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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로 발견된 아내, 남편은 오열한다. 살해한 사람은 누구일까.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살인범죄에서는 가끔씩 반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판결 대 판결' 16번째는 한국과 미국에서 발생한 아내 살인사건이다. 

[판결①] 한국 아내 살인 사건, 범인은 가까운 곳에

"경찰이죠? 여기 사람이 죽었어요."

2013년 9월 주택가에서 사망사건이 발생해 경찰에 접수되었다. 경찰이 출동해보니 숨진 사람은 30대 여성 이하은(가명)씨였다. 방바닥에 쓰려져 숨진 이씨는 누군가 목을 조른 듯 손자국이 나 있었고 하의는 벗겨져 있었다. 방바닥에는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 2개가 떨어져 있었다. 돌이 갓 지난 딸은 엄마의 죽음을 알 리 없었다. 배가 고팠는지 연신 엄마의 젖을 빨고 있었다.

이씨의 공식 사인은 복부손상 및 경부압박 질식사로 밝혀졌다. 누군가 심하게 때리고 짓밟은 뒤 목을 졸랐다는 얘기다. 사망 추정 시각은 그날 밤 자정 무렵이었다. 여성의 휴대전화에는 새벽 1시경 보낸  "난 잘 도착했어, 서로 잘 살아보자"라는 남편 진상범(가명)씨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이씨는 사고 전날까지 진씨와 별거 중이었다. 어린 딸 셋을 이씨가 키우고 있었기에 진씨는 딸들을 보기 위해서 종종 집을 찾아오곤 했다.

이날도 진씨는 집에 들렀다가 자신의 숙소로 돌아간 뒤 문자를 보낸 것이었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사건 현장에 도착한 진씨는 오열했다. 그리고 형사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형사님, 범인 꼭 좀 잡아주세요. 우리 집사람 억울해서 어떡해요. 제발 부탁입니다."

경찰은 누군가 이씨를 성폭행하려다 반항하자 살해한 것으로 보고, 집중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현장 조사와 주변 탐문, CCTV 확인 결과 사건 당일 외부인이 들어온 적은 없었다. 건물 주변을 봐도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범인은 가족 중에 있다는 말일까. 경찰은 전날 밤 집으로 찾아 온 남편 진씨를 불러 조사했다. 

"형사님, 지금 저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의견이 안 맞아서 이혼하기로 하고 별거 중인 것도 맞고요. 그렇지만 제가 죽일 이유가 있나요. 그날 전 애들을 보러 간 거예요. 새벽에 제가 집사람에게 잘 도착했다고 문자를 보낸 것도 보셨잖아요. 저는 아니라고요."

"범인 꼭 좀 잡아달라"던 남편, 알고 보니

영화 <의뢰인>의 한 장면. 극중 한철민(장혁분)은 아내를 살해한 용의자로 재판을 받게 된다.
 영화 <의뢰인>의 한 장면. 극중 한철민(장혁분)은 아내를 살해한 용의자로 재판을 받게 된다.
ⓒ 청년필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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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씨는 부인했지만 객관적인 증거를 숨길 수는 없었다. 이씨의 몸 여러 군데와 집 곳곳에서 진씨의 지문이 발견되었다. 사망 추정 시각에 이씨와 함께 있었던 사람은 진씨밖에 없었다. 점점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자 진씨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모든 걸 털어놨다.

"집사람은 항상 저에게 빈정거렸어요. 그날 밤 집에 가기 전에 '오늘 건들기만 해봐라' 하는 심정이었어요. 그런데 그날도 어김없이 제 화를 돋우더라고요. 집사람과 말다툼하다가 그냥 홧김에…."

하지만 진씨가 한 일은 홧김에 저지른 예사 폭행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이씨의 목을 조른 뒤 발로 목과 배를 짓밟아서 장기가 파열될 정도로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했다. 그런데 이씨가 정신을 잃자 덜컥 겁이 났다. 외부인이 성폭행을 시도하다가 살해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이씨의 하의를 무릎 아래까지 내려놓고 담배꽁초를 현장에 버려두는 방식으로 연출을 했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난 다음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문자메시지를 보내기까지 한 것이다.        

진씨는 아내를 죽일 뜻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폭행을 가한 부위와 폭행 정도, 미리 담배꽁초 2개를 준비해간 점 등을 보면 여차하면 죽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며 살인죄를 인정했다. 진씨는 1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이씨 유족과 합의하고, 반성하는 점 등이 참작되어 징역 20년으로 감형되었다. 

이 사건은 진범이 밝혀졌고 죗값을 물 수 있었다. 하지만 1994년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은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판결②] '법정 리얼리티쇼'로 불린 미국 O. J. 심슨 사건

1994년 6월 17일 아침, 미국 텔레비전에선 경찰이 어느 살인 용의자의 차량을 추적하는 장면이 생중계됐다. 경찰 차량 20여 대가 고속도로에서 용의자의 차량을 맹렬하게 쫓고 있었다. 용의자는 결국 잡히고 만다. 차량에서는 총과 여권, 변장용 수염, 현금 등이 발견되었다. 더 놀라운 건 용의자가 유명인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미식 축구스타 출신의 방송인 O. J. 심슨이었다. 그는 전처와 전처의 애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 사건을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법정 리얼리티쇼라고 불렀다. 헬리콥터까지 동원된 고속도로 질주 장면은 이 '쇼'의 서막쯤에 해당됐다. 이 쇼는 백일 넘게 미국 전역 아니 세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5일 전 발생한 살인 사건의 현장으로 돌아가보자. 

6월 12일 한밤중 로스앤젤레스 근교 주택가에서 남녀의 피투성이 시체가 발견되었다. 여성은 안면부와 손 등에 심하게 상처를 입었고, 목은 반쯤 잘려나간 듯 처참한 상황이었다. 남성도 온몸이 흉기로 난자된 상태였다. 여성은 심슨의 전처인 니콜 브라운이었고, 남성은 니콜의 애인 로널드 골드먼이었다.

경찰은 새벽에 사건 현장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심슨의 집으로 향했다. 심슨은 집에 없었다. 그런데 대문과 현관에는 핏자국이 남아 있었고, 정원에는 피묻은 가죽장갑 한 짝이 발견되었다. 경찰은 심슨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했다. 심슨이 이혼 전 아내를 폭행한 전력이 있고, 의처증이 심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의처증에 피묻은 가죽장갑... 살인 용의자로 법정에 선 남편

O.J. 심슨(사진은 2007년, 무장강도 혐의로 다시 법정에 서게 된 심슨)
 O.J. 심슨(사진은 2007년, 무장강도 혐의로 다시 법정에 서게 된 심슨)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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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심슨은 미식축구로 이름을 날렸다. 두 차례 '올해의 선수'로 뽑힐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고 은퇴 후에는 방송과 영화에서 활약한 스타였다. 그는 첫 번째 결혼 뒤 1985년 니콜 브라운과 재혼했다. 심슨은 의처증을 보였고, 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혼 뒤인 1994년 6월 참극이 벌어졌다.

심슨의 집에선 의심스런 광경이 연출되었고, 게다가 며칠 뒤 차량으로 도주까지 했으니 여론은 심슨을 살인자로 몰아갈 수밖에 없었다. 용의자는 흑인이고 피해자들은 백인이란 점까지 합쳐져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분위기 속에 드디어 재판은 시작되었다. 

심슨은 '드림팀'으로 불리던 변호인단을 선임하고 반격에 나선다. 변호인단은 유무죄를 좌우할 배심원 12명을 설득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먼저 심슨을 체포하는 등 초기 수사에 나선 수사관 마크 퍼먼이 과거 흑인을 비하해온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리고 증인을 통해 그가 흑인을 경멸하는 표현인 '검둥이'(nigger)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과 재판에 이기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증언하게 한다. 또 법정에서는 심슨의 집에서 발견된 피묻은 장갑이 심슨의 손에 맞지 않는 장면이 고스란히 공개되고 말았다.

변호인단은 재판 내내 증거조작 가능성을 강력하게 제기한다. 10월 3일, 미국 전역의 관심 속에 드디어 배심원들의 평결이 내려진다.

"우리 배심원단은 심슨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로 평결합니다."

법정에는 환호와 한탄이 교차했다. 여론은 재판결과에 승복하기 어렵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1999년 갤럽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36%는 심슨의 살인죄를 확신했고, 38%는 심슨이 살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무죄라는 답변은 6%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심슨이 무죄를 받아낼 수 있었던 건 배심원을 잘 설득하고 검찰의 약점을 줄기차게 공략한, 절묘한 전략이 가져온 결과였다.  

"심슨의 무죄 판결은 영미법 특유의 배심원 제도, 1990년대 당시 로스앤젤레스의 정치사회적 분위기, 검찰의 잘못된 대응, 드림팀이라고 불린 변호인단의 수완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나온 결과였다"(L. 레너드 케스터, 사이먼 정 지음 <세계를 발칵 뒤집은 판결 31>)

심슨 살인 혐의 무죄, 민사사건에서 대반전

사건은 심슨의 승리로 끝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1년 뒤 민사소송에서 반전이 벌어졌다. 1996년 9월 피해자의 유족들은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지방법원에 심슨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민사재판에서도 100여 명의 증인이 등장했다.

배심원들은 심슨의 일관성 없는 증언과 유족 측이 제시한 새로운 증거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배심원단은 심슨이 악의를 품고 니콜과 골드먼을 폭행함으로써 위해를 가했을 뿐만 아니라 골드먼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초래했다고 평결했다.

형사에서 무죄로 풀려난 심슨은 민사에서는 850만 달러의 피해배상에 2500만 달러의 징벌적 배상까지 더해져 총 3350만달러의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됐다. 그는 파산 상태에 이르러 연금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여기서 민사와 형사의 결과가 판이한 까닭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다. 왜 이런 결과가 벌어졌을까. 배심원들의 평결이 재판결과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미국 재판제도의 특성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민사와 형사의 증명 정도의 차이가 결정적인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 이것을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유죄일 수 있다(가능성)'거나 '유죄일 것이다(개연성)' 정도로는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한국의 형사소송법(307조 2항)도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사와 형사재판 결과 다른 까닭은

심슨 사건에서는 살인 현장을 본 목격자가 없었던 데다 검찰의 유력 증거인 유전자(DNA) 검사 결과가 변호인단의 조작 공방에 휘말리면서 배심원들에게 의심의 여지를 남겼다. 결과적으로 검사의 입증이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심슨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 때문에 무죄를 면한 셈이다. 

반면 민사사건에서는 원고와 피고의 증거를 놓고 누가 더 진실에 가까운지를 보게 된다. 형사사건만큼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게다가 민사재판에서는 심슨이 법정에서 모순된 진술을 반복한 점이 재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 한 가지, 형사재판은 12명의 배심원이 만장일치 평결을 해야 하는 반면, 민사재판은 12명 중 9명 이상의 평결 쪽으로 결론을 내려야 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민사와 형사 재판에서 심슨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되었다.

하지만 심슨의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07년 심슨은 다시 법정에 서게 된다. 이번엔 무장 강도 혐의를 받는다. 그는 공범과 함께 총기로 무장한 상태로 호텔 객실에 무단 침입, 수천 달러 상당의 기념품을 강탈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징역 33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O. J. 심슨의 형사재판은 미국의 사법체계를 뒤흔들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게다가 미국이라는 사회가 갖는 상업성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형사 배심원 12명 중 흑인이 9명이었고, 민사 배심원 중 9명이 백인이었다. 이건 재판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태그:#심슨,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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