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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거리답게 자전거 전용도로가 잘 나있다.
 자전거 거리답게 자전거 전용도로가 잘 나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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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핸들을 부여잡은 팔뚝 위로 닿은 햇살이 따사롭게 느껴지는 게 마침내 봄이 왔구나 싶다. 인터넷 자전거 동호회마다 정모며 번개 공지가 게시판을 채우는 것을 보아도 도래하는 봄을 느낄 수 있다.

며칠 전 자전거 동호회의 번개 모임에서 만난 친구에게 귀가 솔깃해지는 얘기를 들었다. 그 친구가 사는 서울시 강동구 천호동에 자전거 가게들로 북적이는 '자전거 거리'가 있다는 거다. 흔히 '○○○ 거리'라고 불리는 지자체에서 조성한 특성화 거리는 아니고, 2,3년 전부터 자전거 관련 가게들이 하나둘 자리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자전거 거리가 형성되었단다.

한결 부드러워진 봄바람을 타고 한강 남단 자전거 도로를 신나게 달리다, 한강 시민공원 광나루 지구에서 천호 공원 방향의 나들목으로 들어서면 바로 자전거 거리가 나온다. 자전거 거리를 알리는 표지판 같은 건 없지만, 도로 양편에 각종 자전거 가게들이 모여 있어 저절로 자전거 거리임을 알게 해주었다.

자전거 거리답게 인도 옆으로 자전거 전용길이 펼쳐져 있다. 서울에선 보기 드문 자전거 길이다. 제주도나 창원시에서 볼 수 있는 인도 옆에 독립적으로 나있는 자전거 도로다. 한강변에서도 가깝고 차도에서 안전하게 자전거 도로까지 갖춰져 있으니, 오며가며 한강을 달리던 자전거족들이 들르기 좋겠다. 

강변에서 가깝고, 전용길까지 갖춘 자전거 거리

지난 겨울 동안 묵은 때를 말끔하게 벗길 수 있는 세심한 자전거 세차.
 지난 겨울 동안 묵은 때를 말끔하게 벗길 수 있는 세심한 자전거 세차.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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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거리에서 맨 처음 만난 자전거 가게는 '바이크 메딕'. 쉽게 말하면 자전거 병원이다. 자전거 매장을 갖춘 판매점이 아니라 애마 자전거를 정비·수리해주는 전문점이다. 특히 장총처럼 길쭉한 전용 도구를 이용해 자전거 세차를 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단돈 8천 원이면 자전거의 체인, 페달이 돌아가는 크랭크, 뒷바퀴를 굴리는 스프라켓(구동계) 등을 세차기로 깨끗이 청소해 준다. 지난 겨울 몇 달 동안 쌓인 먼지와 함께 찌든 기름때가 뭉쳐있는 자전거의 주요 부위를 닦아내니 말끔한 새 자전거가 된 것 같다.

자전거 거리엔 10여 곳의 자전거 관련 업체들이 모여 있다. 수리 전문점부터 자전거 의류만 취급하는 가게, 자전거 가방이나 전조등, 자전거 여행용품 등 자전거 용품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가게, 자전거 매장과 카페를 같이 하는 가게들도 있었다.

카페에선 자전거 구경은 물론 평소 접하기 힘든 여러 자전거 잡지들을 비치해 놓아 여유롭게 읽을 수도 있다. 큰 창밖으로 자전거 거리가 펼쳐지는 카페의 커피 값은 대부분 2000원~2500원으로 한강 길을 달린 후 편안히 앉아 쉬어가기 좋았다.  

평소 보기 힘들었던 예쁘고 다양한 자전거 의류를 갖춘 전문점.
 평소 보기 힘들었던 예쁘고 다양한 자전거 의류를 갖춘 전문점.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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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자전거 의류는 평소에 보지 못했던 디자인의 옷들이 많아 눈이 즐거웠다. 어둡고 시커먼 색이나, 몸에 찰싹 붙는 살짝 민망한 쫄쫄이 바지 등이 대부분이어서 불만이었던 남성 자전거족 의류. 이곳에선 다양한 색상에 평상복처럼 입을 수 있는 자전거 의류가 나와 있어 맘에 들었다. 마침 이월상품을 50%나 할인하길래 카키색 봄 바지를 하나 장만했다.

다른 옷들처럼 자전거 의류도 시즌오프라고 불리는 겨울 전후에 구입하는 게 좋다. 디자인이 다양하고 선택의 폭이 넓다보니 자전거 동호회에서 팀복을 맞추려고 자주 찾는단다. 이렇게 가격대가 다른 여러 브랜드와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을 갖추고 있어 자전거족이 원하는 자전거 외에 용품과 옷을 한 자리에서 쉽게 고를 수 있는 점은 자전거 거리의 큰 장점이다.

동네 자전거 가게에서 자전거 의류를 사기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사람마다 각각 다른 사이즈의 옷을 다 갖추기가 어렵고, 재고 부담이 커서 자전거 가게들이 옷을 많이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전거 동호인들은 인터넷으로도 많이 구입을 하는데 인터넷에서 사면 입어볼 수 없기 때문에 반품 등의 귀찮은 문제가 생기는 등 어려운 점이 많았다. 특히 여성고객을 위한 배려가 돋보였다. 아직까지 자전거족은 남성들이 많아서인지 자전거 매장에서는 여성들이 직접 옷을 입어보기가 어려운데, 이곳에서는 여성 직원들도 있고 여성 고객들이 편하게 옷을 입어볼 수 있도록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동네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거리

자전거족의 눈을 즐겁게 하는 별별 자전거들과 자전거 용품들.
 자전거족의 눈을 즐겁게 하는 별별 자전거들과 자전거 용품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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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거리 가게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가게 앞에 자전거를 주차할 수 있는 거치대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게 앞에 애마 자전거를 안전하게 보관한 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여러 자전거도 구경하고 윈도우 쇼핑에 빠질 만했다. 판매하는 자전거 또한 저렴한 가격의 생활 자전거에서부터 자전거 선수들이나 탈 것 같은 국내외 고가의 자전거 브랜드까지 다양하기도 하다. 어느 해외 자전거 수입 매장은 자동차 매장처럼 멋진 쇼룸(Show Room)까지 갖추고 있었다. 자전거 가게 주인장에 의하면 국내외 자전거 브랜드는 하나만 빼고 다 들어와 있단다.

작게 접히는 앙증맞은 미니벨로 자전거에서 고풍스런 디자인의 클래식 자전거, 트렌디한 픽시 바이크, 자전거계의 스포츠카 로드 바이크, 산을 탈 수 있는 MTB 자전거까지... 다채로운 자전거 세계에 내내 눈 호강이다. 몇 시간 동안 한강가를 달려온 피로가 모두 가시는 기분이다. 역시 도시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것은 거리의 가게들이다.

자전거 거리 어느 가게나 자전거 거치대가 마련되어 있다.
 자전거 거리 어느 가게나 자전거 거치대가 마련되어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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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양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가게들, 개성 넘치는 간판은 일종의 갤러리로 도시 생활인에게 위로를 전해주기도 한다. 흔히들 표현하는 삭막한 도시라 함은 가게들이 사라진 텅 빈 거리에서 비롯되었지 싶다. 인기 있는 거리엔 보통 볼거리, 먹거리가 풍성한데 천호동 자전거 거리는 탈거리, 입을거리까지 풍성하니 자전거 애호가에겐 천국같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이런 분위기다 보니 자연스레 어느 자전거 가게 사장님이 자전거 거리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강동구청에 특성화 거리로 지정할 수 있는지를 문의했단다. '자전거 거리'로 지정되려면 관련 업체가 더 많아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자전거 천국에 푹 빠져 거리를 쏘다니다가, 해질녘 한강의 노을이 발갛게 달구는 강변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 머지않아 서울의 대표적인 '자전거 거리' 명소가 탄생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ㅇ 지난 3월 20일에 다녀왔습니다.
ㅇ 교통편 : 수도권 전철 8호선 암사역 3번 출구에서 약 500m 직진
ㅇ '내 손안에 서울'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천호동 자전거 거리, #자전거 수리, #자전거 세차, #자전거 의류, #자전거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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