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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우리 사회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잊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고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획하여 인터뷰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기자 말

지난 3월 18일, 정보개발원이 입주해 있는 조양빌딩 앞에서 아침 출근 선전전 중인 봉혜영 분회장.
 지난 3월 18일, 정보개발원이 입주해 있는 조양빌딩 앞에서 아침 출근 선전전 중인 봉혜영 분회장.
ⓒ 김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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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2명의 노동자가 공공기관을 상대로 2년 동안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아래 정보개발원)분회원은 811일째(지난 3월 18일 기준) 보건복지부 산하 준공공기관인 정보개발원을 상대로 ▲ 원직 복직 ▲ 무기계약 전환 ▲ 노조 명의 합의안 작성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보개발원은 지난 2012년 12월, 고객 지원부의 비정규직 상담 노동자 42명을 계약 만료를 이유로 해고했다. 이들 중 대다수는 6개월에서 2년 가량 일한 노동자로 2013년에는 무기 계약직 전환 대상자들이었다. 하지만 사측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그 자리를 3개월 단기 계약직으로 채웠다.

"투쟁을 하는 일은 곧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잖아요. 개인적으로 평생 나를 드러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사측을, 정권을 상대로 투쟁을 할 것인가?'보다 '나를 드러내는 일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투쟁을 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사측의 탄압, 고소·고발, 연행 등 앞으로 닥쳐올 것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정보개발원 분회 봉혜영 분회장의 말이다. 봉혜영 분회장은 매일 아침 남산스퀘어빌딩 앞에서 '부당 해고 철회', '원직 복직 쟁취'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출근 선전전을 한다. 또 매주 수요일 오후 5시 30분부터 한 시간 가량 정보개발원이 있는 조양빌딩에서 집회를 연다.

정보개발원 분회는 사측을 상대로만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상급 단체인 서울 일반 노조는 지난해 12월 3일, 문자로 분회 해산을 통보했다. '분회 측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였다. 지난 2013년 서울 일반노조는 분회에게 신규채용안을 받고 회사로 들어갈 것을 권유했지만, 봉 분회장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2013년 8월  분회 해산 통보 이후 9개 단체가 모여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를 꾸린 바 있다.

이런 일상을 지낸 지도 2년, 그는 "해고되고 시간이 많을 줄 알았지만 오히려 더 바쁘다"라고 말했다. 지난 18일 아침, 정보개발원 사무실이 있는 명동 남산스퀘어빌딩 앞에서 출근 선전전을 마친 봉혜영 분회장을 근처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얼마든지 대응하고 싸울 수 있었다"

- 현재 분회원이 2명인데, 함께 계약 만료됐던 40여 명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됐나요?
"계약이 만료됐다는 얘기를 듣고 (해고노동자에 대한) 평가서를 오픈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노무사를 대동해서 '계약직이기 때문에 사측의 정보개발원의 평가서를 오픈하라는 법적 권리가 없고, 회사는 법적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성실하게 근무를 했는데 해고는 객관적인 잣대에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해고 노동자 20~30여 명이 집단 대화에 참여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8명이 복직 투쟁을 하기로 하고 민주노총에 가입했습니다. 하지만 투쟁이 길어지고 지쳐가다 보니 조합원 다수가 신규 채용을 통해 정보개발원으로 재입사하면서 민주노총을 탈퇴했습니다."

- 요구안 중 '노조 명의로 합의서 작성'이 있는데. 
"복직 이후에도 노조의 이름으로 싸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현재 (사측은) 신규 채용을 위탁 업체에 위임해 외주로 채용을 하고, 제3의 장소에서 고객지원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직고용 형태를 유지하지만 (노동자들이) 자리를 잡으면 체제 자체를 전환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도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노동자라면 노조를 만들어서 싸울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해고 이외에 부당한 일들이 있었나요?
"프로그램이 바뀌면 업무 시간 외에 교육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일할 당시 야근 수당을 월 12시간 초과돼도 추가 급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30시간을 초과해도 지급은 12시간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회사에 있을 때 노조를 조직하지 않았다는 것이 한으로 남습니다. 얼마든지 대응하고 싸울 수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랑 싸우고 있나, 의문들어"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봉혜영 분회장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봉혜영 분회장
ⓒ 김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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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일반 노조가 분회 해산 통보를 한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이며, 일반 노조와 어떤 의견의 차이가 있었나요?
"일반 노조 측에서 제가 분회장이니 1년짜리 신규 채용안을 받고 들어가라고 한 것입니다. 이에 저는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측은) 고용도 경력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1년 뒤 해고당하면 무엇을 가지고 싸울 것인가 하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일반 노조가) 노동자들이 조합을 탈퇴하고 신규 채용으로 들어간 것을 묵인한 것입니다. 서울 노조는 한 달에 두 번하는 운영위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분회를 해산했습니다."

- 분회 해산 통보 이후 상급 단체에 어떻게 항의하셨나요?
"지난 1월에 열린 민주노총 서울본부 운영위에 들어가 발언권을 달라고 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결국 세 시간을 기다려 만났습니다. 이 때 우리 입장을 이야기 했습니다. 분회가 활동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해산하겠다고 얘기한 것도 아닌데 분회의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분회의 의견을 배제한 것, 이런 일을 벌인 것 자체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요.

그리고 서울 본부에게 직가입 노조인 일반 노조의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서울 본부는 '일반 노조와 분회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자리를 마련하겠다. 일반노조에게 그것과 관련해서 상황에 대한 보고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3일 문자 통보 이후 지금까지 자리도 마련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면담 이후 지난 2월 26일 서울본부 대의원대회에 가서 발언권을 달라고 했지만, 또 거부당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 분회 해산 통보 이후 사실상 분회가 명목상으로 없는 상태인데.
"아침부터 출근 투쟁을 하면 경찰서 정보관이 나와서 '분회 해산됐다는데 앞으로 투쟁은 어떻게 하실 것인가요? 독자 노선 걸으실 것인가요?' 물어봅니다. 이 말을 듣고 서 있는 나를 보면서 '나는 과연 누구랑 싸우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인터뷰 내용의 반을 그런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서글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 투쟁을 이어나갈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아침마다 출근 투쟁에 오는 동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하루를 나 혼자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면 '나가지 말까' 고민을 합니다. 그러나 누군가 나오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 약속들로 하루 하루를 버티는 것 같습니다. 저한테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틸지의 문제입니다. 투쟁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감정에 격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내가 과연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도 듭니다."

- 그럼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법의 근원 취지 자체를 악용하고 그런 이들에게 쉽게 면죄부를 주는 상황에서 계속 투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이 싸움을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이유엔 사측의 부당한 해고도 있지만, 올바른 투쟁 과정을 통해 올바르게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투쟁을 결의했고, 투쟁의 주체로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은하 기자는 <사람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사람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연재됩니다.



태그:#사람들, #정보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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