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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방사선 치료를 하러 가지 않았다. 병원에서의 소동은 내게 갈등을 만들어 줬고 아무도 그에 대한 뾰족한 묘안을 내놓는 사람도 없었다(관련 기사 : "사람이 죽어가는데 진정?"... 주치의가 도망갔다). 오로지 내가 결정해야 됐다. 그동안 병원에서 몇 차례 전화가 와서 방사선 치료를 왜 안 받느냐, 안 받으면 안 된다며 방사선 치료를 계속 받을 것을 종용했다.

나는 그날 병원에서 본 소동과 광경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 말은 하지 않고 그냥 불안해서 못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급기야 병원 측에서는 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까지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발끈해서 전화 건 이와 쓸데 없는 말 승강이를 벌였다.

검게 그을린 방사선 치료 자리

"처방한 방사선을 다 받지 않아서 발생하는 몸의 그 어떤 이상도 본인 책임입니다."
"병원에서 그렇게 환자를 겁주는 말을 해도 되나요? 먼저 그날 발생한 일에 대해서 해명하고, 환자들을 불안하게 한 일을 사과하고 환자를 안심시킨 후에 치료를 계속하도록 설득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날 일이라니요?"
"지난주 환자한테 사고가 발생한 모양이던데, 그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으며 그 환자는 어떻게 됐나요? 그리고 당신 같으면 불안해서 그 선생님께 계속 진료를 받고 싶을까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그럼 담당 선생님을 바꿔 드릴까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리가 없다. 다른 병동도 아니고 그 병동에서 일어난 일을 모른다고 딱 잡아떼는 그 사람의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토,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받아야 하는 방사선 치료. 서른세 번을 받으려면 길게 잡아도 두 달이면 끝나는 것을 나는 20회 남짓 받는 데 가다, 안 가다 하면서 석 달을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억울하면 아프지 말아야지' 하는 심정으로 며칠 뒤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갔다. 담당의와 마주 앉았다. 담당의는 방사선 치료가 너무 시일을 끈다며 이제 제때 잘 받으라고 했다.

나는 그간의 불안했던 마음을 대충 얘기하며 몇 가지 질문을 했더니, 시계를 힐끗 보고 짜증을 내며 "다른 환자도 봐야 하는데 혼자서 벌써 시간을 2분 넘게 써 버렸다"고 했다. 의사의 언행에 기가 막혔지만, 얼굴을 잠시 주시했을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를 상대로 요새 흔히 회자되고 있는 '갑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서 일반 방사선 28회를 마쳤다. 이제 일반 방사선은 끝났고 집중 치료를 5회 더해야 된다. 그런데 그 '집중 치료'라는 말이 자꾸 걸렸다. 집중이라면 한 곳에 지금보다 더 깊게, 아니면 더 세게 방사선을 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시간을 더 길게 하는 건가? 사고를 당한 환자는 혹시 집중 치료를 받다가 사고가 생기지 않았을까? 별별 불안한 생각에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28번째 방사선을 받는 날, 방사선을 쏘는 담당자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겸손하게, 정말로 몰라서 그러니 말 좀 해 달라며 물었다.

"집중 치료라는 건 뭐예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주변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를 죽였다면 집중 치료는 암을 떼어낸 부위에 집중적으로 방사선을 쪼이는 것입니다."
"그럼 방사선이 가슴을 통과해서 등짝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겠네요."
"움직이지 마세요."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담당자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방사선실을 나갔다. 안전하다는 말은 아니더라도 '그 정도는 아니'라는 말을 내심 기대했는데 '역시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물여덟 번째 방사선이 마지막이라고 다짐하며 병원을 나왔다. 나머지 집중 치료 다섯 번은 하지 않고 나의 방사선 치료는 끝났다. 그 후에도 병원에서 여러 차례 방사선 집중 치료를 마저 받아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샤워를 하다가 방사선을 쪼인 부위가 궁금해 오랜만에 가슴을 봤다. 방사선을 쪼인 가슴이 넓게 햇볕에 그을린 것처럼 시커멓다. 타월로 살살 밀었더니 때처럼 피부 껍질이 벗겨졌다. 벗겨진 자리가 불그스름해졌다. 피부 표면이 방사선에 의해 그을린 것이었다. 방사선을 쪼이면 주변의 필요한 세포도 죽일 수 있다던 말이 생각났다. 내 주제에, 더 많은 횟수의 방사선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살짝 걱정스러웠다.

이제 항암도 방사선도 다 끝났다. 홀가분해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오랜 세월 우리의 토종 약초를 연구한 선생에게 방사선 치료 후 먹으면 좋을 약초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는 청미래 덩굴을 달여서 차처럼 마시면 좋을 거라고 했다. 그는 내 성미를 잘 아는 터라 무조건 권하지 않고 청미래의 특징을 얘기하며 먹고 안 먹고는 나더러 결정하라고 했다. 청미래는 중금속 해독과 수은 중독도 해독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는데, 많이 마셔도 부작용이 없으며 최소한 몸에 해를 끼치지 않으니 나빠 봤자 본전이라고 했다.

수술 후 후각과 미각이 예민해졌지만, 청미래 차는 비위가 상할 만큼의 냄새와 맛이 아니었다. 그냥 개운했다. 맛이 깨끗하다면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그 후 나는 큰 주전자에 청미래를 달여 놓고 우리 집에 오시는 손님에게도 차로 내곤 한다. 어떤 이는 그 차를 마시려고 우리 집에 일부러 놀러 오는 이도 있다.

항암이 끝나고 두 달이 지나자 나기 시작한 머리카락. 웬일인지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나왔다. 짧고 빠글빠글한 머리카락을 보고 내가 아픈 줄 모르는 사람들은 "머리카락 자르고 파마를 했느냐? 아니면 파마하고 잘랐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뭐 먼저 했을 것 같아?"하고 능청을 떨었다.

위로하고 위로받는 '힐링'... 짧은 머리도 괜찮아

뽀글뽀글한 머리카락이 올라왔다.
▲ 뽀글머리 뽀글뽀글한 머리카락이 올라왔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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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이 끝날 무렵부터 회복에 좋은 먹거리는 물론, 머리카락에 좋은 먹거리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그렇다고 해서 먹으면 검은 머리카락이나 튼튼한 머리카락이 난다는 특별한 것을 먹지는 않았다. 아프기 전에도 누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사람이 먹는 거는 다 먹어요. 혐오 식품만 빼고"라고 대답했던 나는 가장 일반적이면서 부작용이 없고 흔한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래야 값도 싸고 구하기도 쉬우니까.

그런 내가 선택한 것은 검은콩과 흑임자다. 음식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검은콩은 삶아서 숟가락으로 그냥 퍼먹기도 하고, 흑임자와 함께 다른 음식에 섞어서 먹기도 했다. 싫증이 나면 하루, 이틀 걸렀다가 다시 먹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서너 달 후 질서없이 자란 머리카락을 다듬으러 미용실에 갔더니 꼬부랑 머리카락을 보고 신기해하면서 하는 말이, "튼튼하고 건강하지는 않지만 새까만 머리카락이 빽빽하게 올라왔다"고 했다. 내가 만져 봐도 머리카락이 힘이 없고 가늘었다. 예전엔 머리숱이 너무 많고 뻣뻣해서 싫었는데 이제는 그 머리카락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사람 참 간사하다.

헤어 디자이너에게 어떻게 하면 좀 더 굵고 튼튼한 머리카락이 나느냐고 물었더니, 한 번쯤 밀어주면 혹시 어떨지 모르겠다며, 권하지는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머리카락을 다듬지 말고 빡빡 밀어달라고 했다. 어차피 한두 달 늦게 나는 셈 치면 되니까. 이렇게 새까맣게 나는 것만도 감지덕지한 일이라고. 미련 없이 머리카락을 밀고 모자를 눌러 쓴 뒤 미용실을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거울을 봤다. 항암치료를 하느라고 빠져서 밋밋한 머리가 아니라, 자란 머리를 밀어서 까뭇까뭇하니 봐줄 만했다. 다음 날부터 외출할 때 격식을 차려야 되는 자리가 아니면 모자를 벗고 민머리에 귀걸이로 포인트를 줬다. 될 수 있는 대로 화려하고 큰 귀걸이를 했다. 어떤 날엔 거짓말 좀 보태서 버스 손잡이만 한 것도 했다. 옷은 캐주얼하게 입었다. 어떤 이는 나이에 안 어울리게 그게 뭐냐고 하기도 했지만, 뜻밖에도 '젊어 보인다', '세련돼 보인다'고 입에 발린 말이 아닌 진짜 칭찬을 해 주는 사람이 더 많았다. 내게는 칭찬이라기보다 격려로 들렸다.

눈치 없이 아네모네 마담이 되는 게 아닌가 모르겠지만, 스스로 위로하고 위로 받는 것도 치료의 일종일 수도 있으니까. 다음에는 남대문 시장으로 나가 봐야겠다. 어떤 싸고 예쁜 귀걸이가 있는지.

민머리일 때부터 일부러 머리를 민 것처럼 귀걸이로 연출을 했다.
▲ 짧은 머리에 귀걸이를 한 모습 민머리일 때부터 일부러 머리를 민 것처럼 귀걸이로 연출을 했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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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갑질, #귀걸이 , #청미래, #중금속 해독, #뽀글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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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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