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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주택 살기 고민 중의 하나인 '길고양이'. 사진은 우리 동네 터줏대감처럼 출몰하는 고양이.
 단독주택 살기 고민 중의 하나인 '길고양이'. 사진은 우리 동네 터줏대감처럼 출몰하는 고양이.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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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에 단독주택 살이의 '핵심'은 '함께 살기'라고 쓰며 이웃과 더불어 살고 있는 우리 동네를 소개했다. 그런데 단독주택에서 살아가려면 함께 살아야 할 대상이 '이웃'만이 아니다(관련기사 : [도전! 장기자의 단독주택 살아보기③] '단독생활' 보장없는 단독주택).

이사 온 지 1주일 쯤 되던 날, 아내는 국물을 빼낸 멸치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먹을 것을 찾아다니며 어슬렁거리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로 제공하기 위해서다. 작은 접시에 멸치를 놓고 "야옹, 야옹" 하며 고양이를 불렀다.

눈치 빠른 고양이는 자기 주인이 아닌데도 경계심 없이 금세 나타나 멸치를 먹기 시작했다. 아내는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이 삐쩍 말랐다며 안쓰러워했다. 멸치는 물론, 먹다 남은 밥에 생선가시를 비벼서 집 앞 계단에 놓곤 했다.

거실 창 너머로 길고양이가 배불리 밥을 먹고 혀로 빈 접시를 싹싹 핥는 것을 보는 아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사랑이 넘치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흐뭇했다. 그러나 아내의 그 미소는 오래 가지 않았다.

아파트에 살 때 100개가 넘는 화분을 기르며 늘 '볕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아내는 단독주택으로 이사 오자 꽃 키우는 재미에 쏙 빠졌다. 양지바른 안방 창문 밑에는 전에 살던 주인이 최고급 흙으로 채운 화단이 있다. 이를 본 아내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 부드러운 흙을 손으로 만지며 여기에 무얼 심을까 고민했다.

그리고는 꽃 잔디도 조금 심고, 다육이들도 조금 심고, 패랭이도 조금 심고... 아침에 눈 뜨면 곧 바로 화단으로 달려 나갔다. 남편보다(?) 사랑하는 꽃 들이 밤새 안녕하셨는지 인사라도 하는 모양으로 맨 손으로 풀을 뽑고, 때론 벌레도 잡아주었다.

화단에 싸 놓은 고양이 똥. 평소에는 실례를 하고서 흙으로 덮어놓더니 이날은 너무 급했는지 이렇게 취소한의 예의도 없이 가버렸다.
 화단에 싸 놓은 고양이 똥. 평소에는 실례를 하고서 흙으로 덮어놓더니 이날은 너무 급했는지 이렇게 취소한의 예의도 없이 가버렸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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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끼약~" 하는 소리를 질렀다. 아내가 화단에서 맨 손으로 캐낸 것은  '고양이 똥'이었다. 고양이는 모래를 파고 똥을 눈 뒤 덮는 습관이 있어서 화단에 똥을 싸는 것이다. 도시에 사는 고양이에게 먹이 구하기 못지않게 힘든 것이 '화장실' 문제라고 생각된다.

연약한 발로 흙을 파고 '실례'를 한 뒤, 다시 덮어야 하기 때문에 모래를 찾는 것이 가장 좋지만, 도시에는 모래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부드러운 흙이 있는 우리 집 화단을 '화장실'로 삼은 것이다. 그날부터 우리는 고양이 똥을 찾아 치우는 게 일상이 되었다.

아~ 그때서야 알았다. 옆 집 화단에 왜 '밤송이'가 있는지를... 고양이도 똥이 마려우면 싸야 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키우는 애완 고양이도 아닌데 매일 매일 똥을 치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양이에게는 미안하지만 할 수 없이 우리 화단에도 고양이가 못 들어오도록 울타리 아닌 울타리를 쳤다. 이웃과 허물없이 지내겠다고 담도 없앤 집에서 고양이 때문에 울타리를 치게 되다니... 그리고 고양이 밥도 주지 않기로 했다.

고양이의 말썽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쓰레기를 버리려고 봉지에 담아 내놓으면 먹을 것이 없나 하며 찢어 놓기 일쑤다. 단순히 찢기만 하는 게 아니라 봉투 안에 있던 지저분한 우리 집 '내용물(?)'들을 동네사람 다 좀 보라고 전시해 놓는다.

아파트에 살 때는 쓰레기를 버리는 커다란 통이 있어서 그런 일이 없었다.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나도 치우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니었다. 단독주택에서는 길고양이의 말썽도 내 책임이다. 내가 밥을 열심히 주어서 동네 고양이를 다 모으면, 그리고 새끼까지 낳으면 아마 동네사람들이 우리 집을 원수로 여길지 모른다.

겨울이면 고양이들은 자동차 밑에 숨는다. 아직 식지 않은 엔진의 열기를 느끼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가끔 차를 타려다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자동차 밑에서 시커먼 것이 쑥 튀어나오면 가슴이 철렁한다. 그럴 때는 남자인 나도 가슴이 철렁한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알파벳 'C'자가 튀어나온다.

올 봄 아내가 새롭게 심은 튜울립과 수선화 화분. 고양이의 똥 밭으로 제공하지 않으려면 이렇게 방어를 해야 한다.
 올 봄 아내가 새롭게 심은 튜울립과 수선화 화분. 고양이의 똥 밭으로 제공하지 않으려면 이렇게 방어를 해야 한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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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폐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짝짓기의 시기가 오면 밤마다 울부짖는 소리에 잠을 깨기도 한다. 조물주가 주신 본능이니 어쩌겠냐마는 그냥 참고만 있기에는 참으로 괴롭다. 우리 동네에 사는 고양이들은 힘(?)도 참 좋은 가 보다. 밤새 그렇게 울어대니 말이다. 어느 때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궁시렁 댔다.

"아, 그 쯤 했으면 대충 받아주지... 아이고, 저 암컷 너무 비싸게 구네."

새내기 단독주택 주민인 우리는 이러한 고민을 동네 아주머니에게 털어 놓은 적이 있다. 고양이 때문에 힘들다고. 그랬더니 그 분도 처음에 너무 힘들어서 구청에 신고를 했다고 한다. 고양이 좀 어떻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구청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이구, 힘드시겠네요. 그렇지만 고양이도 생명인데 잡아 죽일 수는 없잖아유~"

맞다. 고양이도 생명인데 함께 살아야지 어쩌겠는가. 단독주택 살기 1년이 넘어서니 차츰 적응이 되어 고양이 울음소리에도 잠이 잘 온다. 고양이 똥을 발견하면 대수롭지 않게 모종삽으로 떠서 변기에 버린다. 자동차 밑에서 고양이가 튀어 나오면, "야옹~" 하며 인사를 건넨다. 이제 겨울이 지나 봄이 되었으니 고양이 울음소리가 더 커지리라.

'단독주택 살기'의 핵심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함께 살기'다.


태그:#단독주택, #장기자의 단독주택 살아보기, #고양이, #길고양이, #함께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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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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