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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2013년, <오마이뉴스>는 '마을의 귀환' 특별기획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위험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공동체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마을의 귀환 시즌2는 '1인가구 공동체'에 주목합니다.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1인가구와 마을공동체,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요. '1인가구'와 '공동체', 나아가 '마을'의 만남은 가능할까요. '탈고립', '탈가족주의', '탈자본주의', '탈도시'... 1인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 지금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아무런 연고도 없이 제주도로 내려와 제주살이에 적응하며 살고 있는 김혜영 씨(왼쪽)와 조남희 씨가 9일 오후 제주 도평동 조 씨의 집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헤어지며 "앞으로 자주 연락하며 지내자"고 인사하고 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제주도로 내려와 제주살이에 적응하며 살고 있는 김혜영 씨(왼쪽)와 조남희 씨가 9일 오후 제주 도평동 조 씨의 집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헤어지며 "앞으로 자주 연락하며 지내자"고 인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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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신 36살 여자와 경주 출신 42살 여자가 제주에서 만났다. 공항 근처, 제주시 도평동 조남희(36)씨의 '구월이네' 셰어하우스. 마당에서 바라본 하늘 위로 비행기가 분주하게 떠다녔다.

'서울 토박이' 조남희씨는 3년 전인 2012년 여름, 제주도에 입도했다. <오마이뉴스>에 '서울처녀 제주착륙기'를 연재해온 조씨는 최근 <푸른 섬, 나의 삶>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현재 그는 제주이민자들의 '연착륙'을 돕기 위한 셰어하우스를 도평동과 저지리에서 운영하고 있다. '육지사람'들이 제주에 정착하기 전, 일정 기간 동안 제주에 살아보며 제주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경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오던 김혜영(42)씨는 지난해 봄, 제주로 이주했다. 김씨는 서귀포에서 친언니와 함께 '달리네 민박'이라는 이름의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2013년, 퇴사 후 계획했던 해외여행 일정이 무산되면서 '제주에서 100일만 살아보자'고 생각하고 왔다가 이듬해부터 제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제주올레 아카데미' 수업을 받고 있는 김씨는 올레꾼들과 주변의 '독거인'들을 위한 '아침식당'을 계획하고 있다. 9일 오후, 두 사람을 만나 제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환상제주'가 아닌 순도 100% '리얼제주'를.

"이웃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다"

제주도 도평동과 저지리에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남희 씨. '서울 토박이'인 조 씨는 3년 전 제주도로 입도한 뒤 제주이민자들의 '연착륙'을 돕기 위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 도평동과 저지리에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남희 씨. '서울 토박이'인 조 씨는 3년 전 제주도로 입도한 뒤 제주이민자들의 '연착륙'을 돕기 위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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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분 다, 비혼 여성 1인가구다. 제주 이주민 중에 여자가 많은 편인가.
조남희(아래 조) : "특별히 여자가 많은 건 아니다. 제가 대평리에서 1년을 혼자 살다가 셰어하우스 하면서 저지리로 왔는데, 여자 혼자 집을 구하고 마을에서 뭔가를 해보려고 할 때랑 가족이 와서 집을 구하고 뭔가를 하는 거랑 다른 그림이 펼쳐지더라. 아무래도 인식 자체가, 아이가 있는 가족이 와서 집을 구하려고 하면 마을에서는 정착을 하는 걸로 받아들인다. 혼자 오는 여자는 그나마 낫다. 혼자 오는 남자들은 특히 마을에서 불안한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시골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많으니까, 아이가 있으면 마을 사람들한테 다가가기가 쉽다. 저는 애가 없으니까 다른 걸로 어필을 하려고 했다(웃음). 맛있는 거 있으면 갖다 드리려고 노력을 한다든지."
김혜영(아래 김) : "서울에서는 옆집하고도 거의 왕래 없이 지냈다. 여기 와서도 처음에는 그랬다. 딱히 이웃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는 가스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웃한테 묻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조 : "정보가 마을 사람들한테서 나오는 게 많으니까."  
김 :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옆집이랑 알고 지내게 됐다. 옆집이 식당을 하면서 감귤 밭도 하는데 뭔가가 생기면 꼭 연락해서 갖다 주시고. 저희도 받은 게 있으니까 뭔가 있으면 갖다 드리고. 택배도 받아 주시고. 서울에 있을 때는 옆집이 나란히 있어도 오고가다 열쇠 같이 꽂거나 그럴 때 아니면 인사 안 했는데."
조 : "차 뺄 때 인사하고."
김 : "제주에 와서 이웃에 대한 개념 정립이 새롭게 된 것 같다. 저보다 (제주에서) 더 외진 곳에 있는 지인들 이야기 들으면, 할머니들이 새벽에 물질하고 와서 집 앞에 뭔가 툭 던져놓고 가시고, 마을 사람들이 많이 보살펴 준다고 한다. 그런데 남자들은 확실히 여자들에 비해 소통의 빈도가 낮은 측면이 있는 것 같다."  

- 두 분 다 아무런 연고 없이 제주에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조 : "완전 맨 땅에 헤딩을 한 거다. 아는 사람 하나도 없고. 그나마 페이스북 하면서 인맥을 넓히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김 : "맞다. 제주는 페이스북이 갑이다. 도시에 살면 페이스북으로 친구가 돼도 평생 만날까 말까 한 사람들이 많은데, 제주에서는 두 달 안에는 꼭 보게 되더라. 만나지는 못해도 나중에 같은 공간에 있었다고 페이스북에 올라오거나."
조 : "그래서 여기에서는 어디 가서 남 욕을 못한다(웃음). 바로 내 뒤에 돌아온다. 익명성이라는 게 없다. 그게 적응이 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더라."

- 처음 제주에서 사람들 알아가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어떤 게 있었나.
조 : "직업이 없어서(웃음). 소개를 해야 하는데, 나는 무직이니까... 그래도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하고 있었으니까, 시민기자 명함 주고." 
김 : "도시에서는 명함을 내밀지 않으면 사회에서 소외되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뭐하고 계세요?'라는 질문에,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안 하는데요'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신기했다. '쉬러왔다', '쉬고 있다'는 게 어색하지 않은 곳이 제주인 것 같다."
조 : "저는 그게 잘 안 되더라. 육지에서 계속 회사를 다니고 명함을 내밀고 '나는 누굽니다'. 그게 갑자기 안 되는 삶이 익숙하지 않으니까. 자유로워지지 못했던 거다. 제가."

"매일매일 제습기에 물이 꽉... 그게 '리얼 제주'다"

'달리네 민박' 한쪽 벽면에는 주인장인 김혜영 씨의 제주도 사랑을 가득 느낄수 있는 사진들로 벽이 꾸며져 있었다.
 '달리네 민박' 한쪽 벽면에는 주인장인 김혜영 씨의 제주도 사랑을 가득 느낄수 있는 사진들로 벽이 꾸며져 있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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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이민' 이전에 미리 살아보라고 많이들 조언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조 : "저는 게스트하우스에서 2달 정도 있다가 집을 구했다. 보통은 집을 구하고 오는데, 저는 내려와서 구한 케이스라서 힘들었다. 와서 집이 안 구해지면 초조하니까. 제주 오기 전에 뭔가 체험을 하고, 먼저 몇 달이라도 살아볼 수 있으면 좋은데, 그게 게스트하우스가 되면 비용도 너무 많이 들고, 무엇보다 개인 공간이 없다. 정착을 하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공간이 있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생각도 정리할 수 있고.

제가 셰어하우스를 시작한 것도, 처음 와서 집구하기 힘들고, 만날 사람 없고,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고, 일자리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뭐가 힘든지 아니까, 고생을 해봤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만들었다. 셰어하우스에 같이 살면서 제가 봤을 때 제주에 대해 공부하기 좋은 장소, 책, 치우치지 않은 사람들 소개해 주고. 제주에서는 사람이 재산이다. 함정도 사람이고(웃음)."

김 : "무작정이라고 하는 건 위험한 것 같다. 제주는 동서남북이 다 기후가 다르다. 바다가 좋다고? 바닷가 습기는 어떻게 할 건가. 지인 중 한 명은 제주 오기 전에 계절별로 몇 개월씩 2년을 살아봤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가 간과했던 부분은 제주는 겨울이 없다고 생각한 거다. 제주의 칼바람은 서울의 영하 10도와 비례한다."
조 : "4계절을 다 경험해봐야 한다. 태풍도 좀 맞아보고(웃음)." 
김 : "제가 제주에 100일 동안 살러 왔을 때는 여름에 두 달 동안 비가 안 왔다. 그때 정말 좋았다. 습도, 안 느껴봤다. 그런데 작년에 이사 와서 처음 여름을 나는데, 습도가... 바닥에 습기가 너무 차서 마른 걸레로 아무리 닦아도 계속 물이 생겼다. 가만히 있는데도 벽에서 쩍쩍 소리가 난다. 벽지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조 : "그게 제주도의 현실이다. 여름에 제습기 없으면 못 산다. 매일매일 물이 꽉 찬다. 맨날 퍼내는 게 일이다."
김 : "저는 원래 집이 워낙 시골이어서, 집에서 짜장면, 치킨 시켜먹는 삶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처음이었다. 그러다보니까 제주 와서 배달음식, 외식에 대한 결핍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아는 동생이 중산간 지역에 사는데, 그 아이가 막 미치는 거다. 치킨 배달을 못 시켜 먹으니까. 그 결핍은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더라. 지인 한 명이 남희씨처럼 제주에 이주하는 분들 정착을 돕는 그런 일을 했는데, '제주에 살고 싶어, 집 구해줘' 그래서 '어떤 집?' 그러면 '집이면 돼'. 집 구해줬어, 그런데 화장실이 밖이야. 그러면 '화장실이 안에 있는 집 안 될까'. 화장실이 안에 있는 집 구해줬어, 그러면 '여기는 왜 싱크대가 없어...'. 지역만 제주고 서울에 있는 집 그대로를 원하는 거다. 지쳐서 포기했다고 하더라. 저희 민박집이 마트 근처인데, 손님들이 정말 좋아한다."

- 제주의 풍광과 낭만은 좋지만 도시의 편리함은 포기하기 힘든가 보다.
조 : "저도 도평동으로 이사 와서 차로 10분 거리에 마트가 있는데, 정말 편하더라." 

"이주민들과의 간극, 분명히 있다"

김혜영 씨
 김혜영 씨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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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육지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조 : "직장을 구했는데, 급여가 마음에 안 드는 경우도 있고, 인맥을 못 만드는 경우도 있고, 너무 힘들어서 다시 육지로 가야겠다고... 보통 경제적인 것, 인간적인 것. 그런 게 잘 안 풀리면 고립되니까."
- 어제 밤에 제주에 있어보니까, 동네가 정말 조용하더라. 혼자 있으면 외로울 것 같다.
김 : "저희 동네 뒤쪽으로 날씨 춥지 않으면 한 번씩 산책을 하는데, 담벼락 사이로 TV소리도 잘 안 들린다."
조 : "밤 9시, 10시 되면 자니까." 
김 : "그런 적도 있다. 어느 날 분리수거 하러 가는데 동네 아주머니가 '혹시 이 집 사냐'면서, '밤 12시 넘어서 샤워하지 마라, 보일러 소리가 너무 크다'고 하는 거다. 알고 봤더니 저희 집에서 난 소리는 아니었는데, 층간 소음도 아니고 보일러 소리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도시에서는 12시에 옆집에서 싸워도 '싸우나 보다' 하고 자는데, 여기는 소음에 민감한 것 같다."

- 서로 알고 지낸다면 그런 게 덜하지 않을까.
조 : "그 알고 지낸다는 게 참 애매한 거다. 그만큼 내 생활을 내놓는 게 필요하니까."
김 : "확실히 이방인이기 때문에 경계하는 건 있는 것 같다. 워낙 이주민이 많이 들어와서 무뎌졌다고는 하지만... 제가 아는 친구는 다시 서울로 갔는데, 그 이유가 마을 사람들이 주는 눈길 때문이었다고 한다. 담이 낮으니까, 지나가면 다 쳐다보니까."
조 : "알 것 같다. 담이 낮으니까. 사람들이 다 우리 집 안을 보면서 지나간다. '뭐 하나' 하고. 저는 가급적 신경을 안 쓰는데, 만약에 제가 말을 걸고 인사하면 '집 좀 봅시다' 하면서 들어오기도 한다." 
김 : "그럴 때 사교적인 성격이면 인사드리면서 오시라고, 차 한 잔 하시라고 그러면 되는데 그게 안 맞으면 그 모든 시선의 무게가 견디기 힘든 거다." 

- 아무래도 원주민과 이주민이 서로 살아오던 게 다르니까, 섞이기 힘든 측면도 있을 것 같다.
조 : "여기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 절반은 제주 토박이 분들인데, 간극을 넘어설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막 섞여서 지내다가 어느 순간 그 포인트가 딱 느껴진다."

- 어떤 측면이?  
조 : "언어도 있고, 서로 살아온 문화 자체가 다르고, 공유하는 기억들이 다르다. 결정적으로, 육지 사람들이 들어와서 제주가 많이 변하고 땅값이 오르고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잘 어울리다가 꼭 싸우게 된다." 
김 : "저는 지난번에 식당을 갔는데, 강정 이야기가 나온 거다. 그때 모인 네 명이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지고 격렬하게 토론을 했다. 저는 벼룩시장 열어서 강정마을 후원도 하고, 행정대집행 있을 때는 스크럼도 짜고... 그러다보니 행정대집행으로 인해 강정마을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이글이글한 눈빛이 막 오는 거다. 토론이 마음에 안 드셨는지, 하나만 걸려봐라, 내가 너희 테이블을 뒤집겠노라, 하는 듯한 눈빛. 제주 와서 느꼈던 제일 큰 위협 아닌 위협이었다. 그 순간, 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런 이야기는 밖에 나가서 하면 안 되겠구나. 해군기지 문제가 정말 삶인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훨씬 오랜 시간 동안 이 문제를 겪었고, 감내해온 사람들인데 내가 너무 쉽게 화두로 꺼내서 이 사람들의 상처를 건드린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조 : "여기 사람들이 다 해군기지를 반대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안 그렇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면 찬성을 할 수도 있는 거다. '당신 뭐야' 이렇게 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

"제주에서 '뭐라도' 하다보니 기회가 오더라"

- 제주에 살면서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땠나.
조남희 씨
 조남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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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
"그냥 놀았다. 첫 해에 놀면서 너무 많이 까먹었다(웃음)."
김 : "얼마나 썼나? 한 달에?"
조 : "처음에는 (서울에서 살 때와) 거의 그대로 나갔다. 물론 줄여야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갑자기 줄여지는 게 아니더라. 이미 긁어놓은 카드 값도 있었고(웃음). 씀씀이를 갑자기 확 줄이는 게 쉽지 않다. 저는 그 훈련을 지금도 하고 있다. 소비라는 게 마약과도 같아서. 조금만 쓰는 재미를 들이면 확 늘어나 있다.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는데, 처음에는 엄청 고생했다." 
김 : "저는 앞에 마트가 없어야 한다(웃음). 저 혼자 사는 살림이면 괜찮은데, 돈을 받고 누군가에게 공간과 서비스를 제공해줘야 하니까 안 쓸 수 없는 게 있더라.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더 좋을 것들."
조 : "저도 어제 마당에 놓는 테이블을 샀다. 없어도 되지만 고기 구워먹을 때 있으니까 좋더라(웃음)."
김 : "그런 게 자꾸자꾸 늘어난다. 맨 처음에는 침대만, 그 다음에는 사이드 테이블, 사이드 테이블 있으니까 독서등도 있으면 좋겠고(웃음). 예전에 여행자일 때 게스트하우스 다니면서 좋았던 게 기억이 나니까, 좋은 게 뭔지 아니까. 이것저것 사다 보니까 지출이 확 늘어나더라. 어느 순간부터는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남희씨는 지난해부터 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조 : "제주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에 대해 궁금증이 있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일반 회사를 다니기는 싫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면서 칼퇴근이 가능한 직장을 찾다 보니까 협동조합에 들어가게 됐다."

- 제주에 와서 다시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그럴 거면 왜 제주에 갔냐'는 거다. 
조 : "그런 시각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 왜 제주에서는 직장생활을 하면 안 되나. 여기서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같은 직장생활을 해도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는 거랑 다르다. 훨씬 자유롭다. 서울에서 직장생활 할 때는 제 시간이 전혀 없었다.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고, 엄마는 하숙집 아줌마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아니다. 월급은 훨씬 적지만, 직장생활 하면서 셰어하우스도 하고, 글 쓰고, 밴드 보컬하고... 앞으로도 할 것들이 많고 구상하는 것들도 있다. 
김 : "제주에 산다고 하면, 기존 매체를 통해 만들어진 환상이 있는 것 같다. 월정리 히피문화 같은 게 제주의 대표문화인 것처럼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제주도 안에서도 동쪽 서쪽 문화가 다르고, 여기도 사람 사는 삶인데. 자신들이 갖고 있는 '환상 제주'의 모습을 우리한테 투영시킨다. 갇힌 시선으로 보는 거다."

- 혜영씨도 10년 넘게 꼬박꼬박 월급 받으면서 살아왔는데, 월급이 안 들어오니까 불안하지 않았나.
김 : "제주 와서는 한 번도 불안하지 않았다. 보통 외국에 이민 가면 '뭐라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나. 세탁하고 청소하고. 그런데 제주에서는 왜 그걸 못하나. 여기가 한국이기 때문에 뭔가를 보여줘야 하고, 제주라는 이상적인 섬에 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 '그냥 뭐라도 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귤 따러 오라고 하면 귤 따고, 바느질해서 인형 만들고... 사람들한테 필요하면 이야기하라고, 다 도와주겠다고. 그렇게 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를 원했다. 그렇게 뭐라도 하다 보니 기회도 계속 오더라. 제주에 기회는 많다. 그런데 본인이 제주에서 어떻게 살겠다고 구체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면 기회가 오더라도 그냥 흘려보낼 수 있다."
조 : "제주도는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고 연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 아직도 제주에 대한 환상이 있나.
김 : "처음 서울에 갔을 때는 환상이 있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한 시간 거리는 우습지도 않게 달려가서 박물관, 연극, 전시... 미친 듯이 뛰어다녔던 것 같다. 제주는 좀 쉬러 온다는 개념이어서, 서울에 살던 때처럼 바쁘게 살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바쁘게는 살고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바쁜 거니까, '자발적 바쁨'이다.
조 : "제주에 대한 환상은, 제주 자체에 대한 것보다 제주에 가서 제 삶이 어떻게 바뀌고 성장하고... 이런 것에 대한 생각은 있었다. 저도 이제 책 나오고, 공연준비도 해야 하고... 바쁘긴 하다. 그런데 서울에서의 바쁨은 '너 이거해'라고 해서 뭔가를 수행해야 하는 거였는데 지금은 내가 기획해서 하는 거니까. 바빠도 재밌다."

최근 <푸른 섬, 나의 삶> 책을 집필한 조남희 씨가 김혜영 씨에게 책을 선물하고 있다. 이날 김 씨는 조 씨의 집을 방문하며 직접 만든 감귤쨈을 선물했다.
 최근 <푸른 섬, 나의 삶> 책을 집필한 조남희 씨가 김혜영 씨에게 책을 선물하고 있다. 이날 김 씨는 조 씨의 집을 방문하며 직접 만든 감귤쨈을 선물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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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1인가구, #마을, #제주, #제주이민, #푸른섬 나의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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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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