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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병원영안실의 해관 장두석 선생 영정
▲ 해관 장두석선생 영전 조선대병원영안실의 해관 장두석 선생 영정
ⓒ 이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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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새벽, "해관 장두석 선생 향년 78세를 일기로 서거" 청천벽력 같은 손전화 문자통보를 받고 한 달음에 광주 조선대학교 병원 영안실을 찾았다.

영면 첫날임에도 장례식장 특실 넒은 방으로 끊임없이 조문객이 밀려들었다.

해방 전 초등학교 시절부터 일제에 반대하며 시위를 조직했다가 퇴학을 당하는 등, 남달리 민족의식이 강했던 해관 장두석 선생이다. 그는 해방 전후 혼란스런 정국에서도 조국의 자주와 통일을 위해 온몸을 바쳐 싸웠다.

조국의 자주통일과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조봉암의 진보당에서 활동하는 등 청춘을 다 바쳐 싸웠다. 5·18 광주항쟁 당시 계엄군의 진입을 막기 위한 죽음의 행렬 투쟁, 수습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다가 군사법원에 체포됐다. 무참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맞섰다. 12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던 중 1981년 사면·석방되었다.

감옥에서 나온 장두석 선생의 무릎이 고문을 받는 과정에 얻어맞고 깨진 탓에 잘 걷지도 못했다고 한다. 부인 김동례 여사는, 장두석 선생이 물리치료를 받는 등 평생을 고생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그런 몸이지만, 장두석 선생은 단 한시도 집에서 편하게 지내지 않았다. 이후에도 1989년 민족생활학교를 세우고, 2000년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상임대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겨레하나되기운동분부 공동대표를 맡아 민족운동과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민족생활의학 전파 위해 헌신했던 그만의 신념

서동국 서예가가 쓴 '해관 장두석 선생 민족통일장' 만장
▲ 해관 장두석 선생 민족통일장 서동국 서예가가 쓴 '해관 장두석 선생 민족통일장' 만장
ⓒ 이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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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향 화순에 양현당을 세워 영면의 그날까지 민족생활의학을 전파하고 환자들을 살리는 일에 전념해왔다. 여러 환자들이 장두석 선생의 치료를 받고 병을 극복해 지금도 건강하게 잘 생활하고 있다.

장두석 선생은 우리 민족이 수 천 년 이어온 의식주 생활양식만 잘 계승·발전시켜도, 현대인들의 많은 병을 예방·치료할 수 있다는 주장을 설파했다. 그 논지를 여러 저서를 통해 열렬히 전파했다.

장두석 선생의 애제자인 이선재 선생은 장두석 선생의 정신을 이렇게 요약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병은 생활습관병으로 서구식 식의주생활에서 오는 것으로 우리 생활이 미국식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미제병, 이 미제병은 분단 때문에 온 분단병입니다. 이 분단병은 일제청산이 되지 않아 생긴 친일병이고, 친일병은 우리민족정체성을 잃은 역사병에서 왔습니다. 장두석 선생님은 늘 이점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래서 상고사되찾기 운동으로 우리민족정체성을 되찾고 우리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켜 우리신체구조와 풍토에 맞는 생활문화를 바로 세워 병을 치유해야 한다고 역설하신 것이며, 이런 우리 민족의 상고사를 되찾고 우리문화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를 설립하고 활성화시키기 위해 그렇게 많은 정열을 다 바쳐온 것입니다."

장두석 선생은 한민족생활문화운동을 주로 펴오면서도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서도 적지 않은 일을 해왔다. 젊은 통일운동가와 단체에 알게 모르게 후원도 많이 해왔으며,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상임공동대표를 맡는 등 통일운동에도 앞장서 있었다. 각 전통문화분야의 명인들을 모아 설립한 배달문화선양회 대표,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대표로 북 단군릉을 방문하여 단군제 봉행행사 등도 열었다.

지난해에도 단군제 행사 차 평양을 방문하고 왔다. 평양을 보고 돌아와서 하루라도 빨리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통일만 이루면 우리 기업들도 살길이 열리고, 존엄 높고 당당한 나라를 만들어 국민 모두가 복락을 누리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권방송 등에 나와 통일을 이루는 데 모두가 나서자고 열렬하게 호소하였다.

그때 전국을 돌면서 방북 보고회를 여는 등 너무 과로한 나머지 건강이 많이 악화됐다. 다시 건강을 추스르기 위해 그 좋아하던 담배도 끊고, 단식을 하며 애를 썼다. 그러나 그만 몸에 지니고 온 간암이 도져서 결국 영면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해관 장두석 선생은 임종을 직감하고 영면 3일전 제자들과 가족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통일도 되지 못하고 제대로 된 민주화도 이루진 못한 나라를 후손에게 남기고 눈을 감게 되어 하늘에 죄를 지었으니 어디 죄를 빌 곳이 없구나. 내 삶이 너무 가냘프다. 살아온 것이 탐욕이다. 그러나 즐겁게 살아왔다. 장례식장을 찾는 이들이 있거든 울지 말고 즐겁게 놀다 가도록 음식을 잘 대접해달라."

따뜻한 가슴으로 환자 살피던 의인

장두석 선생은 평생을 민족을 위해 바쳤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남긴 것은 별로 없다.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아 적금에 넣어두었던 돈, 화순 고향이 수몰지역이 되어 받은 돈을 합쳐 10억여 원의 큰돈을 해관문화재단에 기부했다. 이를 민족생활운동과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운동에 도움이 되는 일에 써달라고 유언했다.

장두석 선생은 잘못된 의료시스템과 정면대결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수없는 소송과 협박에 시달리면서도 용감하게 맞서 싸웠다. 장두석 선생에게는 좋지 않은 악소문도 없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돈 있는 사람은 정성들여 치료하고, 돈 없는 사람은 외면한다는 것이었다.

장두석 선생이 돈이 없다고 외면한 환자는 없다. 양현당에 전화를 걸어보면 늘 장두석 선생이 직접 전화를 받았다. 젊은 실무자가 3명씩 상주하고 있음에도, 늘 장두석 선생이 제일 먼저 받는다. 하도 궁금해서 제자들에게 물어보니 다급한 환자들과 조금이라도 빨리 통화해서 응급처방을 내려주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해외 환자들을 위해서 늘 전화기를 곁에 끼고 생활했다고 한다. 해외환자들은 비행기를 타고 국내에 들어오려면 돈이 많이 드는 게 걱정된다며, 상담 전화가 오면 녹음기를 준비하게 해서 3~4시간 아주 구체적으로 치료방법을 알려줬단다.

실제 양현당을 방문해보면 환우들 중 해외에서 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오기 어려운 해외 동포, 외국인을 위해서는 하루에서 몇 시간씩, 몇 번이고 전화로 치료방법을 알려주었다.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인지는 아이를 대하는 데서 드러난다. 장두석 선생은 어린이 환자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다한다. 아이들에게도 교육비를 받기는 한다. 의존심을 줄까봐 걱정하기 때문이란다. 대신 아이들에게 그 돈보다 훨씬 많은 선물을 안겨 보내기도 한다.

장두석 선생은 환우들이 찾아오면 가정형편을 캐묻는다. 이를 알아야 병의 원인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치료대책도 잘 세울 수 있기 때문이란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은 정해진 교육비 외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나 기부금을 더 많이 내게 했다.

반대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교육비도 감면해주고 건강보조식품 등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성격이 급해서 "이놈 그럼 못써" 하고 호통을 치기도 한다. 필자도 그런 호통을 많이 받았지만, 그 안에 담긴 걱정과 사랑을 늘 느꼈기 때문에 오히려 호통을 들을 때마다 힘과 용기를 얻곤 하였다.

장두석 선생은 정의롭고 열렬하면서도 마음이 한없이 따뜻하고 여린 사람이었다. 숱한 환자들의 전화번호를 외울 정도의 기억력을 지녔다. 의학 외에도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으며, 이런 지식을 종합하여 현상의 본질을 파악 그 해결방안까지 제시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환자를 손으로 만지는 촉수 진단은 꽤나 정확하여 당사자는 물론 주변 제자들을 늘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예민한 감각과 많은 환자들의 촉수 경험이 이를 가능하게 한 밑천이었다. 또한 각 환자들마다의 미묘한 차이를 기억했다가 이를 토대로 그 환자만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손의 감각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에 대한 애정이었다.

아,
이런 열혈의인을!
이렇게 따뜻한 사람을!
이렇게 영리하고 지혜로운 의학자를!
이렇게 일찍 보내게 되다니 하늘이 무심타 어찌 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해관 장두석 선생은 우리들에게 늘, 어서 빨리 조국을 통일하고 존엄 높은 자주강국을 세우자고 호소해왔다. 민족생활의학을 계속 이어오며, 이 땅의 모든 백성과 인류가 질병의 고통 없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게 되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그 염원, 후대들은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태그:#해관, #장두석, #민족생활의학, #민족통일장, #불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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