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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 등장하는 소년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 기자 말

소년재판정에 들어가기 전에 옷매무시를 하는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소년재판정에 들어가기 전에 옷매무시를 하는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 천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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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호(50)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는 '만사소년'(萬事少年)으로 불린다. 자나 깨나 소년들을 생각해서 붙은 애칭이다. 천 부장판사는 다른 법관들이 기피하는 소년재판전담 판사를 6년째 하고 있다. 사법부 사상 유례 없는 소년판사의 길은 천 부장판사가 자청한 가시밭길이다. 천 부장판사는 "소년전담판사가 된 것을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퇴임할 때까지 소년판사, 만사소년이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5년 동안 9천여 명의 소년범을 만났다. 폭력, 상해, 갈취, 절도, 강도, 성폭행 등의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들. 그리고 가출팸과 원조교제 성매매와 혼숙을 하고, 소년원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임신과 낙태한 여자 소년범들도 만났다. 성인범죄를 능가하는 소년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판사에게 엄벌을 요구한다. 소년범의 죄만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소년범의 아픔과 눈물을 본다. 형벌의 망치 대신에 눈물을 딱아주고 돌봐 주었더니 소년비행이 크게 줄었다.

임신한 소년범에겐 배냇저고리를 사 주고, 절도범 소년범에겐 용돈을 넣은 지갑을 선물하면서 "돈이 필요하면 훔치지 말고 연락하라"고 했다. 한 소녀는 차비가 떨어졌다고 전화했다. 그대로 두면 비행을 저지를 것이 뻔해서 택시 타고 법원으로 오라고 해서 부장판사 집무실에 데려놨더니 잠이 들었다.

"사는 게 얼마나 고단하면 처벌하는 판사 집무실에서 단잠을 잘까", 잠든 소녀를 측은히 바라보는 판사. 마음에 칼을 품은 아이들은 법관의 양심과 아버지의 마음 앞에서 허물어졌다. "판사님이 아버지였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의 바람처럼 그는 소년범의 아버지가 됐다.

천 부장판사가 소년재판 첫 번째 이야기인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우리학교, 2013)에 이어 두 번째 소년재판 이야기인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우리학교, 2015)를 펴냈다.

첫 번째 책에 이어 두 번째 책도 소년범의 아픔과 눈물 그리고, 눈물 속에 핀 꽃의 이야기로 가슴을 울린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부산 달동네에서 자란 천 부장판사는 최근 진행된 전화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엄벌의 법전 대신 관용과 용서의 법전을 펼쳤다. 지난 25일에 도착한 이메일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정리했다. 다음은 천 부장판사와 나눈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달동네 출신 부장판사 "소년범죄의 주범은 승자독식 사회"

천종호 부장판사의 소년재판 첫 번째 이야기인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우리학교)
 천종호 부장판사의 소년재판 첫 번째 이야기인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우리학교)
ⓒ 우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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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재판은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소년재판 첫 번째 이야기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아래 <미안하다>)를 읽으면서 충격이 컸고 가슴이 아팠다.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예상외로 호응이 컸다. 가장 호응을 많이 해 준 독자는 소년원 아이들이다. 광주가정법원에서 10호 처분을 받은 희망이는 자신을 안양소년원(여자소년원)에 보낸 판사님을 몹시 미워했다. 그런데 <미안하다>를 읽으면서 미운 마음이 없어졌다고 했다.

소년판사들은 희망이 표현대로 '엄청 가슴 아파하며' 처분을 내린다. 희망이는 <미안하다>를 읽으면서 판사의 마음을 알게 됐다고 편지를 보내왔다. 소년원뿐 아니라 교도소에서도 '판사님 책을 읽으면서 후회했고, 반성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대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처벌과 격리로는 아이들을 변화시키기 어렵다. 반면 아이들의 아픔을 이해하면서 손을 잡아주면 아이들은 달라진다. 호응이 두 번째로 큰 독자들은 교사와 청소년활동가 등 위기청소년과 관련된 분들이었다. 이분들은 <미안하다>가 위기청소년의 실상을 알리는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세 번째로 호응이 컸던 독자는 학부모들이다. 위기청소년의 아픔을 통해 잘 성장해준 자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 경우다."

- 소년범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충격적인 소년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기세등등하다. 그런데 천 부장판사께서는 용서와 관용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반감을 드러낸 독자는 없었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가해자의 입장도 존중해야 한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 내용 역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 초점을 맞추고 법정에 세우고 반성하고 편지 읽히고 눈물 흘리는 게 하는 것이 싫어서 책을 읽는 내내 좋은 감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미안하다>를 읽은 한 학생이 보내온 독서 감상문이다. 학생 의견에 충분히 공감한다. 폭력, 상해, 갈취, 절도, 강도, 성폭행, 성매매 등 청소년 범죄는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소년범들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거나 알고도 반성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년범에 대한 여론이 차가운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관용과 용서를 전제로 한 소년처분을 '솜방망이 처분'이라며 비난하며 처벌 수위를 높이라고 주문하는 여론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놓친 부분이 있다. 이 아이들도 한때는 예쁜 꽃이었다. 그런데 꽃이 꺾이고 짓밟히는 냉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다 보니 칼이 되고 말았다. 나는 판사 이전에 세 아이의 아버지다. 내 아이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 묻고 싶다. 이 아이들이 소년범이 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소년범 태반이 결손가정과 빈곤가정 아이들이다. 가난과 결핍이 아이들을 비행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문제 가정이 있을 뿐 문제아는 없다."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집무실에는 "공의를 하수같이, 공법을 강물같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부채가 있다.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집무실에는 "공의를 하수같이, 공법을 강물같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부채가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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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을 이유로 소년범죄를 용서해야 하나.
"어른들은 가난하다고 다 문제아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어른들의 시대는 가난한 시대였다. 다 가난했기 때문에 견딜 만 했고, 근면 성실하면 가난에서 탈출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난이 구조화되고 세습화되고 있다. 소년들은 분노하고 좌절하면서 꿈과 희망을 포기한다. 소년범의 인간성을 황폐화시킨 주범은 소년 스스로가 아니라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사회다.

나는 부산에서 가장 가난한 산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하꼬방 판잣집 골목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산동네 단칸방에서 아홉 식구가 부대끼며 살았다. 극심한 가난은 모루(쇠를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처럼 우리 가족을 짓눌렀다. 점심도시락을 싸갈 수 없어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건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육성회비를 내지 않았다고 수업 도중에 집으로 쫓아 보내는 것은 참기 어려웠다. 내가 가난을 통해 갖게 된 것은 뼈아픈 수치심이었다."

- 가난뿐 아니라 소년범죄도 구조화되는 것 같다.
"소년범들은 아프다. 이 아이들은 아파도 아프다고 소리 지르지 못한다. 비명도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지르고, 도움도 손 내밀어줄 사람이 있어야 청한다. 재비행을 막으려면 따뜻한 가정이 필요한데 부모이혼, 사망, 행방불명, 방치 등의 이유로 버려진 아이들은 오갈 곳이 없다. 이 아이들은 이런 환경을 선택한 적도, 원한 적도 없다. 국가와 사회의 존재 이유는 이 때문이다. 국가는 이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고, 사회는 이 아이들을 돌봐야 할 공동체적 의무가 있다.

그런데 국가도 사회도 외면하고 있다. 이런 환경이 소년비행 구조화의 원인이다.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는 사회다 보니 경미한 비행이 재비행이 되고, 소년범이 되어 자포자기하고, 범죄의 학습화와 고착화를 거치면서 성인범이 된다. 구조적인 악순환이다. 문제아로 태어난 아이는 한 명도 없다. 아이들보다는 낙인찍고, 외면하고, 격리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덮으려는 사회가 더 큰 문제다."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자연의 숲에는 간벌(間伐)이 이루어진다. 비싼 재목을 만들기 위해 방해되는 나무들은 솎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숲은 간벌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래선 절대 안 된다. 강자를 위해 약자를 간벌하면 우리 사회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곳이 인간의 숲이다. 구조화되는 소년범죄를 줄이는 최고의 방법은 처벌과 격리가 아니라 용서와 관용이다. 위기청소년도 대한민국 청소년이다."

"판사는 잘못 저지른 아이들이 마지막에 만나는 어른"

소년재판 중인 천종호 부장판사. 천 판사는 '호통판사', '천10호'로도 불린다. 엇나간 소년범들과 보호자들에겐 호통을 치고, 엄벌인 '10호 처분'을 내리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다.
 소년재판 중인 천종호 부장판사. 천 판사는 '호통판사', '천10호'로도 불린다. 엇나간 소년범들과 보호자들에겐 호통을 치고, 엄벌인 '10호 처분'을 내리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다.
ⓒ 천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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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관들이 기피하는 소년재판을 6년째 전담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언가.
"나의 아버지는 가난한 목수였다. 아버지의 일이 끊기면 끼니도 때우기 힘들었다. 목수의 아들이 판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가난의 억울함을 벗고 싶어서였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수치심을 당하고, 억울함을 당해도 호소조차 못하는 이웃 속에서 자랐다. 미련할 정도로 악착같이 고시공부를 한 것은 아버지와 같은 약자를 돕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판사가 되자마자 다 잊어버렸다.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인맥을 쌓으려 했고, 술자리를 쫓아다녔다. 그러다 소년재판을 맡으면서 고시생 시절의 다짐이 생각났다. 소년전담판사가 된 것을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한 아이의 일생을 좌우하는 판사보다 더 귀한 일이 있을까 싶다. 그래서 퇴임할 때까지 소년판사, 만사소년이고 싶다."

- 천 판사의 소년재판은 다른 판사의 재판과 아주 다르다. 호통을 치기도 하고, 용서와 사랑을 외치게도 한다. 효과가 얼마나 있나.
"법정은 법을 집행하는 엄숙하고 신성한 공간이다. 그런 소년법정에서 그런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목적은 재범 방지와 사회 해악을 줄이기 위함이다. 엄벌만으론 재범을 막기가 어렵다는 것을 역사와 통계가 증명하고 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아이의 눈물, 자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부모의 잘못을 고백하는 법정은 엄벌의 장소를 넘어 용서와 관용, 희망을 일궈내는 장소가 되고 있다. 효과가 아주 크다."

- 소년판사의 보람은 무엇인가?
"판사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 마지막에 만나는 어른이다. 위기청소년들은 판사 앞에 서면 단단히 주눅 든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면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임신한 소녀에게 배냇저고리를 사주고, 절도로 붙잡힌 아이에게 지갑에 돈을 넣어 선물한 적이 있다.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고 돈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했더니 눈물을 흘렸다.

한 소녀가 있었다. 음주와 흡연, 성매매와 자해로 자신의 몸을 망치다 재판을 받게 된 아이였다. 그 아이에게 소원을 물었더니 '한 끼니라도 좋으니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 이 아이가 방황할 때,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 가족의 정이 그리울 때 우리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고, 손 한번 잡아주지 못했다. 그 아이는 재판을 받는 내내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는데 용서를 빌 사람은 소년범이 아니라 우리 어른이었다. 그래서 내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 소녀도 울고, 법정 사람들도 울었다."

- 소년재판의 어려움은 무엇인가
"일반 청소년뿐 아니라 위기청소년도 우리의 미래다. 소년재판을 받는 아이들에게도, 강연장과 언론 등에서 만나는 어른들에게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이유다. 미래가 없는 사회에 희망이 있겠나. 그런데 현실은 암담하다.

한 소년의 재판에 소요되는 시간은 10분 가량이다. 사건이 많으면 3~4분가량으로 줄어든다. 3~4분이면 컵라면 하나 익히는 시간이다. 한 소년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대한 재판을 컵라면 익히는 것처럼 급속처리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천종호 부장판사의 소년재판 두 번째 이야기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우리학교)
 천종호 부장판사의 소년재판 두 번째 이야기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우리학교)
ⓒ 우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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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재판 두 번째 책의 제목이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아래 '아버지 필요하다')이다. 주제를 아버지로 선정한 이유를 듣고 싶다.
"아버지의 부재가 소년비행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 사회의 수준은 그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위기청소년은 우리 사회의 춥고 쓸쓸한 그림자이다. 이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꼭 필요하다. 핏줄의 아버지가 없다면 아버지 역할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이 아이들에게 따뜻한 아버지가 되어주어야 한다.

이 땅의 아버지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 그러므로 든든한 등을 가진 아버지가 되어 달라. 그래서 자녀들을 용서와 관용의 사회인으로 키워서 비행소년들을 감싸고, 아이들의 아픔을 이해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런 바람을 담아서 아버지를 주제로 삼았다."

- <아버지가 필요하다>를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다.
"그런 반응을 보인 분들이 많다. 가슴이 아파서 책 읽기를 멈추고 한참을 울었다고…. 나 역시도 가슴이 아파서 쓰다가 멈추기를 반복해야 했다."

- <아버지가 필요하다>에는 시가 배치됐는데 어떤 의도인가?
"소년범들의 아버지들은 대체로 끔찍하다. <아버지가 필요하다>에는 친족 성폭력 아버지, 가정폭력 아버지, 알코올중독 아버지, 부도가 나자 가족을 내팽개치고 숨어버린 아버지, 아이에게 음란물을 보여주며 변태적 가혹행위를 저지른 의붓아버지, 불륜을 일삼으며 가정을 버렸다가 건강을 잃어버리자, 자녀에게 양육비를 달라며 소송을 한 늙은 아버지 등 '불량 아버지'가 등장한다.

소년범죄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원인의 한 축인 아버지들을 등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원고를 읽었던 분들이 한결같이 마음이 아프고 분노가 차올라 글을 읽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으로', 칼릴 지브란의 '아이들에 대하여' 그리고, 소년원 아이가 쓴 자작시 등 모두 12편의 시를 실었다. 12편의 시 중에 첫 번째 배치한 시는 작자미상의 '아버지의 조건'이란 시다.

'산처럼 힘세고/ 나무처럼 멋있고/ 여름 햇살처럼 따뜻하고/ 고요한 바다처럼 침착하고/ 자연처럼 관대한 영혼을 지니고/ 밤처럼 다독일 줄 알고/ 역사의 지혜를 깨닫고/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강하고/ 봄날 아침처럼 기쁘고/ 영원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중략/ 하느님은 그를 아버지라 불렀다'"

"법정 밖으로 나선 것은 법관의 양심, 아버지의 마음 때문"

부산의 사법형그룹홈에서 위탁된 보호소년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천종호 부장판사
 부산의 사법형그룹홈에서 위탁된 보호소년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천종호 부장판사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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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부는 보수적인 곳이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천 판사는 법과 제도를 뛰어넘는 행동을 했다. 소위 '튀는 행동'이다. 천 판사가 직접 나서서 만든 대안가정 '사법형그룹홈'(청소년회복센터)은 현재 법과 제도밖에 있다. 사법형그룹홈이 재비행을 대폭 줄이는 등 큰 효과를 거두긴 했지만, 사법부 안팎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다.
"사법부가 보수적이라는 시각이 있지만 법과 양심의 테두리에서 행동한다면 큰 제약은 없다. 소년법에는 보호자가 없는 비행소년을 법원이 위촉한 '신병인수위원'에게 위탁하고 보호비용을 지급하는 제도가 있다. 그런데 이 제도가 거의 활용되지 못했다. 창원지법 소년판사로 근무하면서 이 제도를 발견하고 적극 활용하면서 만든 게 '사법형그룹홈'이다.

3만 명가량이 매년 소년보호재판을 받는다. 비행이 가벼운 소년들은 보호자에게 위탁하는 1호 처분을 받는다. 그런데 결손가정 소년들은 보호자도 없고, 가정도 없기 때문에 위탁할 곳이 없다. 창원지법 소년판사로 근무하면서 결손가정 소년들의 재비행을 살펴봤는데 70%가량이었다.

이 소년들을 방치하면 성인범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런데 정부와 사회는 이 아이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서 법정 밖으로 나섰던 것이다. 법관과 아버지의 양심상 아이들의 아픔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 일반 그룹홈은 정부지원을 받는데 '사법형그룹홈'은 정부지원을 못 받고 있다. 사법형그룹홈 현황과 어려움에 대해 듣고 싶다.
"사법형그룹홈은 2010년 창원에서 처음 시작됐고 현재 부산 6곳, 경남 6곳, 대전 1곳 등 모두 13곳이 운영되고 있다. 사법형그룹홈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문제다. 그룹홈을 운영하려면 아이들과 함께 살 집을 직접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도움은 없다.

법원이 위탁한 1명 당 매월 40만 원을 지급하는 것이 지원의 전부다. 그룹홈을 운영하는 분들은 거의 신앙인들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어려움뿐 아니라 재정적인 어려움에 시달리면서도 아이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명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존경스럽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하다."

- 사법형그룹홈을 만든 책임과 부담이 크겠다.
"죄송스러움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미안하다> 인세를 전액 기부했다. 성격상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그런데 사법형그룹홈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면 판사 체면을 잠시 내려놓는다. 그룹홈 운영자들이 아이들 문제와 운영비 때문에 법원에 찾아오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식사대접하며 위로한다. 그런데 나는 하소연할 곳이 없다. 그래서 새벽예배에 가서 하나님께 하소연한다. 무엇보다 따뜻한 독자와 국민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된다."

- <미안하다>의 인세가 얼마 정도인가?
"3만 권 정도의 책이 팔리면서 인세로 3753만 원을 받았다. 전액을 사법형그룹홈 운영비로 기부했다. 소년재판 두 번째 이야기인 <아버지가 필요합니다>의 인세도 전액 기부하려고 한다."

- 사법형그룹홈을 도와달라는 호소편지를 국회의원들에게 보냈다.
"지난해 9월, 송호창 의원이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법형그룹홈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아동복지법을 개정하는 법안이다. 지난해 12월, 법안 통과를 호소하는 장문의 편지를 정의화 국회의장과 김춘진 보건복지위원장 등 보건복지위 소속 국회의원 21명, 부산과 창원지역 국회의원 22명 등 모두 43명의 국회의원들에게 보냈다.

공직자인 판사는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 하지만 사법형그룹홈을 만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소년들을 살려야 할 어른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정치인들에게 호소했다. 송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현재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심의 중이다."

"버려진 아이들도 행복해지는 숲을 만들고 싶다"

부산가정법원 집무실에서 차를 따르고 있는 천종호 부장판사
 부산가정법원 집무실에서 차를 따르고 있는 천종호 부장판사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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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개최된 SBS <미래한국리포트>에서 장덕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타인에 대한 관용을 가르쳐야 한다'는 응답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62개국 중 꼴찌로 나타났다.

-  천 판사께서는 소년범을 관용과 용서로 품어야한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관용 능력은 매우 부족하다. 과연 한국 사회가 관용 사회로 진입할 수 있겠는가.
"용서와 관용이 사라진 배경에는 '용서와 관용을 베풀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더라!'는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관용과 용서를 베풀면 손해 본다는 가치관이 팽배해지면 회복적 정의보다는 죄인을 형벌로 보복하자는 응보주의가 선호된다.

용서와 관용의 사회를 만들려면 내가 베푼 용서와 관용이 나와 내 가족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현실적 이해타산이 성립돼야 한다. 운전 중에 발생한 접촉 사고 피해를 나는 용서했는데, 누군가에게 용서는커녕 피해 이상의 보복을 당하게 되면 관용과 용서의 마음을 사라지게 된다.

관용과 용서의 열매를 맺게 하려면 누군가 농부가 되어 관용과 용서의 씨앗을 뿌려야한다. 그런데 누가 농부가 될 것인가? 그 농부는 종교인의 몫인데 농부 역할을 해야 할 종교인들이 앞 다투어 지주역할을 하려고 하면서 세상이 살벌해졌다. 신앙인으로서 부끄럽다. 하지만 희망이 없진 않다.

관용과 용서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작은 농부들이 많진 않지만 분명히 있다. 인류 역사를 발전시킨 것은 법전이 아니라 빛과 소금의 소명을 감당한 작은 농부들이었다. 관용과 용서 대신에 형벌이 지배하면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내가 용서와 관용의 법전을 선택한 것은 그 때문이다."

- 재판과 강연 등의 일로 바쁠 것 같다. 가족들의 불만은 없는가.
"일요일에는 어떤 요청이 있어도 일체 응하지 않는다. 가족과 함께 예배와 휴식과 대화를 나누는 가족의 날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공부하지 않고 놀게 한다. 평일 퇴근 이후의 저녁 약속은 부득이한 것이 아니면 잡지 않는다. 늦둥이(4)가 아빠와 노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아빠와 물놀이하며 목욕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과의 함께하는 시간이 '골든타임'이고, 가정을 안정기지로 만드는 금쪽같은 시기다. 이 시간을 외면하면 아이들은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다. 야근과 술자리, 회식 등으로 아버지를 뺏는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은 바뀌어야 한다."

- 마지막으로 꿈과 희망에 대해 듣고 싶다.
"한국 사람에게 아베 총리는 원성의 대상이다. 군사대국화로 우리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일본 사람인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감독은 환영받는다. 그 이유는 만화영화를 통해 아름다운 추억과 꿈을 주기 때문이다.

판사는 아름다운 꿈과 추억을 심어주는 예술가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원성까지 듣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위해 씨를 뿌리는 작은 농부가 되는 게 나의 꿈이고 희망이다. 세상은 버려진 아이들은 간벌하고 잘난 아이들을 재목으로 키우자고 하지만 나는 버려진 아이들도 행복해지는 숲을 만들고 싶다. 그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필요하고, 꿈과 희망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법관의 양심과 아버지의 마음으로 소년범의 대변자 역할을 계속할 계획이다.

바람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따뜻한 아버지 같은 소년판사, 세상 사람들에겐 만사소년으로 기억되고 싶다."

천종호 부장판사가 2014년 11월 14일 안양소년원(여자소년원)에서 특강을 마치고 소녀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천종호 부장판사가 2014년 11월 14일 안양소년원(여자소년원)에서 특강을 마치고 소녀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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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천종호 부장판사, #소년범의 아버지, #소년재판, #부산가정법원, #만사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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