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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작가 박물관의 외관. 문학의 나라라는 명성과는 달리 박물관의 외관은 소박하다.
 더블린 작가 박물관의 외관. 문학의 나라라는 명성과는 달리 박물관의 외관은 소박하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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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아일랜드로 이사 오기 전까지 이곳이 '문학'으로 유명한 나라라는 사실을 몰랐다. 서점을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책을 읽는 것은 즐겨 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성향 탓에 아이리시 문학가들이 누구인지 알게 된 것은 이곳에 이사를 온 이후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환경이 사람을 변화하게 하는 걸까? 문학에 별 관심이 없던 나도 아일랜드에 살게 되니 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아이리시 작가들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작은 호기심 덕분에 나는 더블린 작가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었다.

유럽의 문화 도시로 선정, 그 이후

더블린 작가 박물관은 1991년 더블린이 유럽의 문화 도시(European Capital of Culture)로 선정되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박물관이다. 작가 박물관은 외부의 명성과는 달리 박물관 자체의 규모는 아주 소박하고 아담하다.

더블린의 중심 거리인 오코넬 스트릿(O'Connell St.)을 지나 프레드릭 스트릿(Frederick St. N)을 따라 올라가면 뾰족한 두 개의 첨탑을 가진 교회 건물이 보인다. 그 옆으로 붉은 벽돌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첫 번째 건물이 바로 더블린 작가 박물관이다. 원래는 일반 주택이었다가 더블린 시로 넘어가면서 현재의 작가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박물관 로비에 걸려있던 아이리시 작가들의 초상화. 첫째줄에 제임스 조이스와 사무엘 버켓이 있고 둘째줄에 윌리암 버틀러 예이츠, 브렌던 비언,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 쇼 등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박물관 로비에 걸려있던 아이리시 작가들의 초상화. 첫째줄에 제임스 조이스와 사무엘 버켓이 있고 둘째줄에 윌리암 버틀러 예이츠, 브렌던 비언,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 쇼 등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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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에서 아이리시 작가들을 뺀다면 '팥 없는 찐빵'이 될 만큼, 영국의 지배하에 있던 시절에도 아이리시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자신들의 기량을 꾸준히 발휘했다. 아일랜드 문학이 가장 꽃피운 시기는 오스카 와일드, 버나드 쇼, 예이츠 등의 작가들이 활동했던 19세기 후반일 것이다.  

버나드 쇼는 오스카 와일드보다 2살이 어렸고 예이츠보다는 6살이 많았다. 비슷한 나이 대를 가진 작가들은 동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며 작품을 통해 아일랜드를 정복했다는 긍지를 가지고 영문학사에 명성을 날렸다.

오스카 와일드는 천재성, 발랄한 기질,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렸음에도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동성 연애 사건으로 추방되기까지 한다. '남자는 늘 여자의 첫 번째 애인이 되고 싶어 하고 여자는 남자의 마지막 애인이 되고 싶어 한다'는 그의 어록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오르내리는 말 중 하나다.

아일랜드에는 4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윌리엄 버틀러(William Butler Yeats, 1923년),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925년), 사무엘 버켓(Samuel Beckett,1969년),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1955년))이 있고 수상자 외에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들이 많다. <더블린 사람들> <율리시스>의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젊은 날의 초상>의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걸리버 여행기>의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 <드라큘라>의 브람 스토커(Bram Stoker)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가 작가 박물관?

작가 박물관의 메인 로비 모습. 기존의 주택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이라 로비의 규모가 상당히 작다.
1층 전시실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작가 박물관의 메인 로비 모습. 기존의 주택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이라 로비의 규모가 상당히 작다. 1층 전시실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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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주택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현관문을 들어서면 '녹색의 나라' 답게 초록색 벽과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창문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현관 앞의 작은 복도는 로비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눈으로 보기에도 오래돼 보이는 두 개의 책상과 가구들이 '리셉션 데스크'라는 명목으로 로비 공간을 장식하고 있었다.

녹색의 벽면에는 더블린 전경이 보이는 사진을 비롯해 아일랜드의 문학에 일조한 작가들의 초상화들이 걸려 있었다. 너무 유명해 눈에 익은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문학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은 내가 알기엔 역부족인 작가들의 초상화도 걸려 있었다.

박물관의 구조는 1, 2층으로 돼 있지만 1층에 주요 전시관을 비롯, 기념품 숍과 카페가 마련되어 있고 2층은 시나 소설 강연을 할 수 있는 넓은 강당과 근대 여류 시인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1층 전시실은 박물관이라기보다는 문학에 조예가 깊은 어느 개인의 소장품을 전시해 놓은 방과 같은 느낌이었다. 이곳에는 이 건물이 박물관으로 바뀌게 된 유래부터, 하프 연주를 하던 음유 시인들의 이야기로 전시가 시작된다. 아일랜드 초기 작가들, 18세기 문학의 특징, 19세기 초기의 낭만주의 문학, 아이리시 문학의 르네상스 시대 등 아일랜드 문학의 전반에 걸친 자세한 내용들이 전시돼 있었다.

2층 강당의 모습. 이곳에서는 시나 소설을 발표하는 정기 강연이 열리고 있다. 박물관 곳곳에서 18세기 조지안 시대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2층 강당의 모습. 이곳에서는 시나 소설을 발표하는 정기 강연이 열리고 있다. 박물관 곳곳에서 18세기 조지안 시대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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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어로 번역된 최초의 구약 성경, 여러 문장 부호도 찍을 수 있었던 100년 넘은 낡은 타자기, 작가들이 사용하던 소품들, 파란색 표지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초판본, 갖가지 버전의 드라큘라, 예이츠의 전시품들과 그가 남긴 삽화들, 오랫동안 예이츠가 흠모했던 모드 곤의 사진까지…. 갖가지 진귀한 보물을 넣어 놓은 아주 오래된 보물 상자처럼 1층 전시실은 아일랜드 문학의 역사를 소박하지만 담담히 보여주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건물의 벽면은 개인 주택처럼 작가들의 초상화와 작품들을 다닥 다닥 붙여 놓았다. 2층 전시실은 시나 소설 강연을 할 수 있는 넓은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한쪽 방에만 근대 여류 시인에 대한 소개의 그녀의 책과 소품 등이 전시돼 있다. 2층의 경우 18세기 조지안 시대(Georgian age)의 양식을 천장, 벽, 문, 가구 등을 통해서 관찰해볼 수 있어 작가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장식 박물관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소박하지만 깊은 감동, 하지만 아쉬움도 많았던 곳

더블린 작가 박물관은 아이리시 문학가의 명성에 비해 박물관의 규모나 관리가 아쉬운 곳이었다. 기존의 의미 있는 건물을 그대로 박물관으로 사용해 박물관 안에서 18세기 건축 양식도 함께 볼 수 있게 만든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엄청난 작가들의 많은 소장품을 작은 공간에 다 넣자니 자리가 부족해 단순히 호기심으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겐 그들의 입장료가 아까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빽빽이 책으로 둘러싸인 작은 골동품 서점에 들어갔을 때 그 공간이 내게 가져다주는 벅찬 감동은 있지만,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망설이다 이내 나오게 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2층 강연장에는 더블리너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사용하던 피아노가 한편에 놓여져 있었다.
 2층 강연장에는 더블리너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사용하던 피아노가 한편에 놓여져 있었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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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학가들을 한 자리에서 만난다는 것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엄청난 감동과 희열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몇몇 (문학에 조예가 있어 보이는) 여행자들은 낡고 오래된 작가들의 책을 유심히 보기도 했고, 그들이 쓰던 물건들을 보면서 끊임없이 토론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어 작가 박물관은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단언컨대 '문학에 특별히 관심은 없지만 유명하다니까 가봐야지'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곳을 과감히 무시하길 바란다. 그러기에는 당신의 돈과 시간이 너무 아깝고 이곳 말고도 더블린에는 당신이 가 봐야 할 곳이 너무 많기에!

덧붙이는 글 | Dublin Writer's Museum(더블린 작가 박물관)

*website:
http://www.writersmuseum.com/

* Ticket Prices
Adults: €7.50 (Group rates €6.50)
Child: €4.70 (Group rates €3.70)
Family(2 Adults & 3 Children under 12): €18.00



태그:#더블린, #더블린작가박물관, #아일랜드문학, #아이리쉬작가, #제임스조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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