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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발생 343일째인 24일, 고 이승현(단원고)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누나 이아름씨는 '30일째' 3보1배를 이어갔다. 이호진씨가 3보1배 도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아버지 이마에 맺힌 굵은 땀방을 세월호 참사 발생 343일째인 24일, 고 이승현(단원고)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누나 이아름씨는 '30일째' 3보1배를 이어갔다. 이호진씨가 3보1배 도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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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름씨가 3보1배를 하며 전남 무안 인근을 지나고 있다.
▲ 3보1배 30일째, 나무에는 새순이... 이아름씨가 3보1배를 하며 전남 무안 인근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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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숫자마다 발을 내디딘 뒤, 무릎을 꿇는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휴우" 숨을 내쉰다. 몸을 맡겼던 지면에 손바닥 힘을 가해, 그 힘의 반동으로 허리를 세운다. 무릎에 손을 짚고 몸을 일으킨다. "하아."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렇게 '하나, 둘, 셋', "휴우", "하아"의 반복. 어쩌다 무릎에 잔돌이라도 걸리면 신음 소리는 두 배로 커진다. 3보 1배를 시작한 지 20분이 지났다. 등줄기와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보호대로 감싼 무릎 뒤편도 땀으로 가득 찼다.

보이는 건 눈앞의 모형 세월호와 바닥의 아스팔트가 전부. 간혹 지나가는 새와 이정표가 기자의 눈길을 끈다. 이정표에 적힌 '광주' 두 글자가 야속하다. 이 글자가 '광화문'이 될 때까지 승현 아버지와 누나는 3보 1배를 계속해야 한다.

진도 팽목항부터 약 110km 이동

이아름씨가 3보1배를 하며 전남 무안 인근을 지나고 있다.
▲ '편한 세상' 오길 기도하며... 이아름씨가 3보1배를 하며 전남 무안 인근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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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름씨와 시민들이 3보1배를 하며 전남 무안 인근을 지나고 있다.
▲ "실종자를 가족 품으로" 이아름씨와 시민들이 3보1배를 하며 전남 무안 인근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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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발생 343일째인 지난 24일, 고 이승현(단원고)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누나 이아름씨는 '30일째' 3보 1배를 이어갔다. 이날 오전 10시, 전남 무안 초당대학교 앞에서 출발한 부녀는 오후 5시 전남 함평 송촌마을 인근까지 약 4km를 나아갔다. 지난달 23일 진도 팽목항을 출발해 이날까지 약 110km를 3보 1배로 이동했다. 이 거리를 네 번 더 가야 광화문에 도착할 수 있다.

날씨가 많이 풀린 탓에, 3보 1배를 하는 부녀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거리 곳곳에는 봄꽃과 새순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이호진씨는 "그래도 오늘은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3보 1배를 하기에 좋은 날씨다"며 옅은 웃음을 내보였다.

처음 3보 1배를 시작할 때에 비해 부녀는 몸도, 마음도 한층 여유를 찾은 듯했다. 이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힘든 게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처음보다 몸이) 많이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이아름씨는 매일 아버지 계정의 페이스북에 쓰고 있는 일기(23일 자)에 "(3보 1배를 시작했던 때와는) 달라졌다"고 말했다. 부끄러워하며 자신이 쓴 일기를 읽는 아름씨의 목소리엔 넉넉함이 담겨 있었다.

"2015년 3월 23일 월요일. 한 달이 다 돼갑니다. 출발할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냥 하루를 열심히 사는 느낌입니다. 하루하루가 감사합니다. 그저 그런 하루가 아니라 감사하고 또 감사한 하루입니다.

길 위에서 절하고 있는 아빠와 저의 모습이 서글플 때도 있지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화가 나서 절을 했습니다. 제가 길바닥에 절을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달라졌습니다. 믿을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이 길 위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출근한다 생각하고 아침에 길을 나섭니다. 그리고 퇴근하듯이 기쁘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내일 하루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함께 3보 1배하는 시민들... 식사 대접에 물·음료 건네기도

3보1배에 나선 시민들이 모형 세월호를 끌며 전남 함평 인근을 지나고 있다.
▲ 이정표 속 '광주'가 '광화문'이 될 때까지 3보1배에 나선 시민들이 모형 세월호를 끌며 전남 함평 인근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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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씨가 3보1배 도중 휴식을 취하며 땀을 닦고 있다.
▲ 땀 닦는 아버지 이호진씨가 3보1배 도중 휴식을 취하며 땀을 닦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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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시간, 이호진씨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며 지난해 이맘때를 떠올렸다.

"뭐 특별한 건 없었죠. 그냥 2남 1녀 키우던 행복한 모습? 아, 승현이는 수학여행을 앞두고 들떠 있었던 것 같아요."

이씨는 "아직도 승현이를 비롯해 304명이 왜 희생됐는지 잘 모르겠다"며 한탄했다. 자신이 3보 1배를 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 역시 한탄스럽지만, 그는 "304명이 왜 희생됐는지 밝히기 위해 국민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3보 1배를 이어갔다.

이날 부녀의 3보 1배 현장에는 목포·무안 등 인근 지역 시민들이 참여해 힘을 보탰다. 10여 명의 시민이 부녀 뒤에 줄지어 섰다. 그리고 걷고 절하기를 반복했다.

이날 직접 3보 1배를 한 김세나(43, 전남 무안)씨는 "아직도 유가족들이 이렇게 거리에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며 "하루 빨리 희생자와 그 가족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정부가 세월호를 인양하고 진상규명에 나섰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3보 1배를 함께 하지 않더라도 마음을 전달한 이들도 있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강진지회' 회원 4명은 직접 마련한 음식을 들고 무안까지 찾아와 부녀와 3보 1배를 하는 시민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기도 했다. 이호진씨는 "물김치가 정말 맛있다"며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다.

자신을 목포 시민이라고 소개한 한 남성은 부녀에게 세발낙지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는 이씨의 손을 붙잡고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다, 남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 남성 외에도 길을 지나다 3보 1배를 하고 있는 부녀를 본 시민들은 물, 음료수 등을 건넸다.

"일기 쓰면 눈물이 나"

이호진씨가 3보1배 선두에 서서 교통정리, 물품보관 등의 역할을 하는 승합차의 현수막을 바라보고 있다.
▲ '한' 맺한 아버지 이호진씨가 3보1배 선두에 서서 교통정리, 물품보관 등의 역할을 하는 승합차의 현수막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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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교사'라고 적힌 깃발을 든 시민이 전남 함평 인근을 지나고 있다.
▲ '반면교사' 깃발 든 시민 '반면교사'라고 적힌 깃발을 든 시민이 전남 함평 인근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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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보 1배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간 이아름씨는 이날도 일기를 적어 내려갔다. 이날 일기에는 고 이승현군과 자신의 동생이자 승현군의 형인 이동현씨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아름씨는 "일기를 쓸 때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아래는 이날 아름씨가 쓴 일기 전문이다.

2014년 3월 24일 화요일, 30일 차. 무안을 지나 함평에 접어들었습니다. 함평을 지나고 나주를 지나면 광주에 가 있겠죠. 절을 하다가 힘들면 저 앞에 보이는 게 광화문이라고 생각하고 절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경찰 아저씨께 전화하고, 숙소에 오면 안산에 있는 동생(이동현씨)에게 전화를 합니다. 아빠와 누나를 잘 알고, 이해하는 동생입니다. 그래서 승현이와 함께 집에서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와 아빠가 이곳에 있기 때문에 동생은 동생 자리를 잘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동현이까지 길바닥에 나오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동현이도 그걸 알고 있을 겁니다. 저와 아빠의 마음을.

우리 셋은 우애가 정말 좋아서 동현이는 동현이대로, 저는 저대로 승현이를 많이 예뻐했습니다. 똑같이 용돈 받는 처지라도 얼마씩 승현이에게 몰래 챙겨주곤 했습니다. 막내라서 그렇게 예뻐했는지 자기 동생이라 그렇게 예뻐했는지 우리 동현이도 승현이가 참 많이 보고 싶을 겁니다.

동현이는 승현이와 함께 있습니다. 승현이의 유골함이 있는 방에서 동현이가 잡니다. 저는 물어봅니다.

"아직도 승현이랑 같이 있는 거 괜찮아? 힘들면 말해줘야 해."

동현이는 말합니다. "좋다"고.

아빠와 제가 나갔다 올 때면 승현이 사진을 옆에 두고 잠드는 '형아'입니다. 우리 동현이는 말이 많지는 않지만, 속 깊고 듬직한 장남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힘들 동현이에게 저는 자주 물어봅니다. "괜찮느냐"고.

아빠와 누나의 마음을 알고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동현이가 대견하고, 보고 싶습니다. 동현이를 보러 가면 다시 이 길바닥으로 나오지 못할까 봐 하루씩만 더 참는 중입니다. 우리는 승현이를 사랑하는 가족이기 때문에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거라 애써 다짐합니다.

이제는 동현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승현이는 동현이가 혼자 있을 때 꿈에 자주 나오는 것 같습니다. 승현이가 오늘 밤에도 동현이를 찾아가, 누나 대신 동현이를 지켜주길 바라봅니다.

이호진씨와 시민들이 3보1배를 하며 전남 무안 인근을 지나고 있다.
▲ 3보1배 하는 아버지, 뒤따르는 시민들 이호진씨와 시민들이 3보1배를 하며 전남 무안 인근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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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름씨가 휴식 시간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 물 마시는 '승현이 누나' 이아름씨 이아름씨가 휴식 시간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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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참사, #3보1배, #이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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