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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책 읽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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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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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부모는 자녀에게 '비뚤어진 것을 말하는 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 잠언 2:10-12

초등학교에 다니는 덕이의 학습을 지도하던 중 덕이에게 "덕아 지금 이 글자를 소리내어 읽어볼래?"라고 물었을 때 덕이는 "난 못해요"라면서 글을 읽으려 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나름대로 대답했었는데, 요즘 들어서 무슨 일인지 덕이 입에서 "난 못해요"라는 말이 툭툭 튀어나오곤 했다.

처음에는 덕이가 학교에 다니면서 어느덧 평소에 하지 않던 표현을 곧잘 하기에 "못해요"라는 말을 표현할 수 있게 됐나 싶어 별스럽지 않게 여겼다. 학습지도나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갔지만 뭔가 이상하다 생각해 확인해보기로 했다.

고모(나) : "덕아 너 지금 '나는 못해요'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니?"
덕이 : "선생님이랑 친구들이 나는 못한데요."
고모 : '아뿔싸...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 일이 있었어..."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뻐근하고 숨이 멎는 듯해 호흡이 어려워졌다. 그때의 충격적인 상황은 16년이 지난 지금 떠올려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무척이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덕이에게 자신의 긍정적인 면을 하나하나 일깨워줘 자존감을 높여주고 싶어 애썼던 과정들이 이렇게 쉽게 무너져 버리다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친구한테 '못해요'라는 말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나 나는 감정을 다잡아야 했다. 그런 말을 들은 덕이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몇 년을 애써 이뤄놓은 것을 하루아침에 잃은 기분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덕이의 속감정을 풀어줘야 했다.

고모 : "덕아 그 말을 들었을 때 덕이는 기분이 어땠니?"
덕이 : "몰라요."
고모 : "응~, 그랬겠다. 속상해서 기분을 모를 것 같아. 덕이 속상했겠다."
덕이 : "응."
고모 : "그랬구나, 덕이가 그런 일이 있는 줄 모르고 있었구나... 덕아 미안해~."

덕이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내 속에서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지'라는 생각에 일단 화가 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덕이가 이런 내 속마음을 감지했는지 내 눈치를 살핀다. 그런 덕이를 보니 되레 미안해진다. 내가 중심을 잡아야지...

고모 : "덕아, 앞으로 또 그런 말을 듣게 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덕이는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답을 알려달라는 듯 동그란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고모 : "덕아, 이런 말을 하면 네가 어떻게 들을지 모르겠는데... 고모도 못하는 것이 있어. 그리고 할머니께서도 못하시는 게 있단다. 고모는 무엇을 못하게?"
덕이 : "김치 못해요."(평소에 보고 들어서 그랬을까 쉽게 대답한다)
고모 : "맞았어요. 고모는 김치를 못 담가요. 그러면 할머니께서는 무엇을 못하시게?"
덕이 : "참외 좋아해요."

덕이는 자기가 막대과자를 좋아하고 자동차 장난감을 좋아하듯이 할머니께서는 참외를 좋아하신다고 이야기했다. 덕이가 자기만 좋아하는 게 있다고 여기지 않고, 누구나 좋아하는 게 있고 반대로 싫어하는 것도 있을 수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누구나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이 있단다

고모 : "응, 할머니께서는 참외를 좋아하시지. 잘 맞혔어요. 그러면 할머니께서 못하시는 건 뭐지?"
덕이 : (생각해 보더니) "태권도"
고모 : "그렇단다. 할머니께서는 태권도를 못하세요. 그러면 덕아, 사람은 누구나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게로구나. 고모는 김치를 못 담그고 할머니께서는 태권도를 못하니까... 고모가 이런 말 하니까 덕이는 어떤 생각이 들어?"
덕이 : "……"

고모 : "아마도 선생님이나 반 아이들은 덕이가 태권도와 아침에 조깅을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서 그랬을 것 같아, 그렇지?"
덕이 : "응."
고모 : "그러면 선생님이나 반 친구들도 덕이처럼 태권도나 아침에 조깅을 잘할까?"
덕이 : "못해요."

고모 : "그렇지. 아마도 선생님이나 같은 반 친구들은 덕이가 잘하고 있는 조깅이나 태권도를 못할 거야."
덕이 : "응, 못해요."
고모 : "그렇지. 아침에 조깅은 덕이만 할 수 있을 거야."

우리 집 뒤에는 별장산이 있었다. 덕이는 3년의 언어치료를 마치고 아침마다 가능하면 별장산을 둘러싼 길을 산책 겸 조깅 겸 하곤 했다. 덕이 표정이 많이 풀어졌다. 다행이었다.

고모 : "덕아, 그러면 친구들이 '덕이는 못해요'라고 하면 덕이는 뭐라고 말할래?"
덕이 : "태권도 잘해요."
고모 : "그렇지. 태권도도 잘하고, 조깅도 잘하니까... 조깅은 달리는 것이니까, 앞으로 친구들이 덕이한테 '못한다'고 하면 '나는 달리기를 잘해'라고 하면 어떻겠니?"
덕이 : "응!"

덕이는 달리기나 움직이는 행동이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빨랐다.

담임선생님이 선입견 가질까봐 말 안했는데...

다음날 선생님을 직접 찾아갔다. 선생님 말씀은 이랬다. "덕이가 하도 환하고 예쁘게 생긴 데다가 착해보여서 임시반장을 해보라고 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라는 것. 그러자 같은 반 아이들 중 어린이집·유치원을 함께 다닌 아이들이 "덕이는 못해요"라고 하더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덕이 할머니를 비롯해 우리 가족은 '덕이를 아는 아이들 몇몇이 같은 반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저 기가 막힐 뿐... 머릿속이 하얗게 돼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내가 화가 난 걸까, 기가 막혀서였을까,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미리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란 걸 예측하지 못해 한심함을 느꼈을까. 아니면 학교의 요즘 상황을 너무 내가 몰랐던 것이었을까, 요즘 아이들을 파악하지 못했었나...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담임선생님께 미리 말씀드릴까 하다가 덕이가 특별히 어떤 역할을 맡을 리도 없고, 또 얌전해서 조용히 학교 생활을 할 거니까 굳이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릴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던 것이었다. 혹시라도 담임선생님께서 선입견을 갖게 될까봐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그런 덕이를 보고 친구들은 못한다고 놀렸다. 어찌하겠는가. 앞으로 덕이의 학교 생활과 친구들에 대해 보다 더 세심하게 신경써야겠지. 담임선생님께 덕이에 대해 말씀드리고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하고 돌아왔다.

슬퍼하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는 일이었고, 또한 스스로 굳게 결심한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눈물은 하느님께서만 아실 수 있게 흘리겠다'는 다짐, 무슨 일이 있어도 슬픔에 눌리지 않겠다는 다짐이 바로 그것.

담임선생님을 뵙고 난 뒤 즉시 어떻게 해야 덕이의 내성을 강하게 만들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게끔 도와야 하는지 재점검하고 바로 실천으로 이어갔다. 주저할 수 없는 일이기에 우선 학교생활과 학급 아이들, 선생님, 나아가 학원에서 만나는 사람들까지도 살펴봐야 한다.

한편으로 내가 늘 감사해 하는 게 있다. 어떤 상황이라도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내 안에 있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덕이 또한 머지않아 나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내겠지.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태그:#학교와 가정, #보물과 고통, #이해와 사랑, #감사와 능력, #선생님과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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