마 전 쉼터에 와서 3주를 머물렀다. 그 여성은 네팔에서 왔지만 서로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쉼터에 와서 인연이 된 다른 두 사람과 같은 직장으로 일하러 갔다. 그 여성이 우리 부부에게 한국 사람은 다 나쁜 사람만 있는 줄 알았더니 형부 같은 좋은 사람도 있냐고 해서 서로 씁쓸한 웃음을 크게 웃었던 적이 있다.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것은 그 여성이 몸이 아파 일을 하러 가지 못하는 어느 날 밥도 한 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최근 한 지역의 도지사가 아이들 밥을 주느냐? 마느냐? 그런 문제로 정치인생을 걸고 싸우는 것을 보면서도 매우 불쾌한 기분이었는데 아무리 힘들고 불편해도 최소한의 사람인 도리는 하고 살자고 말하고 싶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로 해야할 최소한의 일 중에 하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것이란 것이 나의 믿음이다. 인사하는 것, 사람인 이유로 자신과 인연인 사람을 굶기지 않는 것은 지켜졌으면 한다.

그런 것들을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람에 대해 정직해지는 태도라는 생각이다. 일을 시키고 급여를 제때 주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고 아이들에게 밥을 주지 않으면서 정치적 논리를 가져다 대고 복잡한 미사여구로 아이들을 따돌리는 행태는 어른들이 보여줄 태도도 아니고 인간으로서 보여줄 태도도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도 최저임금을 악용하는 편법은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최저임금을 정하면 뭐하는가? 정부가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해서 24시간 격일 근무자에게 점심시간, 저녁식사 시간을 휴게시간이라고 명명해두고 급여를 지불하지 않는 편법을 동원해서 임금을 착취하고 있는 현실을 어찌할까? 전국의 아파트단지에 경비와 기전실 근무자들에게는 최저임금이 상승하며 월급은 그대로인 상태가 고착되어 가고 있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나라인가?

따뜻한 봄날이 왔다. 우리네 마음속에도 인간의 온기가 더하여 꽃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밝혀주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게재합니다.



태그:#파상 쉐르파, #이주여성노동자의 잔혹사, #아내 먼주 구릉, #체불임금, 최저임금, #사람의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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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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