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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울아버지, 구이장님 부부는 서울로 나들이를 오셨습니다(관련기사: '싸나이' 울 아부지도 이장 관두실 때는... ). 부부는 늘 그렇듯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이른 모닝커피 한잔으로 몸에 시동을 거십니다. 앞마당을 쓴 후에 뒷마당의 개와 염소 밥까지 두둑히 챙겨 넣어 줘 하루종일 그 녀석들 배 고프지 않게 챙기고는, 아침밥 한공기 뚝딱 비우시는 것으로 외출 준비를 마무리 하십니다. 그 뒤엔 가는 빗으로 말끔하게 머리까지 빗어내린 아버지의 조르기가 시작됩니다.

"빨리 나와, 왜 안나와? 빨리 가자. 나와라!"

이렇게 재촉하기 시작하시면 어머니는 바쁜와중에도 조르는 아버지 보다 훨씬 큰 목소리로 나무라듯 답하십니다.

"아, 그만좀. 본인은 해주는 밥만 먹음 그만이지만, 난 할것들이 많다고요!"

처음 보는 사람은 두분이 싸움이라도 난 게 아닌가 하겠지만, 두분에겐 익숙한 외출준비입니다. 아침 설겆이에 집안정리, 그리고 얼굴에 이것저것 좀 바르고 나가야 한다는 어머니의 준비가 거의 다 되어갈 무렵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문밖으로 이미 나서신 아버지가 또 한 번 외치십니다.

"빨리 빨리, 안 그럼 나 혼자 간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한 번도 혼자 출발 하시는 걸 본적이 없는데도 어머닌 이젠 못이긴척 져드리고 싶으신 지 아버지의 협박 아닌 협박에 장단 맞춰 신도 못신고 따라 나서십니다. 질질 끌리는 신발 속에 뒤꿈치를 우겨 넣으시는 어머니니는 말합니다

"아 나가잖아요. 왜 이렇게 애들처럼 서두르는지. 고만 좀 떠들라구요!"

이렇게 구이장 부부의 나들이가 시작됩니다. 아니, 무슨 50년도 넘게 함께 산 부부가 이렇게 한결같이 외출할때면 서로 목청을 높이시는지. 여전히 미스테리입니다. 하지만 여하튼 두분은 궁시렁 궁시렁 하시면서도 어디를 가시던 꼭 함께하십니다. 각자 정기검진차 병원에 가실때도 혼자 후딱 다녀오시면 될 것을 아침내내 정신을 쏙 빼는 외출준비를 한 후 함께 집을 나서십니다.

지난주 그렇게 도착한 곳은 바로 한의원입니다. 한달에 한두번은 꼭 찾는 서울에 있는 한의원. 부부가 동네 한의원이 아닌 이곳을 찾는 이유는 주말에 콧바람도 쏘고, 침도 맞고, 또 손녀들까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미 먼저 온 사람들로 제법 북적거립니다. 서둘러 접수를 한 후에 기다리다 먼저 어머니가 들어가고 아버지는 나중 순서를 위해 기다리는데 새로 왔는지 예쁘장하게 생긴 간호사 아가씨가 자꾸만 아버지 쪽을 힐끔거리며 쳐다봤습니다. '저 아가씨 왜 그러지?'라고 의문을 갖으려는 찰라 그 아가씨의 한마디가 날라왔습니다.

"할아버지, 왜 아까부터 절 자꾸만 쳐다보세요?"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은듯 느껴지는 물음에 '어이구, 이건 또 뭐야? 울 아부지도 남자라고 예쁘장한 저 간호사가 눈에 들어오신건가?' 난처해하며 보던 잡지를 내려 놓고 아버지 옆구리를 쿡 건드리며  "아부지? 왜 그래요?" 라고 묻자, 아버지는 벌게진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마디 하십니다.

"거 간호사 양반, 순서로 보면 내가 먼저 왔는데 왜 자꾸만 딴사람을 들여보내는거요?"

'내 참고 있었는데 잘 물었소'라고 대답이라도 하듯 소리치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회사다닐적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연락해서 얼굴이라도 볼까하며 유난히 서두르셨습니다. 그래서 한의원 진료도 보기 전부터 그 아저씨에게 일찍 전화를 걸어볼까 하는걸 진료나 끝나면 걸라는 아내의 말에 간신히 참고 계셨습니다. 사람이 많은 한의원에서 새로온 간호사가 순서를 잘못 알고 다른 사람들을 먼저 들여보내고 있는 것을 한사람, 두사람, 이렇게 세어보다가 내 이름은 언제 부르나해서 그 아가씨 얼굴도 빤히 쳐다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뭐요? 젊은 아가씨에게 소리한번 지르시려나 보다 하며 고개 푹 숙이고 있는 그때, 다행히도 한의원에서 자주 아버지를 뵙던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간호사가 웃으며 다가와

"이제야 할아버지 순서가 되었네요. 너무 많이 기다리셔서 힘드셨죠? 그동안 어디 많이 불편하신곳은 없으셨어요? 저희 막내가 아버님을 잘 못알아뵜어요"라며 다정하게 아버지를 진료실로 모시고 들어갔습니다. 진료를 먼저 보고 나오신 어머니에게 장남삼아 좀전의 일을 전해드렸습니다.

"아부지가 젊은 간호사 아가씨가 예뻐 자꾸만 쳐다보다 그 아가씨가 아부지한테 화냈네."  

그러자 어머니는 아버지가 나오시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 하시며 웃으십니다.

"아까 아가씨 얼굴 쳐다보다 들켰다며? 아이구 이 양반아 살짝살짝 쳐다봐야 안걸리지"

침 맞고 간신히 풀린 화 다시 나게 한다고 투덜대는 아부지, 어머니는 오던지 말던지 또 먼저 한의원을 나서셨습니다. 뒤에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으며 골난 아버지를 뒤따라가며 부르는 어머니, 아침일찍부터 시작한 두분의 주말 나들이 반나절이 그렇게 뚝딱 지나갔습니다.   


태그:#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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