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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저는 수원에서부터 부산까지 홀로 도보여행을 했습니다.

안성, 충주, 의성, 청도 등을 거치는 총 400여km의 거리를 하루에 25~30km씩 걸었습니다. 이 도보여행에 대한 무용담을 이야기하려는 거냐고요? 아닙니다. 이런 제 경험이 흔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 여행을 해 보신 분은 꽤 많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여행 중 저를 20km나 따라 온 한 마리 개에 대한 얘기입니다. 여행 중 저는 경북 의성군 안계면에서 1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다음날 기상해보니 눈이 많이 내리더군요. 그래도 저는 그날 보행량을 채우기 위해 서둘러 짐을 챙겨서 나섰습니다. 그런데 발걸음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아 개가 한 마리 쫓아왔습니다.

처음엔 내 뒤를 쫓아오는 건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 절 따라왔습니다. 저는 개를 떨어뜨리기 위해 뒤를 향해 갑자기 홱 돌아봤습니다. 개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다 하마터면 트럭에 치일 뻔 했습니다. 제가 더 놀라 개에게 괜찮으냐고 물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개는 경계하는 듯 손길을 피했습니다.

마을을 완전히 벗어나 국도로 접어드는 지점까지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지나다니는 차들 때문에 개가 위험할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정말 개를 떨어뜨려야겠다고 생각한 저는 발길질을 했습니다. 하지만 개는 그런 적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뒤를 밟았습니다.

심지어 개는 1시간 걷고 10분을 쉬는 저의 보행 패턴까지 따랐습니다. 제가 가드레일에 기대어 쉬면 개는 가드레일 너머 잔디에 쌓인 눈을 머리와 발로 치우고 그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떠돌이 생활을 하는 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관심을 주지 않으면 개를 떨어뜨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저는 되도록이면 개를 쳐다보지 않고 걸었습니다. 먹을 것도 물론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개는 결국 의성군 안계면에서부터 봉양면까지 약 20km 정도를 따라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날은 폭설 때문에 차들이 기어 다녀서 개가 위험할 일은 없었습니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떠난 여행

20km를 따라 온 '떠돌이 개'
 20km를 따라 온 '떠돌이 개'
ⓒ 최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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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개에 대한 고정관념을 몇 가지 갖고 있습니다. '개는 먹는 걸 줘야 따른다', '주인을 반기는 건 밥 주는 사람이기 때문' 같은 생각은 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개를 보며 그 고정관념은 틀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물이라고 단순히 식욕만을 따르는 게 아니라 그들도 오묘한 교감능력 같은 게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제가 당시 여행을 떠난 이유는 '삶의 괴로움'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당시 헤어진 여자 친구와의 이별이 여행의 가장 큰 이유를 차지했습니다. 남들 다 해보는 이별 가지고 뭔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 커플 사이엔 나름대로 말 못할 심각한 사건이 많았거든요. 게다가 그 즈음엔 친한 친구가 갑자기 돌연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건강하던 녀석이 대기업에 입사한 지 몇 개월 만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외에 가정적으로도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쳤습니다. 아무것도 손에 잡을 수 없던 저는 이런 괴로움들을 안고 그저 '무작정 걷는 게 목표'인 여행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지레짐작에 불과하지만, 무거운 배낭을 메고 어두운 모습으로 걷는 저의 상처를 그 개가 감지했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를 따를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거든요. 어쨌든 그날 함께 걷고, 함께 쉰 떠돌이 개의 존재는 제게 심리적으로 큰 힘이 됐습니다.

장장 5시간 정도 나만 보며 따라 왔다

동물은 이렇게 인간에게 힘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유겠죠. 그런데 저는 이 여행을 하면서 떠돌이 개가 제게 준 '무차별적인 사랑'과는 반대로 인간이 동물을 해한 수많은 '로드킬'의 흔적을 마주했습니다. 기사에서나 보던 '로드킬'이라는 걸 직접 보니 끔찍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자신의 속을 전부 드러내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한 고라니, 차에 치여 도로변에서 동사한 고양이, 도로 한 가운데에 내장을 길게 늘어뜨린 이름 모를 동물까지. 인간은 동물이 주는 기쁨만큼 동물을 사랑해 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떠돌이 개 사건'과 '로드킬'을 함께 접하면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로드킬' 당한 동물들
 '로드킬' 당한 동물들
ⓒ 최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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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개는 어떻게 됐냐고요? 15km 정도를 걸었을 때부턴 저도 개를 떨어뜨리는 걸 포기했습니다. 오히려 개가 많이 지쳐보여서 물을 먹이기도 했죠. 점심식사를 하려고 계획한 마을에 도착한 뒤 저는 근처 마트에 들러 참치캔과 소시지를 사서 개에게 먹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나에게 더 달라붙을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총 20km, 장장 5시간 정도를 나만 보며 따라 온 개를 그냥 내버려둘 순 없었습니다.

이후 전 식당에 들어가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식당 아주머니는 개를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떠돌이 개'는 문 밖에서 저를 기다렸습니다. 밥을 먹으며 저는 '식당을 나설 때까지 나를 기다리면 내가 책임져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문을 열어 보니 개가 없었습니다. 정작 개가 사라지고 나니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날 믿고 따라 준 존재에 대해 책임을 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존재에 대해선 헤어진 여자 친구도 오버랩 됐습니다. 저의 거짓말 같은 '떠돌이 개와의 로맨스'는 저의 낮은 책임감 탓에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하게 한 여행 중의 작은 에피소드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거짓말 같은 이야기' 응모글



태그:#도보여행, #개, #로드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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