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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즐거운 시절의 나. 좌측하단의 모자쓴 사람이 본인이다.
 한창 즐거운 시절의 나. 좌측하단의 모자쓴 사람이 본인이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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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여자 친구에게 얘기 듣고 오는 길인데... 같이 수업 듣는 우리 과후배 여학생들 대부분이 너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데. 그 수가 장난이 아니야."

친구는 격하게 흥분하며 강의실 뒤 복도 구석으로 나를 끌고 갔다. 그 녀석은 웃으며 나를 재차 다그쳤다. 어떻게 된 거냐고, 그 인기 비결이 뭐냐고 묻고 또 물었다.

친구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 꿈만 같았다

"설마, 농담하지 말고. 또 사기 치는 거면 알아서 해!"

거짓말 같은 이 친구의 말. 나는 당연히 믿기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다. 그러자 친구는 호기롭게 자기 손에 장이라도 지지겠다고 했다. 덤으로 내기까지 하자고 했다. 요새 말로 정말 '깜놀'했다. 태연한 척했지만, 나는 속으로 광복을 맞은 것처럼 가슴 속에서 격정적으로 "만세"를 불렀다. 당시 우리 학과는 학교에서도 미인이 많다고 소문난 과였다. 복학하기 전까지 나의 수많은 노력이 영화 속 필름처럼 지나갔다.

한창 멋부리고 있는 매직스트레이트를 한 본인.
 한창 멋부리고 있는 매직스트레이트를 한 본인.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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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가 기대를 안 했던 것은 아니었다. 복학하기 전, 나름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우선 군 제대 후 몸이 부서져라 헬스를 해서 몸을 근육질로 만들었다.

분위기 있어 보이기 위해 학교 수업 시간에는 늘 앞자리가 아닌 뒷자리 구석, 햇살의 명암이 잘 비치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 당시 유행하던 쫄티에 슬림하게 붙는 청바지를 입고 신비감을 주기 위해 늘 조용하게 지냈다. 단, 출석을 부를 때는 정말 누구보다 우렁차게 대답했다. 내 이름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그 중 키포인트는 곱게 기른 생머리였다.

원래 나는 곱슬머리다. 곱슬인 내 머리는 관리가 안 돼 기를 수가 없다. 지금처럼 곱슬이 유행인 시절도 아니어서 스타일을 내기도 애매했다. 생머리인 친구들을 무지하게 부러워하던 시절.

새롭게 나온 매직스트레이트라는 미용 기술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곱슬 머릿결을 오랫동안 펴준다는 그 마법 같은 파마. 그 이름도 매직! 그 파마로 난 감격스럽게도 긴 장발의 머리를 꾸몄다. 노력의 결과, 거짓말 같은 친구의 이야기로 보답을 받는 순간이 온 것이었다.

그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듣고 이내 1학기 종강을 맞았다. 이른 방학이 아쉬웠지만, 설렘으로 방학 내내 분주했다.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부푼 가슴으로 2학기 개강을 맞았다. 마음속은 이미 거만함이 가득했다. '이제 내가 마음에 드는 여학생들에게 고백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런 거야?' 이런 생각에 빠져 학습의 전당인 대학교를 나는 연애를 목적으로 다니는 듯, 눈에 불을 켜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플라타너스 나무 사이로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머리를 살짝 틀어 멋지게 바람을 맞았다. 그 바람 사이로 무엇인가가 스르륵 떨어지는 게 아닌가? 이상했다. 머리카락 몇 가닥, 하지만, 그저 웃어 넘겼다. 이게 크나 큰 불행의 전조일 줄은 전혀 생각도 못한 채.

거짓말 같이 갑자기 찾아온 탈모

"안녕하세요! 선배. 어(머)... 오빠..."

여자 후배는 놀란 눈을 내게 들켰다. 당황하지 않으려는 듯 어색하게 웃었다. 의식적으로 머리를 보지 않으려는 듯한 행동이 느껴졌다. 내 머리를 보고 너무 놀라고 당황했던 것이다. 내가 기분 상할까 봐 티를 안 내려고 하는 게 역력히 느껴졌다.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화양연화'라고 하던가? 이렇게 내 청춘의 화양연화는 짧았다. 정말 거짓말같이 그 순간은 너무도 짧았다. 반대로 그 고통의 터널은 길었다.

내게 당시 잘나가던 이동국, 차승원을 닮았다고 하던 여학생들이 앙드레김 헤어스타일 같다며 수군대기도 했다. 구준엽처럼 차라리 짧게 하고 다니라고 하기도 했다. 물론 머리는 밀어봤으나 난 구준엽이 아니었다. 삭발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삭발은 머리 작은 자들의 전유물이라는 걸 빠르게 깨달았다. 나의 가장 매력 키 포인트였던 긴 생머리는 이렇게 처절하게 빠지기 시작했다.

삼손이 머리가 잘렸을 때 이 정도였을까? 나는 무기력하고 침체됐다. 세상의 모든 것이 어둡게만 보이고 부정적으로 느껴졌다. 헤어나올 수 없는 늪 같은 현실. 그 당시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내 위치. 지금은 박명수가 개그 소재로 쓰는 흑채. 그 흑채를 매일 같이 챙기는 내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누군가는 웃으며 넘길 수 있는 탈모가 내겐 거짓말 같은 이야기로 순식간에 번갈아 왔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상황이라 내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일까?

그 당시 나는 매일 밤 자기 전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이건 악몽이라며 잠시 꿈이기를 기도했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오는 아침이 원망스러웠다. 무수한 불면의 밤과 애증의 아침을 맞이했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밖에 없다고 했던가? 매일 밤 수많은 불면의 기도들은 내게 가르쳐줬다. 기적을 바라지 말고 신이 내게 준 의지로 내게 기적을 행하라고. 결국 나는 깨달았다. 내가 당장 행복하다고, 고통에 처해 있지 않다고 타인을 조롱하지 말기를.

타인 고통 조롱하면, 언젠간 '돌아온다'

탈모인들의 사이트 '대다모'. 각종 탈모치료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이다.
 탈모인들의 사이트 '대다모'. 각종 탈모치료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이다.
ⓒ 대다모 사이트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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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술 전 아침을 먹고 오지 말라고 하신 거죠?"
"네, 가끔 부담감에 구토를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요."

아침을 거르고 수술을 받으러 오라는 병원 측의 요구.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런 심오한 배려가 있었다니. 이렇게 이 수술은 공포감이 컸다. 전신마취라도 하면 좋으련만, 이 수술은 부분 마취 밖에 안 된다고 했다. 그것도 수술 전 인터넷으로 모발 이식을 한다는 병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수소문 끝에 그 성공의 여부도 확신하지 못한 채 희망과 공포감과 함께 수술대에 누웠다.

탈모약도 먹어보고, 수많은 고민 끝에 결국 수술대에 눕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본 서부 영화에서 인디언들이 머리 가죽을 벗기는 모습을 보며 벌벌 떨던 나. 내가 그 대상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 후 난 거짓말 같이 탈모에 대해 무감각해지게 됐다. 수술도 수술이지만, 내 마음이 좀 더 유연해졌다고나 할까? 그렇게 거짓말 같은 일들은 큰 파도처럼 나를 휘젓고 지나갔다.

신기하게도 그 당시 나를 탈모라 놀리던 사람들에겐 이상하게도 후에 탈모가 왔다. 나에게 자신 있게 머리카락을 빡빡 밀고 다니라던 사람들. 그런데 이제 그들에게도 그런 상황이 닥쳤다. 나를 대머리라고 놀렸던 사람들, 나의 흑채를 조소하던 사람들 모두 다. 지금 당신이 행복하다고, 고통에 처해있지 않다고 타인을 조롱하지 말기를. 그러다 남의 고통이 자신에게 올 수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세월이 내게 알려줬다.

그 후 난 졸업할 때까지 주말 내내 알바를 했다. 돈 없는 대학생이라 카드를 긁어 수술을 해서 그랬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알바하면서도 술 한 잔 못 샀다. 술 한 잔 안 산다고 서운함의 대상까지 됐다. 하지만 그 당시 어린 나는 뭐가 그리 창피했는지 이 모든 사실을 비밀로 하고 싶었다. 이제야 얘기한다.

"친구들아! 미안하다! 이제 살아가면서 그때 못 산 술 많이 살게. 사랑한다 나의 친구들아!"


태그:#거짓말 같은 이야기, #탈모, #복학,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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