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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각각 나온 과거사 관련 법적 판단을 두고 과거사 피해자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두 최고 사법기관이 살펴본 사건들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박정희 정부 시절 만들어진 법령과 연관 있었다.

웃은 쪽은 헌재에 간 배옥병씨다. 1982년 그는 옛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아래 국가보위법) 위반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1971년 만들어진 이 법이 '국가비상사태에선 근로자의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행사는 주무관청의 조정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정한 내용을 어겼다며 징역 1년 6개월에 처해졌던 배씨는 2012년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리고 유죄판결의 근거인 국가보위법 9조와 11조 2항의 위헌법률심판을 제청 신청했다. 재판부는 배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지난해 3월 13일 이 조항들을 헌재로 보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헌법재판소.
 서울 종로구에 있는 헌법재판소.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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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헌재 전원재판부는 만장일치로 "국가보위법 11조 2항 중 9조 1항에 관한 부분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사실상 전면 부정하는 국가보위법 9조 1항은 헌법에 어긋나므로 그 처벌조항 역시 위헌이라는 얘기였다.

헌재는 국가보위법 자체의 위헌성도 강조했다. 이 법의 핵심은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생기거나 사회의 질서를 유지해야 할 때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고 정한 대목이다.

그런데 헌법은 대통령이 자연재해나 경제위기, 전쟁 중에 한해서 긴급재정경제처분·명령권, 긴급명령권, 계엄선포권 등 국가긴급권을 발동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헌재는 국가보위법의 국가비상사태 선포권은 이 요건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데다, 제정 당시 상황을 따져 봐도 "초헌법적 국가긴급권"을 만들 이유가 없다고 했다.

헌재와 대법원 사이에서 희비 엇갈린 사람들

반면 최문규씨는 웃지 못했다. 같은 날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은 그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1978년 6월 최씨는 친구에게 유신 체제를 비판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 끌려가 영장 없이 20여 일간 갇혀있었다. 2011년 손해배상소송이 시작되자 '피고 대한민국'은 최씨의 불법구금은 대통령 긴급조치 9호에 근거해 당시 합법이었으므로 배상책임은 없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최씨의 청구 자체를 기각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대법원의 긴급조치 위헌 판결을 근거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항소심 판결의 핵심은 긴급조치의 내용이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 자체가 위헌이라는 대목이다. 재판부(대전지방법원 민사합의2부·재판장 심준보 부장판사)은 "당시 대통령은 긴급조치 9호의 내용이 헌법에 명백히 위반임에도 긴급조치 9호를 발령했다"며 "고의 내지 과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즉 긴급조치 발령 자체가 잘못이라며 재판부는 국가가 최씨에게 2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26일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했다. 긴급조치가 나중에 위헌으로 판명나긴 했지만 1970년대 유신헌법에 근거한 긴급조치권 행사는 문제가 없다고 한 것이다. 대법원은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라며 "이 일은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국민 개개인의 피해를 국가가 배상해야 할 책임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다시 역행하는 대법원의 과거사 판결

서울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 대심판정.
 서울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 대심판정.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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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긴급조치 변호인단의 조영선 변호사는 헌재의 국가보위법 위헌 결정은 예상했던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 지난 1994년 국가보위법의 또 다른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하며 이 법의 문제점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반면 대법원 판결을 두고는 조 변호사는 "경박스럽다"고 혹평했다.

그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대법원은 이미 긴급조치가 현재는 물론 유신헌법 기준으로도 위헌이라고 했으면서도 '긴급조치권 행사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며 "이건 논리가 아니라 정치적 결단"이라고 비판했다.

또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면 아예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자들을 일괄보상해야 하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있는 정치 현실에서 가능하겠냐"며 "대법원이 더 이상 (긴급조치 피해자들에게) 배상하지 말자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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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법원, #헌재, #과거사, #긴급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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