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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5일. 월세로 들어간 집 계약이 끝나는 날이었다. 서울에 올라와 산 지 어느 덧 7년 차. 잦은 이사와 불안정한 주거 상태에서 이사하고 짐 싸고 짐 푸는 건 이제 도가 텄지만 늘어나는 짐을 두고 편하게 내 등을 뉘일 집을 서울에서 찾는 건 여전히 어렵다.

내가 가진 보증금은 500만 원. 집을 구할 땐 명함도 못 내민다. 계약만료 기간이 다가올수록 조급해지긴 마찬가지였다. 나의 일터가 있는 강동구는 최근 대규모 재건축이 시작돼 전세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지역이라, 내 급여와 수중에 갖고 있는 돈으로는 절대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신축 풀옵션 원룸 하나가 억 단위인 것은 물론이고 설사 몇 천만 원의 보증금을 내도 반전세 형식으로 20만 원 정도의 월세를 내야 살 수가 있었다. 매달 들어가는 월세가 꽤 부담되던 나로서는 최대한 월세를 줄일 수 있는 곳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새로 이사할 집을 찾아보면서 느꼈던 건 항상 목돈이 없는 사람은 더 취약한 주거 환경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불편한 진실이었다. 김수현 교수의 <부동산은 끝났다>라는 책에는, 목돈의 유무가 주거환경에 꽤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불편하지만 정확한 공식이 등장한다.

"또한 더 불안정한 월세에 살고 있는 사람일수록 많은 손해를 보고 있다. 서울에서만 10만 명 정도가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 달에 대개 20만 원씩 내면서, 창도 없는 합판 칸막이 1평 방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월 20만 원은 5000만 원을 은행에 넣어둘 때 얻을 수 있는 이자 수입이다. 그만한 목돈이 있다면 원룸으로 된 전셋집을 구할 수 있는 수준이다. 목돈이 없기 때문에 같은 부담을 하고서도 더 나쁜 환경에 사는 것이다. 쪽방은 고시원보다도 형편없다. 하루에 7000원씩 세를 내는데, 이는 한 달로 따지면 20만 원에 해당한다. 즉, 20만 원이라는 목돈이 있다면 더 깨끗한 곳에서 생활할 수 있지만, 그마저 안 되는 빈대가 들끓는 방에서 살아야 한다." - p.252

내가 수중에 갖고 있었던 돈은 500만 원. 500만 원에 30만 원짜리 월세를 알아보러 다녔다. 내가 보러 다닌 대부분의 방은 일반 주택의 허름한 집이거나 리모델링한 옥탑방, 반지하가 전부였다.

사회 초년생으로 일 한 지 1년. 그간 조금씩이지만 돈도 모아왔는데, 기존에 있던 보증금을 다 끌어 모아도 천만 원도 안 되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그렇다고 돈 버는 대로 족족 쓴 것도 아니었다. 첫 달엔 월급 받았다고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주변 친구들에게 맛있는 것도 사긴 했지만 이후 꼬박꼬박 학자금 대출을 적게는 20만 원, 많게는 50만 원씩 갚아나갔다.

월급을 알뜰하게 쓴다고 썼는데 여전히 반지하와 옥탑방을 전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내 보증금이 원망스러웠다.

전세자금 대출, 끝까지 피하고 싶었다

어렵사리 발품 팔아 마련한 집. 하나둘씩 방을 채워가며 서울에서의 삶을 견뎌내는 중이다
▲ 현재 살고 있는 집 어렵사리 발품 팔아 마련한 집. 하나둘씩 방을 채워가며 서울에서의 삶을 견뎌내는 중이다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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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문제로 한창 한탄하고 있을 때 주변 분들이 권해주신 건 전세자금 대출제도였다. 집값이 떨어지면 한국 경제 자체도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나에겐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집값이 자꾸만 오른다는 것은 결국 집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만 이득일 뿐, '세입자'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열악한 주거 환경이 제공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전세자금 대출을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꾸만 빚 권하는 사회의 정책에 놀아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가장 컸다. 어떻게든 내 돈으로, 내가 갖고 있는 자금으로 집을 구하고 싶었다.

또한 이미 3000만 원에 다다르는 학자금 대출이 있는데 내 이름으로 또 대출을 받는 것이 꽤나 부담스러웠다. 은행에 가보니 기존에 받은 대출이 얼마냐고 물었다. 내가 쭈뼛쭈뼛하며 학자금 대출이 꽤 많다고 대답하니 내 대출내역을 찾아서 뽑아주었다. 8학기 내내 받은 약 3000만 원의 학자금 대출 내역을 보여주며 현재 내가 받은 대출이 꽤 많은 편이라고 말해주었다.

절망스러웠다. '언제 다 갚지' 라는 생각보단 이러다 전세자금 대출도 못 받는 건가 하는 막연함 때문에. 그래도 상담받고 지난 1년 동안 4대 보험 등을 다 받으며 일을 해왔던 것이 꽤 유리하게 작용하여 5000만 원 정도의 전세자금 대출을 최대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은행을 통해 내 현재 빚 상황을 보니 암담했지만 일단은 집을 구하는 게 먼저였다. 금액에 맞추어 계속 집을 알아보았다. 처음에는 5000~6000만 원짜리 원룸을 찾아보며 그래도 안전하고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남동생이 마음이 걸렸다.

서울서 공부하겠다고 어렵게 올라 온 남동생이 고시원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숙사 입주 여부는 불분명한 상황. 자기는 고시원에서 살아도 된다고 하지만 내가 고시원에서 살아봤으니 그 좁고 답답한 일상이 채 6개월도 견디기 힘든 것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남동생을 두고 혼자 5000~6000만 원짜리 원룸에 산다는 것이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생각을 바꿔 투룸으로 구하기 시작했다. 전세 매물이 없는 상황에서 투룸은 전세로 '억' 이상을 갖고 있어야 가능했다. 결국 반전세처럼 월세까지 포함된 투룸으로 찾을 수밖에 없었고 지금의 광진구에 있는 보증금 4000만 원에 30만 원 월세방을 구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불편하다. 내가 이고 지고 갈 삶의 무게는 학자금 3000만 원, 여기에 전세금 4000만 원이 더해져 총 7000만 원 만큼이다.

이사온 지 한달, '7000만 원'이란 무게의 짐

빈 방을 채워가고 있는만큼 서울에서의 삶에 대한 책임감도 같이 커지고 있는 중이다. 아직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많다.
▲ 현재 살고 있는 집 빈 방을 채워가고 있는만큼 서울에서의 삶에 대한 책임감도 같이 커지고 있는 중이다. 아직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많다.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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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사 온 지 한 달이 넘었다. 여전히 신경 쓸 것도 많지만 그래도 새로 이사 온 집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 은행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직접 받은 대출금과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대출금을 볼 때마다 숨이 막히긴 하지만 서울에서의 삶, 절대 편하지 않고 고단하다는 걸 알았기에 더 마음을 다잡게 된다.

사실 집을 구한 것 자체만으로는 전세자금 대출의 덕을 아주 톡톡히 봤다. 한 달 이자는 약 10만 원정도 나가고 있고 동생과 둘이 월세 및 이자를 부담하는 걸로 하면 한 달 주거비는 약 20만 원. 내가 벌고 있는 돈에서 부담할 수 있는 적당한 주거비용이다. 전세자금 대출이 아니었다면 더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혼자 겨우 살았거나 500만 원에 50만 원짜리 월세를 다달이 주고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애 주기별 소득과 소비패턴이 자꾸만 변하는데 우리나라의 많은 정책들은 기존의 생애주기별 패턴으로 짜여있다. 자꾸 빚만 권하는 사회. 진짜 정답을 내리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빚이 내일의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정답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기에 근본적인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한 때이다.


태그:#전세자금대출이용후기, #20대 빚, #서울주거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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