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한국야구 역사에 한 획을 남긴 레전드급 선수들을 숱하게 배출했다. 장종훈,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 그리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까지.

하지만 한편으로 선수 못지않게 한화를 거쳐간 감독들의 면면도 상당히 화려하다. 전신인 빙그레 시절을 포함하여 역대 한국야구 최다승 감독 10걸 중 절반 이상인 무려 6명이 모두 한화 사령탑을 거쳐갔다. 최다승 1위 김응용 전 감독을 비롯하여, 김인식, 강병철, 김영덕, 이광환, 그리고 지금의 김성근 감독까지 독수리 유니폼을 입었다.

전설의 감독들, 한화에서는 빛 발하지 못해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야구를 빛낸 전설적인 감독들도 유독 한화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일단 앞서 언급한 최다승 감독들의 우승 횟수만 합쳐도 무려 20회에 이르지만 이들 중 한화에서 우승을 차지한 감독은 단 한명도 없다.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인 한화의 1999년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인물은 이희수 감독이었다. 1998년 7월 성적부진으로 경질된 강병철 감독의 후임으로 지휘봉을 잡은 이희수 감독은 1999년 당시 양대 리그제에서 매직 리그 2위, 정규시즌 승률 4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라 두산과 롯데를 겪고 한화에 대망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선사했다. 이듬해 2000시즌 드림리그 3위에 그치며 성적부진으로 재계약에 실패한 이후로는 더 이상 프로 1군 감독 경력이 없다. 불과 3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구단 역사에 유일하게 굵은 족적을 남겼다.

역대 한화 사령탑중 가장 운이 없었던 인물은 '야구판 홍진호' 김영덕 감독이다. 프로 원년 OB와 1985년 삼성(전후기 통합우승)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하며 초창기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명장중 하나로 이름을 떨쳤지만, 한화의 전신인 빙그레에서는 준우승만 4번이나 차지하는 불운에 울어야했다. 88~89,91년에 모두 김응용의 해태에 덜미를 잡혔고, 1992년에는 롯데에 사상 첫 정규시즌 3위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진기록을 선물하며 '2인자'의 이미지를 남겼다.

김인식 감독(2005~2009)과 김응용 감독(2013~2014)은 전성기의 명성이 무색하게 한화에서 말년에 체면을 구긴 경우다. '국민감독'으로 명성을 떨쳤던 덕장 김인식 감독은 부임이후 한화를 3년연속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고 2006년에는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초창기에는 선방했다. 그러나 2008년 4강진출에 실패하며 서서히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2009년에는 비시즌 WBC 대표팀 감독직을 맡아 소속팀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어려움속에 창단 첫 최하위의 수모를 당했다.

전성기가 지난 노장 선수들을 끌어모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용병술로 재활공장장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지만, 류현진을 발굴한 것 이외에는 대체로 세대교체와 리빌딩에 소홀했고 쓰는 선수들만 혹사시킨다는 비판 속에 2009시즌이 끝나고 재계약에 실패했다. 이 시기가 사실상 한화 암흑기의 출발선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해태와 삼성에서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이라는 빛나는 업적을 세운 김응용 감독은 한화에서는 철저히 실패하며 한물간 노장으로 전락했다. 김응용 감독이 지휘한 두 시즌간 한화는 91승 3무 162패라는 참혹한 성적에 그쳤고 9개구단 체제에서 사상 첫 2년연속 9위라는 굴욕을 세웠다. 전임 한대화 감독 시절까지 포함하면 3년 연속 최하위.

특히 타고투저 현상이 극에 달한 지난 시즌에는 팀 평균자책점 6.35으로 프로 원년의 삼미 슈퍼스타즈를 능가하는 역대 최악의 기록을 경신했다. 팀 실책도 113개로 전체 1위. 류현진의 미국진출과 박찬호의 은퇴 등 부임전부터 전력누수의 악재가 있었다고 하지만, 김응용 감독의 리더십은 결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김응용 감독의 후임으로 한화 지휘봉을 잡게 된 김성근 감독과의 인연도 이채롭다. 두 감독은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명장이지만 야구인생과 지도스타일은 전혀 달랐다. 김응용 감독이 해태와 삼성 등 명문구단에서 안정적으로 장기집권하며 수많은 우승을 차지할 동안, 김성근 감독은 주로 약팀을 맡아 강팀을 만들어놓는 리빌딩 전문가로 통했다. 김응용 감독이 선수와 코치들을 활용하는 자율야구에 가까웠다면, 김성근 감독은 철저한 스파르타식 훈련과 벌떼마운드로 대표되는 관리야구의 신봉자였다.

공교롭게도 김성근 감독은 과거 김응용 감독의 맞대결에서 제대로 이긴 적이 없다. 역대 최고의 명승부로 평가되는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도 김성근의 LG는 김응용의 삼성에 2승 4패로 패했다. 당시 김응용 감독은 지금 김성근 감독의 별명이 된 '야신'이라는 표현을 창조하며 상대와 자신을 동시에 높이기도 했다.

김성근 감독은 김응용 감독의 전성시절 단 한번도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하고 프런트와의 마찰로 여러 차례 경질되는 등 저니맨의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김응용이 은퇴한 이후 SK(2007~2011)에서만 세 번이나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등 노년에 들어 비로소 전성기를 맞이하며 진정한 야신으로 거듭났다.

김성근 리더십, 한화에서도 통할까

73세의 현역 최고령 사령탑인 김성근 감독의 스토리는 야구를 넘어 사회 현상으로 불릴만큼 주목을 받고 있다. SK 사령탑에서 경질된 이후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감독을 맡기도 했던 김성근 감독이 한화를 통해 1군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던데는 김성근 리더십을 갈망하는 팬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3년 김응용 감독의 부임 당시 과거의 인물을 불러온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적지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인 분위기였다.

김성근 감독이 김응용-김인식 등 동시대를 풍미한 라이벌 감독들도 이루지 못한 한화 재건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2015시즌 야구계의 최대 이슈중 하나다. 한화는 지난 시범경기에서 3승 9패에 그치며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성적이 의미없는 시범경기라지만 팀순위만이 아니라 팀 타율 8위(0.228), 팀 홈런 최하위(1개), 평균자책점 9위(4.89), 실책 공동 9위(10개) 등 내용 면에서도 크게 향상된 모습을 느낄 수 없었다. 지난 겨울 화제의 중심이었던 스프링캠프에서 김성근표 지옥훈련의 효과를 의심하게 만드는 수치였다.

역대 사령탑중 한화를 끝으로 더 이상 프로 감독 지휘봉을 잡지 못한 인물들도 많다. 한화가 '레전드 감독들의 무덤'이라는 달갑지 않은 징크스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김성근 감독의 행보가 주목된다. 야신은 과연 한화에서도 기적을 행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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