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MAX 방송국 입구, 그동안 제작되었던 프로그램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MAX 방송국 입구, 그동안 제작되었던 프로그램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 장혜경

관련사진보기


어릴 적 기억을 더듬다 문득,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그 당시 인기 있던 드라마를 함께 시청했던 모습을 떠올릴 때가 있다. 그땐 정말 그랬었다. 텔레비전을 가지고 있는 집이 많지 않았기에 소문난 프로그램을 방송 할 때면 주변 이웃이 다 모여 그 시간을 함께 보내곤 했었다.

그리고 지금, 무수한 미디어의 홍수 속에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프로그램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도 볼 수 있게 되었고 독특하고 창의적인 내용의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않으면 시청률 참패를 당하기 일쑤다.

이토록 빠른 변화의 기로에 선 미디어의 환경 속에서 네덜란드 공영 방송사 가운데 빠른 성장을 하고 있는 곳이 있어 찾아가 봤다.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 공영방송국 MAX가 바로 그 곳이다.

네덜란드는 개인의 행복을 제1의 가치로 두고 있는 사회답게 방송 미디어의 핵심인 공영 방송 역시 개인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기독교인으로 프로그램을 선택할 기회, 이념적으로 좌파인 사람이 프로그램을 선택할 기회,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선택할 기회, 젊은 사람들이 관심 있는 프로그램을 선택할 기회 등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여러 종류의 방송국들이 있다.

노인들의 마음을 빼앗은, 노인 공영방송국 MAX

 방송국 대표가 진행을 맡고 있는 '기억력 훈련' 프로그램 제작 현장
 방송국 대표가 진행을 맡고 있는 '기억력 훈련' 프로그램 제작 현장
ⓒ 장혜경

관련사진보기


해마다 조사되는 언론 자유도 수치에서 네덜란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언론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이다. 네덜란드에선 네덜란드 공영방송위원회가 텔레비전 3개 채널과 라디오 6개 채널을 운영하며 각기 다른 성격의 방송국들을 총괄한다. 공영방송위원회는 정부의 지원금을 배당하고 채널 마다 방송 시간을 조절함과 동시에 채널에 광고 시간을 할당하는데, 이에 따라 광고만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별도의 회사를 두고 있다. 

2008년 유럽의 경기 침체를 이유로 새로운 미디어 법이 발효되면서 성격이 유사한 몇 개의 방송국이 통폐합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공영 방송 3개 채널에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나누어 제작하는 공영 방송국은 광고 제작 회사를 포함하면 9개이다.

MAX는 2005년부터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제작해오고 있는데, 이미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35%가 넘는 네덜란드 사회에선 꼭 필요한 존재다.

MAX의 제작 프로그램을 즐겨본다는 쳘크 크라머씨 부부는 늘 MAX의 체조 프로그램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체조 강사도 중년이 넘는 여성인데, 그는 몸에 무리 가지 않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체조를 알려준다.

크라머씨가 특히 좋아하는 건 <꿈의 집(Dream house)>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연금생활을 시작하게 된 노인들 중에는 네덜란드를 떠나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북유럽 등으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 네덜란드보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싸고 자연 친화적인 장소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이주를 원하는 노인 부부가 자신들이 원하는 지역과 가격을 제시하면 프로그램 진행자가 원하는 나라에서 적합한 가격대의 주택을 세 곳을 선정해 부부에게 보여주면, 부부가 가장 적합한 곳을 선택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주변 나라들에 대한 독특한 문화적 특성과 주택 정보 등의 다양한 내용을 전달 받을 수 있다.

파킨슨병 수술 치료법을 생중계로 방송

<천 뒤의 스타들(Sterren op het Doek)>이란 프로그램도 인기다. 유명 스타를 초대하여 진행자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세 명의 화가가 초대된 스타의 초상화를 그린다. 진행되는 시간 동안 나이 지긋한 진행자는 초대한 스타의 어린 시절,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즐거웠던 추억과 잊히지 않는 지난 일들에 대해 묻는다.

며칠 후 천으로 가려진 세 개의 초상화 앞에 유명 스타가 서고, 초상화를 그린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세 개의 그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시청자들에게 전달되는 인터뷰 내용이나 스타의 화려한 삶 뒤에 감춰진 평범한 삶에 대한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고민을 던져준다. 더불어 화폭 속 스타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예술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연령에 따라 필요한 정보들이 달라지는데 특히 연금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주택 관련 정보와 여행 그리고 건강에 대한 정보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MAX 방송국이 처음 시작할 때부터 상당히 관심 있게 지켜보았고 지금은 꾸준히 연회비를 내는 회원이 되었다.

젊은 사람들과는 분명 다른 관점에서 제작되어야 하는 노인들만의 프로그램이 있다. 예를 들면 친구가 파킨슨병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MAX에서)수술로 그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생중계로 방송했다. 노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게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많은 정보와 재미를 얻고 있는 방송들을 제작하는 곳이다." - 쳘크 크라머씨

연령에 맞는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할 시점

 MAX 제작 프로그램 '커튼 뒤의 스타들' 제작 당시 그려졌던 스타들의 사진들
 MAX 제작 프로그램 '커튼 뒤의 스타들' 제작 당시 그려졌던 스타들의 사진들
ⓒ 장혜경

관련사진보기


네덜란드 통계청(CBS) 자료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2019년부터 절반이 넘는 인구가 50세 이상이 된다. 출산율은 큰 편차 없이 꾸준하지만 의학 발달로 인해 생명이 점점 늘어나면서 노인 인구가 젊은 세대들을 능가할 시점이 멀지 않았다.

노령화사회로 한 발 한 발 걸어가고 있는 네덜란드의 노인 전문 방송국인 MAX의 성장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은 MAX 방송사에선 다양한 연령대의 직원 170명이 일하고 있고 연회비를 내는 회원만 30만 명이 넘는다. 또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등급이 높은 방송국으로 분류돼 있다. 설립 초기 방송국 운영 목표를 설정하는 데 기여한 대표 얀 스라흐터르(Jan slagter)는 2014년 네덜란드 의 최고 방송인 상을 수상했다.

연령대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곧 연금 생활자가 될 나이인 얀 스라흐터르 대표 역시 아직도 가끔 방송을 제작할 때 실수를 한다며 "성공하는 프로그램들은 이유가 있다, 내(제작자)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당신이(시청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게 되면 프로그램은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밝혔다. 노년층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해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MAX가 10년 동안 꾸준히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 아닐까?

MAX 대표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자들이 생각해 볼만한 주제로 보인다. 시청자가 원하는 것이 어떤 방송인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미디어의 변화 속에서 공영방송이 설 자리는 좁아질 것이다. 연령에 맞는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할 시점, 이제 한국도 고민해야 한다.

"변화하지 않는 미디어, 공영방송이라도 살아 남을 수 없어"
[인터뷰] 얀 스라흐터르 MAX 대표

 얀 스라흐터르 MAX 방송국 대표
 얀 스라흐터르 MAX 방송국 대표
ⓒ 장혜경

관련사진보기


- 노인들을 위한 방송국을 설립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
"2002년부터 50세 이상의 시청자를 위한 방송국 설립에 대한 안건들이 많았다. 그 당시 네덜란드 공영방송국의 프로그램들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졌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50세 이상의 노령 인구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젊은층을 타깃으로 한 프로그램들보다는 50세 이상의 시청자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노년층들이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들을 제작하기 위해 어떤 콘텐츠가 필요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MAX 방송국의 성격이 명확해졌고 공영 방송국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 50세 이상의 노년층들은 어떤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있나?
"젊은층과 노년층의 관심은 당연히 다르다. 50세 이상일 경우 건강과 퇴직 이후를 준비하게 되는데, 그래서 경제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다. 연금에 대한 지식이라든가, 주택 관련 정책의 변화라든가, 퇴직 이후의 연금으로 해외에서 살 수 있는 집을 알아보는 프로그램들이 상당히 인기를 얻고 있다. 또한 가족들의 건강과 서로간의 존중을 다루는 드라마들이 50세 이상에게 인기가 높다. 드라마도 세대에 맞는 관점을 가지고 제작해야 한다."

- MAX 방송국의 목표는 무엇인가?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사고방식 변화이다.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자주 하는 실수 가운데 하나가 '내 생각에는 이게 괜찮아!'라는 생각으로 방송을 제작하는 것이다. 제작은 '시청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에서 시작되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우리의 목표는 제작자의 관점이 아닌 시청자의 관점에 맞는 프로그램 제작하는 것이다."

- MAX 방송국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재정을 지원받는다. 공영 방송사 채널을 이용할 수 있는 공영 방송국은 고정 시간대를 할당받는 방송국 2개 사와 프로그램 성격에 맞게 채널을 배정 받는 8개의 방송사가 있다. 공영 방송 채널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사는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MAX의 경우 2005년에 프로그램 방송을 시작한 신생 방송사이지만 인구의 2%인 30만 명 이상이 방송국의 회원으로 등록하여 연회비를 내고 있다. 연회비는 7유로(한화 약 1만원)인데, 회원은 방송사에서 제작되는 잡지와 기타 기념품 등을 받기 때문에 연회비가 방송국 운영의 재정적 부분을 지원할 정도는 되지 않는다. 등록 회원이 많을 수록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과 할당에 관한 권한, 그리고 재정 지원도 커지도록 미디어법이 재정되어 있어 각 공영방송사의 회원은 상당히 중요하다."

- 어떤 프로그램들을 제작하고 있나?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뭔가.
"MAX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가족 드라마였다. 그리고 스타를 초대해서 인터뷰 하는 동안 세 명의 화가가 주인공에 대한 느낌을 화폭에 담아내어 작품을 완성하는 커튼 뒤의 스타(Sterren op het doek)도 인기를 끌었다. 또 연금 생활을 시작한 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꿈의 집을 찾아주는 프로그램, 기억력을 증진할 수 있는 퀴즈 프로그램, 집에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체조 등의 프로그램 등을 제작하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50세 이상의 노인들이 인구의 절반이 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시청자의 시각에 맞는 방송은 물론 시청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송도 만들 생각이다. 변화하지 않는 미디어는 공영 방송일지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 시청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인식하는 방송국이 되도록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다."



태그:#네덜란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