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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호!)>(작가 억수씨)라는 웹툰의 여자 주인공 Ho는 청각장애인이다. Ho는 의사소통을 수화가 아닌 구화로, 불분명한 발음이긴 하지만 목소리를 내어 대화하는 똘똘하고 예쁜 여자 아이다. Ho는 초등학생 때 만난 학원 선생님인 남자 주인공을 존경하고 좋아한다. 선생님을 처음 만난 날 집으로 돌아온 Ho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새 선생님, 나 귀 안들리는데 신경 안 써."

자기를 장애인으로 보지 않고 그냥 수학 못하는 초딩으로만 봐준 선생님이 너무 고맙기도 하고, 또 그래서 좋았다는 것이다.

특이하게도 <Ho!>에는 감수자가 있었다. 작가 본인이 아무래도 비장애인이다 보니 청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정확도가 떨어질지도 몰라 청각장애인을 감수자로 두어 매번 업데이트 전에 확인을 한다는 거였다. 감수자의 이름은 김민경이었고, 설날 특별편에서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민경씨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되겠냐는 작가의 물음에 민경씨는 "재밌는 사람으로 그려"주기만 한다면 '오케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자기 자랑도 간혹 하는, 아주 당당하고 씩씩한 민경씨를 작가는 복지관에서 처음 만났다. 민경씨는 복지사로 일하고 있었고, Ho와 마찬가지로 구화를 하는 청각장애인이었다.

작가는 민경씨에게 사회에 어떤 불만이 있는지 묻는다. 민경씨는 사람들은 청각장애인, 하면 어떤 일반화를 하려 한다는 것이 불만이라고 대답한다. 예를 들면 청각장애인은 다 차분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다 다르듯이, 청각장애인도 모두 다 다르다는 것이 민경씨의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민경씨는 이렇게 당부했다.

"그러니 어떤 잣대를 가지고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1급 장애인 균도를 장애인으로만 봐서는 안 되는 까닭 

<우리 균도> 표지
 <우리 균도> 표지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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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도 아버지 이진섭씨도 <우리 균도>에서 같은 말을 했다. 발달장애인인 아들 균도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너무 틀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균도는 1급 자폐성 장애인이다. 여느 아기들처럼 3.13킬로그램으로 태어난 사랑스러운 아들 균도였지만, 자라면서 조금씩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의 모습을 보며 부모의 머릿속에도 '장애'라는 단어가 떠올랐지만, 부모는 균도가 그저 조금 특이한 아이이기만을 바랐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장애인 낙인을 찍을 수는 없다 생각했다. 차라리 본인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게 나았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생이던 균도가 유치원생이 주는 지렁이를 받아 먹고 오는 사건이 벌어진다. 부모는 이날부터 아들의 장애를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부산장애인복지관에서 균도를 장애등급 '1급'으로 등록했다.

균도는 발달장애인이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발달장애인과 같은 것은 아니다. 균도는 세 살 때 이미 혼자 글을 다 깨치고, 다섯 살 때는 영어사전까지 줄줄 욀 정도로 기억력이 좋은 아이였다. 언제나 위인전을 옆구리에 끼고 살았고, 책에서 본 모든 것들, 경험한 모든 것들을 달달 외울 수 있는 능력자이기도 했다.

서번트증후군이란 사회성이나 의사 소통 능력면에서는 장애가 있으나 특정 부분에서는 매우 특출난 능력을 보이는 증상을 말하는데, 균도 역시 기억력이 좋은 걸 보면 서번트증후군에 속했다. 그런데도 사회는 균도를 '장애인' 또는 '발달장애인'으로만 분류하곤 그저 '바보'라고 부른다. 균도는 "1958년 3월 24일은?"하고 물으면 "월요일, 개띠, 무술년"이라고 척척 대답할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인데도 말이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틀에 박힌 시선은, 장애인 가족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 가족의 희생과 헌신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장애인 한 명 때문에 집안이 폭삭 주저앉아도 사실상 사회가 해줄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사회가 나 몰라라 하다 보니 장애인에 대한 정책이나 제도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이에 대한 이진섭씨의 생각은 이렇다.

자식을 낳았으니, 부모의 책임은 누구보다 통감한다. 오죽하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 하는 게 우리 부모들의 소원이 되었겠는가. 그렇지만 부모가 죽고 나면 누가 우리 아이를 책임지겠는가? 돈을 많이 벌어 두면 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 정책이 바뀌면 이런 부모의 근심도 많이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장애아라는 사회 최약자를 부모 혼자 책임져야 한다면, 복지국가는 아닐 것이다. 난 균도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 역시 사랑한다. 우리 균도가 나머지 가족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가족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도움을 달라. 그 책임을 가족에게만 전가하지 말아 달라. - <우리 균도> 중에서

'우리 아이에게 도움을 달라!'라는 그의 말은 결국 '우리 아이를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달라! 사회 최약자를 모른 척하지 말아달라!'라는 의미일 테다. 그리고 더 간곡히 말하자면 '우리 아이를 살려달라! 우리 아이들을 살려달라! 장애인을 살려달라!'가 될 것이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편견과 차별에 맞선 부자의 도보시위

2012년 5월 '발달장애인법 제정'과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를 주장하며 광주에서 서울까지 500km 도보행진을 벌인 발달장애인 이균도씨와 그의 부친 이진섭씨.
 2012년 5월 '발달장애인법 제정'과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를 주장하며 광주에서 서울까지 500km 도보행진을 벌인 발달장애인 이균도씨와 그의 부친 이진섭씨.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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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진학한 균도를 보며 이진섭씨는 고민에 빠진다. 앞으로 균도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균도를 살게 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그는 다시 학교에 진학한다. 균도가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갈 때, 아버지 역시 부산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3학년으로 편입한다. 그리고 부자는 같은 해 고등학교를, 대학교를 졸업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갈 곳 없는 균도가 되었다. 사회복지학과를 나온 아버지라 해도 균도를 도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진섭씨는 사회에 문제제기를 해보기로 한다. 균도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장애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진섭씨는 사회와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기를 바랐다. 발달장애인 아들과 함께 걷게 된 이유였다.

균도와 균도 아버지는 2011년 3월 12일, 부산에서 서울까지 600킬로미터, 40일간의 도보시위를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도보시위는 3년에 걸쳐 다섯 차례나 이어졌고, 그 사이 균도와 균도 아버지의 세상 걷기는 각종 매스컴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가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의 수확이라면 장애아동복지지원법,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된 거였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부자의 세상 걷기가 행복한 끝을 맺으려면,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더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하다. 균도랑 시내를 가다 균도의 행동 장애로 누군가와 부딪히면 어김없이 항의가 들어온다. 난 그러면 이야기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해하세요." 어떤 이들은 고약한 소리를 하기도 한다. "저런 애를 왜 데리고 나와. 집에 처박아 두지…." 호되게 흠씬 패주고 싶을 때 진짜 많다. 그렇지만 참는다. 그럴 때면 정말 마음에 참을 인을 백 번도 더 새긴다. - <우리 균도> 중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변화될 필요가 있다. 이진섭씨는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을 더욱 비참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폭력적인 태도보다 그들의 시선이라고 말한다. 나와는 다른 이방인을 대하는 듯한 냉정하고 차가운 시선들, 그 시선들 아래 깔려 있는 우월감과 편협함이 그들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힌다는 거였다.

보통 사람들이 장애인에게 휘두르는 가장 아픈 무기가 시선이다. 경멸하는 듯한 시선은 우리 장애 가족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다. 욕이야 욕으로 되갚아 줄 수도 있지만 시선은 깊은 곳에 모멸감을 불러일으킨다. 시선 처리가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 <우리 균도> 중에서


이런 시선, 우리는 어떻게 하면 거둘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님을, 다른 것이 실패가 아님을,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는 다른 사람임을 이해할 수 있을까. 배움을 통해 가능하지 않을까. 처음부터 다시 하나하나 배워보는 것이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는 것을. 다름은 인정해줘야 하는 가치라는 것을. 다른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회 구성원이라는 것을.

균도 아빠 이진섭씨가 걷고 또 걸으며 지속적으로 이야기한 바도 바로 이것이었다. '장애인도 사회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이 당연한 외침이 실현되기 위해 우리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이 분명한 사실을 결코 잊으면 안 될 것이다.

균도 아빠의 새로운 싸움... '원전을 폐쇄하라!'

2012년 5월 '발달장애인법 제정'과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를 주장하며 광주에서 서울까지 500km 도보행진을 벌인 발달장애인 이균도씨와 그의 부친 이진섭씨가 대전지역 장애인 및 부모회 회원 등과 함께 대전시청에서 대전역까지 걸어가고 있다.
 2012년 5월 '발달장애인법 제정'과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를 주장하며 광주에서 서울까지 500km 도보행진을 벌인 발달장애인 이균도씨와 그의 부친 이진섭씨가 대전지역 장애인 및 부모회 회원 등과 함께 대전시청에서 대전역까지 걸어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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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균도는 왜 장애를 얻게 되었을까.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이고, 앞으로도 계속 공론화되어야 할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균도 가족은 고리 원전이 있는 부산 기장군에서 20년 이상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들과 걷기를 시작하기 전 이진섭씨는 직장암 판정을 받는다. 1년 후 아내 역시 갑상샘암 판정을 받는다. 장모님은 위암 판정을 받았다. 거기다 아들은 발달장애. 이진섭씨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암 발병률이 높은 시대라지만, 한 가족 안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아플 수 있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사실이 고리 원전 반경 30킬로미터 내 지역의 암 발병률이 다른 지역보다 2.5배 높다는 거였다.

고리 원전은 30년 이상 부산 기장군에 자리 잡고 있는, 특히 고리 1호기는 한국에서 가장 노후한 원자력 발전소이다. 고리 1호기는 2007년 30년 수명을 다했지만 아직까지 운행되고 있기도 하다. 2017년에는 폐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생각한다면, 분명 폐쇄해야 할 것이다. 당시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들이 40년 가까이 가동된 늙은 원전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진섭씨는 고리 원전 지역의 암 발병률에 관한 서울대학교 주영수 교수의 연구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소송을 건다. 그리고 일부 승소한다. 한수원은 균도 엄마의 갑상샘암에 대해서만 위자료 1500만 원을 지급했다. 다소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이기는 했지만, 원자력 발전소가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인정된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기도 했다.

고리 원전을 가운데에 두고 경제논리를 앞세우는 한수원과, 환경과 생명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외치는 기장 주민들의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균도와 균도 아빠도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 외롭게 시작된 부자의 세상 걷기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아름답고도 실질적인 영향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우리 균도> 이진섭 씀, 후마니타스 펴냄, 2015년 3월, 304쪽, 1만5000원

다섯 살 때 영어사전 줄줄 외운 아이,



우리 균도 - 느리게 자라는 아이

이진섭 지음, 후마니타스(2015)


태그:#균도, #세상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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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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