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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부산교육감배 및 제18회 총재배 전국 댄스스포츠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춤을 추기 시작하는 모습
▲ 시작은 멋있게 제12회 부산교육감배 및 제18회 총재배 전국 댄스스포츠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춤을 추기 시작하는 모습
ⓒ 이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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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수많은 종류의 운동이 있지만 댄스스포츠만큼 좋은 운동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에 따라 내면의 에너지를 몸동작으로 표현하여 스스로 아름다움을 연출할 때 느껴지는 그 환희는 댄스스포츠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검정색 연미복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한 쌍의 남녀가 리듬에 맞추어 이리 돌고 저리 돌며 사뿐 사뿐 무대 위를 휘젓고 다니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환상적이다.

지난 22일 부산광역시체육회관에서는 제12회 부산교육감배 및 제18회 총재배 전국 댄스스포츠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어느새 50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우리 부부도 이날 대회에 참가했다. 댄스에 결사반대하던 아내가 대회까지 참가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감회가 느껴졌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내가 제2의 인생을 찾아 댄스스포츠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에 아내는 누구에게 들었는지 '춤바람' 운운하면서 제발 그만두라며 울며불며 바가지를 긁었다. 내가 굽히지 않자 아내는 급기야 이혼이라는 마지막 카드까지 꺼내들고 나를 압박하였다. 나는 '춤이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맞서서 간신히 아내의 주장을 물리쳤다.

그 후 언젠가 나는 아내 몰래 댄스강사와 댄스스포츠대회에 처음 출전했다가 아내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다시는 댄스대회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는 아내의 분노를 달래었다. 점잖다고 소문난 남편이 왜 그렇게 말려도 악착같이 댄스스포츠를 계속하는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아내는 나 몰래 가야대학교에서 댄스스포츠를 배웠다. 그러고는 나보고 댄스스포츠를 더 이상 배우지 말라고 하였다. 파트너체인지를 할 때 외간남자의 손을 잡으니 기분이 이상해지더라는 것이다.

댄스스포츠 반대하던 아내 때문에, 딸이 파트너로 나서다

나는 바로 그것이 댄스스포츠의 장점이라고 설득하면서 마뜩찮게 생각하는 아내를 데리고 부산에 있는 평생교육센터로 춤을 배우러 다녔다. 퇴근 후 승용차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까지, 차 안에서 김밥을 먹어가며 2년을 함께 다녔는데도 아내는 여전히 춤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식당에서 가족이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다가, 댄스대회에 출전하고 싶다는 나의 말에 아내가 과민 반응을 일으켰고, 부부싸움을 대판 벌였다. 이때 우리 딸이 깜작 놀라 자신이 십자가를 지겠다고 나서며 말렸다.

이리해서 나는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딸을 데리고 댄스스포츠학원에 다니며 대회를 준비했다. 그리고 부산교육감배 등 여러 대회에 모던 3종목(왈츠, 탱고, 퀵스텝)에 출전하여 모두 입상하였다. 나는 딸과 함께 아마추어 모던 5종목에 출전하여 챔피언이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딸의 고등학교 진학과 나의 인사발령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춤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대학생이 된 딸을 데리고 다시 대회준비를 시작했지만 딸이 너무 바빠 많이 힘들어 했다. 그래서 지난해 9월 8일 제1회 김해시장배 댄스스포츠 대회에 모던 2종목(왈츠, 탱고)에 출전하여 일반부와 교원부에서 각각 1위에 입상한 것을 끝으로 나는 아쉬움의 눈물을 머금고 딸을 파트너의 굴레에서 해방시켜주었다.

나에게 댄스파트너가 없어지자 불안해진 아내는 다른 여자들로부터 남편을 지켜내기 위해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자신이 내 파트너가 되어 대회에도 출전해 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댄스파트너로서 최고의 미모와 신체적 조건을 갖춘 딸에 비하면 아내는 유연성 등 모든 면에서 부족했지만 나는 아내의 눈물겨운 결단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함께 대회를 준비하였다.

그동안 아내는 나와 함께 상당한 시간 동안 단체반 강습을 받았으나 사실은 대회에 나갈 정도의 수준은 안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내에게 모던댄스의 깊은 맛을 알려주기 위해 함께 개인 레슨을 받아가며 대회 준비를 재촉하였다.

"이러면 나 춤 안 추고 갈래, 즐기자고 했잖아"

댄스스포츠는 모던 5종목(왈츠, 탱고, 퀵스텝, 폭스트롯, 비엔나왈츠)과 라틴 5종목(룸바, 삼바, 자이브, 차차차, 파소도블레)으로 구성된다. 경쾌하고 현란한 라틴댄스도 좋지만 나이가 들면 중후한 맛의 모던댄스가 더 잘 어울린다. 왈츠로 대표되는 모던댄스는 신체를 상하좌우로 강하게 스트레칭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므로 제대로 된 동작으로 춤을 추고 나면 몸이 개운하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게다가 플로어를 돌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남녀 커플의 동작이 하모니를 이루게 될 때 느껴지는 그 기쁨이야 두말해 무엇 하랴! 

이러한 춤 맛을 느끼려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여야 한다. 그 수준에 이르려면 상당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여야 하는데 댄스경기대회에 참가하면 동기부여가 되므로 실력이 빨리 향상된다. 그래서 나는 아직 부끄럽다며 손사래 치는 아내를 설득하여 위와 같이 대회 참가를 강행한 것이다. 경기가 있던 날 아침 나는 과연 아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한데 아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 태평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첫 출전하는 대회라며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지인들을 초청하여 나를 난감하게 하였다.

비록 이번 대회는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기로 하였지만 그래도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만큼의 실력은 보여줘야 할 텐데 너무 태평이어서 내심 걱정이 되었다. 베풀기를 좋아하는 아내가 음식을 잔뜩 준비하여 경기장에 도착해서도 경기보다 지인들을 먼저 챙기는 것이 나는 못마땅하였다. 실력 있는 사람들도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실수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초급수준으로 첫 출전하는 아내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아끌고 경기 시작 전에 연습 한 번 하자며 플로어로 들어섰다. 구겨진 내 인상을 본 아내는 "이러면 나 춤 안 추고 그냥 집에 갈래, 즐기자고 했잖아!"라고 하면서 오히려 내게 화를 내었다. 나는 순간 공든 탑이 무너질 것 같은 위기감이 들어 재빨리 아내를 달래며 사태를 수습하였다. 순서가 되어 교원부 모던 2종목(왈츠, 탱고)에 출전한 우리는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음악이 끝날 때까지 그런대로 춤을 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결과 뜻밖에 상장도 하나 거머쥐어 다행이었다. 아내는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몸살이 나서 쓰러질 만도 한데 경기장면을 찍은 휴대폰 동영상을 수없이 반복해서 보며 자신의 춤추는 모습에 감격하여 "여보, 나 잘했지? 잘했지?"라며 감탄을 연발하였다. 나는 "그럼, 그럼, 초보가 그 정도면 훌륭하지, 더 잘하길 바란 내가 나쁜 놈이지……"라고 대답하며, "요즘 평균수명이 자꾸 늘어나 인간 수명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우리 매달 여행 삼아 전국을 일주하며 댄스대회에 참가도 하고 죽을 때까지 춤추면서 즐겁게 삽시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내는 그렇게 하자며 빙그레 웃었다.

"아 그리고 앞으로 40년쯤 후에 우리도 다큐멘터리 영화 한편 찍읍시다. 내가 영화 제목도 미리 정해놨는데 뭔지 알아?"라고 내가 말하자 아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뭔데요"라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제목을 크게 불러주었다.

"님아 그 춤을 멈추지 마오!"          

아내는 키득 키득 웃으며 동영상을 계속 보다가 휴대폰을 손에 쥔 채로 이내 잠들었다. 어린아이마냥 해맑은 얼굴로 잠든 아내의 모습이 오늘따라 참 아름답다.


태그:#댄스스포츠, #중년부부, #모던댄스, #부산교육감배, #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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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 즐거운 학교, 함께 가꾸는 경남교육을 위해 애쓰는 경남교육청 소속 공무원이었으며, 지금은 경남학교안전공제회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댄스스포츠를 국민 생활체육으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무도예술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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