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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은 음악을 한다. 그래서 녀석은 '예술인'이다.

아마 동생이 열여덟 즈음이었던 시기로 기억한다. 녀석이 공부는 접고 취미로 시작한 베이스 기타를 끝까지 하겠다고 '폭탄선언' 했을 때, 대학생이던 나는 앞장서서 반대했다.

집안 내력에 '예술'의 피라고는 거의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을 뿐더러, 처음부터 예체능 계열에 매달렸던 또래들보다 훨씬 늦은 선택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갖가지 걱정이 밀려왔다. 저렇게 공부와 담 쌓고 살면 대학은 어디로 가고, 또 졸업과 취업은 어떻게 하고, 나중에 돈은 어떻게 벌어서 먹고 살런지. 그래서 말려야겠다고, 음악이야 좋은 대학에서 취미로만 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부모님의 걱정도 매한가지였다.

2013년 실용음악으로 유명한 대학에 입학

그렇게 꼬박 5년이 지났다. 지금 내 동생은 그렇게 좋아하는 기타를 붙들고, 어느 누구보다 잘 '나다니고' 있다. 제 방에 틀어박혀 새벽까지 양손이 부르트도록 베이스를 '둥둥' 거리더니, 2013년 결국 실용음악으로 유명한 대학에 입학했다.

내가 입학한 대학의 평균 경쟁률보다도 두세 배는 높은 바늘구멍을 뚫어냈다. 합격자가 발표되던 날, 녀석은 모니터를 서너 번이나 확인하고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통학이 어려워 학교 앞에서 학교 선후배, 동기들과 자취를 하게끔 했다. 부모님과 나는 개강 전날 자취방에 동생과 짐을 내려놓고 돌아오면서도 걱정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실용음악과의 마음 맞는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서는 종일 연습실 아니면 방에서 '딩가딩가' 하면서 논단다. 또 평소 좋아했던 재즈 가수들의 공연도 마음껏 따라다니고, 학교 선후배들의 공연도 보러 다닌단다. 물론 본인도 이제는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하고 다닌다. 피나게 연습해 콘트라베이스라는 커다란 악기까지 연주할 수 있게 됐다.

뮤직 페스티벌에 세션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결혼식 반주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용돈벌이도 스스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강남 가로수길에 있다는 재즈 바에서 달마다 공연도 하게 됐단다. 너무 바빠 주말에나 간신히 집에 들어오는 동생의 얼굴은 꽤나 피곤해보이지만 '행복 그 자체'다.

하릴없이 방에서 '자소설(자기소개서)'만 써대고, 이제는 '어디라도 채용만 해주신다면' 수준과 다름없는 내 삶보다 훨씬 낫다. 졸업만 기약 없이 미뤄놓은 채, 집에서 그저 밥과 용돈만 축내고 있는 나의 그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삶이다. 나의 앞길은 안개처럼 흐릿하고 모호하지만, 이 녀석의 앞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내게는 아무런 확신이 없지만, 녀석에게는 확고한 철학과 신념이 있다. 그래서 동생은 돈 욕심도, 명예 욕심도 없이 누구보다도 즐겁게 하루를 살아나갈 수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매일같이 할 수 있기에.

또래들은 어느새 속속들이 제대하고 있지만, 동생은 아직까지도 입대할 생각이 없다. 입대하고 나서도 자신의 음악을 계속할 수 있다는 군악대의 '바늘구멍'을 또 노리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녀석에게는 입대하기 전에 꼭 밴드 친구들과 소박하게나마 앨범을 하나 내겠다는 꿈이 있다. 이제 나는 동생이 음악에 투신하는 일을 반대하던 것이 얼마나 주제 넘는 짓이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나는 녀석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건국대 영화과, 학사구조 개편안 일방적으로 통보

최근 대학가가 학과 구조개편으로 인해 흉흉한 모습이다. 건국대학교 영화과는 최근 교무처로부터 학사구조 개편안을 일방적으로 '통보' 받았다. 2016년부터 예술디자인대학의 영화과와 영상과, 텍스타일디자인과와 공예과를 모두 통폐합한다는 것이 골자다.

통폐합의 실질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취업률' 때문이다. 정규직보다는 계약직과 프리랜서로 더욱 활발히 활동하는 예체능 계열의 특성상, 기존 학과의 유지가 취업률을 높이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해서다.

현재 영화과 학생들은 소통과 논리 없는 통폐합에 반대하며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머리에 띠를 두른 채 단식투쟁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무엇 하나 모르는 채 그대로 입학한 15학번 신입생들도 마찬가지다.

건국대가 통폐합하고자 하는 학과들은 모두 '예체능 계열'이라는 큰 범위로는 묶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 학과의 특성과 목표, 교육과정은 엄연히 구분된다. 진리의 전당인 대학에서, 순수한 예술과 학문을 한낱 '취업률'이라는 몇 개의 숫자 따위로 옭아맬 수는 없다. 교정에 발을 들인 청년들에게는 의무교육의 무거운 족쇄에서 벗어나, 온전히 원하는 예술과 학문을 추구할 자유와 권리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보다 넓은 눈으로 보고 배우기 위해' 입학한 것이지, 결코 단순히 '취업하러' 입학한 것이 아니다. 취업을 제일의 목적으로 두는 곳은 그저 직업 양성소일 뿐이지, 더는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칭할 수 없다. 취업이라는 것이 대학생활과 청년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버젓한 학과의 존폐가 걸려있는 영화와는 비록 서로 계열이 다르지만, 이제는 진정한 '딴따라'의 길을 걷고 있는 내 동생이 그것을 온몸으로 가르쳐주고 있다. 분명한 목표가 있고, 또 그것을 이뤄내기 위한 열정이 있다. 이른바 '춥고 배고픈 시절'을 견뎌내며, 온갖 고난 끝에 그것을 성취하는 데에서 오는 짜릿함이 있다.

설령 이름난 기업에 입사하지 못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의 그 삶이 행복하기에. 그래서 예술과 학문에는 고작 숫자와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혼이 있고, 수많은 꿈이 깃들어 있다.

건국대의 구조조정이 부당한 이유는 그래서다. 맹목적인 취업이 아니라 꾸준히 자신의 꿈을 좇던 청년들에게, 그 열정을 펼쳐 보일 최소한의 기회조차도 주지 않은 채 그것을 그대로 짓밟아버렸기 때문이다. 예술과 학문은 그저 상대와의 우열을 가리고, 평가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엄연히 존재하면서 사람을 웃기고 또 울리게 만드는 것만으로, 그것의 존재 가치는 이미 차고도 넘친다. 최근 예술과 함께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인문학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꿈과 열정은, 그리고 순수함은 지켜져야만 한다.


태그:#건국대학교, #학과 통폐합, #영화과, #영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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